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철이는 그제야 자기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철수는 냉수와 걸레를 가지고 들어왔다. 신철이는 일어나려니 전신이 무거워서 깜작하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치 벽돌 질 때와 같이 힘이 쥐어지고 전신에서 경련이 무섭게 일었다. 그는 철수가 손질해 주는 대로 맡겨 버리고 말았다. |
| "동무, 노동 못 하겠수." |
| 신철이는 이렇게 전신이 녹아 오는 듯하면서도 철수의 이 말에는 자기를 모욕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눈을 꾹 감고 으흠 하고 신음을 하였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무겁게 벽돌 지던 광경이 그치지 않고 보인다. 그리고 긴장이 되고 어깨가 무거워지며 금방 자신이 벽돌을 지고 걸어가는 듯하였다. |
| "뭐 좀 자셔 봤수?" |
| "예, 국밥을……." |
| "좌우간 동무는 노동은 그만두고 그저……." |
| 중도에 말을 그치며 신철이를 바라보았다. 신철이는 눈을 뜨고 철수를 올려보다가 벽으로 시선을 옮긴다. 철수는 일어났다. |
| "난 아직 저녁을 못 먹었는데 가서 먹구 오리다." |
| "예, 뭐 오실 것 없지요. 곤하신데 지무셔야지요." |
| 철수는 부두에 나가서 하루 종일 노동했을 것만은 틀림없는데 별로 곤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신철이는 누워서 철수를 보내고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아! 소리를 지르도록 전신의 뼈가 저마다 노는 듯하였다. |
| 잉여노동의 착취! 그는 벽을 바라보며 입 속으로 되풀이하였다. 그의 입 속에서 돌아가는 잉여노동이란 그것은, 그 얼마나 무게가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는 노동자의 피와 땀이 섞여 있는 까닭에, 아니 그들의 피와 땀의 결정물인 까닭에 그렇게도 무게가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절실히 느꼈다. |
| 이렇게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는 잉여노동을, 말하기 좋아하는 자칭 논객들과 자칭 민중의 지도자들은, 아무 무게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한 행세거리로 한 술어로밖에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
| 그는 두 번 부르기가 어려운 무게가 있음을 알았다. 동시에 수없는 벽돌이 잉여노동의 착취란 문구를 싸고, 그의 가슴을 압박하여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똑바로 뜨며 내가 무슨 환영을 보는 셈인가…… 하였다. |
| 그는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옛날을 회상해 보았다. 따라서 인력거에 앉아 서울의 번잡한 도시를 향하여 달려오던 선비를 눈앞에 그려 보았다. 그가 뭘 하러 서울에 오는가? 혹은 남편을 얻어 오는가? 남편을 얻어 오면 그래 마중 나간 사람들이 있겠지? 혹 어떤 몹쓸 놈에게 유인이나 받지 않았는지? 덕호가 선비를 공부시키기는 만무할 터인데…… 필경 옥점이가 중매를 해서 서울로 시집온 것이겠지? 옥점이! 옥점이, 옥점이! 신철이는 웬일인지 옥점의 그 손! 그 눈이 생각되었다. 여직 선비를 어느 구석엔가 잊지 못하고 생각해 온 것을 미루어, 더구나 전날 아침 길거리에서 선비가 지나친 것을 봤으니 당연하게 선비를 그리워하여야 할 터인데, 그저 몽롱하게 온갖 의문만 선비를 싸고돌 뿐이지 호기심은 언제 어디서 새어 빠졌는지 몰랐다. 그리고 도리어 옥점의 그 활발하게 뵈던 그 눈! 그 손! 그 얼굴이 금방 눈앞에 보이듯 하였다. |
| 옥점이, 그는 시집을 갔을까? 그렇게 나를 못 잊어하더니…… 내가 너무 과했어! 그의 눈에는 요령부득의 눈물이 괴었다. |
| 그리고 옥점이가 초콜릿을 벗겨 가지고 자기를 바라보면서 입을 벌리라고 하며 빨개지던 그 얼굴이 지금 와서는 귀엽게 나타나 보인다. 만일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할 때 그는 눈을 크게 뜨며, |
| "에이 비굴한 놈!" |
| 하고 자신을 향하여 소리쳤다. |
| 그때 멀리 들리는 택시의 경적소리가 뿡빵 하고 들려 왔다. 그리고 안방 시계가 열한시를 땅! 땅! 쳤다. 그는 잠을 들려고 눈을 꾹 감아버렸다. 벽돌, 벽돌이 보인다. |
| 며칠 후에 신철이는 철수를 만나 또다시 노동시장에 나가 보겠노라고 하였다. 철수는 빙긋이 웃었다. |
| "동무 이번에 나가면 곱질러 십여 일이나 앓으리다. 그만두시오." |
| 애써 노동을 해보겠다는 신철의 생각만은 좋으나, 그러나 노동에 세련되지 못한 그의 육체가 난처해 보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철수를 따라 웃으면서도 맘속으로는 불쾌하였다. 그리고 철수와 자신을 비교해 본다면 우선 신체의 장대함이라든지 어느 모로 보나 철수에게서 떨어질 것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오직 자신이 노동에 단련되지 못한 까닭이니 어느 정도의 고개만 넘으면 별로 힘들 것이 아니리라고 생각하였다. 오냐! 철수가 하는 일을, 아니 인간이 하는 노동을 나라고 못 할 까닭이 있느냐? 하자! 죽도록 해보자! 요즘 동무들이 노동을 하여 벌어다 주는 밥을 앉아 먹고 있기는 무엇보다도 더 고통이었던 것이다. 철수는 신철의 기색을 살폈다. |
| "그럼 하루만 또 고생해 보시우, 허허…… 내일 아침 나와 부두로 나가 봅시다. 그런데 임금이 낮아서 그렇지 실은 벽돌 나르는 것이 제일 헐하리다." |
| 신철이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가 웃었다. 그리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 "아니, 벽돌은 싫어." |
| 벽돌 말만 들어도 전신이 오싹해지며 손끝이 따가워짐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리 벽돌 나르는 것보다 힘든 노동이라 하여도 지금 같아서는 힘든 그 일을 하지, 벽돌은 나르지 못할 것 같았다. 보다도 벽돌은 두 번 바라보기도 싫었다. |
| 그 밤이 오래도록 부두노동의 몇 가지 종류를 철수에게서 자세히 들은 신철이는 그 이튿날 새벽에 철수를 따라 부두로 나오게 되었다. 그들이 세관 앞을 지나 섰을 때, 벌써 몇십 명의 노동자가 백통테 안경을 둘러싸고 십장님! 십장님! 하고 덤볐다. 철수는 둘러선 사람을 뻐개며 들어섰다. |
| "십장님! 저 하나 주시우." |
| 백통테 안경은 안경 너머로 철수를 보더니 손에 들었던 붉은 끈을 봐라 하듯이 내쳐 준다. 철수는 얼른 받아 가지고 돌아보았다. |
| "이 끈이 일표입니다. 이걸 손목에다 꼭 동이시오." |
| 철수가 동여 주는 붉은 끈을 들여다보는 신철이는 벌써 속이 두근두근함을 느꼈다. |
| "난 정거장으로 짐 메러 가니…… 하루 또 고생하시우." |
| 철수는 말 마치기가 무섭게 뛰어간다. 신철이는 어제 철수에게 붉은 끈들이 하는 노동을 자세히 들었으나 철수가 저렇게 자기 앞을 떠나가는 것을 보니 도무지 두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목에 붉은 끈 동인 사람들만 주의해 보고 그들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 섰다. |
| 조선의 심장지대인 인천의 이 축항은 전 조선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그 규모가 크고 또 볼 만한 것이었다. 축항에는 몇천 톤이나 되어 보이는 큰 기선이 뱃전을 부두에 가로 대고 열을 지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 연기는 뭉실뭉실 굵은 연돌 위로 피어 올라온다. 월미도 저편에 컴컴하게 솟은 섬에는 등대가 허옇게 바라보이고 그 뒤로 수평선이 멀리 그어 있었다. |
|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쓸어 나온다. 잠깐 동안에 수천 명이나 되어 보이는 노동자들이 축항을 둘러싸고 벌떼같이 와와 하며 떠들었다. 그들은 지게꾼이 절반이나 넘고 그 외에 손구루마를 끄는 사람, 창고로 쌀가마니를 메고 뛰어가는 사람, 몇 명씩 짝을 지어 목도로 짐을 나르는 사람, 늙은이, 젊은이, 어린애 할 것 없이 한 뭉치가 되어 서로 비비며 돌아가고 있다. |
| 백통테 안경은 기선 갑판 위에 올라섰다. |
| "이 자식들아! 여기 어서 다리를 놓아!" |
| 호통소리를 따라 붉은 끈들은 달려가서 시멘트 콘크리트로 된 부두와 기선 새에 나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넓은 나무판자를 척척 올려놔서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중기(起重機) 옆에 붉은 끈이 하나가 서서 손잡이를 놀리니 기중기가 왈랑왈랑 소리를 지르며 쇠줄이 기선 밑의 화물창고를 향하여 내려간다. 갑판 위에는 감독이라는 일인이 서서 들어가는 쇠줄을 들여다보며 손짓을 하다가 뚝 멈추니 기중기 운전수도 역시 그 군호를 따라 손잡이를 눌러 멈추었다. 한참 후에 감독이 손을 젖혀 가지고 손짓을 하니 운전수가 또다시 손잡이를 제끼었다. 기중기는 다시 왈랑왈랑 소리를 지르고, 올라오는 쇠줄에는 집채 같은 짐짝이 달려 있었다. 이편 부두에 빠듯이 둘러선 노동자는 짐짝을 쳐다보며 한층더 아우성을 쳤다. |
| 기중기에 달린 몇백 관이나 되는 짐은 마침내 와르르 하고 부두에 쏟아졌다. 서로 밀거니 하며 섰던 노동자들은 일시에 달려들어 저마다 짐을 붙들고 붉은 끈들에게로 대어들었다. 붉은 끈들은 분주히 돌아가며 짐짝을 쇠갈고리로 대어서 지게 위에 실어 주었다. 신철이는 철수가 준 갈고리를 사용하려니 쓸 줄을 몰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갈고리를 꽁무니에 차고 붉은 끈과 마주서서 쉴새없이 손으로 짐짝을 올려놓곤 하였다. |
| 짐은 뒤를 이어 와르르 하고 부두에 쏟아졌다. 신철이는 차츰 숨이 차오고 팔이 떨어져 오는 듯하였다. 짐은 큰 상자며 철판이며 대두박이며…… 이런 종류였다. |
| "이놈들아, 빨리 짐을 메어 줘라!" |
| 백통테 안경은 눈알을 구루마 바퀴 굴리듯 하며 호통을 하였다. 신철이는 언제 손끝이 상하였는지 피가 출출 흐른다. 그는 흐르는 피를 어쩌는 수가 없어서 그의 잠방이에 북 씻고 나서 연달아 오는 노동자들에게 짐을 메어 준다. |
| "여보! 갈쿠리를 써야지, 손 아파 못 하우!" |
| 마주선 붉은 끈은 웃으며 소리쳤다. 신철이는 꽁무니에 찼던 갈고리를 빼어 가지고 짐을 끼워 들다가 잘못하여 짐꾼의 얼굴을 냅다 쳤다. 짐꾼은 얼른 머리를 돌렸다. |
| "이 자식아! 미쳤니? 남의 얼굴은 왜 후려…… 하마트면 눈이 꿰질 뻔혔다. 이 자식! 정신 채려!" |
| 눈을 부릅뜨고 대든다. 신철이는 참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머리를 돌리어 저 퍼런 물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신철이는 저 퍼런 물에라도 뛰어들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의 무뚝뚝한 말과 행동은 마치 그의 상한 손에 사정없이 맞찔리는 철판과 상자 귀에 박힌 못과 무엇이 다르랴! |
| "여보! 어서 들어유." |
| 신철이는 풀풀 떨리는 팔로 큰 상자를 들려니 자꾸 내려만 오고 올라가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는 상자에 푹 거꾸러졌다. |
| "이그…… 왜 이래 바뿐데. 넘어질랴거든 저리 가!" |
| 마주선 붉은 끈은 차라리 신철이가 물러났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신철이가 도리어 맞들어 주기는 고사하고 그의 짐이 되었던 것이다. 신철이는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났다. 차라리 넘어질 바에는 아주 어디가 콱 상하였으면 그것을 핑계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아무 데도 상한 곳은 없는 듯하였다. |
| 짐에서 떨어지는 먼지며 바람결에 불려오는 먼지가 수천 명의 노동자의 몸부림치는 바람에 가라앉지를 못하고 공중에 뿌옇게 떠돌았다. 그리고 사람을 달달 볶아 죽이고야 말려는 듯한 지독한 볕은 신철의 피부를 벗기는 듯하였다. 그는 숨이 콱콱 막히며 입 안에 침기라는 것은 조금도 없이 먼지만 들이쌓이는 듯하였다. 물, 물, 물이 먹고 싶다! 그러나 잠시라도 몸을 빼어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주위를 싸고도는 수없는 사람들 중 어린애까지도 자기와 같이 무능하고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
| 멀리 재목공장에서는 기계로 재목 가르는 소리가 짜아짜아 하고 유달리 새어 들려 온다. 그리고 마주 건너다보이는 부두에는 산더미 같은 석탄이 여기저기 쌓인 것을 보아 그편에 댄 기선에서는 석탄을 푸는 모양이다. |
| "이애 이놈들아, 저게 가서 실컨 싸우라!" |
| 신철이와 마주선 붉은 끈이 이렇게 소리치며 바라보므로 신철이도 흘금 돌아보았다. 저마다 짐을 잡아당기다가 마침내 서로 주먹으로 쥐어박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짐짝은 버리고 두 놈이 데뭉데뭉 굴렀다. 그 틈에 그 짐짝은 딴놈이 메고 달아난다. 그때 싸우던 놈들은 부시시 일어나서 짐짝을 다우쳐 가서는 또 쌈이 벌어진다. 그러고는 세 덩이, 네 덩이가 되어 싸우는 것이다. |
| 그 중에 한 사람이 외눈까풀임을 알자 신철이는 달려가서 말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맘뿐이지 그의 몸 하나도 건사하기가 큰일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서는 싸우면 싸웠지, 누가 눈 한번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저희들끼리 실컨 싸우다가 진하면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
| 전깃불이 와서도 한참이나 되어 신철이는 임금을 타려고 붉은 끈들과 함께 백통테 안경을 따라 섰다. 그때 뒤에서 휘파람소리가 나므로 돌아보니, 외눈까풀이가 지게를 지고 맥빠진 걸음새로 천천히 이리로 온다. 그도 무던히 피로한 모양이다. |
| "이동무!" |
| 외눈까풀이가 신철의 앞을 지나칠 때 이렇게 불렀다. 외눈까풀이는 우뚝 서서 누가 불렀는지 몰라 두리번두리번하였다. |
| "내가 찾었수." |
| 외눈까풀이는 그제야 신철이를 흘금 쳐다보더니, |
| "여기 또 왔구레." |
|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신철이는 그가 낮에 싸우던 생각을 하며, |
| "오늘 돈 얼마나 벌었소?" |
| "돈이 다 뭐유, 쌈만 했수." |
| "왜 쌈은 했수?" |
| "괜히 싸우지우." |
| 외눈까풀이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
| "우리집에 놀러 오시우." |
| "집이 어데유?" |
| "사정으로 올라가노라면 천주교회당이 있지요." |
| "천주…… 뭐유? 생각 안 난다. 천주 담엔 뭐라고 했는지요?" |
| 신철이는 손으로 십자가를 그어 보였다. |
| "이렇게 된 것이 지붕 위에 삐죽하니 솟아 있는 집이오." |
| "네, 성당 말이구리. 알았슈." |
| "그 집을 지나 공동변소가 있지유." |
| "네, 네." |
| "그 우에는 장작 패어 파는 집이 있습니다. 바루 그 우에 조그만 초가집이 있지우." |
| "네, 알았수." |
| "그 집 뒷방이 바루 나 있는 방이오." |
| "네, 네, 그렇쉬까! 가지유." |
| "꼭 오시우." |
| "예." |
| 외눈까풀이는 인사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간다. 신철이는 그의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러한 놈이 의식이 제대로만 들었으면 훌륭한데…… 하였다. |
| 백통테 안경은 어떤 여관으로 쑥 들어갔다. 뒤따르던 붉은 끈들은 멈칫 서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신철이를 돌아보며 킥킥 웃었다. 신철이는 그들이 낮에 자기가 노동하던 것을 흉내내며 웃는 것임을 알았을 때 불쾌하고도 무어라고 형용 못 할 쓸쓸함을 느끼며 으흠 하고 나오는 줄 모르게 신음을 하였다. 그리고 땅에 펄썩 주저앉아 붉은 끈들이 서 있는 반대 방향을 바라보았다. 못 견디게 전신이 무거웠던 것이다. |
| 저편으로 보이는 시멘트로 바른 벽에는 '깅 바아(キンパ―)'라고 쓴 금자가 전등불에 빛났다. 그는 웬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자기의 초라한 모양을 굽어보았다. 순간에 그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듯한 고적함을 깨달았다. 자기는 노동자의 동무가 되려고 필사의 힘을 다하여 노동시장에 나왔거늘 그들은 저렇게 자신을 비웃고 조그만 동정을 기울이지 않는다. |
| 아니다! 내 뒤에는 수많은 동지가 있지 않으냐!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자기를 싸고도는 환경만은 이렇게 쓸쓸하고 고적만 하였다. 그때 저리로부터는 모던 걸, 모던 보이가 어깨를 나란히하여, 마치 댄스하는 듯이 발걸음을 맞춰 이리로 온다. 그는 벌떡 일어나 벽에 몸을 기대었다. |
| 남녀는 오루지날의 향내를 후끈 던지고 지나친다. 그는 얼핏 옥점이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옥점이와 자기가 바닷가에서 낙조를 바라볼 때 펄펄 일어나는 불길을 향하여 선 것처럼 그 불과 그 옷이 빛나던 광경이 떠오른다. 그는 얼결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못 견디게 옥점이가 그리워졌다. 혹시 월미도에나 놀러 오지 않았나? 아직도 나를 생각해서 그 조그만 가슴이 아프지나 않나? 내가 왜 그리했나!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
| 반면에 무슨 더러운 생각이냐 하고 무엇이 뒷덜미를 툭 치는 듯하였다.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는 여전히 쓸쓸하게 벽을 기대고 선 것을 발견하였다. 동시에 잠깐 잊었던 아픔이 그의 전신을 못 견디게 습격하였다. 그는 또다시 주저앉았다. 저들이 아니면 잠깐이라도 여기에 눕고 싶었다. 그는 벽을 기대고 으흠 하고 신음을 하며 오늘 신문에나 무슨 특별한 소식이 실렸는가? 하였다. |
| 그가 재학 당시만 하여도 신문을 대할 때마다 목전에 정세가 흔들릴 것 같고, 무슨 일이 곧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더니 막상 이렇게 뛰어나오고 보니 일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별한 이상이 없었다. 이 현상대로 몇십 년을 지날지, 혹은 몇백 년을 지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의 가슴 한편에서 떠나지 않았다. |
| 백통테 안경이 나왔다. |
| 여기저기 벌려 있던 붉은 끈들은 백통테 안경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그리고 손목에 동였던 붉은 끈과 점심값 오 전을 제한 구십오 전과 바꾸었다. |
| 신철이는 구십오 전을 타가지고 일어섰다. 헤어지는 그들은 신철이를 흘금흘금 돌아보며 킥킥 웃었다. 신철이는 그나마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했으니 작별의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그들이 이렇게 픽픽 웃는 데는 그만 입이 꽉 붙고 말았다. 그는 어정어정 발길을 옮겨 놨다. 그리고 웬일인지 노동자와 자기 사이에는 언제부터인가 짐작할 수 없는 그때부터 어떤 보이지 않는 간격이 꽉 가로막혀 서 있음을 그는 절실히 느꼈다. 동시에 자신은 좌우편을 가까이할 수 없는,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듯하여 그는 불쾌하였다. |
| 마침 어떤 노동자가 지게에 한 되나 들어 보이는 쌀자루와 소나무 한 단을 올려놓고 그 위에 약간의 찬거리까지 곁들여 가지고 그의 앞을 총총히 걸어간다. 그도 역시 부두에서 돌아오는 모양이다. 오늘 일을 미루어 보건대 하루 종일 그 먼지판에서 쌈을 해가며 짐을 져야 겨우 오륙십 전이나 벌까말까 하였다. 그나마 부두노동에 있어서는 신철이가 맡았던 붉은 끈이 제일 임금이 많은 듯하였다. |
| 그는 길가 국밥집에서 국밥을 한 그릇 사먹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
| 그 후부터 신철이는 노동시장에 나갈 생각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리고 철수가 벌어다 주는 것으로 그날그날을 겨우 살아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