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일찍 나오지…… 안 나왔니?" |
| "왜? 나와서 할 일 있수?" |
| 의모는 생긋 웃었다. 그리고 다가앉으며, |
| "아까 아버지와 옥점의 아버지가 너를 기다렸다. 아마 결혼을 아주 결정하랴나 부더라…… 어떠냐 아주 재산이 많다지?" |
| 신철이는 멍하니 그의 의모의 나불거리는 입술만 바라보기에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다. |
| "이애 어서 오늘 저녁 결정하게 하여라…… 좀 좋으냐! 사람이 결점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 줄 아니? 아버지는 꼭 마음에 있어서 그러시는데…… 넌 그러니?" |
| 신철이는, |
| "내가 뭐라우?" |
| "아 글쎄 말이야…… 그럼 됐지, 어서 안방으로 건너가자. 이제 좀 있으면 옥점 아버지가 오실지 모르니……." |
| "뭐 오늘 안 갔수?" |
| "아이 그 일 때문에 못 갔지…… 이 밤차로 나려가랴다가 어데 네가 오더냐? 하루 종일 와서 기다렸다." |
| 신철이는 픽 웃었다. 그때, |
| "신철아!" |
| 하고 아버지가 부른다. 신철이는 무슨 생각을 잠깐 하고 나서 벌컥 일어났다. 그의 의모는 또다시, |
| "이애, 아버지 속 태우지 말구 얼른 대답해…… 응." |
| 신철이가 방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는 안경을 벗어 놓으며, |
| "어서 저녁 먹게 하지." |
| 아내를 바라보며 밥상 차리라는 뜻을 보였다. |
| "먹구 왔다우…… 어느 동무가 한턱을 내서." |
| "응……." |
| 그의 아버지는 신철의 숙인 머리를 바라보면서 한참이나 무슨 생각을 하더니, |
| "너 옥점이와의 결혼에 대해서 별 이의가 없을 터이지……?" |
| 신철이는 머리를 들며, |
| "싫습니다!" |
| 의외로 명확한 대답에 아버지의 얼굴은 순간으로 변하여진다. |
| "어째서?" |
| "별 깊은 이유는 없습니다." |
| 그는 이렇게 뚝 잘라 말하며 다시 머리를 숙였다. 신철의 아버지는 조금 다가앉았다. |
| "이유 없이 싫다?…… 그럼 네 맘으로 정해 둔 여자가 있느냐?" |
| 그 순간 신철이는 선비를 멀리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환영은 순간으로 희미하게 사라졌다. |
| "없습니다." |
| "그러면 이번에 정하고 말아! 무슨 잔말이냐." |
|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
| 그의 아버지는 평상시의 신철의 성격을 미루어서 자기의 말이라면 아무리 그의 비위에 다소 틀리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묵과할 것만 같아서 이렇게 명령하듯이 말하였다. 신철이는 아버지의 이러한 말을 듣고 적지 않게 놀랐다. 자기의 일생에 관한 중대사를 당자의 의사는 무시하고 저렇게까지 덤벼들게 상식이 없는 아버지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다소 권해 보다가 싫다면 말겠거니…… 하였던 것이다. |
| "이제 옥점의 아버지가 올 터이니, 너는 잔말 말고 쾌히 승낙해라…… 글쎄 그런 자리가 쉽겠느냐…… 생각해 봐라. 너는 지금 쓸데없는 공상에 들떠서 모르지마는 현실사회란 그렇지 않은 게야. 나두 한때는 공상에서 대가리만 커서 한동안 감옥생활까지 해보았다마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달달 꾀어 돌아간다. 그러니 시재라도 내가 저게서 나오게 되면 생활도 딱하지 않으냐?…… 네가 이 봄에 졸업하고 고문 시험이나 패스되면 걱정 없지만…… 그래도 뒤에서 후원이 상당해야 네가 출세하기도 힘이 들지 않는 게다…… 알아들었니? 이번 결혼만 되게 되면 네 앞길은 아주 유망하다. 그러니 아비는 너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러는 게야." |
| 그의 아버지는 음성을 낮추어 가지고 이렇게 간곡히 말하였다. 신철이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뜻을 모른 것은 아니나 이렇게 맞당해서 그의 간곡한 말을 들으니 아버지의 그 머리로써는 이렇게밖에 더 생각할 수가 없으리라…… 하였다. 지금 이 집의 유일한 후계자는 자기라고 아버지는 생각할 것이다. 동생인 영철이가 있으나 아직 그는 어렸고 더구나 영철이는 항상 앓아 가지고 있으니 장차 생존 여부조차도 믿지 못할 만큼이었다. 그렇다고 그는 아버지의 말대로 고문 시험을 패스하고 재산가 집 사위가 되고 또 이 집의 후계자로만 그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더구나 결혼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니 그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
| "아버지, 상대는 맘에 있거나 없거나 재산만 보고 결혼을 하랍니까." |
| 신철이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이렇게까지 노골로 대어들 줄은 몰랐다가 적이 놀랐다. |
| "음…… 상대가 맘에 없다? 그러면 왜 옥점의 집에 가서 근 석 달이나 같이 있었냐? 그리고 날마다 함께 몰려다니구?" |
| 신철이는 딱 쏘아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약간 피하였다. |
| "총각의 몸으로서 처녀의 집에 가서 하루 이틀도 아니요 두세 달씩이나 있었으니 누가 평범하게 본단 말이냐? 응 어데 말해 봐." |
| "……" |
| 신철이는 대답에 궁하여 가만히 있었다. |
| "그럼 네가 색마란 말이냐? 며칠 데리고 놀았으니 싫증이 난단 말이지……." |
| 이 말에는 신철이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항의 불길이 확 일어남을 깨달았다. |
| "아버지! 너무하십니다. 동무로 인정하는 이상 얼마든지 함께 다니고 함께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봉건적 선입관으로 남자와 여자는 함께만 있으면 서로 관계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데서 하시는 말씀이시지…… 어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때만 해두 아버지의 제자란 명칭하에서 간곡히 권하니 그저 하루 이틀 물린 것이 그렇게 되었지…… 절대로 옥점이를 배우자로 인정함은 아니었습니다." |
| "이애, 이애 듣기 싫다. 봉건적이니 무어니 해두 사내와 계집이 함께 몰려다니면 별수가 있니? 네가 이제 와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면 젤단 내가 낯을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너…… 네 책상에는 그게 다 뭐 하는 책들이냐? 아비가 담배 한 갑을 맘놓고 사먹지 못하고 애쓰는 줄은 모르고 쓸데없는 책만 사들여다 보구는 봉건적이니 무슨 적이니 하고 애비 대답만 기성스레 해? 이놈! 그런 버르장이를 얻다 대고 하니? 대학까지 다녔다는 놈이……." |
| 아들의 말 나오는 것을 들으니 그의 아버지는 이때까지 자식에게 취하여 왔던 희망이 졸지에 전부가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분이 머리털 끝까지 치미는 것을 깨달았다. |
| "고문 시험 칠 게나 보지…… 이놈! 별 책 다 사다 보더니……." |
| "그 책들이 나의 교과서외다…… 아버지는 고문 시험을 치라지요? 내 이때껏 노골로 말을 안 했지만 고문 시험은 쳐서 뭘 하는 겝니까!" |
| "이애, 잘한다…… 허허 이놈아! 무슨 개소리를 치고 앉았냐! 썩 나가지 못하겠냐?" |
| 그의 아버지는 달려들어 신철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의 앞가슴을 움켜쥐고 문밖으로 내몰았다. |
| "너와 나와 아무 상관 없다. 남이다. 우리집에 있을 턱이 없어! 나가!" |
| 신철의 의모는 남편을 붙들며, |
| "아이 망령이시네, 이거 왜 이러세요." |
| "나가! 난 네 아비 될 것 없고, 넌 또 내 아들 될 것이 없어." |
| 신철이는 허둥허둥 건넌방으로 건너와서 몇 권의 책과 몇 벌의 양복가지를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뛰어나왔다. 그의 의모는 안방에서 달려나왔다. |
| "이애, 너 미쳤구나. 오늘 네가 웬일이냐. 아버지가 다소 꾸지람을 하시기어던 너 이게 웬일이냐." |
| 신철의 외투 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신철의 아버지는 벼락치듯 문을 열고 나와서 아내를 끌고 들어간다. |
| "어서 나가! 나가지 못하는 것도 아주 비겁한 놈이야, 응 어서, 어서." |
| 자던 영철이가 문소리에 놀라 으아 하고 울며 나온다. 그의 아버지는 신철이가 이렇게 극단으로 나갈 줄까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더구나 나가란다고 신철이가 가방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니 앞이 아뜩하여지며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였다. |
| 신철이는 영철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문밖을 나섰다. 눈은 아까보다 더 퍼붓는다. 삽시간에 그의 옷은 눈에 허옇게 되었다. 그가 박석고개까지 왔을 때 뒤따르는 신발 소리가 흡사히 그의 의모의 신발 소리 같아 휙근 돌아보았다. 그는 어떤 낯선 부인이었다. 순간에 신철이는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끼는 동시에 새삼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님이 눈물겹게 떠올랐다. |
| 그는 천천히 걸으며 어디로 가나? 하며 생각해 보았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갈 곳이 없다. 그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종로까지 왔다. 종로도 이젠 적적한 감을 주었다. 간혹 사람들이 다니기는 하나 자기와 같이 갈 곳이 없어 헤매는 사람들 같지 않았다. 모두 활개를 치며 분주히 걸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레코드 소리만이 요란스럽게 들린다. |
| 그는 파고다공원 앞까지 와서 우뚝 섰다. 그리고, |
| "그 동무의 집에라도 가볼까?" |
| 이렇게 중얼거렸다. 전날 밤에 이 파고다공원에서 만났던 동무의 생각이 얼핏 났던 것이다. 그는 조선극장 앞을 지나 안국동 네거리로 들어섰다. 그때 비창한 어떤 결심이 그의 전신을 뜨겁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집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나마 자기 뒤를 따라 의모가 나오거니, 나오거니…… 생각했다가 이 안국동 네거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주 단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
| 의모가 그의 뒤를 따라와서 집으로 끈다 하더라도 이미 나온 신철이라 다시 집으로 들어가지는 않겠으나 그러나 웬일인지 자꾸 의모가 그의 뒤를 따르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
| 보성전문학교 앞을 지나칠 때, |
| "이게 누구요?" |
| 손을 내민다. 그는 놀라 자세히 보니 그가 찾아가던 동무였다. |
| "아 동무! 난 지금 동무를 찾아가던 길이오." |
| "나를?" |
|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끄러미 쳐다본다. 그는 얼굴빛이 희며 눈까풀이 엷다. 그리고 몸이 호리호리하면서도 키가 작다. 그러나 툭 솟은 그의 앞가슴과 올백으로 넘긴 그의 머리카락이 밤송이같이 까칠하게 일어선 것을 보아, 누구나 그의 담력을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를 대하면 다정해 보이기도 하고 또 쌀쌀해 보이기도 하였다. |
| 한참이나 훑어보던 동무는, |
| "웬일이오? 이 트렁크는 왜 밤중에 가지고 다니우?" |
| 신철이는 주저주저하다가, |
| "동무, 난 우리집에서 아주 나왔소이다." |
| "아주 나왔다?" |
| 동무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렇게 되풀이하며 신철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신철이는 묵묵히 동무를 바라보다가, |
| "왜, 아주 나온 것이 안되었소?" |
| "아니, 어떻게 하는 말인지…… 동무가 집에서 아주 나왔어요?" |
| "예……." |
| 신철이는 쓸쓸한 웃음을 웃었다. 동무는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았다. |
| "그런데 동무는 어델 가댔수?" |
| 한참 후에 신철이는 물었다. |
| "나요? 지금 저녁 얻어먹으러 떠났소, 허허." |
| 동무는 어깨의 눈을 툭툭 털었다. |
| "그럼 나와 가오." |
| 우동 한 그릇씩 먹은 그들은 빵 몇 개를 사가지고 동무의 집까지 왔다. |
| "자, 빵이오. 손님이오." |
| 신철의 앞을 서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무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육촉밖에 안 돼 보이는 컴컴한 전등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샤쓰를 벗어 들고 이 사냥을 하던 그들은 놀라 샤쓰를 입으며 눈이 둥그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무의 내처 주는 빵을 들고 뚝뚝 무질러 먹는다. |
| 신철이는 무슨 고리타분한 냄새를 후끈 맡으며 방으로 들어앉았다. 불은 언제 때봤는지? 안 때봤는지? 마치 얼음덩이 위에 앉는 것 같았다. |
| "이 동무는 유신철이라는 동무요." |
| 동무는 그들에게 소개하였다. 그들은 빵을 씹으며 서로 인사를 하고 픽 웃었다. 그들의 입 모습에는 일종의 비웃음이 떠돌았다. |
| "우리 셋이서 자취생활을 하였소. 이제부터 동무도 우리와 같이 고생을 하여야 하오, 하하." |
| 동무는 그 밤송이 머리카락을 흔들며 웃었다. 그리고 새카만 내의를 입고 추워서 웅크리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
| "오늘 굶지 않을 수가 나려니…… 별일이 다 있거든! 이 동무가 나를 찾아온단 말이어, 하하." |
| "그러니 내일 아침 먹을 것이 걱정이지……." |
| 얼굴 둥근 기호라는 사람이 말하였다. |
| "무슨 내일 일까지 걱정하고 있어…… 그래도 사람은 살아나가는 수가 있는지라……." |
| 동무는 신철이를 돌아보았다. 신철이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이 밤을 여기서 지낼 것이 난처하였다. 무엇보다 이 토굴 같은 방에서 자리도 없이, 더구나 살을 에어 내는 듯한 찬 방에서 지낼 것이 기가 막혔다. 그리고 내일 아침부터라도 신철의 가방이며 외투까지…… 그가 몸뚱이 하나를 내놓고는 다 전당포로 들어가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앞이 아뜩하였다. 그가 집에서…… 아니! 책상머리에서 생각하던 바와는 너무나 현실이 무서움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제 앞으로 닥쳐올 현실! 그것을 상상하여 볼 때, 그의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캄캄하였다. |
| 그 밤을 고스란히 새운 신철이는 지갑을 톡톡 털어 동무를 주었다. 그는 쌀과 나무를 사왔다. 그래서 한 사람은 쌀 일고 한 사람은 불 때고 이렇게 서둘러서 밥을 지어 놨다. |
| "이애, 이거 오늘은 상당하구나!" |
| 밤송이 머리에 재티가 뿌옇게 앉았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동무의 만족해하는 모양을 바라보며 오냐 나도 견디자! 이렇게 굳게 결심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