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16

"어…… 그리고 색의를 입어야 하오. 우리 조선 사람은 흰옷을 입는 것이 못사는 원인의 하나요. 어서 바삐 색의를 입으시우. 흰옷을 입게 되면 자주 빨아 입어야겠으니, 첫째 그만큼 시간이 소비되고, 둘째 빠는 데 옷이 해지우. 어…… 그리고 고무신을 신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노는 시간을 이용하여 짚신을 삼아 신도록 하오. 이 외에 관혼상제비(冠婚喪祭費)도 절약하시우. 이렇게 하면 당신네들이 앞으로는 다 부자가 될 것이오. 그렇지 않우? 허허."
그들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군수의 말대로 하면, 참말 내년부터라도 풍족한 생활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 마지막으로 말할 것은 면이라는 기관은 당신들이 잘살고 건강하게 사는 것을 위하여 힘써 지도하는 곳이니, 조금도 면사무소를 허수히 알아서는 못쓰오. 면에서 지세나 혹은 호세나 기타 여러 가지 세금을 당신들한테서 받아 내는 것은 다 당신들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통치하는 데 소비하는 것이우. 그러니 그런 세금들을 꼭꼭 잘 바쳐야 하오. 할 말은 많으나 훗기회로 미루고 위선 그만하니 이 면사무소의 지도를 잘 받으시오."
군수는 말을 마치고 의자에 걸어앉는다. 면장은 만족한 웃음을 띠고 나왔다.
"이번 군수 영감께서 이렇게 나오시게 되어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들리어 주시니 우리 면민은 군수 영감의 말씀대로 이행하기를 서약한다는 증거로 일어나서 경례를 합시다. 자 일어나시우들."
농민들은 일시에 일어나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몇 번이나 거듭하고 헤어졌다.
첫째도 그들 틈에 섞여서 면사무소를 나왔다. 그는 어정어정 걸으며 내년부터 나는 누구네 땅을 부치나! 하고 우뚝 섰다. 그의 동무들은 그를 비웃는 듯이 흘금 돌아보고 저편으로 몰려간다.
첫째는 드디어 밭을 떼이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 군수 영감의 말을 들으면 이 면사무소는 농민들이 잘살기 위하여 힘쓰는 곳이라는데……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자기만은 이 동네의 농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부쩍 든다. 덕호로 말하면 이 면의 어른인 면장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치던 밭을 그에게 떼이지 않았는가? 응! 나는 그때 그 구루마를 깨친 것이 법에 걸리었기 때문이라지. 법 법…… 오늘 군수 영감의 말씀한 것도 역시 내가 행하지 않으면 법에 걸리게 될 터이지. 그러나 오늘에 부칠 밭이 없는데 거름은 만들어 두면 뭘 하나? 그 법…… 그는 날이 갈수록 이 법에 대하여 점점 더 의문의 실뭉치가 되어 그의 가슴을 안타깝게 보챈다. 그는 생각지 말자 하다가도 가슴속에서 뭉치어 일어나는 이 뭉텅이! 그 스스로도 제어하는 수가 없었다. 첫째 자신은 이 신성불가침의 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나 웬일인지 날이 갈수록 자신은 이 법에 걸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발견하였던 것이다.
집까지 온 첫째는 나뭇가리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떻게 한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의 앞길은 암흑으로 변하여지는 것을, 볼을 후려치는 쌀쌀한 겨울날의 감촉과 같이 확실히 느껴진다.
그때 짚 부벼치는 소리가 바삭바삭 나므로 휙근 머리를 돌리니 그가 새끼 꼬다가 놓고서 면사무소에 갔던 기억이 얼핏 생각히며 이서방이 동냥하러 가지 않고 오늘은 집에 있는가 하여 얼른 들어왔다. 방문을 여니 갑자기 누가 방 안에 앉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캄캄한 속으로 짚 부벼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벌써 오니? 왜 오라던?"
방 안에 들어앉은 그는 어머니가 새끼 꼬는 것을 비로소 발견하였다. 첫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군수 연설 들으러 오라지."
첫째 어머니는 실망을 하고 꼬던 짚을 밀어 놓는다. 아까 면서기가 면사무소로 첫째를 오라고 할 때는 아마 도로 밭을 부치라고 하려나? 하는 다소의 희망과 의문을 가졌는데, 아들의 이러한 말을 들으니 아주 낙망이 되었던 것이다.
첫째 역시 어머니의 이러한 낙망을 손에 든 것처럼 꿰뚫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비애가 이 방 안으로 가득히 들어차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첫째는 어머니의 이러한 모양이 보기 싫어서 휙 돌아앉아 새끼를 꼬기 시작하였다. 전 같으면 이 새끼를 꼬아서 할 것이 많건만, 이 새끼를 꼬기는 꼬나, 무엇에다 어떻게 쓰려는 예정도 나지 않았다. 그저 심심하니 앉아 있으면 가슴이 터지게 일어나는 이 의문과 비애! 이것이 안타깝고 귀찮아서 이것을 붙여잡고 있는 것이다.
"이놈아, 글쎄 가만히 있지 왜? 그 지랄을 벌여서 그 모양을 한단 말이냐. 암만 그래두, 우리는 없는 사람이니까 있는 사람에게 붙어 살아야 하지 않니…… 오늘부터라도 굶고 앉았겠으니 좋겠다! 이놈! 날 잡아먹지 못해 그래…… 그래도 밭을 부치면 장리쌀이라도 얻어 올 수가 있었지만, 누가 쌀 한 줌 줄 듯하냐."
"이거 왜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다!"
첫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냐 이놈아, 어려서부터 네놈이 어미의 머리끄덩이를 함부로 뜯어 내더니, 그 버릇이 이때껏 남아서 밥 굶게 되었으니 좋겠다! 이놈!"
"흥 잘하는 것 내가 그랬겠군!"
"그랴, 그래서 너 누구 덕에 밥 먹고 큰 줄 아느냐. 이놈, 너도 지내 봐라! 누가 잘못하고 싶어 잘못하는 줄 아느냐? 나도 배고파서 헐 수할수없으니 그랬다! 너두 지내 봐라! 어디 이놈!"
첫째는 이 말에 귀가 번쩍 틔며 이상하게도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리고 나도 배가 고파서 헐수할수없으니 그랬다, 너두 지내 봐라! 하던 어머니의 말이, 살대와 같이 그의 가슴폭을 선뜻 찌르는 듯하였다. 헐수할수없으니 그랬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또다시 그 실마리가 두루뭉텅이가 져서 올라오려고 하였다. 그는 새끼 꼬던 짚을 밀어 내고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벼락치듯 문을 열어 젖히고 나와 버렸다.
어느새에 싸락눈이 바슬바슬 떨어진다. 뜰 한 모퉁이에 쌓아 둔 나뭇가리에 싸락눈 쌓이는 소리가 한층더 뚜렷하다. 그는 저 싸락눈을 보니 한층더 가슴이 죄어들었다. 원 나무나 해다 팔아서 쌀말이나 마련해 올까…… 그러니 그놈의 산림감시놈들이 나무를 베게 해야지…… 법? 그는 발길을 쿵 하고 들놓았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던 첫째는 어느 동무네 집에나 가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까 면사무소 앞에서 자기를 비웃는 듯이 돌아보던 동무들을 얼핏 생각하며, 그만 지게를 걸머지고 어정어정 나왔다.
싸락눈이 그의 다는 얼굴을 선듯선듯하게 하여 준다. 그는 뿌옇게 보이는 앞벌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까지 그의 온갖 희망과 포부가 이 벌 전부이었던 것을 그는 다시금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벌을 잃어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에게 무슨 희망과 포부가 있으랴! 단지 그의 앞에 가로질린 것은 캄캄한 암흑뿐이었다.
그는 일하러 나올 때마다, 괭이를 높이 둘러메고 끝없는 공상에 잠기곤 하였다.
농사를 잘 지어서 먹고, 남는 것을 팔아서 저축해 두었다가 그 돈으로 밭 사고, 그리고 선비를 아내로 맞이해서, 아들딸 낳아 가면서 재미나게 살아 보겠다고 그는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던가! 그는 자기의 이러한 어리석었던 공상을 회상하며 픽 웃어 버렸다. 따라서 희망에 불타던 그의 씩씩한 눈망울은 비웃음과 저주로 변하는 것을 확실히 볼 수가 있었다.
어느덧 그는 원소까지 왔다. 앙상한 버드나무숲은 어찌 보면 자기의 신세와도 흡사하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그 숲을 쳐다보았을 때, 오는 봄에 싹 돋으려는 씩씩한 기운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는 버드나무를 의지하여 원소를 내려다보았다. 그때에 생각힌 것은 원소의 전설이다.
'그들도 법에 걸려 혹은 죽고 혹은 매를 직사하게 맞았다지.' 몇천 년이나 몇백 년이 되었는지 분명하지 못한 그 옛날의 농민들도 자기와 같은 그런 궁경에 빠졌던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다시금 원소의 푸른 물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뒤에서 신발 소리가 난다. 그는 누가 물 길러 오는구나…… 하고 생각되었으나 머리를 돌려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자기를 보면 밭 떼인 것을 조소하는 듯하여 그만 얼굴이 뜨뜻해지곤 하였던 것이다.
신발 소리는 차츰 가까워진다. 그 신발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라는 것을 직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여기 섰기가 좀 열적은 듯하여 버드나무 옆을 떠났다. 그래서 그가 저편 길로 옮아 섰을 때, 원소로 가는 두 여인을 발견하였다. 그 순간 그는 전신의 피가 갑자기 활기를 띠고 숨이 가쁘도록 심장이 뛰었다. 그는 멈칫 서서 바라보았다.
빨래 함지를 무겁게 인 여인 중, 그 하나가 선비가 아니었느냐! 귀밑까지 푹 눌러 쓴 흰수건 밑으로, 껍질 벗긴 밤알처럼 윤택해 보이는 그의 얼굴! 내리는 눈에 가리어 아리송아리송하게 보였다. 그러나 전날 선비와 같이 다정한 감을 주지 않고 웬일인지 차디찬 조소를 그의 윤택한 살갗을 통하여 차츰 농후하게 던져 주었다.
빨래 함지를 내려놓은 그들은 빨래를 돌 위에 놓고 빵빵 두드린다. 그 소리는, "이 자식 너 밭 떼였지, 너 밭 떼였지" 하는 소리같이 들렸다. 그는 한참이나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선비가 방망이를 놓고 빨래를 헹구며 흘금 바라본다. 그는 얼핏 돌아서고 말았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며 앞이 아뜩하였다. 그는 작대기를 꾹 짚으며, 계집은 해서 뭘 하는 게냐!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방망이 소리는 그가 걸을수록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선비의 그 모양까지도 차디찬 얼음덩이 같아지는 것을 그는 우뚝 서며 보았다. 그것은 자기 머리에 언제부터 들어앉았던 그 고운 선비의 환영이 이렇게 변하여지는 것이, 그가 눈을 크게 뜰 때마다 확실히 인식되었다.
그는 산등에 올라 되는 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지게를 진 채 멍하니 산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때에 떠오른 것은, 어려서 이 산등에 나무 하러 왔다가 선비를 만나 싱아를 빼앗아 먹던 기억이다. 따라서 그때부터 자기가 선비를 맘 한구석에 생각하였다는 것이 옛날을 회상할수록 뚜렷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사모하던 선비를 한번 만나 이야기도 못 해보고 그만 영원히 만나지 못할 생각을 하여, 무의식간에 그는 작대기를 들어 그의 발부리를 힘껏 후려쳤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싸락눈은 아까보다 더 내리는 듯하다. 그 속으로 멀리 보이는 동네! 벌써 집집에서 흐르는 저녁 연기가 구불구불 선을 긋고 올라간다. 그때 그는 무심히 이서방이 이젠 들어왔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첫째는 산 옆으로 돌아가며 마른 풀을 베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동구까지 왔을 때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밥 잦히는 솥뚜껑 소리며 청어 굽는 내가 그의 구미를 버쩍 당기게 하였다. 그 순간 그는 어젯저녁에 밥이라고 좀 먹어 보고는 오늘 아침은 국물만 되는 소죽 먹은 기억이 그의 가슴을 더 쌀쌀하게 하였다. 그러나 집에 가면 이서방이 그 시커먼 밥자루에 밥을 가득히 얻어 가지고 왔을 생각을 하니 발길이 얼른얼른 내디뎌졌다.
그가 집까지 와서 나뭇짐을 되는 대로 벗어 놓고 분주히 방으로 들어가며 이서방의 신발부터 있는가 하고 보았다. 그러나 찬바람이 실실 도는 봉당에 어머니의 짚신만이 놓여 있다. 그는 멈칫 섰다. 이서방이 안 왔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아랫목에 누웠다가 벌컥 일어나며,
"이서방이우?"
그때 첫째는 앞이 아뜩해지며 이때까지 이서방이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의 어머니는 첫째임을 알자 곧 도로 누워 버렸다. 그리고 으흠 하고 신음하는 소리가 방 안을 그윽이 울려 주었다.
그는 방문을 쿡 닫고 돌아섰다. 이서방이 왜 안 와 하고, 차츰 어두워 가는 저 밖을 바라보았다. 이서방이 밥자루를 무겁게 들고 돌아올 길에는 눈만이 푹푹 쌓일 뿐이고, 검정개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읍으로 통한 신작로를 바라고 성큼성큼 걸었다.
수굿하고 걷다가는 한참씩 서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서방은 보이지 않았다. 저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이서방이 오는 것이 보이려나? 하고 그 산모퉁이를 돌아와도 역시 눈송이만이 벌떼같이 날 뿐이고, 이서방 비슷한 사람조차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젠 사방이 캄캄해서, 어디가 어딘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어찌 된 일일까, 혹 길가에서 얼어 죽었나? 그렇지 않으면 몸이 아파서 어디 물방앗간 같은 곳에 누웠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밤이 되어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밤부터는 바람까지 일어서 휙휙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싸락눈은 이젠 솜눈으로 변하여 무섭게 뺨을 후려친다. 첫째는 우뚝 서서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오늘 밤으로는 이서방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그만 집으로 오고 말았다.
그 밤을 고스란히 새우고 난 첫째네 모자는 아침이면 이서방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이서방은 아무 소식 없다. 첫째 어머니는 아무래도 이서방이 무슨 일을 만난 것 같았다. 그래서 첫째를 보고,
"이애! 이서방이 무슨 일을 만난 것 같으니 네 읍에 가봐라."
어젯저녁만 해도 배고픈 것이 이렇게 견디기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는 걷기에도 별한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이 아침부터는 너무 배가 고파서 운신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배고파서 갈 수 있어야지? 어데서 밥 좀 얻어다 주슈."
첫째 어머니는 맥없이 누워 이렇게 말하는 첫째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는 어디서 밥술이나 얻어 보려고 바가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첫째는 어머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수없는 그릇에 밥 담은 것이 얼씬얼씬 보여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는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첫눈에 띈 것은 며칠 전까지 쌀 담아 두던 항아리였다. 그는 무의식간에 벌컥 일어나서 항아리 곁으로 왔다. 그리고 항아리를 기울여 보았다. 휑하니 비었다. 간 가을만 해도 쌀이 이 항아리로 가득 찼는데 벌써 그 쌀이 다 없어졌나? 하고 그는 다시 생각을 되풀이해 보았다.
가을에 밭 떼일 때 덕호가 특별히 생각하여 주노라고 하면서 빚과 장리쌀만 제하고 그 외에 비료값이니 이따금 꾸어다 먹은 쌀은 제하지 않고 그냥 첫째를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항아리로 가득 찼던 것이다. 그때에는 이 쌀이 몇 달은 가리라고 생각했더니 막상 하루 이틀 먹어 보니 불과 두 달이 못 가서 그 가득하던 쌀이 흔적도 없어졌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쌀항아리를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행여나 어디가 쌀알이 붙었는가 하여 항아리를 들고 문 편으로 와서 뱅뱅 돌려가며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쌀 한 알 발견하지 못하였을 때, 그는 한숨을 푹 쉬며 항아리 전에 머리를 기대고 문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술술 흘러내렸다. 마침 밖에서 신발소리가 나므로 그는 벌떡 일어났다.
방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온다.
"난 이서방이라구."
"잡놈, 배는 용히 고픈 게다."
첫째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손에 든 바가지를 그의 앞으로 밀어놓는다. 첫째는 얼른 들여다보니 도토리며 밥이 들어 있었다. 그때 첫째는 식욕이 욱 하고 치밀어 그의 어머니까지 밥으로 보였다. 그래서 바가지를 빼앗듯이 받아 가지고 손으로 움켜쥐어 먹었다. 언제 술을 들고 저를 놀리고가 다 배부른 사람들의 장난이지, 이때 첫째에게 있어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애 작작 덤벼라!"
첫째 어머니는 자기도 몇 술 얻어먹을까 하였다가, 아들이 저렇게 집어 먹었으니 도토리 한 알 입에 대어 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첫째 어머니는 야속한 생각과 같이 못 견디게 가슴이 쓰리었다.
"또 없수?"
눈이 뻘겋게 뒤집힌 첫째는, 어머니가 밥을 더 얻어 오고도 내어 놓지 않는 것만 같아서 이렇게 대든다. 첫째 어머니는 아들을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이애 무섭다. 흥! 혼자 다 처먹구두, 뭐가 나뻐서 그러냐."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곧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 길에서 왜 내가 한술이라도 먹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일어난다. 첫째는 먹은 것도 없이 먹었다는 말만 들으니 기가 막혔다.
"날 뭘 주었기 그래!"
첫째는 바싹 대든다. 그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날아 나오는 것 같았다. 첫째 어머니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돌아앉으며 그만 벽을 향하여 누워 버렸다. 어머니의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첫째는 어머니가 밥이라면 그저 이 배가 터지도록 먹으련만…… 하였다.
"그 밥은 어서 난 게유?"
아무래도 그 밥의 출처를 알아 가지고 좀더 먹어야지, 뱃속이 요동을 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린 듯이 누워 있을 뿐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첫째는 어머니의 궁둥이를 냅다 차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누구네 집에 가서 밥을 좀 얻어먹나? 개똥이네 집에나 가볼까? 하고 벌컥 일어날 때, 생각지 않은 트림이 꺽 하고 올라온다. 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방바닥을 치며,
"이놈아, 너만 트림까지 하도록 처먹을 것이 뭐냐!"
자기도 몇 술 주어서 같이 먹었다면 이렇게 가슴은 아프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첫째는 달려들어 어머니의 궁둥이를 내려 밟았다.
"날 뭘 주었어? 한 바리를 주었어, 한 대접을 주었어, 뭘 얼마나 주었어?"
그의 어머니는 악이 치받쳐서 벌떡 일어나며 첫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애 이놈의 새끼야, 넌 트림까지 하지 않니. 처먹었기에 트림을 하지. 이놈아, 그래 너만 처먹고 살려느냐, 다른 사람은 다 죽고…… 그것을 같이 먹겠다고 가지고 오니께 저만 다 처먹어. 어데 보자 이놈아, 에미를 그렇게 하는 데가 어데 있냐, 하늘이 있니라! 응…… 응……."
목을 놓고 운다. 첫째는 우는 꼴이 보기 싫어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뜰 위에 소복이 쌓인 눈 위에는 신발 자국이 뚜렷이 났다. 그는 멍하니 그 발자국을 바라보다가 이서방이 오늘은 오려나 하고 저 앞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뭐라고 몹시 떠들면서 운다. 첫째는 이서방이 오는가? 오는가 하여 가슴을 졸이다 못해서 그만 누구네 집에든지 가서 한 술 얻어먹으리라 하고 문밖을 나섰다. 그가 개똥이네 싸리문 안에 들어서니, 개똥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내다본다. 전 같으면 어서 들어오라고 할 터인데 그런 말은 없고 거칠게 눈을 뜨고,
"왜 왔는가?"
"개똥이 있수?"
"이제 면장 댁에 일하러 갔네…… 왜?"
그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저 놀러 왔댔수."
얼른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 나왔다. 이젠 누구네 집에를 좀 가볼까 하며 어정어정 걷다가 멈칫 섰다.
저리로부터 덕호와 어떤 양복쟁이가 궐련을 피워 물고 이리로 온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이편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다. 그때 덕호는 손에 든 단장을 휙휙 돌린다. 덕호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첫째는 전신의 피가 머리고 치밀고 온몸이 푸르르 떨리었다.
그날 밤 밤이 퍽 깊은 후에 첫째는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어머이!"
방 안으로 들어선 첫째는 목멘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첫째 어머니는 이서방인 줄 알고 일어났으나 첫째 음성임에 대답도 하지 않고 도로 누워 버렸다. 첫째는 어머니 손에 무엇을 들려 준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쌀내를 후끈 느끼며 손에 든 것이 쌀자루라는 것을 깨닫자 단숨에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나가며,
"이애, 어서 널랑 나와서 불때라!"
첫째는 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궁에 불을 살라 넣었다. 그의 어머니는 쌀을 졸졸 일어 내리며 아궁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비추이는 아들의 하반신을 흘금 바라보았다. 그때 그는 놀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무슨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곧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그의 옷은 갈가리 찢기었던 것이다. 첫째는 오래간만에 쌀 일어 내리는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래서 불빛에 어림해 보이는 물 속으로 하얗게 보이는 쌀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침을 모아 넘기다가 종내 못 견디어서 물독 곁으로 가서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들이마셨다.
그들이 밥을 퍼가지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대문 소리가 쿵쿵 났다. 첫째는 눈이 둥그래지며 뒷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첫째 어머니는 얼른 밥그릇을 감추어 놓고 귀를 기울였다.
"자우?…… 첫째야, 자니?"
그 음성에 첫째 어머니는 왈칵 내달았다.
"어서 문 열어 주……."
숨이 차서 헐떡헐떡하는 소리가 들린다.
첫째 어머니는 봉당까지 나오기는 하고도 손이 떨리어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누가 딴사람이 이서방이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하는 불안이 든다.
"문 열어 주, 아이구! 에…… 으흠."
"아니 정말 이서방이유?"
첫째 어머니는 문 새에다 입을 대고 이렇게 물었다. 이서방은 기가 막히는 모양인지 머리로 대문을 쿵 받는다.
"아이 참 이서방이구려! 이서방 어서어서."
그제야 첫째 어머니는 안심을 하고 문을 열었다. 이서방은 벌벌 기어들어 온다.
"아니 나무다리는 어찌 했수?"
"아이구!"
소리를 내며 그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맥없이 누워 버렸다. 그리고 앓는 소리를 무섭게 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감추어 두었던 밥그릇을 꺼내 놓고 밥 한 그릇을 다 먹은 후에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이서방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