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십여 일 이내에 베게 될 이 벼이삭! 벼알이 여물 대로 여물어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
| "잘 됐지! 저것 좀 보게나." |
| 풍헌은 벼이삭을 가리키고 달려가더니 벼이삭을 어루만지며 불타산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그의 희뜩희뜩 센 수염 끝은 무섭게 흔들리고 있다. 첫째는 뭐라고 위로할 말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싸고 있는 공기조차도 무거운 납덩이 같음을 느꼈다. |
| 풍헌은 논귀에 펄썩 주저앉으며, 무심히 물에 채어 무너진 논둑을 다시 고쳐 놓는다. 첫째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
| "이 논이 읍의 사람의 논이라지유." |
| "그래 읍의 한치수라는 어룬의 논인데……." |
| 그는 후 하고 숨을 쉬었다. |
| "그런 법두 있는가.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난 암만 생각해두 모르겠어! 내일 읍에 들어가서 한치수 어른에게 물어 보겠네." |
| "그렇게 합슈." |
| 첫째도 그런 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풍헌은 벌떡 일어났다. |
| "난 지금 들어가 보구 오겠네." |
| 이렇게 말을 하고 읍 가는 길로 나선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황황히 걸었다. 첫째는 물끄러미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그가 산모퉁이를 지나간 후에 들어왔다. |
| 며칠 후에 풍헌이 보이지 않으므로 누구에게 물으니 그는 벌써 어디론지 가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에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아내와 어린것들을 데리고 바가지 몇 짝을 달고 떠났다고 하였다. |
|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는 구루마 구르는 소리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겸 동무이던 풍헌을 내쫓은 덕호가 또다시 개똥이를 내쫓고 자기를 내쫓으려는 것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 |
| "여부슈, 내가 빚을 안 물겠답니까?" |
| 개똥이 음성이 무거운 공간을 헤쳤다. 무엇보다도 일년 농사 지은 것이라고…… 그의 초가집 문전에나마 놓았다가 이렇게 빼앗기었으면 한결 맘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벼 시세도 지금은 한 섬에 오 원이라 하나 좀더 있으면 육 원을 할지 팔 원을 할지 모르는데 이렇게 빼앗기기에는 너무나 억울하였던 것이다. |
| 첫째는 개똥이 말을 듣자 무의식간에 욱 하고 달아갔다. 그리고 유서방을 단번에 밀쳐 넘어쳤다. |
| "뭐야 이게? 야들아! 다 오나라." |
| 남의 일이나 자기 일 못지않게 분하였던 그들도 욱 쓸어 나갔다. 그리고 구루마에 실은 볏섬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덕호를 찾았으나 그는 벌써 어디로 빠져 달아났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
| "이 벼만 가져 봐라!" |
| 개똥이가 호통을 하였다. 그때 저편에서 회중전등이 번쩍 하고 이리로 왔다. 그들은 순사가 오는구나! 직각되자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
| 개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었다. 그리고 신발 소리 또 신발 소리……. |
| 이튿날 새벽에 개똥 어머니는 덕호네 집으로 갔다. 아직 대문은 걸린 채 그대로 있었다. 벌써 그가 어젯밤부터 이 문전에 몇 번이나 왔는지 몰랐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오다가, 또다시 무슨 생각을 하고 대문 옆으로 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누가 나오는가 하여 자주자주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검정개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그는 왔다갔다하면서, 이제 덕호를 만나 뭐라고 말할 것을 입 속으로 다시금 외어 보았다. 어제 밤새도록 생각해 온 이 말이건만, 이렇게 덕호네 문 앞까지 와서는 캄캄해지곤 하였다. |
| 안에서 신발 소리가 나므로, 그는 조금 물러서서 동정을 살폈다. 덜그렁 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찌꺽 열린다. 그리고 유서방이 다리를 절면서 나오다가 개똥 어머니를 보고 멈칫 섰다. |
| "왜 왔소?" |
| 유서방은 어젯밤 일을 생각하며 분이 왈칵 치밀었다. 개똥 어머니는 머리를 숙여 보이며, |
| "그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우. 다 철이 없어 그 모양이지유. 한때 살려 줍시우." |
| "철없는 게 뭐야유, 그 새끼들이 철이 없어? 흥! 이거 보우 내 다리가 병신 되었수." |
| 코웃음을 치고 나서 도로 들어간다. 개똥 어머니는 뒤를 따랐다. |
| "면장님 일어나셨수?" |
| "면장님은 왜 찾우?" |
| 유서방은 흘금 돌아보았다. |
| "그저 한때 살려 주, 예? 살려 주, 예." |
| 개똥 어머니는 훌쩍훌쩍 울었다. |
| "난 몰라유. 그까짓 놈의 새끼들…… 사람의 은혜도 모르고 의리도 없는 그놈들…… 김생 같은…… 에이." |
| 유서방은 이렇게 소리치며 들어간다. 개똥 어머니는 한참이나 머뭇머뭇하였다. 그때 안에서 덕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 "거 누구니?" |
| "개똥 어미야유." |
| 유서방이 대답한다. |
| "개똥 어미가 왜?" |
| "모루지유." |
| 개똥 어머니는 방문 밖에 서서 머뭇머뭇하다가, |
| "그저 면장님, 한때 살려 주, 그놈들이 철이 없어서……." |
| 덕호는 아직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
| "개똥 어민가, 이리 들어오게, 늙은이가 치운데, 왜 밖에 섰는가." |
| 뜻하지 않은 덕호의 후한 말에, 개똥 어머니는 앞이 캄캄해 왔다. 그제야 유서방은, |
| "어서 들어가우." |
| 개똥 어머니가 방문을 여니, 덕호는 자리에 누워 있다. 그는 멈칫 섰다. |
| "어서 들어와." |
| 개똥 어머니는 들어가서 머리를 숙이며, |
| "그저 한때 살려 줍시유, 네? 한때만 사정 봐줍슈." |
| 덕호는 기침을 하며 일어나서 자리로 몸을 가리고 앉았다. |
| "글쎄 그놈들의 행세를 보아서는 분나는 대로 용서 없이 고생을 시키겠지만 그러나 소위 면의 어룬이라는 나로서 더구나 저런 늙은이들이 불쌍해서 그럴 수야 있는가." |
| 개똥 어머니는 너무 감격하여 소리쳐 울고 싶었다. 그리고 저런 후한 어른의 뜻을 몰라주는 개똥이와 그의 동무들이 끝없이 원망스러웠다. |
| "그저 살려 줍슈, 저를 봐서……." |
| "응, 그런데 마침 오늘이 공일이니까 면에 출근도 안 하니 내 직접 주재소에 가보리…… 저희놈들이 암만 그래도 몇십 년을 내 덕에 산 것이 아니겠나. 배은망덕이란 말이 이런 것을 두고 이름일세그려. 허 거 정 나두 손두 없는 사람이라 저희들을 내 친자식들과 같이 사랑한단 말이어. 어제만 하더라도 내가 생각해서 벼 한 섬을 거저 주지 않았나. 그런데 그놈이 그 은공을 몰라본단 말이어. 하필 올뿐인가, 작년 재작년에도 그래 왔지." |
| "그까짓 죽일놈들을 생각하실 게 있습니까. 그저 후하신 맘으로 이 늙은 것을 한때 보아주셔야지우." |
| "응, 그럼 돌아가게, 내 이따가 가보리." |
| 개똥 어머니는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덕호는 도로 자리에 누우며 이놈들을 더 고생시켜 세상의 법이 어떻다는 것을 알리어 정신을 들려 주렸더니 날은 점점 추워 오고 어서 눈 오기 전에 마당질은 끝내야겠으니 부득이 놓아 주랄 수밖에 별수가 있나! 하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이 가을부터 미곡통제안(米穀統制案)이 실시된다는 말이 있으니 그렇게 되면 곡가도 오를 것이다. 어서 바삐 그놈들의 빚도 현 곡가로 청산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곧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어젯밤 주재소에서 자고 난 그들은 오늘 아침 덕호가 가서야 순사부장의 단단한 훈사를 듣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놓여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나오는 길로 아침밥도 잘 먹지 못하고 곧 타작 마당으로 왔다. 그래서 어젯밤 널어 놓은 짚단이며 나락 헤적인 것을 쓸어 모아 놓고 한편으로는 도급기를 횅횅 돌렸다. 그들은 일을 하니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팔을 놀리면 팔이 아프고 다리를 놀리면 다리가 아팠다. 그리고 허리를 굽힐 수도 없고 목을 임의대로 돌리는 수도 없었다. 하루쯤은 쉬어서 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이 하였다. |
| 그때 덕호가 나왔다. 그는 궐련을 피워 물고 단장을 짚었다. 그리고 명주 저고리 바지에 세루 조끼를 말큰말큰하게 입었다. 그들은 덕호를 보자 가슴이 울울해지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고 뭐라고 나무라지나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쩔쩔매었다. |
| "어 자네들 어서 일들이나 잘 하여…… 밥 많이 먹고 일 많이 하는 사람이야말로 튼튼한 면민일세그리. 허허 자네들은 나를 오해하지? 아마 어제 일을 미루어 보더라도 말이어.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안 것일세. 나는 더구나 면의 어룬이란 지위에 앉아 가지고 자네들의 이로움을 위하야 애쓰는 것이 나의 의무가 아닌가." |
| 덕호는 큰기침을 하고 나서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합수를 하고 섰다. |
| "어제만 하더라도 내가 곡식으로 차지한 것이 전혀 자네들을 위함에서 그렇게 한 게야…… 자네들의 형편에 그 곡식을 갖다가 팔아서 돈으로 빚을 갚는다고 하세. 돈을 제때에 갚지도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그 곡식을 제값을 못 받고 더구나 꼭 적당한 시기에 팔지를 못해. 그러니 내가 곡식으로 차지하는 게여. 나야 손해가 되지마는…… 왜 손해가 되느냐 하면 말이어, 이제 좀더 있으면 자네들이 지내 보는 바와 같이 곡가가 내리는 것만은 뻔한 사실이 아닌가 응, 왜 그런 줄을 몰라주느냐 말이어. 나는 자네들을 친자식같이 아는데 자네들은 그것을 몰라준단 말이어. 어제 일만 하더라도 내가 아니고 딴사람이라면 자네들을 그냥 두겠나. 그러나 나는 자네들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네들의 가족들을 생각하야 친히 순사부장에게 사정을 하다시피 한 것을 자네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한 번 실수는 누구나 있는 것이니 이 다음부터는 주의들 해." |
| 덕호는 그들을 둘러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들의 모양을 보아 자기의 말에 얼마나 감격하였는지를 그는 짐작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까지 저들이 서리 맞은 풀대같이 후줄근한 것이 전혀 주재소의 힘임을 깨달으며 무식한 놈들에게는 매가 제일이다 하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
| 덕호가 그들의 앞을 떠난 후에 그들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제 덕호가 한 말이 다 옳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일을 계속하였다. 도급기 다섯 채를 좌우로 갈라 놓고 한 채에 세 사람씩 맡았다. 한 사람은 가운데 서서 돌리고 그 나머지 두 사람은 도급기 곁에서 날라 오는 볏단을 풀어 놓고 도급기 돌리는 그들에게 번갈아 집어 주며 혹은 벼낟가리에 올라서서 볏단을 내리고 또는 다 훑은 짚단을 묶어서 저편으로 날랐다. |
| "이애 이놈아, 빨리 다우." |
| 난장보살이 첫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볏모개를 빼앗았다. |
| "흥! 어제는 이놈 때문에 우리들이 매를 죽도록 맞았다니." |
| 어젯밤 매맞던 생각을 하며 싱앗대를 돌아보았다. 싱앗대는 볏모개를 빨리 돌려 대었다. |
| "쥐뿔도 없는 놈이 맘만 살아서 그 꼴이지, 그저 없는 놈이야 무슨 성명이 있나, 죽으라면 죽는 모양이라도 내어야지." |
| 곁에서 그들의 말을 듣는 첫째는 버럭 화가 치받치는 것을 억제하였다. 그러나 뱃속이 꾸물꾸물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
| 어제는 이 타작마당에서 그들이 일심이 되었는데 겨우 하룻밤을 지나서 그들은 첫째를 원망하였다. 첫째는 덕호에게서 욕먹은 것보다도, 순사에게 밤새워 매맞은 것보다도, 그들이 자기 하나를 둘러싸고 원망하는 데는 그만 울고 싶었다. 그리고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걷는 듯한 적적함이 그를 싸고도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무심히 벼낟가리를 쳐다보았다. 전 같으면 저 벼낟가리들이 얼마나 귀여웠으리요마는…… 그때 저리로부터 순사가 왔다. |
| 첫째는 놀랐다. 가까이 오는 순사는 지금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자기만 잡으려고 오는 듯싶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푹 숙이며 볏단만 헤치고 있다가, 칼소리가 멀어지매 그는 겨우 안심하고 흘금 바라보았다. 그때 순사의 구둣발에 툭툭 채는 칼은 햇빛에 번쩍번쩍하였다. 순사는 덕호를 만나서 다시 이리로 온다. 그는 또다시 아까와 같은 생각으로 겁을 먹었으나, 그들은 가벼운 궐련내를 던지고 저편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고는, 하하 웃었다. |
| "여보게, 자네 좀 돌리게." |
| 난장보살이 첫째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나서, 도급기에서 물러간다. 첫째는 얼른 이편으로 왔다. 그리고 한 발로 도급기 발판을 짚어 가며, 난장보살이 집어 주는 볏모개를 훑는다. 그때 무심히 저편을 보니, 덕호와 순사가 면사무소에 앉아서 유리문을 통하여 이편을 내다본다. 그때에 그는 난장보살이 저것들을 마주보기 싫어서 도급기에서 물러났구나! 하고 직각되었다. 따라서 지금 저들이 자기를 잡아갈 의논을 하면서 자기만을 주목해 보는 듯하여 머리를 숙였다. |
| 솨르르 탁탁 튀어나는 벼알은 그의 볼을 가볍게 후려치고 떨어진다. 그리고 돌아가는 도급기 바퀴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그를 오한이라도 나게 하려는 듯이 싫었다. 전 같으면 이 바람에 얼마나 속시원할 것이건만…… 그때 난장보살이, |
| "담배 먹고 싶다!" |
| 그때 첫째도 새삼스럽게 담배 먹고 싶은 것을 느끼며 난장보살을 바라보았다. 일하던 농민들은 약조나 한 듯이 일시에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누구나 상대의 눈동자에서 담배 먹고 싶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면사무소에 앉아 이야기하는 그들의 눈에 걸리는 것이 싫어서 누구 한 사람 쉬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숨을 후 쉬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쉴새없이 떨어져 쌓이는 벼알을 바라보았다. 담배 한 모금 맘놓고 먹지 못하고서 저렇게 애써 지은 쌀알을 덕호네 함석창고에 들여보낼 생각을 하니, 어제 구루마를 부서트리던 그 순간의 감정이 또다시 폭발되는 것을 느꼈다. |
| 마당이 보이지 않도록 쌓이는 저 벼알! 병아리의 털같이 그렇게 노란 수염이 하늘을 가리키고 재미나게 쌓인 저 벼알! 저 벼알은 역시 자기들에게는 귀엽고 아름다운 빛만 보이고 나서 맘놓고 만져 보기도 전에 덕호의 창고로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
| 어린것들은 집에서, |
| "아빠 하얀밥 먹지, 오늘은?" |
| 오늘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를 붙들고 이렇게 소곤거릴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뭐라고 대답하랴! 여름내 가을에는 하얀밥 준다!고 어르던 그 말! 지금 와서는 또 뭐라고 말하랴!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저 벼알을 보았을 때 벼알이 아니라 그들의 가슴폭을 마디마디 찌르는 살대 같아 보였다. |
| 그들은 멍하니 어제 일을 되풀이하며 첫째를 돌아보았다. 그때 순사와 덕호는 이리로 온다. 또다시 그들은 가슴이 두근거리며 하던 생각이 끊기고 말았다. 덕호는 순사와 같이 그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후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멍하니 불타산을 바라보았다. 오래잖아 저 산에는 눈이 하얗게 덮일 터인데…… 우리들은 그때에 뭘 먹고 사나? 하였다. |
| 가을을 맞은 청초한 저 불타산. |
| 그 위로 하늘이 파랗게 달음질쳐 갔다. 첫째는 그 하늘을 묵묵히 바라볼 때, 어젯밤 순사부장이 자기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에게 법이란 것을 가르쳐야겠다" 하던 말이 그의 머리에 휙 떠오른다. |
| "법, 법…… 법, 법에 걸리면 죽이는 법까지 있다지?" |
| 그가 법이란 막연하게나마 전통적으로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알았지마는…… 아니 지금도 그렇게 알지마는, 어제 일을 미루어 곰곰이 생각하니 웬일인지 그 법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엉킨 실마리가 그의 온 가슴을 꽉 채우고 말았다. |
| "우리들이 어제 덕호와 싸운 것이 법에 걸리는 일이라지? 그 법…… 법……." |
| 그는 머리를 돌려 가며 몇 번이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점점 더 답답만 할 뿐이지, 뒤엉킨 실끝을 고르는 수가 없었다. 그때 난장보살이 휙 쳐다보았다. |
| "이 곰 뭘 그리 중얼거리니?" |
| 첫째는 그의 말이 입 밖에까지 나간 것에 스스로 놀라며 머리를 푹 숙였다. |
| 추수가 끝난 초겨울이었다. 읍에서 군수가 나와서 농민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군수가 나왔다니까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가야만 되는 줄 알고 그러지 않으면 벌금이나 물리지 않을까? 하여 모두 모였다. |
| 이십여 간이나 되는 면사무소 내에 농민들이 빽빽히 들어앉았다. 단상에는 군수와 면장이 앉았고 그 옆으로는 면서기들이 앉았다. 그들은 이번 신임 된 군수라는 뚱뚱한 양복쟁이를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았다. 먼저 면장이 나와서 간단한 말로 군수를 농민들에게 소개하였다. 뒤미처 군수가 나와서 몇 번 기침을 한 후에, |
| "어…… 내가 이번에 여기 나온 목적은 여러분들도 이미 면사무소를 통하여 알았겠지마는…… 내가 신임인만큼 군내 상황도 시찰할 겸 더욱 여러분에게 절실하게 이르고 싶은 것이 있어 나온 것이오. |
| 우리 조선으로 말하면 어…… 팔 할 이상이 농민들이오. 그러니 농민들의 성쇠는 즉 국가 흥망의 기원이 될 것만은 사실이오. 옛날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니라 한 말이 있지 않소." |
| 여기까지 들은 그들은 저렇게 귀하신 어른의 입에서 자기들이 하는 농사를 찬사하는 말이 나오니 이것이 꿈인가 하였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감격에 붙들리었다. |
| "우리가 농사를 부지런히 하여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 거기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말하고자 하오. 재래의 농민들이란 그저 수굿수굿 김만 매면 되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틀린 것이오. 어떻게 하면 밭에서 곡식이 많이 날까, 어떻게 하면 작은 밭을 가지고도 큰 밭에서 내는 곡식을 낼까, 다시 말하면 농사하는 방법을 꼭 알아 가지고 농사를 지어야 한단 말이오. 어…… 예를 들어 말하면 어……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의 재주를 보아 그에 적당한 일을 시켜야 그 일이 잘될 것이 아니오? 그러니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밭에 곡식을 심는 것도 만일 어긋나게 심으면 좀더 곡식이 많이 날 것이로되 적게 난단 말이오. 수수나 콩을 심어 잘될 밭에다 조나 육도를 심으면 적게 날 것이오. 그러니 먼저 그 밭에 어떤 것이 적당할까를 생각하여 심어야 한단 말이우. 어…… 그리고 퇴비 말이오, 무엇보다도 이 퇴비를 많이 제작해 두었다가 봄에 가서 밭을 잘 거두어야 하우. 여러분이 좀더 부지런을 내면, 어…… 일하다가 쉬는 틈을 타서 풀을 깎아다 퇴적장에 쌓아 썩히시오. 이것이 봄에 가서는 훌륭한 거름이 될 것이오. 공연히 읍 같은 데 가서 금비를 사 나를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자작 만들어 쓰란 말이오." |
| 그들은 자기들의 농사하는 이치를 이렇게 꼭꼭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되었는지 몰랐다. 그래서 서로 돌아보며 입을 쩍쩍 벌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