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25

그나마 그의 전재산이다시피 한 책권까지도 다 갖다 잡혔으니 이제야말로 세 몸뚱이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신철이는 밤송이 동무한테나 가서 또 물어 볼까? 하였다. 요새 밤송이 동무는 어떤 신문사의 배달부로 들어갔기 때문에 돈푼이나 좋이 있었다.
그래서 신철이는 늘 그에게서 십 전, 오 전 얻어서는 빵이나 쌀을 사오곤 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세 사람의 출입옷으로 정해 있는 그의 양복을 입고 나왔다.
"꼭 구해 가지고 오게…… 정 할 수 없거든 자네네 댁에 가서라도 좀 변통해 가지고 오게나. 배고픈 데야 무슨 염치를 보겠나. 허허…… 그렇지 않은가?"
"암! 그렇지."
이 말에는 비위가 당기는지 일포는 이렇게 동을 단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으며 대문 밖을 나섰다. 그는 일포의 둥근 얼굴과 건넌방으로 추파를 건네는 그의 긴 눈을 눈앞에 그리며, 일편으로는 그 배짱 실하게 구는 모양이 밉살스럽기도 하나, 콧구멍과 발가락을 우벼 내서 맡아 보곤 하는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혼자 픽 나왔다. 일포야말로 전락된 인텔리의 전형적 인물과 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자신도 인텔리라면 인텔리층으로 꼽힐 것이나 그러나 요새 신철이는 인텔리에 대한 싫증을 극도로 느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일포가 발새를 우벼 맡아 보는 듯한, 그러한 고리타분한 냄새를 피우는 것이 인텔리의 특징인 듯싶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바라보니 벌써 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와와 떠들고 있다. 그리고 햇빛에 번쩍이는 물 위로 헤엄쳐 돌아가는 빨간 모자, 파란 모자가 그의 눈에 선뜻 띄었다. 그는 작년 여름에 옥점이와 같이 그 넓은 서해에서 뛰놀던 생각이 얼핏 들었다. 따라서 용연 동네가 떠오르며 선비의 고운 자태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어느덧 신철이는 뜨거운 햇볕을 잔등에 느끼고 그의 배에서는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천천히 삼청동 비탈길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거기서 구하지 못하면 또 어디 가서 구한담…… 너무 돌아가면서 몇십 전씩 취해 놔서 이젠 달라고 할 염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이르니까, 배가 덜 고파서 그렇지 한 결만 지나면 그때야말로 아무 동무에게나 가서 다리아랫소리를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신철이는 관철동 밤송이 동무의 집까지 왔다. 그러나 마침 동무는 금방 나갔다고 하였다.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돌아나왔다. 그리고 종로까지 나와서는 우두커니 섰다. 동소문을 향하여 닫는 버스가 먼지를 뿌옇게 피우며 지나친다. 그는 집이 그리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 미루꾸 주…… 하고 손 내밀던 영철이가 그리웠다. 보다도 빨간 고추장에 두부와 고기를 넣어 끓여서 마늘 양념을 푹 쳐서 상에 놓아 주던 그 두부찌개가 그리웠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어정어정 걸었다. 배는 현저히 고파 왔다. 이놈이 어델 갔을까? 갈 만한 곳을 짐작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조간은 벌써 배달했을 터이고 석간은 아직 멀었고…… 그놈이 어딜 갔어?…… 그는 이렇게 생각을 해가며 종로를 한 바퀴 돌아 황금정으로 향하였다. 윙 달려오고 달려가는 전차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없는 버스며 택시가 서로 경쟁을 하며 달려오고 달려간다. 신철이는 목구멍이 알알하도록 먼지를 먹으며 아스팔트 위를 힘없이 걸었다. 차츰 햇볕은 강하게 내리쬔다. 신철이는 아직도 겨울 중절모를 그냥 쓰고 있었다. 그는 누가 볼세라…… 하여, 더구나 아버지나 의모라도 나왔다가 만날세라 하여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발끝만 굽어보며 걸었다.
학교 갈 때마다 닦던 이 구두도 약이 없어서 닦아 본 지가 언제인지 몰랐다. 코끝이 희뜩희뜩 벗겨지고 먼지가 부옇게 오른 구두는 말쑥하게 닦은 때보다 발이 달고 한층더 무거웠다.
"이 사람아, 오늘 얼마나 팔었는가?"
"오늘은 밑천이나 건졌지…… 자네는?"
"나두 역시 한모양일세."
신철이는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지게를 지고 갈서서 가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그때 신철이는 나도 저 지게꾼이나 해볼까…… 그래서 뭐든지 지고 다니면서 팔지. 지금 흔한 배추 같은 것이나, 기타 아무것이라도…… 이렇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차마 지게를 지고 이 거리를 저들과 같이 활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은 역시 일포가 발새와 콧구멍을 쑤시고 앉아 고스란히 굶어 있을지언정 선뜻 나가서 하다못해 저런 지게꾼 노릇이라도 못 하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그런 고리타분한 까닭이라고 막연히 생각되었다.
여기 일은 딴 동무에게 맡기고 난 시골 같은 데로 전임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땅도 파보고 농부들과 함께 아무것이라도 배워 가면서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서울에서만은 차마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자기 낯을 아는 사람이 많고, 더구나 아버지, 의모가 있고, 아는 여자가 많고…… 아스팔트 위에 그들의 비웃는 눈매가 또렷또렷이 나타나 보인다.
어느덧 신철이는 발길을 멈추고 우뚝 섰다. 흘금 쳐다보니 미쓰고시였다. 저기나 또 들어가 보자…… 하고 몇 발걸음 옮겨 놀 때 저 안에 혹은 나 아는 사람들이 무엇을 사러 오지나 않았는지? 하며 주저하였다. 그는 언제나 여기 올 때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그의 초라한 모양을 다시 한번 굽어보곤 하였다.
미쓰고시를 향하여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은 모두가 말쑥한 신사고 숙녀였다. 자신과 같이 이렇게 초라한 양복에 중절모를 아직까지 쓴 사람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모두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 모자였다. 그리고 여름 양복을 시원스레 입었다. 그는 다시 한번 주저하였다. 그러나 신철이는 그나마 여기 아니면 곤한 다리를 쉬일 곳조차도 없었다. 남산에나 가야 할 터이니 그곳까지 가자면 덥고, 우선 여기 들어가서 쉬어 가지고 가리라…… 하고 발길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미쓰고시 상층까지 올라온 신철이는 의자에 걸어앉아 멍하니 분수를 바라보았다. 곁의 의자에 앉은 어떤 남녀는 빙수를 청하여 놓고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다가는 호호 웃었다. 그때마다 신철이는 그들이 자기의 초라한 모양을 바라보고 웃는 듯하여 한참이나 그들을 노려보다가 휙 돌아앉았다. 그리고 그는 도리어 그들을 대하여 떳떳한 길을 밟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아! 하고 소리쳐 주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해보았다.
곁에서 빙수를 마시며 호호…… 하하…… 하는 두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에 비위가 상해서 신철이는 그만 돌아앉았으나 그들의 시선이 그의 잔등과 뒷덜미를 향하여 여지없이 쏟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햇볕이 못 견디게 내리쪼인다. 그는 포켓에서 수건을 내어 이마를 씻었다. 수건 역시 이것이 마지막이다. 집에서 나올 때 사오 개 가지고 나왔지마는 동무들에게 하나하나 빼앗기고 그나마 해어진 것 이것이 있을 뿐이다. 그는 곁에서 빙수를 먹는 여자의 음성이 차츰 옥점의 그 음성과 흡사하였다. 옥점이는 어디로 출가했는가?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내리쬐는 햇볕과 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그 생각을 묻어 버리렸으나 웬일인지 그때가 그리운 듯하였다. 아니! 확실히 그리워졌다. 그나마 그때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행복스러운 시절이었는지 몰랐다. 그는 그만 벌떡 일어났다. 그 생각이 마치 일포가 콧구멍을 우벼 내고 발가락을 우벼 내는 것보다도 더 고리타분하게 생각되었던 때문이다.
그는 달아가고 달아오는 전차―--- 또 전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끊일 새 없이 뒤를 이어 오는 택시며 또 버스를 눈이 아물아물하도록 바라보았다. 따라서 그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자기가 이 높은 데서 그것들을 아득하게 바라보는 것과 같이 전차며 택시며 버스가 그렇게도 자기와 거리가 멀어진 것을 그는 가슴이 뜨겁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아도 저 전차를 타고 한강에 나가 본 것이 작년 여름에 옥점이와 함께 나갔던 기억밖에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전차를 탔을 것만은 분명한데 도무지 그 기억은 몽롱하고 오직 옥점이와 같이 전차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드라이브하던 기억만이 뚜렷하였다.
그는 불쾌하였다. 빙수 먹는 계집으로 인하여 이런 불쾌한, 아니 비열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신철이는 어정어정 걸으며 어젯저녁에 밤송이 동무에게서 얻어 두었던 신문을 포켓에서 꺼내 들었다. 그는 신문을 펴들자 정치면부터 보기 시작하였다. 그는 뚜렷이 드러난 미다시(제목)를 죽 훑어보며 약간 양미간을 찡그렸다. 점점 더 못 견디게 배가 고파 오고 그리고 골머리가 띵하니 아팠던 것이다.
그는 눈결에 보니 남녀는 저편 화초 진열장으로 들어간다. 그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사이렌이 난 것을 짐작하여 아마 오후 세시나 두시 반은 넉넉히 되었으리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부절히 이 상층에 올라왔다 내려가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을 차려 그들을 볼 수가 없이 배가 몹시 고파 온다. 입에서는 침조차 나오지 않고 배는 등에 붙은 것 같다. 그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계셨으면 자기가 뛰어나온다고 하더라도 뒤미처 따라와서 자기를 집으로 데려갔지, 아직까지도…… 아니 이렇게 배가 고파 운신을 하지 못하게까지 내버려두었으랴! 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의모는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아무 철 없는 영철이까지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비겁한 생각이라…… 하였다.
단 오 전만 가졌으면 이렇게 배는 고프지 않으련만…… 오 전! 오 전! 그의 눈에는 오 전짜리 백동전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십 전보다도 좀 작은 듯한, 그리고 좀 얇은 듯한 그 오 전! 그것이 없어서 자기는 이렇게 배를 곯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휘돌아보았다. 행여나 그 남녀가 빙숫값을 치르다가 그 오 전을 떨어치지 않았는가? 하여 보고 또 보나 아무것도 발견치 못하였다.
남녀는 앵무새를 사가지고 나왔다.
"곤니치와(안녕하세요)……."
계집이 조롱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고는 호호…… 하하…… 웃었다. 신철이는 저것에 오 전짜리를 몇 개나 주었을까? 생각을 하며 그 오 전을 멍하니 헤어 보았다. 남녀는 이젠 집으로 가는 모양이다. 신철이는 그들의 모양을 흘금 바라보며 내가 옥점이와 결혼을 하였다면 아마 지금쯤은 저런 것이나 사러 다니겠지…… 하였다.
그들이 사라진 후에 신철이는 그놈이 들어왔을까? 어서 가야지…… 석간 돌리러 가겠으니까…… 하고 일어났다. 앞이 아뜩해지며 횡 잡아 돌리는 듯하여 그는 의자를 붙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리에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였다. 누구든지 돈 오 전만 주면서 너 여기서 저 아래까지 뛰어내려라 하면 그는 서슴지 않고 뛰어내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런지 이 꼭대기와 저 아래 땅과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지는 것을 그는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층으로 내려온 신철이는 저편으로부터 아는 여자가 마주 오는 것을 보고 그만 당황하였다. 그래서 식당 편으로 피하였다. 그리고 진열대에 진열한 상품을 보는 체하면서 그 여자가 어서 상층으로 올라가기만 고대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돌아가며 무엇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신철이는 초조한 맘으로 얼굴을 돌리니 유리알 속으로 빛나는 카레라이스, 다마고돈부리, 스시 등의 요리 표본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쓸쓸히 말라 가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에 그는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끼며 휙 돌아섰다.
"아니? 신철 씨 아니세요?"
마침내 그 여자는 신철의 앞으로 다가왔다. 신철이는 얼결에 중절모를 벗어 움켜쥐고 뒷짐을 졌다. 그리고 헤어진 구두를 보이지 않으려고 진열대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네, 참 오래간만입니다."
"왜 놀러 안 오세요?"
"네…… 네…… 뭐 그저 바뻐서……."
식당 곁에 섰느니만큼 한층더 어려웠다. 그리고 어서 이 여자가 물러났으면 하나 좀처럼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편으로 슬슬 뒷걸음질하였다.
"자, 저는 먼저 갑니다."
그 여자는 이상한 듯이 신철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놀러 오세요."
"예…… 예."
신철이는 도망하듯이 미쓰고시 문 밖을 나섰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쉴 때 땀방울이 등허리를 씻어 근질근질하게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이가 무는 것같이 등허리가 가려우나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의 눈이 어려워서 서서 긁지도 못하고 걸어가려니 땀만 부진부진 더 났다.
그는 본정으로 들어섰다. 좌우 상점에서 울려 나오는 레코드 소리며 아스팔트 위를 걸어 오고 가는 게다 소리, 각 상점에서 상품을 사고 파는 부산한 소리, 이 모든 소리가 교착이 되어 가지고 흐르고 또 흐른다. 그리고 그 새를 물고기같이 헤엄쳐 나가고 오는 사람의 홍수! 그들은 모두가 앞가슴을 불쑥 내밀고 생기 있게 팔과 다리를 놀렸다.
신철이는 더욱 어깨가 늘어지고 잔등이 몹시 가려웠다. 그때 포마드 향유내가 물큰 스치므로 얼른 바라보니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어떤 젊은 일인은 유카타(浴衣)를 서늘하게 입었으며 머리에서는 향유가 빛났다. 그리고 새로 목욕이나 하고 나오는 듯이 그의 얼굴은 윤택하였다. 순간에 신철이는 자신의 몸에서 발산하는 악취를 느끼며 다리는 천근이나 만근이나 무거운 듯하였다.
그는 영락정을 거쳐 황금정을 건너서서 수표교까지 왔다. 그때 얼른 샅에 손을 넣고, 잔등에 팔을 돌려 시원히 긁고 나서 이놈이 이젠 신문사에 들어갔기 쉬운데…… 혹시 지금쯤 배달하러 나오지 않는가…… 하였다. 그리고 중국인 거리를 총총히 지나서 종로까지 나왔다. 확실히 이 종로는 횡 빈 듯한 느낌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간혹 전차가 달아오고 달아가나 그 안은 몇 사람이 탔을 뿐이고 쓸쓸하였다. 그는 밤송이 동무의 집까지 왔으나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배달 구역을 향하여 걸었다. 마침 저편으로부터 방울 소리가 나며 밤송이 동무가 이리로 오다가 신철이를 보고 눈을 껌벅 하며 오라는 뜻을 보였다. 신철이는 그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밤송이 동무는 좌우를 휘휘 돌아본 후에 소리를 낮추어,
"자네 인천으로 가게 되었네, 오늘 저녁차로나 내일 아침까지 곧 떠나게."
"인천? 좋지! 나 역시……."
신철이는 땀을 씻으며 쓸쓸한 웃음을 입모습에 띠었다. 밤송이 동무는 지갑을 꺼내어 일 원짜리 지화 석 장을 그에게 주었다.
"이것으로 여비와 기타 비용을 쓰도록 하게. 인천 가면 아마 노동시장에 직접 나가야 허리…… 그런데 인천 가서 이 주소를 찾아가게."
그는 종잇조각과 연필을 내어 신철에게 무엇을 써서 보였다. 신철이는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어 보인다. 밤송이 동무는 그 종잇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며 좌우 골목을 살펴보고,
"자, 그러면…… 안녕히……."
밤송이 동무는 껑충껑충 달아났다. 신철이는 돈 삼 원을 쥐었으니 그런지 아까보다 발길이 거분거분해진 것을 깨달으며 우선 우동이나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하고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밤송이 동무가 써서 뵈던 종잇조각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인천부 외리 삼번지 김철수' 신철이는 입 속으로 다시 외어 보았다.
신철이는 우미관 앞에서 오 전짜리 우동 두 그릇을 사먹고 나서야 기운이 났다. 그리고 봉투쌀과 빵 몇 개를 사가지고 그의 집까지 왔을 때, 일포와 기호는 타월로 머리를 동이고 누워 있다가 신철이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빵을 저마다 빼앗아 들고 맛있게 뚝뚝 무질러 먹었다.
"이거 웬일이야? 오늘은 빵 사오고 쌀 사오고 횡재수가 났지 아마?"
기호는 빵 한 개를 다 먹고 나서야 이런 말을 하며, 신철이가 무엇이든지 배부르게 먹고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저놈의 포켓에 돈이 좀 들어 있는 모양인가 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일포는,
"나 오 전 한 닢만 주게. 막걸레 한잔 먹겠네. 이게야 어디 살겠나."
눈가가 뻘개서 아편쟁이의 손같이 핏기 없는 손을 내밀었다.
"이 사람아! 나무도 없는데 술만 처넣겠다? 어서 돈 내게. 나무 사다가 밥 해먹세."
두 놈이 손을 저마다 내밀었다. 신철이는 술값으로 십 전, 나뭇값으로 삼십 전을 주고 나서 양복을 활짝 벗어던졌다. 그리고 중절모를 방바닥에 들어 메치었다.
일포와 기호는 기가 나서 밖으로 나간다. 그는 땀에 젖은 내의를 벗어 밖에 내다 널며 다시는 그런 비겁한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자기가 아버지 앞을 떠날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모든 것을 각오해 온 바가 아니냐. 그런데 지금 와서 약간의 고통이 된다고 다시 옛날을 회상하는 그러한 비겁한 자식! 그는 입 속으로 이렇게 자신을 꾸짖으며 인천의 월미도를 얼핏 생각하였다.
인천만 가면 그는 모든 이 비겁성을 홱 풀어 던지고 아주 노동자의 씩씩한 참동무가 되리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리고 오늘 밤차로 내려갈까? 철수! 외리 삼번지, 그는 이렇게 되풀이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기호는 장작을 사가지고 약간의 반찬감도 산 모양이다.
"여보게, 우리는 자네 기다리누라 아주 죽을 뻔했네…… 나 거 일폰가, 그 자식 보기 싫어서, 그저 발가락 새만 하루 종일 쑤시고 앉았데그리."
기호는 웃어 가며 발가락 우벼 내는 모양을 흉내낸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이 동무들이 그나마 자기가 인천으로 가면 어쩔 셈인가? 하였다. 그리고 차라리 저러고 있을 바에는 시골집으로 내려가서 아내가 하는 농사일이나마 뒷배를 보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 고생을 하면서도 그래도 이 서울 구석에 붙어 있으려는 그들의 심리가 생각수록 우습고도 맹랑하였다.
그들의 유일의 희망은 어떤 자본가를 붙잡아 가지고 무슨 잡지나 신문사나 경영해 볼까 하는 그런 심산이었다. 어쨌든 민중의 지도자가 되는 동시에 그들의 이름을 작으나마 전선적으로 휘날리는 데는 반드시 중앙에 앉아 가지고 그런 잡지나 신문사를 경영하는 데서만이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는 모양이다. 저렇게 배고플 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도 배만 부르고 나면 어느 신문이 어떻고 어느 잡지가 어떻고 시비를 가려 가며 비평을 하곤 하였다. 한참 떠들 때에 보면 모두가 일류 논객이었다.
신철이는 이러한 봉건적 영웅심리에서 나온 야욕과 가면을 몇 겹씩 쓰고 회색적 행동을 하고 앉은, 그야말로 고리타분하고 얄미운 소부르주아지의 근성을 철저히 버려야 할 것을 그는 일포나 기호를 바라볼 때마다 절실히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자신도 역시 그들의 근성을 어딘가 모르게 끼고 다니는 것을 오늘 일을 미루어 생각하면 뚜렷이 드러난다.
이튿날 아침, 신철이는 그들에게 어디 잠깐 다녀온다고 말하고 나왔다. 그가 종로까지 나와서 상점 시계를 보니 거의 차 떠날 시간이 되었으므로 전차를 탈까 혹은 버스를 탈까? 하였다. 어제만 해도 오 전짜리가 큰돈 같더니 막상 돈푼이나 지갑 속에 있으니 정거장까지 걸어가기가 싫었다. 에라! 전차나 오래간만에 타보자 하고 달아가는 전차를 따라가서 올라섰다. 전차는 윙 하고 달아난다. 벌써 화신상회 앞을 지나 황금정으로 달아난다. 황금정에서는 용산으로 가는 듯한 월급쟁이들이 가득 들이몰리었다. 신철이는 좁은 자리에 끼여 불편함을 느꼈다. 보다도 월급쟁이들의 시선과 마주칠 때마다 저 가운데는……? 하고 가슴이 선뜩해지곤 하여 머리를 돌려 버렸다.
그때 조선은행 앞 저리로부터 오는 인력거 한 채가 보인다. 인력거에 앉은 색시는 웬일인지 인력거를 처음 탄 듯하게 몸가짐이 어색하게 보여 그는 자세히 바라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아!"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틈을 뻐개려고 애를 쓰나 뻐개는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난 신철이는 철수 동무가 갖다 준 잠방이 적삼을 입고 각반을 치고 지카다비(작업화)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인천 시가는 뿌연 분위기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전등불만이 여기저기서 껌벅이고 있다. 신철이는 어젯밤 동무가 세세히 말해 준 대로 다시 한번 되풀이하며 거리로 나왔다. 인천의 이 새벽만은 노동자의 인천 같다! 각반을 치고 목에 타월을 건 노동자들이 제각기 일터를 찾아가느라 분주하였다. 그리고 타월을 귀밑까지 눌러 쓴 부인들은 벤또를 들고 전등불 아래로 희미하게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부인들은 정미소에 다니는 부인들이라고 하였다.
신철이는 우선 조반을 먹기 위하여 길가에 늘어앉은 국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흡사히 서울에선 선술집 모양이다. 벌써 노동자들은 밥에다 김이 펄펄 나는 국을 부어 가지고 먹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부어 놓은 탁배기를 선 채로 들이마시고 있다. 일변 저편에서는 끓는 국을 사발에 떠서 날라 준다. 노동자들은 문에 불이 나게 드나든다.
신철이는 나무판자에 걸어앉았다. 어떤 노동자는 날라 주는 것이 성이 차지 않아서 자작 그릇을 가지고 국솥 앞에까지 가서 국을 받아 왔다. 신철이는 국을 훌훌 마시며 곁눈으로 보니 그의 곁에 앉은 노동자 하나는 그와 같이 들어와서 앉았는데 벌써 밥을 거의 다 먹어 간다. 그의 밥술을 보니 끔찍하였다. 원 저렇게 먹고야 소화가 될 수 있나? 신철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술을 놓고 나서 부어 놓은 막걸리를 쭉 들이마신다. 그러고는 주먹으로 두어 번 입가를 씻더니 신철이를 흘금 바라보며 벌떡 일어나 나간다. 신철이는 그 밥을 못다 먹고 그만 일어나 나왔다. 막걸리 뒷맛이 씁쓸하였다. 그는 천석정을 향하고 걸었다. 천석정에는 대동방적공장을 새로 건축하므로 하루에 노동자를 사오백 명을 부린다고 하였다.
차츰 밝아 오는 인천의 시가를 걸으면서, 그리고 저 영종섬 뒤로 부옇게 보이는 하늘에 닿는 듯한 수평선을 바라볼 때, 용기가 부쩍 나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전날 전차 속에서 바라본 뜻하지 않은 인력거 위에 어색하게 앉은 선비의 그 모양이 다시금 떠오른다. 따라서 그가 미친 듯이 전차에서 뛰어내려 인력거의 행방을 찾아 한 결이나 헤매던, 무책임하고도 미련이 많은, 그렇게도 의지가 연약한 자신을 얼굴이 뜨겁도록 깨달았다. 다음 순간 나는 이젠 노동자다! 입으로만 떠드는 그러한 인텔리는 아니다. 더구나 여자 꽁무니를 따라 헤맬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있는 용기를 다하여 부인하여 보았다.
그가 천석정까지 오니 벌써 수백 명의 노동자는 시루시반텡을 입은 일인 감독을 둘러싸고 제제히 일표를 타느라고 법석하였다. 신철이도 그 틈에 섞여 한참이나 돌아가다가 겨우 일표를 얻었다. 일표라는 조그만 나무쪽을 들여다보니 60번이라는 번호가 씌어 있었다.
"어서 빠리빠리 하라."
감독의 고함치는 소리를 따라 일표를 얻은 노동자들은 흥이 나서 감독의 지정하는 대로 일을 붙잡았다. 그나마 일표를 얻지 못한 노동자들은 실망을 하고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면서 머리를 빠트리고 돌아선다.
"이리 와서 이것들 저리로 가져가."
여러 사람이 밀려가는 틈에 섞여 신철이도 따라갔다. 시멘트 포대를 시멘트 가루 개는 곳으로 나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황지 포대에 넣은 시멘트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펄펄 뛰어 달아난다. 신철이 차례가 오므로 그는 메어 주는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메었다. 그 순간 그는 어깨에서 우쩍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다음에는 가슴을 내리눌러 숨을 통할 수가 없었다. 그가 노동자들이 메는 것을 바라볼 때에는 이렇게까지 무겁지 않으리라 하였는데, 그리고 시멘트 포대가 밀가루 포대보다 조금 클까말까 하므로 가볍거니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메고 보니 이것이 돌가루가 되어서 이렇게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철이는 메기는 겨우 멨으나 발길을 잘 떼놓는 수가 없었다.
"이 자식아! 빨리 가거라!"
십장의 호통소리에 신철이는 앞으로 나갔다. 숨이 가빠 오고 가슴이 죄어 오고 어깨 위가 부서지는 것 같다. 신철이는 죽을 힘을 다하여 시멘트 포대에 볼을 꽉 붙이고 비틀걸음으로 오십 간 가량이나 와서 쾅 하고 내려놨다.
신철이는 시멘트 포대와 함께 넘어졌다가 일어났다. 곁에서 삽을 가지고 물을 쳐가며 시멘트 가루를 벅벅 벅벅 벌뻘 갈기듯이 개는 노동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일하기가 조금도 힘들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눈 깜박할 새에 시멘트 가루를 개곤 하였다. 신철이는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돌아설 때, 다시는 그 시멘트 포대를 멜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일표는 탔으니 하루만 참자, 설마한들 죽겠냐,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며 천근이나 만근이나 한 다리를 옮겨 놨다.
이번에는 벽돌을 나르라고 하였다. 노동자들은 철사를 두 겹으로 길게 굽혀 가지고 그 새에다 벽돌을 두 겹으로, 한 겹에 열셋, 잘 지는 노동자는 열다섯, 열여섯까지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철사 끝에는 마대를 베어서 달아 가지고 한 번 동인 후에 낑 하고 졌다. 물론 등에는 섬피를 대고 벽돌을 지는 것이다. 신철이는 지는 데 혼이 나서 이 벽돌은 손으로 나르리라 하고, 열 장을 포개 들고 날랐다. 몇 번 나르고 나니 손이 마치 가시로 찌르는 듯이 따가우므로 들여다보니, 열 손가락에 피가 배어 빨개졌다. 그리고 다시 벽돌을 옮기려고 쌓아 놓을 때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치며 온몸에 벽돌이 안 가 닿는 곳이 없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벽돌에 돌가시가 무섭게 돋아 있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여부슈, 손으로 나르면 손이 아파서 못 합니다. 당신 일 처음 해보는구리."
신철이는 얼핏 바라보니 아까 국밥집에서 한자리에 앉아 먹던 그 노동자였다. 외눈만이 쌍까풀진 그의 눈에 약간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이리로 와서 신철의 등에 섬피를 대어 주었다.
"이렇게 대구서 벽돌을 지시우. 그러면 손으로 나르는 것보담 낫지유. 자 지시우."
신철이는 지다가 다리가 휘청하며 푹 꺼꾸러졌다. 그의 다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경련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일어났다. 그는 아픈 손을 입에 물고 어린애같이 울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흐트러진 벽돌을 다시 쌓아 놓고 그가 지워 주는 대로 졌다.
"저 이거 보슈. 이거 이렇게 지면 힘듭니다. 이것을 이 섬피에 꾹 달라붙게 지며 몸을 이렇게 허시유."
외눈까풀이는 허리를 구부려 보인다.
그때 뒤에서,
"이놈의 자식들, 빨리 날라라!"
"흥! 저놈 또 야단이군."
외눈까풀이는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자기도 벽돌을 지고 신철이와 가지런히 걸었다.
"당신도 미두에 손해봤구려."
미두에 손해본 사람들이 가분작이 객리에서 어쩔 수는 없고, 또는 가산을 탕진하여 놓고 먹을 것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노동시장으로 나오곤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직 해보지 않던 일을 하려니, 물론 노동자들과 같이 일이 손에 익지 못하고 서툴러서 애쓰는 것을 많이 보았던 것이다.
신철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차서 대답도 못 하였다. 그리고 자꾸 꺼꾸러지려고만 하였다. 외눈까풀이는 뒤에서 벽돌을 받들어 주었다. 신철이는 그만 이 짐을 벗어던지고 달아나고 싶었다.
점심 먹는 시간 사십 분 동안을 내놓고 아침 여섯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일을 마친 신철이는 전신에 맥이라고는 다 끊어진 듯하였다. 신철이는 외눈까풀이의 뒤를 따라 이번에는 돈표를 타러 갔다. 바라크식으로 지은 임시 사무소 앞에는 노동자들이 들이몰리어 저마다 돈표를 타려고 덤볐다. 사무실에서는 몇 번호, 몇 번호 하고 번호를 불렀다.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신철이는 돈표라는 종잇조각을 타가지고 이번에는 돈과 바꾸는 사무실로 달아갔다.
거기에서 비로소 돈 사십육 전을 쥔 신철이는, 하루의 품값이 오십 전임을 알았다. 그리고 사 전은 돈 바꿔 주는 중간 착취배가 또 하나 나타나서 오십 전에 사 전을 벗겨 먹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한숨을 후유 내쉬고 돌아보니, 인천 시가는 또다시 전등불로 장식되었다. 외상값을 받으러 온 국밥 장수들이며, 남편을 찾아서 이 저녁거리를 사려는 노동자의 아내들까지 몰리어 뒤끓었다.
신철이는 외눈까풀이를 잃어버리고 한참이나 찾다가 그만 나와 버렸다. 그는 수없이 깜박이는 저 전등을 바라보며 잉여노동의 착취! 하고 생각하였다. 그가 책상에서 {자본론}을 통하여 읽던 잉여노동의 착취보다, 오늘의 직접 당하는 잉여노동의 착취가 얼마나 무섭고 또 근중이 있는가를 깨달았다.
집까지 온 신철이는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노동시장으로부터 돌아온 철수가 들어왔다.
"동무, 몹시 힘들지유?"
신철이는 머리를 들며,
"동무 왔소? 난 어려워서 일어나지 못하우."
"예 좋습니다. 저 코피가 흐릅니다!"
"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