인간문제 - 30

가을 하니 달이 밝거던 에이 이놈아 임이 없단 말이어! 허허…… 이애 너 장가 가보았니?"
첫째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기에 불그레한 그의 눈에 이성을 생각하는 빛이 뚜렷이 보였다. 그는 얼핏 선비를 눈앞에 그리며 이상스러운 감정에 가슴이 뒤설레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고 말았다. 동무는 일어나는 첫째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왜 대답이 없니?"
첫째는 대답 대신에 픽 웃어 보이고는 부엌으로 나왔다. 국밥집 부인은 부엌에서 분주히 돌아가다가 첫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아재, 오늘 돈 좀 줘야겠수."
첫째는 멈칫 서서,
"얼마유? 모두."
"오십 전이지."
납작한 얼굴을 쳐들고 첫째의 눈치를 살살 본다. 저편 밥상에는 아직도 노동자들이 죽 둘러앉아 훅훅 하고 국밥을 먹고 있다.
"옜수, 우선 삼십 전만 받우."
"내일 또 오겠수?"
"봐야 알지유. 좌우간 나머지는 곧 드리겠수."
"예……."
국밥집 부인은 이십 전을 마저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뻔히 보였다. 첫째는 방 안에서 동무가 나오는 것을 보며,
"이놈아 취했다, 거게 누워 자라!"
"이놈 술 한잔 안 사주겠니?"
"훗날 사줄라. 오늘은 돈 없다."
"이 자식 보게, 돈이 없다?"
달라붙는 동무를 물리치고 첫째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언제나 저들도 계급의식에 눈이 뜰까? 하였다. 첫째 역시 신철이를 만나기 전에는 돈만 생기면 술만 먹었다. 술 먹지 않고는 맥맥하고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남들은 그나마 어려운 살림이나, 계집 있고 어린것들이 있어 일하고 돌아오면 '아빠, 아빠' '여보, 돈 내우, 쌀 사오게' 이런 말에나마 위안을 얻지만 그는 답답하게 벽만 바라보고 앉을 뿐이다. 그러니 화가 나서 술집으로 달아오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철이를 만나 본 그는 술을 끊고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는 전같이 실없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무엇을 깊이 생각하였다. 그래서 동무들은,
"이 자식이 웬일이야? 술도 안 먹고, 어데 계집을 얻어 두었나 베."
이렇게 놀리곤 하였다. 그는 어정어정 걸으며 사면을 휘휘 돌아보았다. 그리고 스파이 같은 것이 그의 뒤를 따르지 않나? 하는 불안에 골목골목을 주의하며 주인집까지 왔다.
전등불도 켜지 않은 채 그의 방은 쓸쓸하게 그를 맞아 주었다. 그는 웬일인지 갑갑함을 느끼며 신철이한테라도 가볼까 하였으나 그가 지금 집에 없을 것을 짐작하며 벽을 기대었다. 그는 언제나 전등불을 켜지 않은 채 자고 만다. 그가 어려서부터 캄캄한 방에서 자란 까닭에 이렇게 캄캄한 가운데 앉은 것이 퍽으나 좋았다. 만일 어쩌다 불을 켜면 도리어 답답하고 눈등이 거북해서 못 견디었던 것이다.
선비! 그가 참말 선비인가? 그러면 내가 날마다 전해 주는 그 종이도 보겠지. 그가 글을 아는가? 아마 모르기 쉽지! 참, 공장에는 야학이 있다지. 그러면 국문이나는 배웠을는지 모르겠구먼……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자기 역시 국문이라도 배워야만 될 것 같았다. 어디서 배울 곳이 있어야지! 신철이보고 가르쳐 달랄까? 그는 빙긋이 웃었다. 삼십에 가까워 오는 그가 이제야 국문을 배우겠다고 신철의 앞에서 가갸거겨 할 생각을 하니 우스웠던 것이다. 보다도 필요와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한잠을 푹 자고 부시시 일어났다. 그는 기운이 버쩍 남을 느꼈다. 그가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고 나서니 옆집에서는 시계가 새로 두시를 친다. 그는 언제나 저 시계가 두시를 칠 때 이 문밖을 나서는 것이다.
번화하던 이 거리도 어느덧 고요하고 전등불만이 이따금 껌벅이고 있다. 그는 한참이나 서서 주위를 살피며 말할 수 없는 흥분과 감격을 느꼈다. 그때 멀리 들리는 기선의 기적 소리가 우웅하고 인천 시가를 은근히 울려 주었다. 그는 슬금슬금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신철의 하숙까지 왔을 때 신철이는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이제야 돌아온 눈치다. 그의 긴 눈에는 피곤한 빛이 뚜렷이 보였다. 신철이는 눈을 부비치고 첫째를 바라보았다. 첫째의 시커먼 얼굴에는 긴장한 빛과 아울러 어떤 위엄이 씩씩히 빛나고 있었다.
신철이가 처음 첫째를 만났을 때는 다만 순직한 노동자로밖에 그의 눈에 비치지 않던 그가…… 보다도 순직함이 도수를 지나 어찌 보면 바보 비슷하게 보이던 그가, 불과 몇 달이 지나지 못한 지금에 보면 아주 딴 사람을 대한 듯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때에 마주보면 신철이는 어떤 위압까지 느껴진다. 신철이는 묵묵히 앉은 첫째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런데 동무, 주의하시오. 지금 경찰서에서는 삐라를 단서로 대활동을 하는 모양이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소."
첫째는 눈을 번쩍 뜨며 신철이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붙잡힐 것 같았다. 그리고 붙들릴 바에는 자기와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만 그리 되었으면 하였다. 만일에 신철이 같은 중요한 인물이 붙들리게 되면 바야흐로 계급의식에 눈떠 오려던 인천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앞길은 암흑 천지로 변할 것 같았다. 보다도 자기들이 붙들리게 되면 어떠한 무서운 매라도 넉넉히 맞고 견디어 내겠으나 신철이같이 저렇게 부드럽고 희맑은 육체를 가진 그들이 그 매에 견디어 낼까? 그것이 무엇보다도 의문이요 걱정이다.
신철이는 첫째와 마주앉아 말할 때마다, 그리고 중요한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우리들은 이렇게 하여야 하오! 하고 언제나 우리들이라고 노동자를 가리켜 불렀다. 그러나 첫째의 귀에는 신철이만은 자기들과는 무엇으로 보든지 딴사람 같았다. 그래서 신철이가 말할 때마다 저가 우리들을 생각하여 우리들의 눈을 밝혀 주려고 애쓰거니…… 하는 일종의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치밀곤 하였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 개월에 한 번으로 정하였으니 오는 달 십오일에 또 오시오. 하여튼 조심해야 하오. 그리고 동무를 주의하며, 술과 계집 같은 것은 물론 삼갈 것으로 아니까 더 말하지 않으나……."
신철이는 첫째의 눈치를 살핀다. 첫째는 씩씩 하며 앉아 있다. 마치 말 잘 듣는 소 모양으로 그렇게 충심되는 반면에 움직일 수 없는 그 무엇을 은연중에 발견할 수가 있었다.
"자! 그럼 갔다 오시우!"
신철이는 일어났다. 첫째는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신철이는 손빠르게 격문 뭉텅이를 그의 손에 힘있게 들려 주었다.
"조심하시오!"
첫째는 얼른 받아 바짓가랑이 속에 쑥 집어넣고 나서 신철의 손을 힘있게 흔들었다. 그리고 도리우치를 푹 눌러 쓴 후에 대문 밖을 나섰다.
이제 신철에게서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지 그의 신경은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수없는 눈과 귀로만 된 듯하였다. 그는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대동방적공장까지 왔다. 우선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어디서 사람이 숨어 엿보지나 않는가? 하여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공장에서는 발전기 소리가 우렁우렁 하고 흘러나온다. 그리고 까맣게 쳐다보이는 연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달빛에 희게 굽이친다.
그는 다시 이편 골목으로 와서 한참이나 보았다. 그러나 인기척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으며 고요하였다. 그는 이번에는 살살 기어서 동북편 담모퉁이를 향하였다. 그는 담 밑에 착 붙어 섰다. 그리고 바짓가랑이 속에서 뭉텅이를 내어 얼른 구멍 속에 쓸어 넣고 돌아섰다. 그는 숨이 가쁘게 이편 집모퉁이로 와서 한참이나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때에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낮에 본 여공들의 긴 행렬이었으며, 그 중에 섞여 있던 선비였다. 선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비가…… 참말 그 선비였는가? 그리고 저 안에서 지금 실을 켜고 있는가? 혹은 잠을 자고 있는가? 그도 나를 확실히 본 모양인데…… 나를 알아보았을까?
선비도 자기가 넣어 주는 그 종이를 보고 똑똑한 선비가 되었으면…… 하였다. 과거와 같이 온순하고 예쁘기만 한 선비가 되지 말고 한 보 나아가서 씩씩하고도 지독한 계집이 되었으면…… 하였다. 그때에야말로 자기가 믿을 수 있고 같이 걸어갈 수가 있는 선비일 것이라…… 하였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걸었다. 인간이란 그가 속하여 있는 계급을 명확히 알아야 하고, 동시에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이라는 신철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야학을 마치고 삼호실로 돌아온 선비는 옷을 입은 채로 자리에 누웠다. 칠호실에서 간난이와 같이 있을 때는 야학만 마치고 돌아오면 이불 속에 엎디어 밤 가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삼호실로 옮아온 후부터는 아직도 한방에 있는 그들과 친해지지를 않아서 그런지, 마치 남의 집에 나들이로 온 것 같고, 방 안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놈의 감독놈이 무슨 짓이어? 나를 이 방에다 끌어다 두면 제가 어떻게 하겠단 말이어…… 아무래도 수상하지. 간난의 말과 같이 그놈이 간난의 눈치를 챘음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그놈이 나한테 반한 셈인가? 하였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또다시 첫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기들이 월미도를 향하여 가던 그때, 그 해변 돌길에서 눈결에 본, 아니 똑똑히 바라본 첫째, 그가 참말 첫째인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첫째를 눈결에 지나친 후로 선비는 밤마다 첫째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옛날에 그가 나물하러 잿등에 올라갔다가 첫째를 만나 싱아를 빼앗기고 울면서 내려오던 그때 일을 다시금 회상하여 보곤 하였다. 동시에 그의 어머니가 가슴을 앓아 돌아가실 때, 어느 새벽에 갖다 주던 소태나무 뿌리! 지금 생각하면 그때에 자기는 너무나 첫째를 몰라본 것 같았다. 지금 같으면 그 소태 뿌리가 얼마나 귀한 것이며 얼마나 고마운 것이랴! 첫째의 결백한 순정의 전부가 그 싱싱한, 그리고 아직도 흙이 마르지 않았던 그 소태 뿌리에 은연중에 들어 있던 것을 그는 몰라보았다. 그렇게 고마운 것을…… 밤을 새워 가며 캐온 듯한 그의 정성을 대표한 소태나무 뿌리를 윗방 구석에 팽개친 자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는 자기의 그때 행동에 대하여 분하고도 부끄러웠다.
단 한 번이라도 좋아! 그를 꼭 만나 볼 수가 없을까? 선비는 돌아누우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은 그의 볼에 따끈따끈하게 부딪친다. 그때 그는 씩씩 하며 자기를 껴안아 주던 덕호가 떠오른다. 그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자기는 첫째를 만나 볼 그 무엇을 잃은 듯하였다. 그는 안타까웠다. 분하였다. 이십 년이나 고이 싸두었던 그의 정조를 늙은 호박통같이 생긴 덕호에게 빼앗긴 생각을 하니 그는 생각할수록 분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자기는 반정신은 나가서 분한 것도 아무것도 몰랐으나 지금 이렇게 누워서 눈감고 생각하니 그때에 자기는 덕호에게 일생을 망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선비는 얼굴이 화끈 달았다. 그리고 첫째의 얼굴을 다시 그려 보았다. 자기를 보고 놀라는 듯한 첫째의 표정을 보아 그도 역시 선비 자신을 알아본 듯하였다. 따라서 잠시간이나마 첫째가 자기를 어느 구석에 잊지 않고 이때까지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선비 자신이 흥분이 되어 그를 바라본 까닭에 그렇게 그의 눈에 비치어졌는지 모르나 어쨌든 첫째가 자기를 얼른 알아본 것만은 사실인 듯하였다. 그때 선비의 가슴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슬픔, 그리고 반가움이 교착이 되어 가지고 그의 조그만 가슴을 잡아 흔들었다. 동시에 언제까지나 그의 앞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서 밀고 앞에서 재촉하는 무서운 현실! 번개같이 만나자 번개같이 들었던 일만 가지 감회를 쓸어안은 채, 선비는 그 현실에 순응하지 아니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몰라보리만큼 꺽센 첫째의 몸집, 그리고 거칠고 거칠어진 그의 얼굴에 그나마 옛날 싱아를 빼앗아 먹으며 빙긋빙긋 웃던 그 눈만이 아직도 혁혁히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눈 역시 세고에 부대끼어 전과 같은 순진하고 맑은 기운은 약간 보이고, 반면에 무서우리만큼 강하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 그라야만 덕호에 대한 자기의 원을 풀어 줄 것 같았다.
그때 그는 간난이가 일상 하던 말을 얼핏 깨달으며, 세상에는 덕호와 같은 우리들의 적이 많은 것이다. 그것을 대항하려면 우리들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던 그 말을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선비는 어떤 힘을 불쑥 느꼈다. 그리고 간난이가 가르쳐 주는 그대로 하는 데서만이 선비는 첫째의 손목을 쥐어 보리라 하였다. 흙짐을 져서 파래진 첫째의 등허리! 실을 켜기에 부르튼 자기의 손끝! 그리고 수많은 그 등허리와 그 손들이 모여서 덕호와 같은 수없는 인간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보다도 선비의 앞에 나타나는 길은 오직 그 길뿐이다. 으흠 하는 기침소리에 그는 흠칫했다.
선비는 놀라 숨을 죽이고 들었다. 또다시 기침소리가 들릴 때 그는 그 기침소리가 숙직실에서 나오는 감독의 기침소리인 것을 깨달았다. 벽을 새로 감독과 그가 마주 누운 것이 직각되자 불쾌하였다. 그리고 간난에게서 들은 용녀의 이야기를 다시금 되풀이하며, 이를테면 나도 용녀 모양으로 그렇게 지내자는 심중에 이 방으로 옮기게 하였으나 내가 왜 말을 듣나. 만일 용녀같이 그렇게 농락하려고 그가 덤벼들면 망신을 톡톡히 시켜 놓고 나는 나가지. 이 공장 아니면 딴 공장은 없을까. 이렇게 그는 결심은 하나 그러나 그의 앞에는 불길한 예감만 그의 머리를 자꾸 싸고돌아 어쨌든 불쾌하였다. 이런 때 간난이가 곁에 있으면 어떠한 말을 하여서든지 자기의 맘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간난이를 찾아가서 덤벼드는 감독을 대항할 방침을 문의하고 싶었다.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가졌으나 용이하게 기회를 타는 수가 없었다. 낮에는 바쁘고, 하루 건너서 야근을 하고, 시간이 좀 있다더라도 그 틈을 타서 옷 해 입기에 눈코 뜰 짬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밤에나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몇 달 내지 몇 해를 간다더라도, 마주앉아 말 한마디 할 틈이란 바늘 끝만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감독이 기침한 것을 보아 아직도 잠이 안 든 모양인데 문소리를 내면 필시 쫓아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에라 후일 간난이를 만나지! 오늘만 날인가? 하였다.
그때 문소리가 난다. 선비는 얼른 문 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방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숙직실 감독의 방문이 열리는 듯하였다. 뒤미처 신발 소리가 가늘게 났다. 선비는 몸이 한줌만해지며, 참말 자기의 몸에 위기가 박두한 것을 느꼈다. 그는 이불을 막 쓰고 숨을 죽이었다. 신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비는 감독이 저 문밖에 서서 이 방 사람들이 자는가 안 자는가를 엿보는 듯싶고, 그리고 금방 감독이 들어와서 그에게 덤벼드는 듯하여 가슴이 울렁울렁 뛰놀았다. 따라서 철모르고 자는 옆의 동무를 깨울까말까 망설이었다.
한참 후에 선비는 가만히 이불을 벗으며 신발 소리와 문소리를 들으려 하였다. 그때 옆의 동무도 역시 머리를 내놓고 있다가 선비를 바라보며,
"이제 문소리 났지?"
선비는 너무 반가워서 바싹 다가 누웠다.
"너도 깨었니?"
"그래, 그 무슨 문소리어…… 감독의 방 문소리가 아니어?"
"그런 것 같애……."
옆의 동무는 선비의 귀에다 입을 대었다.
"저 요새 말이어…… 감독이 저렇게 자지를 않고 순시를 돌아. 그런데 넌 그 이상스러운 종잇조각을 보지 못하였니?"
선비는 얼른 종잇조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는 시치미를 떼고,
"몰라…… 무슨 종이냐?"
"딴 방에는 안 그런가 모르거니와 우리 방에는 요전에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보면 무슨 종잇조각이 떨어져 있는데 그것에는 우리 공장 안의 일을 모두 썼겠지. 네 전날 우리 월미도에 가면서 구두를 신고 가지 않았니……?"
"그래."
"그런데 그 구두도 말이어…… 이애 후일 말하자."
동무는 문 편을 바라보며 말을 끊었다. 선비는 미리 간난에게서 들었던 말이므로 더 추궁하여 묻지 않았다. 더구나 감독이 저 말을 듣지나 않나? 하는 불안에 가슴이 한층더 졸이었다가, 잘되었다 하였다. 따라서 수없는 여공들의 수수께끼인 그 종잇조각은 아무래도 간난이가 어떻게든지 해서 돌리는 것 같았다. 간난이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하는 말이며 동작이 아무래도 그 수수께끼의 주인공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의 이면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듯하였다. 간난이가 자기에게는 무엇이나 숨기는 비밀이 없으나 오직 그 일만은 숨기는 듯하였다. 그것이 무슨 일이며, 누구들이 뒤에서 조종하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 비밀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비는 처음에는 수상하게 생각되었으나 시일이 지날수록 그 일이 무슨 일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짐작은 되었다. 확실하게 자기가 짐작하는 그런 일이라고는 꼭 말할 수 없으나, 그저 막연하고 분명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때 별안간 문이 바스스 열리며 회중전등이 쏴 하고 비쳤다.
그들은 얼른 이불을 막 쓰고 잠든 체하였다. 문이 가만히 닫히며 신발 소리가 가까워진다. 선비는 두 손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머리를 베개 아래로 내리며 숨을 죽였다. 그러나 가슴은 무섭게 뛰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자기들이 한 말을 문밖에서 다 듣고 뭐라고 나무라려고 쫓아 들어온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한참 후에 선비는 그의 이불에 감독의 손이 닿는 것을 알자 이불이 벗겨진다. 선비는 몸을 흠칫하며 머리를 숙이었다.
"왜들 이때까지 잠을 안 자?"
감독의 무거운 음성이 방 안을 울려 주었다. 선비는 가만히 있었다.
"잠을 푹 자야 내일 일하기가 힘들지 않지."
감독의 손길이 선뜩하고 선비의 볼에 부딪치므로 선비는 무의식간에 손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 덮으며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 방에는 종이가 떨어지지 않았더냐. 떨어진 것이 있으면 내놓아라."
이번에는 선비의 머리를 툭툭 쳤다. 선비는 옆에 동무가 잠든 줄을 알면 대단히 무서울 것이나, 그러나 잠들지 않은 것을 뻔히 아는 고로 한결 무섭기가 덜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감독이 그의 얼굴을 쓸어보고 머리를 툭툭 치는 것을 옆에 동무가 알 것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맘대로 하면 일떠나며 감독의 상통을 후려치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맘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덕호에게 그의 처녀를 유린받던 장면을 다시금 회상하며 부르르 떨었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던 감독은 이불을 끌어당겨서 푹 씌워 주었다.
"잡생각들 말고 잠자."
말을 마치며 감독은 돌아서 나간다. 선비는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며 베개를 베고 제대로 누웠다. 그러나 감독의 손길이 부딪친 그의 볼에는 벌레가 지나간 것처럼 그렇게 불쾌한 감상이 오래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후에 선비는 감독에게 부름을 받아 사무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감독은 의자에 걸어앉아서 격문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흘끔 쳐다보았다.
"거기 앉아……."
책상 곁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선비는 주저주저하였다.
"이런 것 선비에게도 있지?"
감독은 선비의 속까지 뚫어보려는 듯이,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없어요."
"없는 게 뭐야. 거짓말 말어. 이 기숙사 안에는 안 간 방이 없는데, 선비에게라구 안 갔을 탁이 있나? 바루 말해."
선비는 약간 얼굴을 숙이며, 버선 갈피 속에 깊이 넣어 둔 종잇조각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감독이 혹시 그것을 미리 보고서 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들었다.
"이리 가까이 와."
감독은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자를 가지고 조금 다가왔다.
"이거 봐. 이런 종이를 만일 선비도 가졌다면 찢어 버리고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해. 선비만은 내가 잘 알아. 온순하고 얌전하지, 허허…… 그런데 한고향서 왔다는 간난이가 혹 밤에 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선비는 놀랐다. 한방에 있는 자기도 확실하게 눈치채지 못한 것을 감독이 어떻게 짐작하였는가? 하였다. 그리고 간난이가 그 일로 인하여 불행히 쫓기어 나가게나 되지 않으려나 하는 걱정이 들며 어떻게 감독을 곯리어서라도 그러한 의심을 풀어 버리게 하여야겠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감독이 그에게만은 절대 호감을 가진 것을 아느니만큼 선비가 변호를 하면 아직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이상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그런 일 없어요."
선비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대답하였다. 감독은 입 모습에 웃음을 띠며 조금 다가앉았다.
"한고향서 왔으니 변호하는 셈인가?…… 거게 좀 앉아! 응 자."
선비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흠씬 끼쳐진다. 그리고 그가 처음 덕호에게 유린받던 그날 밤 같아서 몸이 한줌만해졌다. 그래서 그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감독은 선비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궐련을 피워 물었다.
"선비, 금년에 몇 살?"
감독은 궐련재를 털며 물었다. 선비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어서 나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