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수수 하는 바람결에 나뭇잎이 그들의 치맛가를 가볍게 스치고 천천히 떨어진다. 선비는 무심히 나뭇잎을 쥐었다. |
| "벌써 가을이야! 세월두 어지간히 빠르지." |
| 간난이는 선비의 손에 쥐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휙 머리를 돌려 간난이를 바라보다가 빙긋이 웃었다. 간난이가 자기의 생각한 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
| 그들은 저 앞을 바라보았다. 붉고도 흰 벽돌집은 저마다 높음을 자랑하느라 우뚝우뚝 솟았고 북악산 밑 백악관은 몇천만 년의 튼튼함을 보여 주는 듯이 앉아 있다. 그 뒤로 게딱지 같은 집들이 오글오글 쫓겨서 몰려들어 간다. |
| 윙 달아오는 전차 소리, 택시 소리…… 그들이 시선을 옮기니, 옛날의 비밀을 혼자 말하는 듯한 남대문이 컴컴하게 솟아 있다. 그곳을 중심으로 수없이 얽혀 나간 거미줄 같은 전선이며 각 상점 간판이 어지럽게 빛나고 있다. |
| "저 집이 다 사람 사는 집일까?" |
| 간난이는 옆에 선비가 있는 것을 느끼며 돌아보았다. |
| "그럼 사람이 살지, 뭐가 살겠니…… 호호." |
| 그가 처음 돌연히 선비를 만났을 때에도 선비의 미모에 놀랐지마는, 몇 달을 지난 오늘에 보니 그때는 오히려 파리해졌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비록 반찬 없는 밥을 먹으나 서울 온 후로부터 그가 저렇게 살이 오르는 것을 보니 간난이는 기뻤다. 그리고 저애를 어서 가르쳐서 계급의식에 눈을 띄워 주어야겠는데…… 하였다. |
| "선비야, 너 덕호가 밉지?" |
| 선비는 얼굴이 빨개진다. 자기가 덕호와의 관계를 말하지 않았어도 간난이는 벌써 짐작한 듯하였다. 그러므로 선비는 고향 말만 간난의 입에서 떨어지면 불쾌하고도 겁이 나서 가슴이 울울하곤 하였다. |
| "내가 조용한 때 널 보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아직까지 널 보고 조용히 말할 짬도 없었지마는…… 우선…… 너 덕호라는 놈을 어떻게 생각하니? 그것부터 내게 말해라." |
| 선비는 귀밑까지 빨개지며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손에 쥔 나뭇잎만 바삭바삭 소리가 나도록 손끝으로 누른다. 간난이는 선비를 바라보며 선비가 아직도 덕호를 못 잊어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것은 자기의 과거를 미루어서 그렇게 짐작되었던 것이다. 간난이가 태수를 만나 지도받기 전에는 그나마 덕호를 잊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꿈에도 덕호를 만나 영감님! 나는 월경을 건넜에요! 아마 애기가 있지요…… 하고 목이 메어 울다가는 깨곤 하였다. 그뿐이랴! 그가 상경하기 전에 덕호가 선비에게 사랑을 옮기는 것을 샘하여 밤중에 돌아다니다가 어떤 놈이 다그치는 바람에 질겁을 해서 달아나다 개똥이네 집으로 들어갔던 어리석은 자신을 다시금 그는 굽어보았다. 따라서 선비가 더 불쌍하게 보였다. 선비는 머리가 눌리는 듯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덕호의 그 얼굴이 무섭고도 느글느글하게 떠올라서 어서 간난이가 화제를 돌렸으면 좋을 것 같았다. |
| 간난이 역시 덕호의 얼굴이 떠올라서 불쾌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비에게서 시선을 옮겨 저 앞을 바라보았다. 저 번화한 도시에도 얼마나 많은 덕호가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
| 그때 요란스러운 소리에 그들은 머리를 돌렸다. 소나무 아래로 작은 게다 큰 게다가 뒤섞여서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다. 게다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푸른 솔밭 위로 화강석으로 깎아 세운 도리이(鳥居)가 반공중에 뚜렷하였다. |
| 이틀 후에 인천으로 내려온 간난이와 선비는 우선 간난이가 공장에서 사귄 어떤 동무 집에서 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무의 주선으로 대동방적공장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경찰서에서 신원보증까지 헐하게 맡게 되었다. 동시에 대동방적공장에서는 사숙을 허하지 않고 전 여공을 기숙사에 수용한다는 것이 한 철칙이 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일은 세 동무가 일시에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생각을 하고 월미도로, 만국공원으로 해가 질 때까지 돌아다녔다. |
| 저녁을 맛있게 먹은 그들은 상을 물리고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간난이는 일어났다. |
| "인숙아, 나 잠깐 저기 다녀올게." |
| 인숙이를 바라보고 선비를 보았다. |
| "어데를…… 응 너 아까 묻던 그 사람 찾아갈래?" |
| 아까 만국공원에 갈 때 서울서 어떤 동무의 부탁으로 그의 오빠를 찾아봐야겠다고 말하여 사정을 돌아다니며 신철이가 있는 번지를 간난이는 알아 놓고도 찾지 못한 체하고 밤에 찾아본다고 하며 말았던 것이다. |
| "너 혼자 가서…… 번지도 똑똑히 모른다면서 찾겠니?" |
| "글쎄…… 뭘, 가서 좀 찾아보다가 오겠다야. 그애의 말값으로 찾아나 봤으면 되는 것 아니냐. 난 정신없어서 큰일났다니! 번지를…… 아이 몇 번지라던가……." |
| "아이구! 이 바보야, 번지도 모르면서 찾겠대…… 어디 찾아봐라." |
| "좌우간 내 나가서 오래 있으면 찾아간 줄로 알려무나. 그리고 곧 들어오면 말할 것 없고." |
| 간난이는 빙긋이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면을 휘휘 둘러본 후에 사정으로 향하였다. |
| 사정 오번지까지 온 간난이는 좌우를 또다시 살펴본 후에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신철이가 어느 방에 있을까 하고 돌아보았으나 안방 이외는 방이 없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는 잘못 찾아왔는가 하여 도로 나와서 주저하다가 다시 들어갔다. |
| "말 좀 물읍시다." |
| 뒤미처 안방문이 열리며 부인이 내다본다. 간난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
| "저 여기 하숙하는 손님 방……." |
| 말이 끝나기 전에 부인은 마루로 나왔다. |
| "이리로 들어가 물어 보시오." |
| 부엌 뒷골목을 가리킨다. 간난이는 컴컴한 골목을 빠져서 조그만 문 앞에 섰다. 차츰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이 가빴다. 안에는 누가 혼자 있는 모양이다. 문에 그림자가 얼씬하며 신문 뒤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
| "여보세요!" |
| 간난이는 이렇게 찾아보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나이가 나타난다. |
| "유신철 동무입니까?" |
| 신철이는 누군가? 하여 방문을 열었다가, 어떤 젊은 여자가 이 밤에 문 앞에 서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데는 놀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철수한테서 통지받은 생각이 얼핏 들자, |
| "예! 그렇습니다. 들어오시지요……." |
| 간난이는 방으로 들어가서야 신철이가 자기가 있던 앞방에서 자취를 해가며 고생하던 청년임을 알았다. 신철이 역시 간난이를 보자 곧 알았다. |
| "경성서 늘 뵈우시던 동무 아닙니까, 바루 우리 자취하던 앞방에 계셨지요?" |
| "네! 참 우습습니다. 호호……." |
| "허허, 곁에다 동무를 두고도 몰랐습니다그려. 언제 나려오셨습니까?" |
| 신철이는 간난이가 이렇게 속히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경성 있을 때에는 한낱의 방적여공으로밖에 그의 눈에 비치지 않던 그가 오늘 이렇게 마주앉고 보니 새삼스럽게 용감하고도 씩씩해 보였다. 더구나 화장하지 않은 그의 얼굴이 전등불빛에 불그레하니 타오른다. |
| "어제 낮차로 왔습니다. 동무는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
| 간난이는 말끄러미 신철의 눈치를 살피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무슨 말 나오기를 기다렸다. |
| "네, 뭐……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여기 무슨 볼일이 계십니까, 혹은 아주 사시랴고 오셨습니까?" |
| 신철이 역시 간난이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아무러한 눈치도 간난이에게 보이지 않을 모양이다. 간난이는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다가, |
| "저는 여기 방적공장에 취직하러 왔습니다. 혹 먼저 아셨는지요?" |
| 그 밤을 자고 난 세 동무는 드디어 대동방적공장 안에 있는 기숙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 회벽을 한 한 간이나 되는 방에 역시 세 동무가 함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백여 간이나 넘는 듯한 기숙사를 둘러보고 공장 안을 살펴보았다. 서울 T문 밖에 있는 제사공장은 여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기숙사며 공장은 내놓고라도 그 안에 설비된 온갖 기계가 서울서는 보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대개 발전기라든가 제사기라든가 흡사한 것이 일부일부에 없지는 않으나 서울의 것보다는 아주 대규모적이었다. |
| 고치를 삶는 가마도 서울서는 대개 세숫대야만하고 와꾸(자새)도 하나였는데, 여기 것은 가마가 장방형으로 길게 되었으며, 서울 가마의 십 배는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와꾸도 한 사람 앞에 십여 개 내지 이십 개까지 쓰게 된다고 하였다. 선비는 처음이니 아무것도 모르나 간난이와 인숙이는 입을 쩍쩍 벌렸다. |
| 한 결부터 간난이와 인숙이는 제 오백 번, 제 오백일 번이라는 번호를 타가지고 공장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비만은 아주 처음이라고 해서 간난이가 맡은 오백 번호에 곁들여서 실 켜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
| 저편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소음과 돌아가는 와꾸의 소음이 합치어서, 공장 안은 정신 차릴 수가 없이 소란하였다. 선비는 멍하니 서서, 간난이가 실 켜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간난이는 늘 해보던 것이 되어서 모든 것을 손익게 하였다. |
| 우선 남직공이 갖다 주는 초벌 삶은 고치를 펄펄 끓는 가마 속에 들이붓고 조그만 비로 돌아가며 꾹꾹 누른다. 그러니 실끝이 모두 비에 묻어 나왔다. 처음에 나쁜 실끝은 비로 끌어내어 가마 좌우에 꽂힌 못에 걸어 놓고 나서 다시 비를 넣어 실끝을 끌어올리었다. 이번에는 약간 누런색을 띤 정한 실끝이었다. 간난이는 실끝을 왼손에 걸어 쥐고 나서 바른손으로 실끝을 하나씩 끌어 사기바늘에 붙였다. 그러니 실이 술술 풀려 올라간다. |
| 서울 공장에서는 이 사기바늘이 한 개 아니면 혹 두 개까지는 있었으나 이렇게 수십 개씩 되지는 않았다. 간난이는 세 개의 사기바늘에 실을 붙였다. 우선 능해지기까지 세 개를 사용하다가 차차로 늘릴 모양이다. |
| 공장 남쪽 벽은 전부가 유리로 되었으며, 천장까지도 유리를 달았다. 그리고 제사기도 두 줄씩 마주 놓고 그 가운데는 길을 내었으며, 그리로는 감독들이 왔다갔다하고 있다. 서울서는 감독이 다섯 사람이었는데 이곳은 감독이 삼십 명은 되는 모양이다. |
| 오백 번호나 나왔건만 여기서도 아직도 수백 번호가 나가리만큼 아득해 보였다. 선비는 얼굴이 뻘개서 가마에서 뽑혀 나오는 실끝을 들여다보았다. 벌써 간난의 손은 끓는 물에 익어서 빨갛게 타오른다. 그리고 손끝은 물에 부풀어서 허옇게 되었다. |
| "간난아, 내 좀 하리!" |
| 선비가 그의 귀에다 입을 대고 말하였다. 간난의 귀밑으로는 땀이 빗방울같이 흘러내린다. 간난이는 생긋 웃어 보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실을 골라 사기바늘에 붙인다. |
| "처음 와서도 아주 잘 해." |
| 바라보니, 감독이란 자가 마주서서 들여다본다. 그리고 선비를 바라보며, |
| "어서 잘 배워야 해…… 그래서 빨리 일을 해야 돈을 벌지." |
| 선비는 가만히 섰는 자신이 끝없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는데, 또 이런 말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감독은 선비의 숙인 볼을 곁눈질해 보며 그들의 앞을 떠나지 않았다. |
| 그때 전깃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선비는 놀라 전등불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의 눈앞에 벌여 있는 온갖 기계며 여직공들을 볼 때, 자기는 어떤 딴 세계에 들어왔는가? 하리만큼 그의 주위가 변한 것을 느꼈다. |
| "선비야, 너 좀 해봐." |
| 간난이가 물러난다. 선비는 실끝을 쥐니 손이 떨리며 손발이 후들후들 떨려서 맘대로 손을 놀리는 수가 없었다. |
| "가마이! 실이 끊어졌구나!" |
| 간난이가 발판을 꾹 눌렀다 놓으니 기계가 정지되었다. 간난이는 실끝을 사기바늘 속으로 넣어서 저편 끝과 꼭 부비치며, |
| "실이 끊어지면 이렇게 실끝을 맺는다. 봐라, 선비야! 그리고 정지시키랴면 이렇게 하면 돌던 기계가 멎는다." |
|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우렁차게 일어난다. 선비는 눈이 둥그래서 둘러본다. |
| "선비야! 저 사이렌이 울면 우리는 나가고 야근할 동무들이 들어와서 다시 일을 계속한단다." |
| 말도 채 마치지 못하여 야근할 여공들이 우르르 밀려들어 온다. 간난이는 얼른 기계를 정지시킨 후, 실 감긴 와꾸를 뽑아 들고 공장 밖을 나와 감정실 앞에 늘어선 여공들 뒤에 가 섰다. |
| "선비야, 넌 먼저 가거라." |
| 선비는 공장문 밖에 나와 서 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여전히 기계 소리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발하고 있다. 간난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선비는 걸었다. 벌써 식당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나왔다. |
| "어서 가자! 저게 밥 먹으라는 종인가 부다, 아마……." |
| 간난이도 기숙사생활을 하느니만큼 모든 것이 분명하지를 않았다. 그들이 식당까지 왔을 때는 몇백 명의 여공들이 가뜩 들어앉았다. 식당은 기숙사의 왼 하층으로 지하실이었다. 장방형으로 된 방 안에 밥김이 어리어 훈훈하였다. 그리고 기단 나무판자를 네 줄로 이편 끝에서부터 저편 끝까지 이어 놨으며 그 위에는 밥통이며 공기가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들은 밥을 보자 식욕이 버쩍 당기어 술을 들고 한참이나 퍼먹다가 보니 쌀밥은 틀림없는 쌀밥인데 식은 밥 쪄놓은 것같이 밥에 풀기가 없고 석유내 같은 그런 내가 후끈후끈 끼쳤다. 간난이는 술을 들고 멍하니 선비와 인숙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도 역시 그랬다. |
| "이게 무슨 밥일까?" |
| 저편 모퉁이에서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나마 반찬이나 맛이 있으면 먹겠지만 반찬 역시 금방 저린 듯이 소금덩이가 와그르르한 새우젓인데 비린내가 나서 영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식욕이 일어 배에서는 꼬록꼬록 소리가 났다. 그러나 입에서는 당기지를 않아서 술을 들고 저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는 마침 몇 술 떠보는 체하다가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술을 내치고 식당을 나가는 여공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먼저 이 공장에 들어와서 이 밥에 낯익힌 여공들은, |
| "너희들이 배고픈 맛을 못 봐서 그러누나! 여기 들어와서는 이 안남미 밥을 먹어야 한단다! 백날 굶어 보렴! 안남미가 없어질까? 흥!" |
| 그들도 처음 며칠은 이 밥에 배탈을 얻어 십여 일이나 설사까지 하고도 할 수 없이 이 밥을 먹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먹어나니 이젠 배를 앓거나 또는 처음 먹을 때처럼 석유내가 몹시는 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이 배고픈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하였다. 시재 못 먹을 것이라도 배만 고프면 먹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였다. |
| 식당에서 올라온 지 한 시간이 되었을까말까 한데 기숙사 종이 댕그렁댕그렁 울렸다. |
| "이게 뭐 하란 종이우?" |
| 간난이가 놀러 온 여공에게 물었다. |
| "아이 모루우? 이게 야학종이라우…… 어서들 준비하우." |
| "안 가면 안 되우?" |
| "그럼 안 되구말구. 별일 있수. 어찌나 배우는 게야 좋지 않우? 어서들 가요." |
| 그는 종종걸음을 쳐 나간다. 간난이는 입모습에 어느덧 비웃음을 띠고 인숙이와 선비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배가 고파서 창문에 맥없이 기대어 저 밖을 내다보고 있다. |
| "간난아! 우리가 오늘 아침 집에서 너무 잘 먹어서 그 밥이 맛이 없나 봐." |
| "글쎄…… 그 쌀이 안남미라고 하지?" |
| "안남미?" |
| "그래……." |
| "응, 그러니 석유내 같은 내가 나누나! 야! 그게야 어디 먹을 것이더니?" |
| "흥, 그래두 먹으라고 삶아 놓는 데야 어쩌란 말이야! 자 여러 말 할 것 없이 야학에나 가보자! 무엇을 가르치나……." |
| 선비는 배가 좀 고프나 야학이라는 말에 귀가 띄어서 부시시 일어났다. 그때 그는 덕호가 공부시켜 주겠다는 것을 미끼삼아 그의 정조를 유린하던 장면이 휙 떠오른다. 그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진정하며 그들을 따라 강당으로 들어앉았다. |
| 단상에는 낮에 간난이를 칭찬하던 감독이 대모테 안경을 시커멓게 쓰고 서서, 들어오는 여공들을 흘금흘금 바라보았다. 눈 가장자리가 퍼릇퍼릇한 감독에 있어서는 그 안경이 유일한 미안제가 되었다. 여공들이 다 모인 후에 감독은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은 신입 여공들이 많으니 공부는 그만두고 공장 내의 온갖 규칙에 대하여 말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기침을 하고 휘 돌아본 후에 말을 꺼냈다. |
| "이 공장은 다른 작은 공장과 달리 직공들의 장래와 편의를 생각해 주는 점이 많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눈앞에 보는 바와 같이 이 기숙사라든지, 또 야학이라든지 기타 여러분이 소비하기 위한 일용품까지 배급하는 설비라든지 다대한 경비를 들여 맨들어 놓지 않았소……." |
| 감독은 장한 듯이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배를 내밀며 장내를 한 번 돌아본다. |
| "여러분이 늘 쓰는 화장품이나 양말이나 기타 일용품을 시가에 나가 산다고 합시다. 값이 비쌀 뿐 아니라 속기도 쉽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 공장에서 원가대로 배급해 주는 시설이 있습니다. 이 시설은 전혀 여러분을 위함이니 공장측에서는 도리어 손해를 봅니다." |
| 이때 긴장하였던 여공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
| "그리고 에…… 이 공장에는 여러분의 장래를 생각하여 저금제도를 맨들었소. 저금은 인생의 광명이오! 그러니 여러분들은 노동만 하면 공장에서 밥을 먹여 주고 일용품을 대주고 나머지는 저금을 시켜 주니 여러분의 맘에 따라 얼마든지 벌 수가 있지 않소? 여러분은 그저 저금통장만 가지고 있다가 삼 년 후 나갈 때 그것으로 결혼 비용에 쓸 수도 있지 않소? 허허……." |
| 감독은 입 모습에 야비한 웃음을 띠었다. 여공들도 따라 웃는다. |
| "그러니 삼 년만 꾹 참고 일하면 그때는 이 공장을 나가 안락한 가정도 이루어 아들딸 낳고 잘살 수가 있소. 여러분이 여게 들어올 때 삼 년을 계약 맺고 들어왔으나 그 삼 년이 절대로 긴 세월이 아닙니다. 그때 가면 더 있겠다고 할 것이오. 이 공장은 이같이 우대를 하느니만큼 들어올 때 경찰서에서 일일이 보증까지 받아 가지고 들어온 것이 아니오? 그래서 여러분들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뽑혀 들어온 것이니 큰 행복이 아닙니까. 어데 또 이렇게 좋은 곳을 본 일이 있소? 밖에서는 일할 데가 없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
| 여공들은 자기들이 시골에서 조밥도 잘 못 먹고 김매던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을 느꼈다. 감독의 안경은 불빛에 번쩍하였다. 그는 수염을 꼬고 나서, |
| "이 공장에서는 여공의 장래를 그르칠까 봐 풍기를 엄밀히 감독하는 까닭에 개인의 외출을 불허하느니만큼 여러분은 퍽 밖이 그리울 것이오. 그러나 매해 춘추로 좋은 음식을 맨들어 가지고 산보를 가오. 오는 봄에는 여러분에게 구두를 원가로 배급하야 신기고 월미도에 가서 원유회를 할 계획을 지금 사무실에서 하고 있는 중이오……." |
| 여공들의 눈에는 희망과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이때 간난이는 벌떡 일어나서 감독의 말을 일일이 반박하고 싶은 흥분을 가슴이 뜨겁도록 느끼었다. |
| "또 이 공장에서는 삼 주일에 한 일요일은 휴일로 정하고 그날은 앞의 운동장에서 운동과 유희를 시키우. 이것은 여러분의 건강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참 이 공장의 특전이오. 마주막으로 이 공장을 내 공장으로 생각하고 소제를 깨끗이 하며 또 일의 능률을 내어서 임금 외에 상금도 많이 타도록 하오. 그러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도리어 벌금이 있을 터이니 특별히 주의하여야 하오." |
| 그들은 일시에 일어나 감독에게 경례를 하고 강당에서 몰려나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