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23

밥을 다 먹고 난 그들은 저마다 설거지를 하라고 내밀다가 나중에는 각기 한 그릇씩 들어다 부엌 구석에 몰아 두었다.
"여보게, 오늘은 안 간 모양이지?"
일포가 눈을 끔쩍하며 앞문을 바라보았다.
"어제 야근 아니어?…… 그러니 오늘은 한시부터야 출근하실 터이지…… 오늘은 좀 가서 만나 보기나 하자."
기호가 맞장구를 친다. 동무는 신철이를 바라보고 소리를 낮추며,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저 건넌방에 말이지…… 방직공장에 다니는 미인이 있단 말이어…… 그러니 저놈들이 저마큼 연애를 걸어 보려누먼……."
"이애 이놈아, 누가 연애를 걸랴냐? 실은 네놈이 몸이 백 퍼센트로 달지 않았냐?"
그들은 일시에 웃었다.
이튿날 신철의 동무는 신철이와 함께 있는 것이 재미 적다고 생각해서 둘이서 의논한 끝에 동무는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부득이 만날 일이 있어야 혹간 오곤 하였다.
그 후로부터 신철이는 자취생활에 익숙해져서 밥도 짓고 내의도 빨아 입곤 하였다. 그리고 밥 해먹고 나서는 돌아앉아 이 사냥으로, 양말 뚫어진 것을 깁기에 분주하였다. 더구나 신철이는 차근차근하게 무엇이든지 잘하므로 그는 주부역을 맡았다.
일포나 기호는 이미 감옥생활을 거친 사람들로서, 지금은 그저 픽픽 웃기만 하고 여기도 저기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누구는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비웃기로 소일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여자 말이라 하면 기를 쓰고 덤벼들었다.
"여보게 신철 군! 어젯밤 이 앞 다리에서 그 미인과 마주쳤구먼…… 그런데……."
앞방 여직공을 가리켜 그 미인이라 하였다.
피아노를 뚱뚱 치고 있던 옥점이는 창문으로 쏘아 들어오는 달빛을 쳐다보며 한참이나 무슨 생각을 하더니 머리를 돌려 선비를 바라보았다.
"선비야, 너 그날 밤에 신철이가 뭐라고 하지 않던?"
문 앞에서 낮에 따온 외를 다듬던 선비는 외를 든 채 멍하니 옥점이를 바라보며 그게 무슨 말인가? 하였다. 옥점이는 성을 발칵 내었다.
"넌 이따금 혼이 나가는 모양이두나. 그게 뭐야, 어따 좋다!"
선비가 돌려 생각할 새도 없이 옥점이는 이렇게 비웃었다. 선비는, '그날 밤 신철이가 뭐라고 하지 않던?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입 속으로 외어 보나 도무지 그의 기억에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가 하필 이 말귀만을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종종 그러하였다. 웬일인지 몰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그의 머리에는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안타깝고 초조함이 저 바구니에 외가 들어 있는 것보다도 더 가득히 들어찬 것을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동시에 그가 언제부터 옥점의 말과 같이 정신이 나갔는지 몰랐다. 어쨌든 그의 맑고 선명하던, 그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확실히 자신에게서 떠나간 듯하였다. 그는 칼로 외꼭지를 자르며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그래 아직도 생각 안 나?"
한참 후에 선비는 머리를 들며,
"안 나."
"아이 저런! 바보가 어디 있나? 참 죽겠네! 아 작년 여름에 서울서 왔던 손님 말이어……."
"손님이 뭐?"
"아이구 저걸 어째? 쟤가 저러다 정말 바보가 되랴나 봐. 에이 모르겠다, 어서 외나 다듬어서 김치나 담거! 네게 말하느니, 쇠귀에 경을 읽어야 낫겠다. 그게 뭐야…… 참."
옥점이는 횡 돌아앉는다.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치며, 그 소리에 맞춰 무슨 노래인지 슬프게 부른다. 선비는 물끄러미 그의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는 선비의 모든 것을 비웃는 듯, 조롱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창문으로 쏘아 들어오는 무지개 같은 달빛에 비치어 그의 백어 같은 손길은 가볍게 뛰놀았다.
"이애 선비야! 그 방에 불 켜놓으려무나."
옥점 어머니가 밖으로부터 들어오며 이렇게 소리쳤다. 선비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언제나 그는 옥점 어머니의 음성만 들으면 가슴이 후닥닥 뛰며, 그 담 말에는 자기를 나무라지 않으려나? 혹은 이년 더러운 년! 나가라! 하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둬라…… 어머이, 난 이대로가 좋아. 저 달빛이면 그만이지…… 불은 켜서 뭘 해…… 아이, 난 죽으면 좋겠어, 어머이."
방 안을 들여다보는 그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옥점 어머니는 딸이 죽고 싶다는 말에 앞이 아뜩해서,
"그게 무슨 말이냐? 소위 배웠다는 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다시는 그런 말 내 앞에서 내지 말아!"
옥점 어머니는 목이 메어, 할 말이 아직 많은데 그만 그치고 말았다.
"넌 무슨 오이를 아직도 다듬냐? 어서 그걸랑 들여다 두고 안방에 불도 켜고, 자리도 펴고, 이 방에도 그렇게 해! 원? 어쩐 일로 계집년이 점점 느릿느릿하냐, 그나마 그 할멈을 그냥 두었으면 좋을 것을……."
옥점이가 졸업하고 내려오니 선비가 할멈 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덕호가 할멈을 내보냈던 것이다.
"어머이! 나…… 참…… 저…… 온정서 말이야…… 할멈을 만났지! 그런데 자꾸 울겠지! 불쌍해!"
"아 글쎄, 네 아비라는 물건짝이 기어코 할멈을 내보냈구나! 내야 할멈이 불쌍해서…… 그냥 두려고 했지……."
그 순간 옥점 어머니는 외 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선비를 흘금 보며, 전부터 마음속에 깊이 자라 오던 질투의 불길이 그의 젖가슴을 따갑게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다 저년 까닭이지…… 글쎄……."
할멈과 함께 있으면 어드래서 할멈을 내보냈겠니? 아무래도 네 아비가 수상하니라…… 하고 말이 나오는 것을 그만 꾹 눌러 버렸다.
옥점이는 피아노에 엎디며,
"참, 이상해……."
하며 젖가슴을 꾹 쥐었다. 옥점 어머니는 신이 나서 들어온다. 그리고 옥점이를 들여다보았다.
"너두 이상하게 생각했니?"
옥점이는 어머니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글쎄 늙은 첨지가 뭐겠니? 아무래도 수상하지?"
옥점이는,
"아이 참 죽겠네…… 어머니는 뭘 그래? 뭘 수상하단 말이어? 호호호."
옥점 어머니는 그제야 딸이 딴말을 한 것을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눈치채었다. 동시에 말할 수 없는 노염이 치받쳤다.
"넌 그게 무슨 웃음소리냐?"
"어마이는 그게 무슨 말이오?"
옥점 어머니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그만 홱 돌아섰다. 안방에서는 성냥 긋는 소리가 막 났다. 뒤미처 불이 빨갛게 켜진다. 옥점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리를 펴는 선비를 노려보았다.
"좀 똑바루 펴라!"
선비는 벌써 가슴이 진정할 수 없이 뛰었다. 그리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동시에 그는 눈 한번 맘놓고 뜨지 못하고 자리를 펴놓은 후에 마루로 나왔다. 옥점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다. 자는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선비는 아까 옥점이가 불 켜는 것이 싫다고 한 것만은 기억하고 건넌방 문 편에 비껴앉아 그의 동정만 살피고 있었다. 불 켜리? 하고 묻고 싶으나 옥점이가 또 뭐라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비웃을 것만 같아서, 그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일 그만 경성에나 갈까?"
자는 듯이 엎디어 있던 옥점이는 벌컥 일어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의자에서 물러나며,
"이애 불 켜! 왜 그러고 앉았니? 이 바보야! 에크! 뭐이 쏟아졌나 봐!"
옥점이는 물바리를 쏟아치고, 이렇게 소리쳤다. 선비는 얼른 뛰어들어가며 불을 켜놨다. 물바리의 물이 전부 쏟아졌다.
"아니, 넌 불을 켤 것이지, 그럭하고 앉아서, 이런 일이 나게 헐 탁이 뭐냐? 아이구! 참 죽겠네! 저런 꼴 보기 싫어서 난 더 속이 상한다니…… 얼른 펄펄 치워 놔라."
옥점이는 냉큼 안방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모녀가 주거니 받거니, 무슨 말인지 하고 있다. 선비는 걸레로 방을 훔쳐 낸 후에 빈 바리를 들고 할멈 방으로 나왔다. 그가 방 안에 들어서면서야, 아이 내 이 빈 바리는 부엌에 들여다 두자고 한 것을 가지고 왔네…… 이렇게 생각을 하며 도로 문밖으로 나오다가, 에라 내일 아침에 들어가지…… 하고 주저앉았다.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너무도 하루 종일 들볶여서 어리뻥뻥할 뿐이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창문으로 새어드는 달빛을 보며 저 달빛을 따라 이 집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이 시간이 지날수록 농후해짐을 느꼈다.
"어떻게 하누?"
그는 한숨 섞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밤마다 저 창문을 바라보며 그 몇 번이나 이 집을 벗어나겠다고 결심하였다가도 막상 나가려고 봇짐을 들고 나서면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주저앉곤 하였다. 그는 무심히 이제 들고 들어온 빈 바리를 어루만지며 오늘 밤엘랑 아주 단단한 맘을 먹고 나가 볼까? 나갈 때는 이 바리도 가지고 가지…… 할 때 옥점 어머니의 성난 얼굴이 휙 지나친다. 그는 진저리를 치고 바리를 저편으로 밀어놨다. 그러나 그 바리만은 웬일인지 놓고 나가기가 아까웠다. 보다도 섭섭하였다. 동시에 부엌 찬장에 가득히 들어 있는 바리 사발이며 탕기, 대접, 접시, 온갖 그릇들이 그의 눈에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그가 하루같이 알뜰히도 만지는 그 그릇들! 꽃무늬에 짐승 무늬를 돋쳐 동그랗게 혹은 네모나게, 크고 또는 작게 만든 그 그릇들! 그가 그나마 이 집에 정붙인 곳이 있다면 이 그릇들일 것이다.
그는 다시 바리를 끌어당기어 가슴에 꼭 붙안았다. 그리고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에 불시, 이 방 안을 떠나고 싶은 맘이 들어 가만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봇짐을 쥐어 보며…… 가면 어디로 가나? 만일 밖에 나갔다가 덕호보다도 더 무서운 인간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봇짐을 슬며시 놓고 물러났다. 그러나 아무리 돌려 생각해도 이 집에서는 오래 있지 못할 것 같았다.
덕호가 들어오기 전에 어디로든지 가야 할 터인데…… 하고 선비는 우선 사랑에 덕호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자 하여 밖으로 나왔다. 사랑에는 불도 켜지 않고 문 위에 달빛만이 환하게 드리웠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그의 방으로 도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선비는 몇 번이나 봇짐을 들어 보다가 아무래도 대문 밖에 덕호가 섰는 것 같고, 그가 나가다가 길거리에서라도 만날 것 같아서 그만 봇짐을 놓고 한참이나 망설거리다가 우선 밖에 누가 있지 않나 보려고 문밖을 나섰다. 중문밖을 나서니 유서방의 방에 불이 발갛다. 그는 멈칫 섰다가 대문 밖으로 쫓겨 나오는 듯이 나와 버렸다.
대문 밖을 나선 그는 휘휘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누가 볼세라 하여 바자 곁에 착 붙어 서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 그가 나간대야 너 이년 어디 가니…… 하고 붙들 사람조차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이렇게도 나가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숨어 걷지 않고는 견디지 못 하였다.
한참이나 나오던 그는 멈칫 섰다. 읍으로 들어가는 새로 닦은 신작로가 달빛에 뚜렷이 바라다보였다. 그는 언제나 이 길을 바라볼 때마다, 그가 이 길로 외롭게…… 쓸쓸하게 나가게 될 날이 멀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은 들면서도 마침 나가려고 단단히 맘을 먹고 이 길 위에 올라서면 멀리 바라보이는 컴컴한 솔밭과 솔밭 새로 뿌옇게 사라져 간 이 길 저편에는 덕호보다도 몇 배 더 무서운 사나이가 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쳐지며 무의식간에 휙 돌아섰다. 그의 앞에 나타나 보이는 이 용연 동네! 보다도 함석창고를 보아란 듯이 앞세우고 즐비하게 들어앉은 덕호의 집!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온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는 다시 돌아서며 솔밭길을 바라보고 몇 발걸음을 옮기다가는…… "어찌나? 난! 난 어째!" 이렇게 중얼거리며 저 달을 쳐다보았다. 달은 언제나처럼 저편 하늘가를 향하여 슬슬 달음질쳤다.
그때 그는 얼핏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간난이였다. 그가 덕호에게 유린을 받기 전만 하여도 간난이를 아주 몹쓸 여자로 알았지마는, 그가 한번 그리 된 후에는 웬일인지 꿈에도 간난이를 종종 만나 보고 서로 붙들고 울기까지 하곤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나갈까말까 하고 망설일 때마다 문득 그의 머리에는 간난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가 어디라던가? 가서 돈벌이를 잘한다지…… 편지나 좀 할 줄 알면 해보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 그의 발길은 어느덧 간난네 집을 향하여 옮겨졌다. 그는 몇 번이나 간난의 소식을 알고자 달밤이면 이렇게 찾아오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자 밖으로 어실어실 돌아가다가는 에라 후일 알지, 간난 어머니라도 나를 수상히 보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돌아서 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간난아!' 이렇게 목이 메어 입 속으로 부르면서, 그와 자기가 어려서 놀던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간난이가 여기 있을 때 어째서 자기는 그의 맘을 이해해 주지 못하였던가? 따라서 다만 한마디라도 그를 붙들고 위로나마 해주지 못하였던가…… 하니, 기가 막혔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되풀이하는 새 벌써 간난네 집까지 왔다. 그는 멈칫 서서 이번에는 꼭 들어가서 그의 소식을 알아 가지고 가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그는 안에 누구들이 마을이나 오지 않았는가를 살폈다. 그 담엔 간난이 아버지가 집에 있는가 하고 동정을 보았다. 그러나 안은 괴괴하였다. 그리고 어슴푸레한 불빛만이 문 위에 비치어 있을 뿐이고, 그리고 누구의 기침소리인지 쿨룩쿨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들 다 자는 모양인가. 그만 갔다가 내일 낮에 올까…… 하고 돌아서다가, 에라 들어가 보자 하고 안 들어가는 발길을 힘껏 들이몰았다. 신발 소리에 안에서는,
"누구요?"
간난 어머니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선비는 멈칫 서서 주저하다가 방문이 열릴 때에야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갔다.
"저여요."
간난 어머니는 나와서 선비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난 누구라고…… 네가 어찌 우리집엘 다 왔느냐."
간난의 어머니는 선비의 손을 붙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애가 어떻게 우리집엘 왔을까? 혹은 덕호란 그 죽일 놈이 간난이가 서울 가서 돈벌이를 잘한다니까 알아보려고 보내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불시에 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애 역시 간난이와 같은 경우를 당하지 않았나? 하였다. 그래서 간난 어머니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눈치를 살폈다.
"너 본 지가 얼마 만이냐. 어머니 상사 났을 때 보고는 여직 못 봤지…… 그새 넌 퍽으나 고와졌다."
풀기 없이 앉아 있는 선비를 보며 간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선비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선비는 이렇게 들어오기는 하고서도 옥점 어머니나 혹은 덕호가 자기의 뒤를 따라와서 문밖에 섰는 것 같고, 그리고 자기가 이 집 문밖만 나서면 너 이년, 여기는 뭣 하러 왔느냐고 달려들 것만 같아서 말 한마디 맘놓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 편만 흘금흘금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다. 간난 어머니는 그의 태도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딸이 서울 가기 전에 밤잠을 못 자고 돌아다니다가 들어와서는,
"어마이, 아무래도 덕호가 선비를 얻으랴나 부야! 날 버리고……."
이렇게 한숨 섞어 하던 말이 방금 귀에 들리는 듯하며, 이 계집애가 역시 우리 간난이와 같이 배척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시간이 오래질수록 차츰 농후해졌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너 이년 우리 간난의 맘을 그렇게 아프게 하더니 잘되었다! 하였다. 그러나 반면에 선비의 풀기 없는 것을 바라볼 때 흡사히 자기 딸이 앉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그의 눈에는 간난의 모양이 뚜렷이 보이는 듯하였다.
한참 후에 선비는,
"어머이, 지금 간난이가 어디 가 있수?"
"왜? 그것은 알아 뭘 하랴고?"
덕호가 보내어 묻는 것만 같아서 간난 어머니는 이렇게 쏘는 듯이 반문하였다. 선비는 다시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잠잠하고 고름 끝만 돌돌 말고 있었다. 간난 어머니는,
"글쎄, 그애 간 곳은 알아 뭘 하겠다디? 남의 딸의 일생을 망쳐 놓고, 또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다더냐?"
간난 어머니는 나오는 줄 모르게 이렇게 지껄였다. 선비는 볼이나 몹시 쥐어박힌 것처럼 얼얼한 것을 느끼며 안 올 데를 왔다…… 하는 후회까지 일었다. 그리고 자기의 일생이란 것도 덕호로 인하여 망치게 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깨달아졌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분이 울컥 내밀치며, 그나마 간난이는 부모라도 있으니 저렇게 분해서 그러지마는 자기의 배후에는 저렇게 분해해 줄 사람조차 없는 것을 또한 발견하였다. 그는 얼결에 눈물 섞어,
"어머니!"
하고 불렀다. 간난 어머니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선비를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려누…… 하였다. 선비는 얼결에 이렇게 불러 놓고 보니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자기가 부르는 그 어머니가 아닌 것 같고, 어찌 보면 자기가 부른 어머니 같아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하는 등불로 시선을 옮겨 버렸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샘솟듯 하였다. 간난 어머니는 이 순간 저것이 확실히 간난이와 같은 경우를 당하였다는 것을 무언중에 깨달았다. 동시에 저것의 맘이 오죽하랴! 아 죽일 놈, 저놈이 내 생전에 벼락을 맞지 않으려나…… 하느님은 참 무심하다! 하고 그는 맘속으로 덕호를 눈앞에 그리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선비야! 너 왜 그렇게 덜 좋아하니……."
말끝에 간난 어머니는 목이 메어 머리를 숙이며 치맛귀를 당겨 눈물을 씻었다. 선비는 간난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니 참을 수 없이 울음이 응응 쓸어 나오는 것을 입술을 꼭 깨물며,
"어머니 간, 간…… 간난이가…… 어디 있수?"
"너두 그애 있는 데 가보련?"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