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셔요!" |
| 점점 다가쥐는 덕호의 손을 뿌리치며 선비는 으악 쓸어 나오는 울음을 억제하였다. 그리고 벌컥 일어나렸을 때, 누런 살이 투덕투덕 찐, 늙은 호박통 같은 덕호의 볼이 선비의 볼 위에 힘껏 부비쳤다. |
| "선비야! 너 내 말 들으면 공부 아니라 그 우엣것도 네가 하고 싶다는 것은 다 시켜 줄게! 응! 이년." |
| 선비는 얼굴을 휙 돌렸다. |
| "아부지! 이것 노세요." |
| "허허허 허…… 아부지! 아부지! 이 귀여운 년아, 아부지라면 왜 그렇게 무서워하누, 응 이년 같으니……." |
| 덕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진저리가 나도록 선비를 꽉 껴안았다. 선비는 덕호가 취했어도 너무 취한 듯하였다. |
| "아부지 취하셨에요." |
| "응 그래 이년, 나 취했다." |
| 덕호는 씩씩하며 그의 입에 닥치는 대로 모조리 빨아 넘긴다. 선비는 덕호가 왜 이러는지? 아뜩하고 얼핏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다리팔을 함부로 놀렸다. 덕호는 생선과 같이 그렇게 매끄럽게 뛰노는 선비를 통째 훌떡 들이마셔도 비린내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씨아틀을 발길로 차서 밀어 놓고 선비를 안고 넘어졌다. 그리고 치마폭을 잡아당겼다. |
| "아부지, 아부지, 나 잘못했수! 잘못했수." |
| 무의식간에 선비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흑흑 느껴 울었다. 그리고 덕호를 힘껏 밀었다. |
| "이년 가만히 안 있겠니? 나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이년 나가라! 당장 나가!" |
| 덕호는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방금 죽일 듯이 위협을 한다. 전날에 믿고 또 의지했던 덕호! 그리고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같이 그의 장래를 돌보아 주리라고 생각했던 이 덕호가…… 불과 한 시간이 지나지 못해서 이렇게 무서운 덕호로 변할 줄이야 꿈밖에나 상상했으랴! 선비는 그 무서운 덕호를 보지 않으려고 머리를 돌리며 눈을 감아 버렸다. |
| 밤늦게 돌아온 신철이는 대문을 가만히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방문 앞까지 왔을 때 소곤소곤하는 소리에 그는 멈칫 서서 들었다. |
| "……저야 뭐…… 신철 씨가 요새 애인이 있는 모양이어요." |
| 옥점의 음성이다. |
| "아이 그애가 애인이 뭐유." |
| 그의 의모의 변명하는 소리다. 그는 으흠 하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에 안방을 흘금 바라보고 나서 구두를 벗고 방문을 열었다. 그들은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 순간 신철이는 옥점이가 그의 의모와 흡사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
| "아니, 왜 그리 신발 소리가 없이 다니냐?" |
| 신철이는 빙긋이 웃으며 옥점이를 보았다. 그리고 외투를 벽 위에 걸었다. |
| "오셨수……." |
| "어데를 그렇게 다니세요? 아마……." |
| 중도에 말을 끊으며 옥점이는 생긋 웃었다. 그의 의모도 따라 웃었다. |
| "옥점이는 초저녁에 와서 입때 너를 기다렸다." |
| "아 그랬수. 실례했소이다." |
| 신철이는 선뜻한 방에 주저앉았다. |
| "방두 어지간히 차다." |
| 그의 의모가 밀어 놓는 방석을 그는 깔고 앉았다. 그의 의모는 해말쑥한 얼굴에 동그란 눈을 대굴대굴 굴리며 신철이와 옥점이를 번갈아 본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덧니가 입술 새로 뾰죽 내밀었다. 옥점이는 신철의 빨개진 코끝을 보았다. |
| "저 집에서 편지 왔는데요." |
| "편지……." |
| 신철이는 얼핏 선비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선비를 올려보내겠다고 편지를 하였나? 하는 호기심이 당기었다. |
| "아버지 안녕하시다고 하셨수?" |
| "네…… 그런데 저 선비는 말이우, 오는 봄에 보내겠다구 했구려." |
| 신철이는 다소 섭섭함을 느끼면서, |
| "좋지요. 더구나 그때 가야 입학하기도 좋지요." |
| 그의 의모는 일어난다. |
| "난 이전 돌아가우. 놀다가 가시우에." |
| 옥점이는 냉큼 일어났다. |
| "안녕히 들어가세요." |
| 그의 의모가 뜰 밖을 나갔을 때 옥점이는 한숨을 호 쉬었다. 그리고 멍하니 전등불을 바라보았다. 멀리 택시 소리가 우르르 난다. 그리고 뿡뿡 하는 경적 소리가 가는 철사의 울림과 같이 귓가를 스친다. |
| "요새 어델 그리 다니세요? 아마 애인이 있지요." |
| 신철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신철이는 양복 바지 갈래를 툭툭 털며 입으로 후 불었다. |
| "글쎄요…… 제게 말입니까?" |
| "아이,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딴생각만 하신다니…… 누굴 생각허세요?" |
| "내가요? 누굴 생각할까?" |
| 머리를 돌려 생각해 보는 모양을 보였다. |
| "참 죽겠네…… 어째서 내 말은 말 같지 않아요? 왜 그러세요, 밤낮……." |
| 유리알같이 빛나는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신철이를 보려고 밤마다 이 집 주위를 돌아서 가던 생각이 얼핏 떠오르며, 저렇게 성의 없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가 그랬나 하는 후회가 일어난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
| "난 가겠어요!" |
| "가겠어요?" |
| 신철이는 일어나는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
| "혼자 가시겠수?" |
| "가지, 못 갈 게 뭐야요!" |
| 장갑을 끼며 목도리를 하였다. 그리고 목도리에 입김이 닿아 후끈하고 그의 볼을 적실 때 그는 울음이 북받치는 것을 깨달았다. |
| "자, 좀더 앉아 계시다가 가시유. 그러면 내가 집까지 바래다 올리지유." |
| 그는 옥점이가 일어나니 방 안이 쓸쓸해지는 것 같았다. |
| "정말?" |
| 바래다 주겠다는 말에 그의 가슴에 엉기었던 어떤 뭉치가 절반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
| "참말이지유." |
| 옥점이는 잠깐 무슨 생각을 하더니, |
| "선생님이 날 보고 나무라시겠어요." |
| 하며 흘금 문 편을 바라보다가 다시 신철이를 보았다. |
| "우리집 가요. 그러면 내 뭘 사다 줄게." |
| 머리를 갸웃하고 어린애같이 조른다. |
| 신철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외투를 입으며 밖으로 나왔다. |
| 문밖을 나선 그들은 가지런히 걸었다. 거리에는 버스도 택시도 보이지 않고 오직 골목을 지키고 섰는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빛날 뿐이다. 그들은 긴 그림자를 땅 위에 던지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겨울날 산뜻한 바람이 그들의 옷가를 싸늘하게 스친다. 한참이나 말없이 걷던 옥점이는 가로등을 흘금 쳐다보았다. |
| "내 이 길로 몇 번이나 다녔는지 몰라요…… 나 혼자……." |
| 이렇게 중얼거리며 희미하게 올려다보이는 박석고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호 쉬었다. 신철이는, |
| "저…… 선비가 몇 살이오?" |
| "열여덟 살인지? 그것 왜 물으세요?" |
| "글쎄 알 일이 있어서……." |
| "알 일이 무슨 알 일이어요?" |
| 옥점이는 신철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신철이가 선비를 잊지 못함에서 저런 말을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불시에 든다. |
| "아니 글쎄 그것 왜 물으세요?" |
| "그거요, 이제 봄에 온다면…… 학교에 입학시키려면 나이를 알아야 하지요." |
| 신철이는 이렇게 돌라대었다. |
| "아이…… 참…… 나는…… 왜 호호……." |
| 옥점이는 웃었다. 신철이도 따라 웃었다. |
| "나이가 많아서 소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겠구, 학원 같은 곳에다 입학시켜야겠구먼요." |
| "그렇게 되겠지요…… 웬걸 공부야 제대로 하게 되겠수. 그저 신철 씨 말씀대로 올라와서 내 시중이나 좀 들어 주다가 서울 구경이나 하고 그러고는 여기서 참한 곳이 있으면 시집이나 주지…… 그나마 촌구석에서는 그 인물이 아까우니." |
| 옥점이는 눈앞에 선비를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골 구석에 묻어 두기가 아까운 외모만은 가진 것이라…… 다시금 생각되었다. |
| "저 그때 말씀한 사촌동생이라는 이가 참말 시굴 처녀를 얻겠다나요?" |
| "네! 그애는 저 역시 공부한 것이 변변치 못하니까…… 배우자도 아주 시굴뜨기를 얻겠답니다." |
| "그렇지요, 뭐. 상대가 짝이 기울면 길래 살게 되나요. 어찌나 그애를 올려다가 학원에나 몇 달 보내어 국문이나 배운 후에 그이를 주게 하지요." |
| "네 글쎄…… 그것은 추후 문제구…… 하여간 서루 만나 봐야 알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맘에 서루 들면 되는 것이니까요, 허허." |
| "암! 그게야 그렇지요, 호호. 당자끼리 맘에 들어야 허지우." |
| 옥점이는 이렇게 말하며 신철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서 걸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결혼도 빨리 성립이 되었으면…… 그만 오늘 밤에 내가 물어 볼까? 하고 생각하였다. |
| 어느새 그들은 박석고개를 넘어섰다. 대학병원을 싸고 돈 컴컴한 수림 속으로 불어오는 약간 약내를 섞은 바람이 그들의 코끝을 흔들었다. 그리고 별 밑에 희미하게 보이는 창경원의 앙상한 나뭇가지며 그 주위를 싸고 구불구불 달아 내려온 담은 그나마 이조 오백년의 역사를 회상케 하였다. |
| "이거 보세요, 난 여기 혼자 다니기가 제일 싫어요." |
| "싫어요?…… 싫으면 다니지 마시죠." |
| "아이 참 죽겠네." |
| 옥점이는 신철의 외투 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런 으슥한 곳에서는 손이라도 따뜻이 쥐어 주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신철이는 어찌 보면 감정을 가진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대체 이 사나이가 불구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새 벌써 옥점의 하숙까지 왔다. 신철이는 우뚝 섰다. |
| "자 들어가십시오, 여기가 댁이지요." |
| "같이 들어가요." |
| 옥점이는 길을 막아 섰다. 신철이는 이 계집애가 단단히 몸이 단 모양인데…… 하며, |
| "밤이 오랬는데…… 가서 자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학교에도 가지요……." |
| "글쎄 잠깐만……." |
| 옥점이는 신철에게 거의 매어달리다시피 하였다. 신철이는 계집이 달려드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리 좋을 것은 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오늘 독서회에서 여자 교제에 관한 것을 토의하던 것이 얼핏 떠올랐다. |
| "자 내일 또 오지우." |
| "오기는 뭘 와요. 그짓말만 하시면서…… 들어가세요." |
| 옥점이는 신철의 손을 잡아끌었다. 신철이는 들어갈까? 말까…… 주저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