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설이던 신철이는 자기도 모르게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신철이는 과오만 범하지 않았으면…… 된다! 하는 결심을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책들이 되는 대로 쌓여 있으며 방바닥에는 사과껍질이 벌여 있었다. 그리고 이불도 둥글둥글 말아 구석에 밀어 둔 것을 보아 누웠다가 그의 집에 왔던 것 같았다. 옥점이는 돌아가며 사과껍질을 모아 놓으며 방석을 찾아 밀어 놓았다. |
| "뒤숭숭허지요…… 호호." |
| 이렇게 신철이가 올 줄 알았더라면 깨끗이 소제를 해둘 것을…… 하는 후회가 일며 동시에 신철이가 자기를 게으른 여자라고 볼 것이 곧 두려웠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이런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았다. |
| 신철이는 방석을 깔고 앉으며 돌아가며 치우는 옥점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전등갓에 뿌옇게 들어앉은 먼지며 되는 대로 벌여 있는 화장품들이며 구석구석에 밀어 놓은 양말을 보았다. |
| "편지 보시겠어요." |
| 옥점이는 이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신철의 눈을 돌리기 위하여 책상 위 편지함에서 푸른 봉투를 꺼내 그를 주었다. 신철이는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내 거듭 읽은 후에 도로 돌렸다. 옥점이는 벌써 그의 앞에 마주앉아서 배를 깎는다. 첫눈에 그 배 한 개에 사오 전은 주었으리라고 직각되었다. 옥점의 뾰족한 손끝이 깎인 배에 발가우리하게 보였다. 그때 그는 문득 바자 밖으로 넘어오던 그 미운 손! 그리고 호박을 든 그 손이 얼핏 떠오른다. 그게 누구의 손일까? 다시 한번 그는 생각하였다. 옥점이는 배를 쪼개 그 중 한쪽을 칼끝에 찍어 주었다. 신철이는 받아 들었다. 옥점이는 책상 서랍에서 초콜릿곽을 내놓았다. |
| "이것도 벗기셔요…… 뭐? 잡수시고 싶어요…… 주인 깨워서 사오게 할 테니?" |
| 갸웃하여 들여다보는 옥점의 눈은 정이 뚝뚝 듣는 듯하였다. |
| "아 이게면 좋지유, 여기서 더 좋을 것이 어데 있어요." |
| "그래두…… 뜨뜻한 것으로 뭘 좀……." |
| "그만두셔요. 저는 이것이면 만족합니다." |
| "숯불이라도 피워 오랄까요, 방이 춥지?" |
| "괜찮아유, 좋습니다." |
| 신철이는 배를 먹고 나서, 이번에는 초콜릿을 벗기었다. 옥점이는 어석어석 배를 씹으며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
| "집의 어머님 퍽두 좋은 어룬야요." |
| "예…… 그렇습니다." |
| 옥점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생끗 웃는다. |
| "신철 씨 어데 애인 있지요?" |
| "글쎄요." |
| "어머니가 있다고 그러시던데요." |
| "어머니가? 글쎄 모르겠습니다." |
| 옥점이는 호호 웃으며, |
| "신철 씨는 왜 늘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
| "옥점 씨를 싫어한다…… 그 못 알아들을 말씀인데요…… 허허." |
| 신철이는 웃음이 나왔다. 옥점이가 자기의 맘을 알아보려는 것이 우스웠던 것이다. 그리고 공연히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어서 가서 푹 잠을 자야겠다…… 하였다. 신철이는 수건을 내어 입을 씻으며 일어났다. |
| "잘 먹고 가겠습니다." |
| "아이 왜 일어나세요." |
| 옥점이는 놀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외투 자락을 힘껏 잡고 늘어진다. 오늘은 좌우간 끝을 내리라고 결심하는 빛을 신철이도 짐작하였다. |
| "내일 또 와요. 가서 자야 내일 학교에 가겠습니다." |
| "조금만 더…… 삼십 분…… 아니 이십 분만." |
| "글쎄, 내일 또 온다니까요." |
| "싫어요, 내일은 내일이구요." |
| 신철이는 난처하여 조금 망설였다. 옥점이는 외투 자락을 잡고 일어나며 신철이를 아랫목으로 밀었다. |
| "오늘 못 가요!" |
| 옥점의 숨결은 색색하였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졌다. 신철이는 이것이 우스워서 픽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제는 대담하게 달려붙기 시작하누나…… 하고 생각하였다. |
| "왜 웃어요? 흥! 내가 우습지요. 다 알아요! 왜 나를 놀립니까?" |
| 시골집에서 그의 허리를 힘껏 껴안아 주던 때를 회상하며 옥점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철이는 멍하니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
| 며칠 후에 신철이가 학교로부터 집에 돌아왔을 때 저녁상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얼굴에 희색을 띠며, |
| "요새도 도서실에서 그렇게 늦게 돌아오냐?" |
| 전부터 신철에게 고문 시험 준비를 하라고 말하였으므로 신철이가 시험 준비를 열심으로 하거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그의 동생인 영철이를 안으며, |
| "네." |
| "나 미루꾸 주." |
| 영철이가 그의 턱밑에서 말끄러미 쳐다본다. 신철이는 포켓을 뒤져 보았다. |
| "오늘은 잊고 못 사왔구나. 내일 사다 줄게…… 응." |
| "또 형두 거짓말하나? 아까아까 사온다구 했지." |
| "아이 저애는 하루 종일 그것만 외구 앉았어…… 내 원……." |
| 그의 어머니는 귀여운 듯이 영철이를 바라본다. 신철이는 영철이를 들여다보았다. |
| "내일은 꼭 사다 주마 응……." |
| 영철이는 그의 까만 눈을 똑바로 떴다. 그때 어멈이 들고 들어오는 화로를 신철의 의모는 받아서 신철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신철이는 양볼 위에 솜털이 까칠하게 일어났다. |
| "이애 밥 마자 먹어……." |
| 영철이는 그의 어머니 곁으로 와서 안긴다. 그의 아버지는 손을 내밀었다. |
| "영철아, 이리 와." |
| "그만두…… 어서 이 국에 밥 멕이게……." |
| 그의 어머니는 영철이를 굽어보았다. 그리고 새물새물 웃어 보인다, 그의 뾰족한 덧니를 내놓고. 신철이는 아버지가 술을 들지 않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만 밥상 곁으로 다가앉았다. 강한 양념내가 훅 끼친다. |
| "어서 미루꾸 사다 줘야지……." |
| 영철이가 볼이 퉁퉁 부어서 신철이를 바라보았다. |
| "그래 오늘은 잊었지만 내일은 꼭 사와, 응. 어서 밥 머……." |
| "아이 넌 밤낮 미루꾸냐? 어서 밥 먹어. 호호 참 내……." |
| 그들은 영철의 부은 볼을 바라보며 웃었다. 신철이가 밥을 다 먹고 일어섰다. |
| "이애 거기 좀 앉았거라." |
| 아버지는 숭늉을 마시며 이렇게 말하였다. 신철이는 무슨 말을 하려누? 하는 생각을 하며 그의 의모의 얼굴부터 살펴보았다. 의모도 신철이를 바라보며 웃음을 띠었다. 그의 아버지는 밥상을 물리며, |
| "너 이전 장가도 가야지……." |
| 신철이를 똑바로 쳐다본다. 신철이는 가슴이 선뜻하며 가벼운 부끄러움이 눈가를 사르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머리를 푹 숙였다. |
| "이전 네 나이 스물다섯…… 또 며칠이 안 가서 학업도 마칠 터이니…… 그만하면 장가도 가야 허지…… 혹시 네 맘에 드는 여자가 있느냐?" |
| 신철이는 어디서 혼인 자처가 있어났는가? 하였다. |
| "아직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
| 그 순간 신철의 머리에는 국사발을 든 선비의 모양이 휙 떠오른다. 따라서 용연 동네가 시재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
| 그의 아버지는 얼굴에 만족한 빛을 띠었다. 그리고 전날 아내에게서 들었던 말이 얼핏 생각힌다. "옥점이가 우리 신철에게 짝사랑을 하나 봐! 호호." 그때 그는 자기 아들이 공부에만 열중한다는 것을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느꼈던 것이다. |
| "그럼……." |
| 그의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
| "여기 늘 오는 옥점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
| 그 순간 신철이는 전날 밤에 악을 쓰고 매어달리는 옥점이를 사정없이 물리치고 나오던 때를 다시금 되풀이하며 양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그의 아버지는 궐련을 피워 물었다. |
| "뭐, 그애가 외딸로 자라서 좀 와가마마 갓데(제멋대로 굴다)한 곳이 있니라……마는 내 보기에는 그애의 인간됨인즉은 괜찮다고 보았다, 어떠냐?" |
| 신철이는 아버지가 이렇게 옥점이를 변호하는 이면을, 곁에 놓인 화로의 불을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때까지 결백하게 믿었던 아버지에 대한 신념이 화롯가에 수북이 쌓인 시커먼 숯덩이와 같이 변해 감을, 그는 슬픈 듯이 바라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 자리에 더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
| "아버지…… 아직 저는 장가가고 싶지 않습니다." |
| 신철이는 벌컥 일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얼굴에 위엄을 띠었다. |
| "가만히 앉았어…… 옥점의 아버지가 올라오신 것 아느냐?" |
| 신철이는 발길을 멈추고, |
| "모릅니다. 언제 올라왔나요." |
| "그래 오늘 낮차에 왔다구 하면서 아까 집에 오셨다가 가셨다. 좀 가보아라. 온 여름내 폐를 끼치고도 서울 올라오셨는데 가도 안 보면 되겠니…… 가봐." |
| 신철이는 비로소 덕호와 아버지 새에 밀의가 있었음을 깨닫고 더욱 놀랐다. 동시에 덕호가 올라오면서 혹시 선비를 데리고 오지 않았나? 하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였다. |
| "네, 가보겠습니다." |
| 신철이는 이렇게 대답을 얼른 하고 밖으로 나왔다. |
| "형 나 미루꾸 사다 주 응." |
| 영철이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마루에 불빛이 가로질리며 영철의 머리 그림자가 동그랗게 떨어진다. 신철이는 구두를 신으며, |
| "오냐." |
| "응 꼭 사우." |
| "뭘 좀 사가지고 가게 허지." |
|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신철이는 선비가 꼭 온 것을 알면 아무것이라도 사가지고 갈 맘이 들었다. 그러나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르는 지금에 꼭 사가지고 가고 싶은 맘이 없어서 포켓에 손을 넣어 지갑을 만지면서 밖으로 나왔다. |
| 저편으로부터 버스가 뻘건 눈 퍼런 눈을 번쩍이면서 우르르 달려온다. 그리고 늘 보는 버스걸의 낯익은 얼굴이 차츰 가까워진다. 그는 저 버스나 타고 갈까 하고 몇 발걸음 옮기다가 에라 천천히 걸어가지…… 하며 버스를 등지고 돌아서 걸었다. |
| 이번에는 택시와 버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리로 달아온다. 신철이는 휘발유내를 강하게 느끼며 길 옆에 비껴섰다. 그리고 행여나 저 속에 옥점이, 선비, 덕호가 있지 않은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그 속에 앉은 젊은 여자를 볼 때마다 들곤 하였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선비, 옥점이 두 여자를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 그의 아버지가 하던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가 지금 결혼을 해야 좋을 것이냐? 안 해야 될 것이냐를 이론으로 따져 보았다. 그는 이때까지 결혼 문제 같은 것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
| 옥점의 하숙이 가까워질수록 이 여러 문제는 뒤범벅이 되어 횅횅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선비가 이번에 올라왔다면 어쩔까? 하고 그는 우뚝 섰다. 그가 선비를 서울로 올라오게 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하여 옥점이를 꾀었으나 기실 선비가 지금 올라왔다고 가정하고 나니 뒷문제 해결할 것이 난처하였다. |
| "신철 군 아닌가?" |
|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신철이는 놀라 돌아보았다. 그는 그와 한 학급에 있는 인호였다. 그는 사각모를 팽팽히 눌러 쓰고 대모테 안경을 썼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궐련을 피워 물었다. |
| "어데 가나?" |
| "나? 누가 좀 오라구 해서." |
| "누가? 아마 러브한테 가는 모양이지……." |
| 그의 안경이 뻔쩍 빛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