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날, 밤이 퍽으나 오랜 후였다. |
| "있수?" |
| 굵은 음성과 함께 외눈까풀이가 성큼 들어왔다. 신철이는 밤송이 동무에게 편지 쓰던 것을 얼른 뒤로 밀어 놓고 손을 내밀었다. |
| "아 이거! 반갑소. 그 동안 난 동무를 기다리다 안 오기에 아마 나를 잊은 것으로 알았구려…… 자, 앉으시오." |
| 신철이는 진심으로 반가워서 그의 꿋꿋한 손을 잡아 흔들었다. 외눈까풀이는 빙긋이 웃으며 신철이가 주저앉히는 대로 앉아서 방 안을 휘 돌아보았다. |
| "어데 앓았수?" |
| 뚫어지도록 들여다본 신철이는 외눈까풀이가 기색이 전만 못한 것 같아서 이렇게 물었다. |
| "아니유." |
| 외눈까풀이는 그의 머리를 내려쓸며 약간 머리를 숙였다. 그의 오래 깎지 않은 듯한 좋은 머리카락에 먼지가 뿌옇게 앉았다. 그리고 그의 턱밑으로는 굵단 수염이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신철이는 그가 말하지 않아도 오늘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피로해진 몸임을 직각하는 동시에 자신이 쇠철판을 들려고 애쓰던 생각이 들며 금방 팔이 쩔쩔해 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신철이는 머리맡에 놓인 몇 권의 책을 척척 덧놓아서 밀어 놓았다. |
| "여기 좀 누. 동무 대단히 곤하지우?" |
| 외눈까풀이는 신철이를 흘금 바라보더니 조금 물러앉았다. |
| "아니유……." |
| "누시오, 어서 누시오." |
| 신철이는 바짝 다가앉았다. 땀내와 함께 고리타분한 냄새가 훅 끼친다. 그는 무의식간에 약간 눈살을 찌푸리다가 얼른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옷이 땀에 배어 어룽어룽하니 말라진 것을 보았다. 외눈까풀이는 신철이가 그의 곁으로 다가올수록 어려운 빛을 얼굴에 띠고 점점 더 물러앉는다. 그리고 머리만 벅적벅적 긁었다. |
| "왜, 올라가시우, 좀 누라니까…… 오늘도 일하러 가셨지요?" |
| "네." |
| "어데로 가셨소, 또 부두로……?" |
| "아니유. 왜 월미도 앞 개천 메우는 데 있지우. 거기로 갔댔슈." |
| "그것은 하루의 임금이 얼마입니까." |
| 외눈까풀이는 머리를 들며 머뭇머뭇하였다. 신철이는 그가 임금이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나? 하며 동시에 자신이 이후부터 노동자들이 쓰는 말부터 배워야 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
| "저…… 품값 말입니다." |
| "예, 예…… 그거 잘하면 칠팔십 전, 못하면 사오십 전 되지우." |
| "예…… 평안히 앉아서 우리 맘놓고 이야기합시다. 왜 그리 힘들게 앉아 계시우. 그런데 참 우리 사귄 지는 오래되 피차에 이름만은 모르지 않소…… 난 유신철이라 하오. 동무는?" |
| 신철이는 외눈까풀이를 똑바로 보았다. |
| "나유?…… 첫째유." |
| "첫째…… 그 이름 좋습니다. 고향은?" |
| 첫째는 속으로 고향을 말할까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고향을 말하는 것이 재미없을 듯하여 눈을 내려떴다. |
| "나 고향 없어유." |
| "고향이 없어요……." |
| 신철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향 없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그의 가슴을 찡하니 울려 주었다. 그리고 첫째와 같은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오는 말일지 몰랐다. |
| 고향 말이 나니 첫째는 이서방과 어머니가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쯤은 죽었는지? 혹은 살아서 자기가 돈 벌어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지? 할 때, 이때껏 무심하던 가슴이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그가 집을 떠날 때는 돈을 벌어 가지고 이서방과 어머니를 데려오려고 생각했지만 그가 생각했던 바와 같이 돈을 벌 수도 없지만 그의 몸이 항상 분주한 가운데 이렁저렁 지나니 어머니와 이서방도 그의 머리에서 차츰 희미하게 사라졌던 것이다. |
| "좀 누시오. 일하기 힘들지유?" |
| 신철이는 첫째의 손을 물끄러미 보며 자기의 손과 비교해 보았다. 그때 그는 부끄러운 생각과 함께 무쇠 같은 팔뚝을 가진 첫째가 얼마나 부러워 보였는지 몰랐다. 동시에 자기가 이때까지 배웠다는 것은 자기로 하여금 이렇게 연약한 몸과 맘을 가지게 한 것밖에 더 없는 것 같았다. |
| "동무는 일하기 힘들지 않소?" |
| "아침에는 괜찮유. 그래두 해질 때쯤 가서는 좀 어려워유." |
| "네, 그래요? 동무는 어려서부터 노동일 하셨소?" |
| "아니유. 김매다가 노동을 했수……." |
| 신철이는 꾸밈없는 그의 말과 굵은 음성이 퍽으나 좋았다.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믿는 맘이 차츰 강해짐을 느꼈다. |
| "동무, 난 일하는 데는 도무지 모르니, 이후부터 종종 와서 나에게 일하는 것 가르쳐 주." |
| "일두 뭐 가르쳐 주나유. 그저 하면 되지유, 허허." |
| 첫째는 가르쳐 달라는 말이 우스웠다. 더구나 전날 벽돌 나르면서 애쓰던 신철의 모양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그가 웃는 것을 보니 한층더 그에게 맘이 쏠리었다. |
| "그런데 거…… 부두에서 말이오, 짐짝이나 쌀가마니 나르는 것은 어떻게 품값을 회계하오." |
| "그거유, 무게에 따라 다르지우. 쌀 한 가마니에는 오 리 아니면 육 리 하고, 대두박은 사 리, 기타 짐짝은 오 리지유." |
| "그럼! 쌀 백 가마니를 날라야 오십 전 아니면 육십 전이구려!" |
| 신철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쌀 백 가마니를 나를 생각을 해보았다. 따라서 부두에서 그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던 몇천 명의 노동자를 생각하였다. 동시에 그는 뜻하지 않았던 한숨이 푹 나왔다. 그리고 자기의 사명을 강하게 느꼈다. |
| "동무, 전날 돈 얼마나 벌었수? 그날 말이유." |
| "몰라유. 잊었지유." |
| "아 그 쌈하던 날 말이오. 왜 짐짝을 서루 뺏으랴고 쌈하지 않었수?" |
| "글쎄 몰라유." |
| "그런데 동무 이후부터 쌈하지 마시오. 쌈해야 서로 손해만 나지 않우. 쌈할 곳에 가서는 끝까지 싸워야겠지만 서로 동무들끼리 싸워서야 피차에 손해가 나지 않소……." |
| "그래두 그놈이 남이 맡아 논 짐을 제가 지고 가랴니께 싸우지우…… 그런데 왜 노동일을 하시우?" |
| "나요? 노동을 해야 벌어먹지유……." |
| "당신 같으신 어룬은 면서기나 순사도 꽤 허시겠지유." |
| 아까 이 방에 들어설 때 신철이가 글을 쓰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벽에 걸린 그의 옷이라든지 등 아래로 놓인 약간의 책권을 보니 신철이가 노동일이나 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철이는 웃음을 참으며, |
| "면서기나 순사가 좋아 보이시우?" |
| "그럼 좋지유." |
| "난 당신들이 하는 노동일이 부럽소." |
| 첫째는 허허 웃었다. 그리고 순사와 면서기를 부르고 나니 고향서 보던 면서기와 순사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 보였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신철이를 대하여 무엇인지 모르게 묻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
| "저…… 순사는 말유……." |
| 첫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잊었다. 신철이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
| "네, 순사가 뭘……?" |
| "저, 저…… 어떻게 해야 법에 안 걸리우? 법에 안 걸리게 좀 가르쳐 주……." |
| 밤늦게 돌아온 간난이는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선비를 보며 생긋 웃었다. |
| "빈대 물지 않니?" |
| "왜 안 물어, 물지…… 어데를 갔었니?" |
| "나, 저게…… 누가 좀 만나자고 해서." |
| 간난이는 나들이옷을 훌훌 벗어 벽에 걸고 나서 선비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
| "이애, 지금 인천서는 말이야, 아조 큰 방적공장이 낙성되었는데 그곳에는 지금 내가 다니는 방적공장과 달리 여직공을 많이 쓴다누나…… 근 천여 명의 여직공을 쓴대……." |
| 선비는 눈졸음이 홀랑 달아났다. 그리고 빛나는 눈에 이상한 광채를 띠었다. |
| "난 그런 곳에 못 들어갈까?" |
| "들어갈 수 있지…… 나두 그리로 갈 생각이다! 우리 둘이서 그리로 가자…… 응 선비야." |
| 간난이는 생긋 웃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매만지며 빠져나오려는 핀을 다시 꽂는다. 멍하니 바라보는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간난이에게서 들었던 방적공장의 온갖 기계들이 얼씬얼씬 나타나 보이었다. |
| "내가 그런 것을 할지 몰라…… 그러다 잘못하면 내쫓나?" |
| 간난이는 선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무섭고 부끄럽기만 하던 생각을 하였다. |
| "왜 네가 그런 것을 못 하겠니, 배우면 잘 할 터이지…… 너만 못한 애들도 많이 들어와서 배워나면 곧잘 하더라야. 걱정 마라." |
| 선비는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그리고 웃었다. |
| "그래서 선비야! 난 오늘 방적공장을 나오기로 했단다……." |
| "그럼 언제 가니?" |
| "곧 가지…… 그런데 볼일이 있어 아무래도 한 이틀은 지체될 듯하다." |
| 간난이는 아까 태수가 전해 주던 밀령을 다시금 생각하며, 유신철이…… 인천부 사정 오번지 하고 외워 보았다. |
| "인천이라는 데는 이 서울 안에 있니?" |
| 간난이는 얼른 선비를 보며 호호 웃었다. |
| "아니야, 여기서 한 백여 리 차 타고 가야 한다더라." |
| 선비는 한층더 얼굴이 화끈 달며, 간난이는 언제 누구한테 배워서 말도 자기가 알아듣지 못할 유식한 말만 하고 또 모르는 곳이 없이 저렇게 잘 아는가……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언제나 저애처럼 되나…… 하였다. |
| 그때 맞은편 방에서는 웃음소리가 하하 하고 흘러나왔다. 그들은 말을 그치고 흘금 문을 바라보았다. |
| "오늘은 굶지들은 않았나 봐…… 저렇게 웃음이 터질 때에는……." |
| 선비는 일어나서 자리를 펴놓으면서, |
| "그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어?" |
| 선비는 방문을 맘놓고 열어 놓을 수가 없이 거북한 것을 느낄 때마다 뭘 하는 사내들이 해 종일 어디도 가지 않고 저렇게 방구석에만 들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간난이가 공장에 간 후에는 무서워서 앞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
| "그 사람들, 그저 실업자지…… 뭐겠니." |
| 실업이란 말은 또 무슨 말인가? 하며 선비는 묻고 싶은 것을 그만 눌러 버렸다. |
| "얼굴들이야 좀 잘생겼디…… 그래도 이 사회에서는 그들에게 직업을 안 주니…… 어떻게 하니……." |
| 간난이는 등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사정 오번지 유신철…… 이 번지와 이름을 잊을까 하여 그는 이렇게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태수가 하던 말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선비는 간난이가 저렇게 늦게 돌아올 때마다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수상스러웠다. 그리고 자기가 시골 있을 때 밤마다 덕호에게 당하던 것을 생각하며 무의식간에 그는 진저리를 쳤다. 따라서 간난이 역시 그러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가? 하는 불안과 의문에 슬금슬금 그의 눈치를 살폈다. |
| "선비야! 네가 서울 올라온 지가 오래두 내가 바빠서 너를 구경도 못 시켜 주었지. 내일 우리 남산공원에 가볼까?" |
| "남산공원? 그게는 뭘 하는 데야." |
| "우리 동네 왜 원소 위에 잿등이라고 있지 않니? 그런 산이지…… 뭐야, 거게 우리들이 밤낮 올라가서 싱아를 캐먹었지…… 참 우리 어머님 보고 싶다!" |
| 그때 선비의 머리에는 그의 눈등을 아프게 찌르던 첫째의 시커먼 손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간난이에게 너 첫째를 혹시 만나 본 일이 있니 하고 묻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선비는 간난이 모르게 가슴을 쥐며, 첫째가 이 서울에 있는지 몰라…… 선비는 머리를 숙였다. |
| 이튿날 그들은 창경원을 둘러서 남산까지 왔다. |
| "저기 조선신궁이라는 게다." |
| 간난이가 들여다보이는 조선신궁을 가리켰다. 선비는 머리만 끄덕일 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올라온 돌층계가 무섭게 그의 앞에 아찔아찔하게 나타난다. |
| "이따 갈 때도 저리 가니?" |
| 선비는 돌아서서 돌층계를 가리켰다. |
| "왜?" |
| "딴 길 없나?" |
| 그제야 그가 선비의 눈치를 살피고 생긋 웃었다. |
| "에이 시굴뚜기년 같으니, 거기서 떨어져 죽을까 겁나니? 그럼 다른 길로 가자꾸나." |
| 그들은 호호 웃으며 조선신궁 앞을 지나 솔밭으로 내려와서 가지런히 앉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