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18

"오늘 연보를 해야겠는데…… 좀 주려우."
옥점 어머니는 저고리 고름을 매고 버선을 신는다.
"무슨 연보를 또 하나?"
"오늘은 특히 없는 사람…… 저, 걸인들 말이요, 그런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야 연보를 한다우. 좀 주오. 그런데 많이 하는 사람은 특히 이름을 써서 벽에 붙인다우. 하필 믿는 사람만 연보를 하는 게 아니라 구경 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연보하고 싶은 사람은 연보를 한다우. 당신도 좀 가서 한 오 원 내구려……."
덕호는 픽 웃으며,
"웬 돈이 있나?"
"글쎄 내 낯을 보아 하는 게지, 뭘 그러시우. 그러지 않어도 면장댁, 면장 댁 하는데……."
"아, 저 사람은 뻔히 보면서도 저래. 웬 돈이 있는가."
"글쎄 오늘만 줘요. 내 몫으로 한 이 원 하고 당신 몫으로 한 오 원 해서, 합해서 칠 원만 합시다."
남편의 이름과 그의 이름이 교회당 벽에 가지런히 씌어질 생각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덕호는 담배 꼬투리를 재떨이에 팽개치며,
"그 정, 어데 살겠기, 자꼬 쓰는 데는 많고 벌지는 못하고 어쩐단 말이……."
덕호는 혼자 하는 말처럼 중얼거리며 조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옥점 어머니는 손을 벌리고 대들었다.
"이 사람, 글쎄 돈은 어디서 나는가."
십 원짜리 지화를 내쳐 준다. 그는 입을 실룩실룩하였다. 그가 좋아할 때마다 이런 버릇이 있었다.
"할멈, 어서 가우."
옥점 어머니는 지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소리쳤다. 뒤미처 할멈이 들어왔다.
"그럭허고 갈 테야? 남부끄럽게."
그의 시커먼 저고리를 보며 소리쳤다. 할멈은 머뭇머뭇하였다.
"어서 다른 저고리 갈아입어! 그게 뭐야. 무명저고리 있지, 왜?"
선비는 냉큼 일어나서 할멈 방에서 무명저고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할멈은 올 가을에 새로 한 이 무명저고리를 아까워서 입지 못하고 두었던 것이다. 할멈은 선비가 주는 무명저고리를 받아 입고 나서, 옥점 어머니가 깔고 앉을 방석과 책보며 신 넣을 주머니까지 들고 나섰다. 옥점 어머니는 덕호를 돌아보며,
"그럼 저녁엘랑 꼭 가우?"
대답을 듣고야 가겠다는 듯이 말똥말똥 쳐다본다. 덕호는 빙긋이 웃어 보이며,
"글쎄 형편 봐서 가지. 나 거…… 예배당에 가면 기도하는 꼴 보기 싫어서 못 가겠두먼, 그것 뭐야…… 눈을 감고…… 허허."
옥점 어머니는 또 저 소리가 나오누나 하고 돌아서 나간다. 선비는 나도 가보았으면 하며 늘어놓은 옥점 어머니의 옷을 거두어 착착 개고 있었다.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덕호는,
"너 전날 내가 말한 것은 생각해 두었느냐?"
선비는 놀라 덕호를 바라보다 머리를 숙인다. 선비는 말한 지가 오래도록 덕호가 묻지 않으므로 아마 술김에 한 말인 게다 하고 스스로 풀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선비는 언제까지나 잠잠하였다.
"선비야, 내가 곧 묻고자 했으나 사무에 분주해서 그만 잊었구나, 허허. 아무래도 이 겨울이야 되겠니? 오는 봄에 가도 갈 터이니까, 그렇지? 선비야."
그의 말은 몹시도 부드러웠다. 선비는 치미는 감격에 귀밑까지 빨개졌다.
"요새 사람치고 글 몰라서는 시집도 변변한 곳에 못 간다. 내가 너를 기위 내 집안 사람으로 인정하는 이상 너 하나의 소원이야 못 들어주겠니…… 자식도 없는 놈이, 허허허허……."
덕호는 언제나 말끝마다 손 없는 것을 넣었다. 그가 넣고 싶어 넣는 것보다도 무의식간에 이렇게 넣게 되는 것이다.
"이애, 어서 말을 해."
덕호는 앉은걸음으로 선비 곁으로 와서 그의 머리를 내려 쓸었다. 선비는 조금 물러앉았다.
"그럼 공부 가고 싶지 않으냐?"
머리를 기웃하여 들여다본다. 그는 너무 어려워서 부시시 일어났다.
"왜 대답이 없어? 허허…… 나는 너를 친딸같이 아는데…… 왜 너는 그렇게 어려워하니? 응 선비야! 거게 앉아서 말을 좀 해."
선비는 얼결에 일어는 났으나 도로 주저앉기도 싫고 그렇다고 나가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선 채 우두머니 서 있었다.
덕호는 시계를 쳐다보더니 벌컥 일어났다.
"그럼 후일 또 물을 터이니…… 이번에는 똑똑히 대답해…… 어려울 것이 뭐냐, 부모 자식 새 같은 우리 새에…… 글쎄 어려울 게 뭐야, 이애!"
덕호는 선비의 다는 볼을 손으로 가볍게 후려쳤다. 선비는 주춤 물러섰다.
"허허…… 그년, 이전 제법 내우를 하랴고 든다 말이어."
덕호는 이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간다. 그의 신발 소리가 중대문 밖을 나갔을 때, 그는 호! 한숨을 쉬고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쳤다. 그때 이제 덕호의 손길이 부딪치던 것을 얼핏 느끼며, 참말 나를 공부시켜 주려는 셈인가? 하며 주저앉았다. 후일 또다시 물으면 뭐라고 할까, 나 서울 가겠소! 그럴까? 아니! 나 공부시켜 주! 그러지…… 아버지 나 공부시켜 주, 그래야지! 이렇게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니, 참말 그가 서울로 공부를 가는 듯싶었다. 그리고 그가 철 알면서부터, 입에 올려 보지 못한 아버지를 부르고 나니, 웬일인지 어색한 맛이 있으나, 그러나 아버지를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만난 듯한, 그러한 감격에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아버지가 왜 옥점 어머니 있을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까? 무의식간에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옥점 어머니 역시 어머니라고 불러야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옥점 어머니만은 그의 진심으로 '어머니!' 하고 선뜻 불러지지를 않았다. 어머니 하면 벌써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얼른 생각히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에 잠기곤 하였다.
덕호가 옥점 어머니 없는 곳에서만 선비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은 옥점 어머니가 이 말을 들으면 으레 반대할 것이므로 이렇게 몰래 말하는 것이라고…… 그는 깨달았을 때 덕호에 대한 감격이 한층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결국은 옥점 어머니 몰래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 나중에 나 서울 보내 놓고 말을 하려나? 그렇지 않으면 내일처럼 서울을 가게 되면 오늘 밤쯤 이야기하려나? 하고 생각하니 옥점 어머니의 놀라는 표정과 까칠하게 거슬린 눈썹이 시재 보이는 듯하였다. 제 그러면 소용이 있나? 벌써 언제부터 아버지가 나를 공부시키려고 했는데…… 하며 문 편을 흘금 바라보았다.
그가 이때까지 이 집에서 있게 된 것도 덕호가 자기를 끝까지 옹호하여 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의 장래까지도 덕호가 돌아보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보다도 주리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때 밤 오래도록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는 큰집 영감님이 다 알아서 해줄 터인데…… 하고, 끝막음을 이렇게 막고는 그만 돌아누워서 잠이 들곤 하였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의 어머니가 덕호를 가리켜 큰집 영감님, 큰집 영감님 하고 불렀으므로 그도 항상 큰집 영감님 하고 불러졌다. 그러나 오늘 아침 처음으로 불러 본 아버지! 그는 앞으로 맘먹고 아버지라고 부르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아버지! 나 공부시켜 주."
그는 다시 한번 되풀이하였다. 그때 그는 극도의 감격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중대문 소리가 찌꺽하고 났다.
선비는 얼른 눈을 부비치고 유리창으로 내다보았다. 유서방이 짚신을 삼아 가지고 들어온다. 선비는 문을 열고 나왔다.
유서방은 빙글빙글 웃으며 마루까지 와서,
"이거 신어 봐라."
선비는 가는 웃음을 눈썹 끝에 띠며 짚신을 받아 들었다. 어제 유서방이 그의 발을 재어 달라고 하므로 실을 끊어 재어 주었던 것이다.
"어서 신어 봐. 신어 봐서 안 맞으면 또 삼지."
"유서방두……."
선비는 유서방을 흘금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신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애 신어 보라구……."
유서방은 자기가 정성을 다하여 삼은 것이 선비의 발에 꼭 들어맞는 것을 보고야 안심될 것 같았다. 선비는 신어 보려는 눈치를 보이고 허리를 굽혀 그의 발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후일 신어 봐요."
하고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버선을 굽어보며 이게 무슨 필까? 어서 떨어진 게야…… 아이 참 망신을 하려니까…… 별일 다 있어! 하며 버선코 밑에 빨갛게 물들어진 동그란 흔적을 만져 보며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김칫물이 떨어져 말라진 자리였다. 그제야 그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유서방이 이것을 피로 보았으면 어쩌나? 하며 유리알로 흘금 내다보았다. 유서방은 눈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검정이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다. 검정이는 유서방의 웃는 눈치를 짐작함인지 혹은 눈이 오니까 좋아서 그러는지 주둥이로 눈을 헤치며 혹은 발로 긁어당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는 딩굴딩굴 굴렀다. 그때마다 유서방은,
"잘 논다! 하하…… 잘 논다! 하하."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유서방에게 있어서는 저 검정이가 유일한 동무였다. 역시 선비도 그러하였다. 웬일인지 검정이는 유서방과 선비와 할멈을 따랐다. 그것은 막연하나마 검정이에게 밥을 주는 까닭이라고 생각되었다.
한참이나 웃던 유서방은 유리창으로 흘금 들여다보았다.
"신 맞니?"
선비는 얼른 곁에 놓인 신을 보며,
"네."
하였다. 유서방은 만족한 듯이 중대문을 향하여 나간다. 검정이는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채 그의 뒤를 따라나간다. 선비는 짚신으로 눈을 옮겼다. 그리고 신어 보니 꼭 맞는다.
"아이, 곱게두 삼았어."
그는 발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그는 유서방이 자기를 생각하여 이렇게 신까지 삼아 주는 것이 끝없이 고마웠다. 반면에 그의 장래까지 누가 이렇게 신을 삼아 줄 것인가 하며 첫째를 생각하였다. 그는 나갔다지, 나쁜 일을 하다가 나갔다지…… 참 그가 웬일이어, 어미가 그러니 그 속에서 나온 자식인들 온전할 수가 있나.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섭섭하였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한번 그의 얼굴이나마 보았더면 하는 아쉬움이 새로 삼은 짚신을 싸고 언제까지나 돌았다. 나는 공부할 터인데 별것을 다 생각해…….
그날 밤 덕호네 집에서는 온 집안이 다 예배당으로 갔다. 오늘 밤은 특히 애들의 재미난 유희가 있다고 해서 유서방이며 덕호까지도 모두 갔던 것이다.
크나큰 방 안에 선비 혼자 앉아서 낮에 틀던 목화를 틀며 여러 가지 생각을 되풀이하였다. 씨앗에서는 흰구름 같은 솜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마치 선비가 지금 생각하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같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오른다.
아까 낮에만 하여도 오늘 저녁에는 나도 예배당에나 좀 가보았으면 하였더니, 뜻하지 않는 덕호의 말을 들은 담부터는 혼자 이렇게 앉아 서울 공부 갈 생각을 하는 것이 재미나고 좋았다. 그러므로 옥점 어머니가 할멈은 집이나 보고 자기를 데리고 가려는 것을 일부러 할멈을 보내었던 것이다.
학교 공부할 생각을 할 때마다 언제나 앞서 생각히는 것은, 수놓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가 직접 본 것이란 그것뿐이니까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학생은 옥점이와 같이 분과 크림과 배니칠을 하고, 또 양복을 입어야 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남자들과도 부끄럼 없이 같이 다니고, 같이 밥 먹고, 같이 공부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괴롭고 그러고도 기쁜 감정이 서로 교착이 되어 가지고, 삐꺽삐꺽하는 씨아 소리를 따라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방문이 바스스 열린다.
뒤미처 찬바람이 선비의 등허리에 훌씬 끼친다. 그는 놀라 뛰어 일어났다.
"누구요?"
얼결에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니 뜻하지 않은 덕호였다. 선비는 너무 놀란 것이 무안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놀랐니?"
덕호는 눈을 툭툭 털며 아랫목에 앉았다. 그리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뭐 볼 것 없더라. 웬 잡것들이 그리 많이 왔는지, 구경이 아니라 큰 고생이두구나."
묻지도 않는 말을 덕호는 늘어놓는다. 선비는 씨아틀을 가지고 일어났다.
"왜…… 왜…… 일어나니?"
"건넌방에 가서 틀래요."
"왜 여기서 틀지…… 이애 이애, 나가지 말아, 나 좀 할 말이 있다."
선비는 씨아틀을 놓고 앉으며 아마 서울 공부 갈 말을 물으려는 것이구나…… 생각되었다.
"그 씨아틀은 놓고 이리 와 앉아, 응 이애."
선비는 씨아틀도 만지지 않으면 앞이 허전한 것 같아서 그냥 붙들고 있었다. 덕호는 조금 올라와 앉는다.
"너 정말 공부 가고 싶으냐?"
웬일인지 선비는 가슴이 답답해지며 얼른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왜 말을 안 해 이년아, 어룬이 물으면 냉큼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허허 그년."
선비는 약간 웃음을 띠며 머리를 푹 숙인다. 그의 가슴은 부끄러움과 감격에 교착이 되어 무섭게 뛰기 시작하였다.
"그럼 안 갈 터이냐?"
덕호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선비의 앞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선비는 씨아틀을 보며,
"공부하겠어요……."
겨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낮에부터 생각해 두었던 '아부지'가 빠졌다. 그래서 다시 말할까 하고 덕호를 흘금 쳐다보았다. 덕호는 빙긋이 웃었다.
"공부하겠어……."
씨아틀에 가리워 반만큼 보이는 선비의 타는 듯한 볼! 덕호는 참을 수 없는 정욕의 불길이 울컥 내밀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간에 바싹 다가앉았다.
"가만히 앉었어! 누가 어쩌냐."
꿈칠 놀라 일어나려는 선비의 손을 덥석 쥐었다. 덕호의 손은 불같이 뜨거웠다. 그리고 약간 술내를 섞은 강한 장년 사나이의 냄새가 선비의 얼굴에 컥 덮씌운다. 선비는 어쩔 줄을 몰라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