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21

"글쎄……."
신철이는 빙긋이 웃으며 걸었다. 인호도 따랐다.
"요새 카페 따리아에는 예쁜 계집애가 하나 시굴서 왔는데…… 가보지 않으려나?"
"예쁜 계집애가 시굴서……."
신철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선비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그때 강하게 궐련내가 끼치므로 신철이는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이 자가 늘 피우는 시키시마인 것을 신철이는 느꼈다.
"자네 어델 가? 똑바로 말해."
"나 우리 아버지 심부름 갔댔네."
인호를 떨어치려고 이렇게 꾸며 대고 보니 기실은 아버지의 심부름에서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선비가 왔을까? 그는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심부름?…… 에이 이 사람아! 젊은 사람이 그 뭐란 말인가. 자네는 너무 고린내가 나서 틀렸데…… 허허허허."
"고린내가 나, 허허."
신철이는 코 안이 싸하게 찔리도록 시키시마내를 맡으며, 저편으로 지나가는 야키구리(군밤) 장수를 바라보았다.
"자 후일 다시 만나세."
인호는 악수를 건네고 나서 절반도 타지 않은 시키시마를 휙 집어뿌렸다. 길바닥에서 불티가 발갛게 일어난다.
용산행 전차를 타려고 뛰어가는 인호를 바라보며 신철이는 저 자가 또 카페로 가는구나…… 하였다. 그리고 무의식간에 예쁜 계집애, 시굴서…… 하고 중얼거렸다.
그가 옥점의 하숙까지 와서는 곧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뛰노는 가슴을 진정하며 기침을 하였다. 기침소리에 옥점의 방에서는 누가 나오는 모양이다.
"누구요?"
방문을 빠끔하고 내다보는 것은 옥점이었다. 신철이는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
"나외다."
"아니 신철 씨! 우리 아버지 올라오신 것 보셨에요? 이제 댁에 가셨는데요."
"아버지가 오셨에요? 난 못 뵈었습니다."
"아니 그럼 길이 어긋났구먼요…… 어서 들어오세요."
신철이는 방 안에 선비가 앉았는가 하여 얼굴이 화끈 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구두를 벗고 방 안을 얼른 살펴보았다. 그 순간 그는 이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았다.
"어서 들어오세요."
머뭇머뭇하고 섰던 신철이는 비로소 방 안에서 옥점을 발견한 듯하였다. 그는 그만 돌아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신철이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는 옥점이조차 원망스럽게 보였다.
신철이는 안 들어가는 발을 억지로 몰아넣었다. 그때 가벼운 약내가 방 안에 떠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옥점이가 누웠다 일어난 듯한 아랫목에 깔아 놓은 자리를 보았다. 옥점이는 면경 앞으로 가서 얼굴을 비추어 보며,
"난 세수도 안 했어요. 아이 숭해라."
머리를 매만지며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그때 신철이는 옥점 어머니가 선비를 나무랄 때 찡그리던 얼굴임을 얼핏 발견하였다. 그리고 선비는 안 데리고 온 모양이지…… 하고,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난 입때 앓았어요."
"어데를?"
옥점이는 얼굴이 붉어지며,
"그날 밤부터……."
그들의 머리에는 전날 밤 일이 휙 떠오른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지금 덕호가 그의 아버지와 결혼 문제를 걸어 놓고 이야기할 것을 얼핏 깨달았다.
"아버지 혼자 오셨나요? 왜 옥점 씨 어머니도 같이 오실 것이지요."
신철이는 선비가 안 왔음을 뻔히 보면서도, 그래도 이렇게까지 묻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글쎄요…… 난 어머니를 오시라고 했더니만, 아버지 혼자 오셨구먼요."
신철이는 어떤 실망이 저 빛나는 전등을 싸고 도는 것을 느꼈다.
"난 도무지 안 오실 줄 알았어요. 이전 다시는 신철 씨를 뵈옵지 못하고 죽는 줄…… 알았지요."
옥점이는 머리를 숙이며 울먹울먹한다. 신철이는 그의 발그레한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보니 그도 따라서 속이 언짢아졌다.
그리고 자기도 시원하게 울어 봤으면…… 하였다. 동시에 자기가 선비를 사랑하는 셈인가? 하며…… 아까 아버지가 맘에 드는 여자가 있느냐고 묻던 것이, 또다시 들리는 듯하였다. 옥점이는 깜박 잊었던 것이 생각난 듯이 일어나더니, 고리를 열고 사과, 배, 감, 밤, 떡…… 이런 것들을 차례로 꺼내놓았다.
"잡수세요…… 아버지가 지금 집에도 가져갔어요. 이게 다 아버지가 가져온 게야요…… 호호."
눈물 괸 눈에 웃음을 띠었다. 신철이는 멍하니 바라보며,
"자그마한 잔채 차림만이나 합니다그려."
"아이 잔채에 이까짓 것이 뭐겠어요."
옥점이는 신철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때 어서 우리도 결정하고 결혼식을 굉장히 합시다 하는 말이 거의 입 밖에까지 나오는 것을 참아 버렸다.
"어느 것이나…… 잡수시고 싶은 것으로 택하세요. 요거? 요거? 요거요?"
옥점은 손가락을 내밀어 꼭꼭 짚어 가며 물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신철이는 먹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속이 뒤숭숭한 것이 마치 자기가 항상 가지고 있던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같고 누구한테 몹시 속았을 때의 기분 같기도 하였다.
"그럼 이것을 잡수시겠어요?"
책상에서 전날 밤 먹던 초콜릿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중 한 개를 정성스레 벗겨서,
"자 입 벌리고 받으세요. 내 여기서 팡개칠 터이니."
옥점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신철이를 보았다. 신철이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다가 웃어 보였다.
"자 이리 주세요."
신철이는 손을 쑥 내밀었다. 옥점이는 원망스러운 듯이 힐끗 쳐다보고 나서 초콜릿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귀밑까지 빨개진다. 신철이는 초콜릿곽을 당기어 한 개 꺼내 벗기는 체하다가 밖에서 신발 소리가 나므로 그만 놓고 말았다.
"아버진가 몰라……."
이렇게 중얼거릴 때 문이 열리며 덕호가 들어온다. 신철이는 성큼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아, 이 사람 여기 왔구먼…… 난 이제 댁에 갔댔지…… 그새 공부나 잘 했는가?"
덕호는 외투를 벗어 놓았다. 그리고 딸을 흘금 돌아보고 나서 다시 신철이를 보며 눈가로 가는 주름을 잡히고 웃는다.
"글쎄, 저 애가 아프다고 허기에 만사를 전폐하고 올라왔구먼…… 이애 어서 눠."
아까 같아서는 방금 죽는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앉아 있다. 덕호는 한편으로 딸의 병이 중하지 않은 것이 맘이 놓이나 반면에 신철이와의 결혼을 어떻게 하든지 하루라도 속히 결정하여야겠다는 것이 염려가 되었다.
"그래 자네 이번 졸업이라지?"
"네."
"자…… 이거 변변치는 않지마는 좀 자셔 보지…… 졸업하구는 또 무슨 시험을 친다구……?"
신철이는 자기 아버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구나…… 직각하자 불쾌하였다.
"글쎄요…… 아직 분명치 않습니다."
"음…… 어쨌든 성공만 바라네…… 난 급하니 내일 차로 그만 내려가겠네. 사무 보던 것을 그냥 버리고 와서 맘이 놓여야지……."
그때 신철이는 전날 옥점에게서 들은 말이 얼핏 생각났다. 그리고 이 자가 면장이 되었다더니 저렇게 값비싼 양복까지 입었구나…… 하였다.
"그런데 넌 어떻게 하겠느냐? 보아하니 병은 그리 되지 않은 모양인데…… 나하고 내려가련? 여기서 그렁저렁 치료하겠느냐? 바로 말해라."
옥점이는 눈을 굴려 생각해 보더니,
"우리 시굴 가시지 않겠어요?"
신철이를 바라본다. 신철이는 선비를 생각하며, 내려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부쩍 든다. 그러나 그 순간 자기가 맡은 사명을 깨달으며, 동시에 이번에 내려가면 결혼하지 않고는 견디어 배기지 못할 것을 알았다.
"저야 뭘 가겠습니까, 그때도 우연히 몽금포 가는 길에 옥점 씨를 만났으니, 가서 폐를 끼쳤습니다마는……."
덕호는 신철의 말을 일언일구 새겨들으니, 다소 불안도 없지 않아 들게 되었다. 그때 자기들은 신철이와 옥점이 새에 의심 없이 내약이 있는 것으로 알고 한 방에서 뒹구는 것을 묵과하였는데 지금 자기 앞에서 저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발을 빼기 위한 변명 같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신철의 아버지를 만나 본 결과 혼인은 다 된 혼인 같았다. 그는 스스로 안심하고,
"지금이야 갈 형편도 되지 않겠지만…… 봄에 졸업이나 하고 날이나 따뜻해지면…… 그때는 우리 저년의 몸도 쾌차해질 터이니…… 함께 다녀가게나…… 우리 집사람은 저년보다도 자네를 더 보고 싶다고 야단일세……."
"천만에……."
신철이는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눈을 내리뜨며 무릎 위에 그의 큰 손을 올려놓았다. 옥점이는 그의 남자답고도 의젓한 얼굴과 그 손! 아버지만 아니면 덥석 쥐어 보고 싶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덕호는 물끄러미 신철이를 바라보며 어딘지 모르게 신철이가 옥점이에게 짝이 좀 지나치는 것 같았다. 사윗감인즉은 훌륭한데…… 하며 신철이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아까 옥점의 말을 들어 보건대 신철이가 옥점이를 사랑은 하면서도 너무 점잖고 수줍어서 이때까지 노골로 드러내지를 않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마주앉고 보니 그럴 사나이 같지도 않았다. 보다도 신철이가 옥점이를 눌러 보는 데서 이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둘 새에 벌써 육적 관계까지 되어 가지고 지금은 싫증이 나니깐 그러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두 문제 중에 어느 것 하나가 꼭 맞으리라…… 하니 더욱 불안이 일어나며 따라서 이번에 결혼 문제도 정식으로 낙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서울 올러오신 바에는 좀 노시다가 가시지요."
"글쎄 맘인즉은 자네 부친님과 함께 며칠이든지 놀고 싶네마는…… 어디 사정이 그런가…… 내가 없으면 면의 일이 다 틀리네그리."
신철이는 아까 인호에게서 들은 말이 얼핏 생각난다. "자네는 고린내가 나서 틀렸데." 신철이는 속으로 웃으며 일어났다.
"또다시 와서 뵈겠습니다……."
식당에서 가케우동 한 그릇을 먹은 신철이는 여전히 도서실로 들어왔다. 도서실 안을 휘 둘러보니, 식당으로 가기 전보다 인수가 좀 줄어진 듯하였다. 나도 어디로나 가볼까 하며, 포켓에서 시계를 꺼내 보니 여섯시 십 분…… 그는 의자에 걸어앉으며 엉덩이가 아픈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하루 종일 이 도서실에 앉아서 강의 시간에도 강당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바르게 해가지고 도로 앉았다. 그리고 가방 속에 집어넣어 두었던 책을 꺼내어 펴들었다.
책을 펴드니 아까와 같이 또다시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리가 띵하였다. 아침 학교에 올 때 그의 아버지가, 오늘은 좀 일찍 오너라…… 하던 말이 또다시 가슴에 쿡 맞찔린다. 필연 오늘은 결정적으로 그의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어젯밤 덕호와 아버지는 단단한 의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 하나를 두고, 여럿이 강박하다시피 대답을 요구할 것 같았다.
어쩐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팔로 머리를 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옥점이가 재산가 집 외동딸임에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 뻔한 일이다. 돈…… 돈! 그 돈 때문에 자기 아버지는 환장이 되어 아들의 일생을 망치려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신철이는 눈을 꾹 감았다. 그의 머리에는 옥점이가 보인다. 그리고 선비가 떠오른다. 내가 선비를 사랑한다 하고 선뜻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따라서 선비와 결혼까지 하기도 그의 마음이 허락지를 않았다. 그것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쩐지 그렇게 생각이 된다. 그러면 왜 내가 선비를 잊지 못하는가? 그것도 역시 꼭 집어 댈 수 없었다. 그러나 최대 원인은, 선비가 자기가 좋아하는 타입의 미를 구비한 것이며 그리고 그의 근실성! 그것뿐이다. 그 위에 두 달 동안이나 한 집에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한 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나게 하는 것 같았다.
만일에 선비도 옥점이와 같이 그렇게 여지없이 놀았다면, 역시 지금 자기가 옥점이를 대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감정으로 선비를 대할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그가 이때까지 맞당해 본 여성이 그리 적은 수가 아니나 그렇게 꼭 맘에 드는 여성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나마 억지로 골라 내라면 역시 선비일 것이다.
처음부터 옥점에 대하여는 그렇게 생각하였지마는 옥점이야말로 여행중에나 잠시 사귀어 심심풀이나 할 여성에서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여자와 결혼을 하라……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때까지의 신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자기 아버지 역시 박봉을 받아 가지고 너무 생활에 쪼들려 이젠 돈이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덤벼들게 된 것 같았다.
오늘 저녁에 집에 가면 아버지는 늦게 왔다고 불호령이 내릴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결혼 문제를 꺼내 놓을 터이지…… 흥 나 싫은 것이야 어떻게 한담…… 이렇게 생각하며 덕호가 오늘 내려갔는가? 아직 있는가? 그는 다시 덕호와 마주앉기도 싫었다. 그러나 내려가기 전에 덕호를 만나 선비를 꼭 오는 봄엘랑 올려 보내도록 꾀었으면……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옥점이와의 결혼을 승낙하기 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안 되면 말지…… 내…… 일개 여자로 인하여 머리를 썩일 내가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을 하였으나…… 그러나 선비만은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고 싶었다.
옥점이와의 결혼을 그가 거절한다면 이 선비와의 앞길도 막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섭섭한 일이다. 그래서 이 여러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선비를 서울로 올려 오게 하려던 것이 그만 실패되고 말았다. 이 겨울 지나 봄만 되어도 선비를 어디로 출가시키고 말는지도 모르지…… 그는 무의식간에 책을 덮어 놓고 멍하니 전등불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전등? 검은 사마귀?…… 그때 중얼중얼하는 소리에 신철이는 휙근 돌아보았다. 병식이가 육법전서를 가슴에 붙안고 눈을 찌그려 감았다. 그리고는 일백삼십일조…… 일백삼십일조…… 일백삼십일조…… 일백삼십일조…… 응 일백삼십일조…… 하고 외우고 있다. 그의 얼굴은 폐병 초기를 지난 것 같고 그의 독특한 이마는 전등불에 비치어 한층더 툭 솟아 나온 듯하였다. 그는 생각지 않은 웃음이 픽 나왔다. 지금 저들은 사무관이나 판검사를 머리에 그리며 저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불시에 이 도서실이 싫어졌다. 그래서 그는 가방을 들고 벌컥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신철이는 푸떡푸떡 떨어지는 눈송이를 얼굴에 느꼈다. 그는 눈이 오는가…… 하며 바라보았다. 가로등에 비치어 떨어지는 눈송이는 마치 여름날 전등불을 싸고 날아드는 하루살이떼 같았다. 그가 어정어정 걸어 정문까지 나왔을 때 도서실에서 흘러나오는 폐실(閉室) 종이 뗑겅뗑겅 울렸다. 그는 벌써 아홉시로구나!…… 하며 휙근 돌아보았다. 컴컴한 공간을 뚫고 시커멓게 솟은 저 건물, 저것이 조선의 최고 학부다! 그는 우뚝 섰다. 그리고 자기가 삼 년 동안 하루같이 저 안에서 배운 것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는 커다란 퀘스천 마크(?)가 눈이 캄캄해지도록 그의 앞에 가로질리는 것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도서실에서 흩어져 나오는 학생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그는 다시 걸었다. 그가 그의 집까지 왔을 때 아버지의 으흠 하고 기침하는 소리가 전날같이 무심히 들리지를 않았다.
"신철이냐?"
신철이가 그의 방문을 열 때, 아버지의 이러한 말이 그의 뒷덜미를 후려치는 듯이 높이 나왔다.
"네."
"왜 일찍 오라니까 늦게 오느냐? 어서 저녁 먹게 하여라."
신철이는 잠잠히 들어와서 가방을 책상 위에 놓고 책들을 가방 속에서 끌어내어 차례로 혼다테(책꽂이)에 꽂아 놓았다. 맘은 부절히 분주하지마는 이렇게 착착 정리하지 않고는 맘에 걸리어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책상 위를 정돈하고 걸레로 훔쳐 낸 후에 벽을 기대어 아버지가 또 뭐라고 하는가? 하며 귀를 기울였다.
신발 소리가 콩콩 나더니 그의 의모가 방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와 저녁 먹어."
"난 먹었수."
"어데서?"
"저 누가…… 동무가 한턱 내서……."
의모는 말끄러미 그의 눈치를 채더니 방 안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