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24

간난 어머니는 일어나더니 농문을 열고 편지봉투를 꺼내 가지고 선비 앞으로 왔다.
"서울, 아이 어데라던가? 난 늘 들으면서도 모른다니, 네 이것 봐라. 여기에는 그애 있는 곳이 쓰여 있다고 하더라…… 죽일 놈 그놈의 원수를 어떻게 해야 갚겠니. 너의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면 오작이나 하시겠니! 아이구 가슴 아파라!"
간난 어머니는 가슴을 툭툭 친다. 선비는 봉투를 쥐며 간난 어머니가 덕호와 자기 새를 눈치챈 것을 느끼자, 덕호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부끄러운 생각이 그의 전신을 잡아 흔드는 듯하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쥐고 들여다보니 워낙 불도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지마는 그가 국문이나 겨우 아는 터라 이런 한문으로 쓴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봉투를 쥔 채 일어났다.
일어나는 선비를 바라본 간난 어머니는,
"그 봉투는 이전 다 보았겠지…… 이리 다오."
선비는 서서 한참이나 주저하더니,
"어머니 이걸 나를 주시오."
"못 한다! 만일에 덕호가 보면 재미없는 것 아니냐?"
"어머니두 내가 뭐 그렇게 하겠기…… 그래요."
"그럼 꼭 간수했다가 가져오너라. 부디 그놈 보여서는 못쓴다, 응 이애."
문밖을 나서는 선비의 뒤를 따라나오는 간난 어머니는 재삼 부탁하였다. 선비는 봉투를 가슴속에 집어넣다가 덕호의 손이 그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는 생각이 얼핏 들자 봉투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이 봉투 하나도 감출 곳이 없이 자신의 비밀을 여지없이 그 늙은 덕호에게 빼앗긴 생각을 하니 금방 푹 엎뎌 죽고 싶도록 안타까웠다.
그는 간난 어머니를 작별하고 역시 아까와 같이 바자와 바자 곁으로 붙어 서서 덕호의 집까지 왔다. 이 봉투는 어떻게 할까? 한참이나 주저하던 그는 버선 속에다 쓸어 넣고 나서 대문을 가만히 열었다. 이젠 유서방의 방문까지도 컴컴하였다. 그리고 처마끝 그림자가 뚜렷이 드리웠다. 그리고 사랑은 여전하다. 그는 가슴을 설레며 덕호가 나 없는 새 방에 들어와 있지나 않나? 하는 불안으로 중대문까지 와서는 한참이나 주저하였다. 그러나 사방이 죽은 듯이 고요하므로 그는 소리 없이 대문을 닫고 들어와서 그의 방문을 열었다. 맞받아 나오는 듯한 이 어두움! 그는 잠깐 주저하며 덕호가 술이 취하여 저 안에 누웠는 것만 같았다. 그는 휙 돌아서 어디로든지 달아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버선 갈피에 들어 있는 그의 유일한 비밀을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마침내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자 선비는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은 이 문을 열어 주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며 문을 힘껏 잡아당겨 걸고 자리도 펴지 않은 채 누워 버렸다. 누우니 일만 가지 생각이 뒤끓어 마치 환등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문 밖에서 덕호가 문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한참 후에 참말 문이 바짝하였다. 에그 또 왔구나…… 하고 눈을 꼭 감아 버렸다. 그러나 가슴만은 못 견디게 벌렁거렸다. 또다시 바짝바짝하였다. 덕호가 전날을 미루어서 자기가 자지 않을 것을 뻔히 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을 안 열어 주면 덕호가 자기를 미워할 것만은 사실이나 상에 쫓겨나기밖에는 더 하겠니? 하고 가만히 있었다. 문은 점점 더 바짝거렸다. 그러다 어떻게나 하는지 짝짝 하는 문창지 찢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고리가 절걱 벗겨진다. 선비는 그냥 누워 자는 체하였다. 덕호는 씩씩하며 문을 걸고 선비의 곁으로 오더니 발길로 그의 엉덩이를 내려밟았다.
"이년의 계집애, 왜 문을 안 열어. 건방진 놈의 계집애, 저를 예뻐하니까…… 아주 버틴단 말이어…… 어디 보자!"
선비는 이제야 깨어나는 듯이 부시시 일어앉았다.
"이제 문 열라는 것 들었지?"
"못 들었에요."
"이놈의 계집애."
선비를 끌어안는 덕호에게서, 항상 그에게서 많이 맡을 수 있는 독특한 냄새가 후끈 끼친다. 선비는 덕호의 품에 오래 안겨 있으면 모르나, 이렇게 처음 안기게 될 때마다 이러한 강한 냄새를 느끼곤 하였다. 그는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몸을 꼬며 내려앉으려 하였다. 덕호는 더욱 쓸어안았다.
"이년, 너 내가 싫은 모양이지…… 딴 계집 얻으리? 응, 이애, 말을 좀 들어 보자."
덕호는 씩씩하며 선비의 귀에다 입을 대고 이렇게 수군거렸다. 선비는 소리치게 간지러움을 느끼며 물러앉았다.
"너 이년, 딴 사내가 있는 게로구나…… 그렇지 않으면 그럴 수야 있나? 계집이란 것이 사내가 들어오도록 잠을 자지 않다가 사내가 들어오는 것을 맞받아들여야 허는 게고, 또는 아양도 떨어서 사내의 환심을 사도록 하여야 허는 게지…… 그게 뭐냐. 잔뜩 자빠져서 자고 있어? 에이 고약한 년 같으니, 내 저를 예뻐하니까 버릇이 사나워졌단 말이어…… 너 이달 월경은 어찌 되었냐?"
선비는 옥점 어머니가 밖에 섰는 것만 같아서 그의 조그만 가슴이 달랑달랑하였다. 그리고 덕호의 지껄이는 말이 하나도 귀에 거치지 않았다. 언제나 선비는 덕호가 들어올 때마다 이러하였다.
"이애 대답을 해."
덕호는 선비의 배를 어루만진다. 선비는 대답을 안 하려니 자꾸 여러 말을 늘어놓는 것이 싫어서,
"아직 안 나……."
"음 이번에는 무슨 수가 있나 부다.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꼭꼭 말해. 감추어 놓고 우물쭈물 말도 하지 않고 있지 말구…… 뭐 먹고 싶으냐?"
선비 볼에다 입술을 들이대고 슬슬 핥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구역이 금방 나오는 것을 참으며 내려앉았다.
"갈비나 한 짝 떠오랴?"
"아이 참, 듣기 싫어요."
"어…… 그년 듣기 싫다고만 하면 되나. 이 속의 내 아들의 생각을 해야지."
덕호는 선비를 껴안으며 진저리가 나도록 선비의 귓가를 빨았다.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선비에게 들려 주었다.
"이것 가지고 너 쓰고 싶은 데 써라. 그리고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날 보고 말해, 응."
선비는 돈을 쥐며 버선 갈피의 봉투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이것을 여비로 간난이한테 가야지…… 하는 맘을 단단히 먹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어머이가 나와요."
"나오면 어떠냐? 네가 이전 제일이야. 이 속에 내 아들이 있는데…… 그까짓 년이 뭐기 그러냐. 걱정 없다. 너 이제 두 달만 지나면 완전히 알 것 아니냐. 그러면 저년은 내보내구…… 너를 아주 내 정실로 삼겠다. 알았니?"
"가만가만히 하세요. 누가 듣겠어요."
"들어도 일이 없어. 네가 이전 이 집안에서는 제일이야. 그런데 이애! 애가 배면 신 것이 먹구 싶다는데…… 넌 그렇지 않으냐?"
선비는 아이에 미쳐 덤비는 덕호가 한층더 밉살스러웠다. 반면에 이때까지 월경이 나오지 않는 것이 덕호의 추측과 같이 참말 임신이 아닌가? 하였다. 따라서 차라리 이렇게 몸을 더럽힌 바에는 아들이라도 하나 낳아서 이 집안의 세력을 모두 쥐었으면…… 하는 생각도, 이렇게 덕호와 마주앉을 때마다 어느 구석엔가 모르게 자라 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마침내 구역질을 욱 하고 하였다.
덕호는 놀라면서 선비의 입술 밑에 손을 대었다. 선비는 머리가 지끈 아프고, 그 손끝에서 한층더 그 내가 나는 것을 느끼자 머리를 돌렸다.
"이애 너 정말 임신이구나. 구역질이 언제부터 나느냐?"
선비는 그의 무릎에서 물러앉으며,
"어서 들어가세요. 난 몸이 아주 괴로우니…… 제발 오늘만은 어서 들어가세요."
"음, 몸이 괴로워…… 필시 잉태중이다. 애 배었다! 밥맛이 없지? 과실이나 좀 사다 주랴?"
"싫어요. 어서 들어만 가주세요."
밖에서 옥점 어머니가 이 말을 다 엿듣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오냐, 그러면 내 들어갈 것이니 이 배를 잘 간수해라. 그러구 내일은 갈비를 떠올 터이니…… 배껏 먹어! 응? 이 귀여운 년아! 넌 내 아들 배었지?"
덕호는 선비를 힘껏 껴안아 보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선비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손에 쥔 지화가 얼마짜리인지 몰라 애가 쓰였다. 밖으로 나간 덕호는 이제야 큰대문 소리를 찌꺽 내며 쿵쿵 하고 중대문을 들어선다. 언제나 그가 이렇게 선비의 방에 들어왔던 날은 소리없이 밖으로 나가서 저 모양을 하는 것이다. 으흠 하는 덕호의 기침소리와 함께 중대문 거는 소리가 떨그렁 하고 난다. 그러고는 안방을 향하여 충충 들어가는 신발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그때 선비는 웬일인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질투 비슷한 감정을 확실히 느꼈다. 선비는 안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들으면서야, 다시 그의 손에 지화가 들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짜리인지 알고 싶은 궁금증에 등 아래를 어루만져 성냥을 가만히 그어 보았다. 성냥불에 비치는 지화, 그것은 똑똑히는 몰라도 옥점의 지갑에서 늘 볼 수 있는 십 원짜리 같았다. 선비는 불꽃만 남기고 꺼지는 불을 바라보며, 이것과 어머님 살아 계실 때 준 것과 합하면, 십 원하고 오 원이나? 그럼 얼마가 되는 셈일까, 백 냥하고 또 쉰 냥하고…… 하니까…… 일백쉰 냥이나? 그러면 항용 부르기는 십오 원이라지? 그는 난생에 처음으로 십오 원을 불러 보았다. 이걸 가지면 서울을 갈지 몰라? 그는 지화를 꼭 쥐었다. 그리고 아는 듯 모르는 듯이 그는 안방으로 귀를 기울였다. 어떤 불쾌한 생각과 아울러 자기도 모를 감정에 떠돌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철이 잡힌 그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흐려 있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선비는 부엌으로 나왔다. 옥점 어머니는 요새 확실하게 눈치를 챈 모양인지 어젯밤에도 자지 않고 덕호와 밤새도록 싸웠다. 그리고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면 소사를 시켜서 국수를 사다 먹고서는 사뭇 앓는 사람 모양으로 머리를 동이고 누워 있었다. 선비는 그들과 같이 어젯밤도 고스란히 새웠으며 지금까지도 부엌문으로 바라보이는 저 하늘과 같이 그의 맘은 캄캄하게 흐리고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쌀을 일어서 솥에 해 안치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왔다갔다하다가 광에 가서 쌀을 퍼내 오고 생각을 하니 금방 솥에 쌀 일어 해 안친 것을 깨달으며 그는 우뚝 섰다. 내가 왜 이래…… 그는 시렁을 붙잡고 좀 마음을 진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었다. 옥점 어머니가 그 일을 알았어! 글쎄 모를 리가 있나…… 아니야 아직도 몰랐어! 알았으면야 내가 견디어 낼 수가 있나? 어젯밤으로 당장 쫓겨났지…… 무엇이 자끈 하므로 그는 깜짝 놀라 굽어보았다. 그의 손에 든 쌀 담은 바가지가 내려지면서, 그 아래 놓아 둔 개숫물 자배기가 깨어졌다. 물이 와르르 흘러지며, 바가지 역시 깨어져서 쌀이 물과 같이 흘러내린다. 그는 숨이 차서 쌀을 주워 모았다. 신발 소리가 쿵쿵 났다.
"저년이 무슨 지랄을 저리 벌여! 이년아!"
머리를 갈래갈래 헤친 옥점 어머니가 마루로부터 뛰어내려와서 선비의 머리끄덩이를 움켜쥐었다.
"이애 이 계집애야, 우리집에 있기 싫거든 나가지 그릇은 왜 짓모고 있어! 이 주리를 틀 년의 계집애, 나가라!"
무슨 흠을 잡지 못해서 애쓰던 차라 옥점 어머니는 선비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소리가 나도록 쥐어뜯었다. 선비는 반항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가지고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옥점이가 눈이 둥그래서 나왔다.
"왜들 이래…… 아이거…… 저 꼴…… 호호호호."
선비의 옷이 쏟아진 물에 적시우고 흙에 이겨진 것을 보매 옥점이는 이렇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그날에 아무 새로운 일이 없이 밥 먹고 피아노 치고 잠자고 이렇게 단순하게 되풀이하던 그로서는 이렇게 싸우는 일도 한 새로운 일이므로 일어나는 흥분과 함께 통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막연하나마 신철이가 자기보다 선비를 더 생각하였거니 하는 질투심에서 항상 밉게 보던 선비라 그도 달려가서 어디든지 쥐어박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났다. 옥점 어머니는 흑흑 하면서 양과 같이 아무 반항이 없는 선비를 눅쳤다 닥쳤다 하면서 부엌바닥에 굴렸다. 선비는 처음에는 아프기도 하고 쓰리기도 하였지마는 시간이 오랠수록 의식이 몽롱해지며 아픈 것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이 매맞은 끝에 그만 죽어 버렸으면 이 부끄럼, 이 고통을 면할 수 있으려니…… 보다도 무서운 이 집을 벗어날 수가 있으려니…… 생각하니 오히려 이런 매를 맞기 전보다 맘의 고통은 좀 덜리는 것 같았다.
옥점 어머니가 기운이 진하여 물러나며 머리를 매만진다.
"이년 당장에 나가라. 내 너를 친딸과 같이 길렀지…… 너두 생각이 있으면 알겠구나. 그런데 이년…… 내가 가만히 있어도 너의 연놈들의 일을 다 알아. 응 이년, 이 죽일 년의 계집애."
"어머니 남부끄럽소! 설마한들 그따위 짓이야 아버지가 했겠소? 그러나 저 계집애 맘으로는 그렇지 않을 게야…… 그때도 신철이와 밤에 마주서서 어쩌구 어쩌구…… 하는 것을 잡았다니…… 그때 신철이놈은 저 계집애와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 몰라. 저년이 겉으로는 바보같이 가만히 있으나 속으로는 한몫 더해……."
옥점이는 어느 때나 신철이를 잊지 못하는 반면에 그만큼 더 미웠던 것이다. 그래서 별별 추측도 다 해보곤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달려들어 피가 흐르는 듯한 선비의 볼을 철썩 후려쳤다. 선비는 부엌 구석에 박히며 어서 죽어지면 하였다.
그때 덕호가 들어왔다.
"왜들 이러냐?"
옥점이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아버지 내 입때 말 안 했지만…… 저 계집애와 신철이와 아마 관계가 있었나 봐?"
"뭐? 신철이와……."
덕호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네가 꼭 아냐?"
"알구말구요. 달밤인데 저 계집애와 신철이가 마주서서 무슨 얘기를 재미나게 하더라니요. 그리고 서울 가서도 신철이가 저놈의 계집애를 올려오지 못해서 한동안 애쓰지 않았수?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저 계집애와 상관이 되어 가지고 그랜 것을 내가 몰랐다니."
옥점이는 다시 돌아섰다.
"너 참말 신철이와 관계되었지? 말 안 하면 이년의 계집애 죽이고 말겠다!"
옥점이는 대들었다. 덕호는 눈을 무섭게 뜨고 선비를 노려보았다. 무엇보다도 간봄에 어린애를 밴 줄 알고 가지각색으로 사다 먹인 생각을 하니 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비는 덕호를 보니 이때껏 불이 붙는 듯하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나마 덕호만이야 그의 억울함을 알아주려니 하였던 것이다. 덕호는 선비 앞으로 조금 다가섰다.
"네 정말 신철이와 관계가 있었냐?…… 저 계집애를 둬두기 때문에 애매한 헌 멍덕만 나까지 쓰게 되었단 말이어…… 하, 거 정 자네 나를 의심하지마는 쟤보고 물어 보라구. 아 신철이 녀석과 벌써부터 관계가 있어 가지고 서울 가랴고 애쓰는 계집애가 내 말을 들을까? 응 이 사람아, 사람을 의심해도 분수가 있지…… 응, 이 사람? 오늘 뭐 좀 먹어 봤나? 아까 면소사 국수 가져온 것 먹어 봤나?"
덕호는 선비와 마주섰기가 거북해서 옥점 어머니의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간다. 옥점이는,
"이 계집애 당장 나가라. 우리집에 이전 못 있어."
소리를 치고 나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선비는 나가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나마 믿었던 덕호까지도 저런 시뻘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이젠 다시는 선비를 가까이하지 않고 내보내려는 심산인 것을 깨달았다. 잘되었다! 선비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악이 치받쳐서 부들부들 떨릴 뿐이지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는 봇짐 위에 칵 엎어지며 어서 밤 되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 선비는 봇짐을 옆에 끼고 덕호의 집을 벗어났다. 사방은 먹칠을 한 듯이 캄캄하였다. 그리고 낮에부터 쏟아질 줄 알았던 비는 쏟아지지 않으나 바람만 슬슬 불기 시작하였다. 선비는 읍으로 가는 신작로에 올라섰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그의 타는 볼 위에 후끈후끈 부딪치고 지나친다.
저편 동쪽 하늘에는 번갯불이 번쩍 일어서 한참이나 산과 산을 발갛게 비추어 주었다. 그때마다 우르르…… 타는 소리가 들린다. 선비는 전 같으면 이런 것들이 무서우련만 이 순간 그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당하리라고 최후의 결심을 굳게 하였던 것이다.
길가 좌우로 빽빽히 들어선 수숫대며 좃대는 바람결을 따라 시르르 솨르르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 물결처럼 멀리 흩어졌다가는 또다시 밀려오곤 하였다. 그 물결을 타고 넘실넘실 넘어오는 듯한 피아노 소리! 뚱뚱! 어찌 들으면 곁에서 듣는 것 같고 또다시 들으면 꿈속에서 듣는 것처럼 희미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확실히 선비의 가슴 복판을 찔러 주었다. 선비는 눈앞에 옥점의 피아노 치는 것을 그리며 귀를 막았다.
그때 낑낑 하는 소리가 나며 선비의 앞을 막아 서는 무엇이 있으므로 선비는 놀라서 물러섰다. 다음 순간 그것은 자기가 항상 밥을 주던 검둥이임을 알았을 때 선비는 와락 검둥이를 쓸어안으며 머리털 끝까지 치받쳤던 악이 울음으로 변하여 쓸어 나왔다. 검둥이는 꼬리로 선비의 얼굴을 툭툭 치며 한층더 낑낑거렸다. 그리고 주둥이로 그의 볼을 핥았다.
"검둥아!"
선비는 검둥이의 목에다 볼을 대며 길에 펄썩 주저앉았다. 멀리 마을에서 깜박여 오는 저 불빛! 붉은 실타래같이 갈가리 찢기어 그의 눈에 비치어진다. 그 순간 그는 그 불빛이 그의 어머니를 숨지어 놓고 바라보던 그 등불과 흡사함을 느꼈다.
"어머니!"
그는 무의식간에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묻힌 산 편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때 얼핏 떠오른 것은 소태 뿌리였다. 뒤미처 눈이 둥그렇게 큰 첫째의 눈방울이 뚜렷이 떠올랐다. 그는 머리를 푹 숙였다. 그때의 일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를 싸고도는 것이다. 덕호가 주는 돈은 이불 속에 넣고 첫째가 캐온 소태나무 뿌리는 윗방 구석에 내어던지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검둥아! 너 나하고 같이 가련?"
번갯불이 환하게 일어났다 꺼진다.
"이 사람아, 잠을 자도 분수가 있지, 이게 무슨 잠이람."
신철이는 깜짝 놀라 깨었다. 벌써 동무들은 일어나서 세수까지 한 모양인지 이맛가가 반들반들하였다. 기호는 신철이를 들여다보았다.
"오늘 조반 할 것이 없네그리. 어서 자네 일어나서 좀 변통하여야겠네……."
"가만히 있어. 나 조금만 더 자구."
"어서 일어나게. 해가 중낮이나 되었네. 아침은 못 먹는다더라도 점심이나 저녁이나 그 어느 한 끼는 먹어야지…… 긴긴 해에 이렇게 굶고야 사는 수가 있나? 허허, 참."
신철이는 벌떡 일어났다. 햇빛이 산뜻하게 방 가운데 떨어졌다.
"이거 물어 살겠기…… 어데."
신철이는 내의를 훌떡 벗었다. 그리고 보리알 같은 이를 잡아 내기 시작하였다. 일포가 문 곁에 바싹 붙어 앉아 그나마 돈푼이나 있을 때 사다 먹고 내친 담배 꼬투리를 붙여서 한 모금 쑥 빨았다. 콧구멍으로 내뿜는 연기야말로 제법 길게 올라간다. 그리고 건넌방을 흘금흘금 내다보는 것을 보아 건넌방 미인이 오늘은 집에 있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일포는 언제나 저렇게 뚱뚱한 채 살폭이 좋았다. 시재 먹을 것이 없고 땔 것이 없어도 그는 한 번도 초조한 빛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아침만 되면 일어나서 저렇게 문 곁에 앉아 가지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코 안을 우벼 내고 발새를 우벼 내어 그 손을 코에 대고 흥흥 맡아 보면서 건넌방을 흘금흘금 내다보는 것이다. 신철이는 이 모든 것을 못 본 체하고 곁눈질도 해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호만은 일포가 발새를 우벼서 흥흥 하고 맡아 볼 때마다,
"이 사람아! 저…… 또 저 짓이야. 그 왜 사람이 그렇게 고리타분해! 그래 맡아 보니 맛이 어떤가?"
일포는 못 들은 체하고 있다가 여전히 또 우벼 내서 맡아 보곤 하였다. 그러고는 손끝은 으레 양말짝에 부벼치는 것이 그의 늘 하는 버릇이다.
오늘은 다행히 담배 꼬투리나마 있으니 그것을 빨면서 발새를 우벼 내지 않았다.
"오늘은 자네 좀 구해 보지 못하겠나?"
기호는 일포를 바라보았다. 일포는 역시 못 들은 체하고 열심으로 담배 꼬투리만 얻는다. 그가 흥이 나서 지껄이는 것이란 건넌방 미인 이야기와 누구의 험담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쌀이나 나무를 구해 오라든지 발새와 콧구멍을 우벼 낸다고 기호가 벌컥 뒤집고 웃어도 그저 못 들은 체하였다. 일포는 담배 꼬투리를 얻어 가지고 빙긋이 웃었다. 신철이는 이를 다 잡고 나서 내의를 입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전당 잡힐 것이 없는가 하고 두루두루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