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14

마침 중대문 소리가 찌꺽 하고 나므로 그들은 놀라 서로 바라보았다.
신발 소리가 저벅저벅 나므로 할멈은,
"유서방이우?"
뒤미처 문이 열리며 유서방과 덕호가 들어온다. 그들은 뜻하지 않은 덕호가 들어오매 놀라 일어난다. 할멈은,
"영감님, 어떻게 밤에 오셔유."
유서방은 비칠거리는 덕호의 손을 붙들고 들어와서 아랫목에 앉힌다. 갑자기 술내가 후끈 끼친다. 덕호는 눈을 번쩍 뜨고 선비와 할멈을 본 후에 드러누웠다. 선비는 얼른 베개를 꺼내서 유서방을 주었다.
"선비야, 나 다리 좀 주물러 다우."
혀 곱은 소리로 덕호는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가슴이 서늘해지며, 덕호의 곁으로 갈 생각이 난처하였다. 할멈은 속히 주무르라는 듯이 선비에게 눈짓을 하여 보였다.
"큰댁은 안 오시는가요."
"음, 옥점 어미? 온정, 온정, 아이구 취한다, 푸푸."
침을 뱉으며 덕호는 발짓 손짓을 하였다. 그들은 멍하니 덕호를 바라보며, 뭐라고 꾸지람이나 내리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덕호가 기침을 할 때마다 눈을 크게 뜨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진지 지을까유?"
한참 후에 할멈이 이렇게 물었다. 덕호는 눈을 번쩍 뜨고 할멈과 선비를 보았다.
"아 아니, 선비야 나 다리나 좀 쳐다우."
선비는 얼굴이 빨개지며 할멈을 쳐다보았다. 유서방과 할멈은 선비를 바라보며 어서 다리를 치라는 뜻을 보이었다.
"다리 쳐라. 이년 같으니, 응 아이구, 다리야, 다리야."
다리를 방바닥에 쿵쿵 들놓았다. 할멈은 선비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덕호의 다리를 보았다. 선비는 하는 수 없이 덕호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다리를 붙잡으며 툭툭 쳤다. 양복 바지에도 술을 쏟았는지 술내가 후끈후끈 끼쳤다. 선비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어, 내 딸 용하다."
덕호는 머리를 넘성하여 선비를 보다가 도로 누우며,
"에, 취한다. 참 취한다. 어서 자네는 나가 자지."
덕호는 유서방을 바라보았다. 유서방은 졸음이 꼬박꼬박 오나 덕호의 앞인지라 혀를 깨물고 앉아서 참다가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 일어났다.
"할멈, 내일 밥을 일찍 하게."
할멈은 황망히,
"예!"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며 덕호의 시선을 피하였다.
"어서 나가 자게. 그래야 밥을 일찍 하지."
"예."
할멈은 일어났다. 선비는 일어나는 할멈을 보며 따라 일어났다.
"허…… 거 정 내일부터는 면사무소에를 간단 말이지. 하기 싫어도 하는 수밖에…… 면장인지 동네장인지, 허허 허허."
덕호는 혼자 하는 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할멈과 선비의 시선은 마주쳤다. 그리고 영감님이 면장이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들도 좋았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미덥지 못하던 덕호가 차츰 미더운 것을 깨달았다.
"선비야 자리 펴다우, 그러구 너도 할멈과 같이 나가거라."
선비는 가벼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어떤 무거운 짐을 벗어난 듯이 몸이 가뿐하였다. 그는 냉큼 자리를 펴놓고 나오다가 다시 돌아서서 등불을 가늘게 하고 할멈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영감님이 면장을 하신 게지?"
건넌방으로 건너온 할멈은 말하였다. 선비는 빙긋이 웃으며 자리를 깔았다.
"이애 영감님이 잘나기는 하셨니라. 글쎄 면장까지 했으니 이전 이 용연서는 누가 그를 당하겠니."
선비는 할멈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베개 밑에 손을 넣고 다리를 쭉 폈다. 해종일 피로해진 몸이 순간으로 풀리는 듯하였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덕호와 같은 아버지를 둔 옥점이가 끝없이 부러웠다. 나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할 때 앞집 서분 할멈에게 들은 말이 얼핏 생각히었다. "너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말이 덕호에게서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더라" 선비는 그 후부터 틈만 있으면 이 말이 문득 생각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참말 같지는 않았다. 지금 덕호가 선비에게 구는 것을 보아서…… 그는 지금도 굳게 그 말을 부인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무심히 머리맡에 놓인 목화 송이를 집어다 볼에 꼭 대었다.
"선비야!"
하는 덕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선비는 냉큼 머리를 들었다.
"선비야."
부르는 소리가 재차 들린다. 선비는 할멈을 흔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할멈은 응 소리를 지르며 돌아눕는다.
"왜 그러니?"
"영감님이 부르시어."
"나를?"
"아니 나를 부르시어."
"이애 그럼 들어가 보려무나."
"할머니두 일어나라우, 같이 들어가자우."
"이애, 무슨 일이 있냐? 무슨 심바람 시키려고 그러시는데."
졸음이 오므로 일어나기 싫어서 할멈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선비는 기어코 할멈을 일으키어 가지고 마루까지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오냐 선비냐."
"네."
"물 떠오너라."
할멈은 냉큼 건넌방으로 들어가고 선비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떠가지고 마루로 오나 할멈이 없다. 그래서 머뭇머뭇하다가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히 들어갔다.
술내가 가득한데 가는 불빛에 덕호의 머리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선비는 얼른 등불을 돋우었다. 그리고 덕호의 앞으로 갔다. 덕호는 아까보다 술이 좀 깬 모양인지 눈 뜨는 것이 똑똑하였다.
"술 먹은 사람 자는 데는 으레 물을 떠다 두어야 하느니라."
덕호는 이불로 몸을 가리고 일어앉아 물그릇을 받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되게 꾸지람이 내리려는가 하여 머리를 숙인 채 발끝만 굽어보았다.
"참 내가 잊었구나! 그제 옥점이년의 편지에 너를 서울로 올려 보내라고 하였두나! 공부를 시키겠다구."
선비는 생각지 않은 이 말에 앞이 아뜩해지며 방 안이 핑핑 돌았다.
"그래 너 서울 가고 싶으냐? 내 말년에 아무 자식도 없어 너희들이나 공부시켜 재미 붙이지, 붙일 곳이 있느냐."
덕호는 언제나 술이 취하면 자식 없는 푸념을 하곤 하였다. 덕호는 한참이나 선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쉰다.
"잘 생각해서 말해라. 내가 너는 옥점이년과 조금도 달리 생각지 않는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마는……."
그때 선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나 아버지가 살아온 듯한, 그러한 감격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여 자기의 맘을 만분의 하나라도 표현시킬까, 두루두루 생각해 보나 그저 가슴만 뛸 뿐이지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덕호는 물 한 그릇을 다 먹고 빈 그릇을 내준다.
"오늘은 밤두 오랬으니 나가서 자구, 잘 생각해서 내일이나 모레지간에 대답을 하여…… 너 하고 싶다는 대로 해줄 터이니…… 응."
덕호는 감격에 취하여 더욱 발개진 그의 볼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덕호의 맘은 선비가 어떠한 요구를 하든지 다 들어 줄 것 같았다. 선비는 물그릇을 들고 불을 가늘게 낮춘 후에 건넌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목화보 위에 칵 엎디었다. "옥점아!" 그는 처음으로 옥점이를 이렇게 불러보았다. 캄캄한 방 안에 오직 할멈의 코고는 소리가 들릴 뿐이고 잠잠하였다. 그는 옥점의 그 얼굴을 생각하였다. 쌀쌀해 보이던 그 눈과 그 입모습! 사정없이 나가는 대로 말하던 그의 말!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그리워졌다. 동시에 그것이 참일까, 그가 나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지? 그말이 참일까? 영감님이 술취한 김에 되는 대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 온가지 의문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불을 켜고 목화 송이를 고르기 시작하였다.
한 송이 또 한 송이, 흰 목화 송이가 치마 앞에 모일수록 그의 생각도 이 목화 송이와 같이 덮이고 또 덮여, 어느 것부터 생각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떡허누? 참말이라면 나는 서울을 가볼까. 그래서 옥점이와 같이 학교에도 다니고, 그러면 그 수놓는 것도 배우게 될 터이지! 하였다. 그때의 그가 부럽게 바라보던 가지가지의 색실 타래가 눈앞에 보이는 듯이 나타났다. 그는 목화 송이를 꼭 쥐고 멍하니 등불을 바라보았다. 서울을 가? 내가 그러면 이 목화는 누가 트나? 그리고 물레질은 누가 하고? 하며 혼곤히 자는 할멈을 돌아보았다. 그때 뜻하지 않은 첫째의 얼굴이 또다시 휙 떠오른다. 그는 머리를 돌리며, 그는 종내 여기서 살려나…….
해가 지고 아득아득해서야 개똥이네 마당질은 끝이 났다. 어둠 속으로 뿌옇게 솟아오른 나락더미! 나락더미를 중심으로 둘러선 농민들은 술에 취한 듯이 흥분이 되어 있었다.
유서방과 덕호가 나왔다. 유서방은 들어가서 등불을 켜가지고 나왔다. 땃버리는 대두를 들고 나락더미 앞으로 가서 나락을 손으로 헤쳐가면서 말을 되었다.
"한 말이요는 가서요우."
땃버리는 그 둥글둥글한 음성을 길게 빼어 가지고 소리 곡조로 마디마디를 꺾어 돌렸다. 뒤미처 쏴르륵 하고 섬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벼알 소리! 그들의 가슴은 어떤 충동으로 스르르 뜨거워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의식간에 그들은 눈을 썩썩 비비치고 동무의 어깨를 누르며 바짝바짝 다가들었다. 그때마다 옆의 동무는,
"이 사람아, 넘어지겠구먼!"
허허 웃으며 그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한 섬, 두 섬, 석 섬, 볏섬은 차례로 묶여 놓인다. 그들은 제각기 몇 섬이 날까? 하는 호기심에 묶어 놓은 볏섬과 나락더미를 번갈아 비교해 보았다.
땃버리가 마지막 말수를 되어 볏섬에 부으며,
"열닷 섬 말이요는 가서요우."
수심가라도 한 곡조 부르려는 듯이 그렇게 흥이 나서 음성을 내뽑았다.
"열닷 섬 닷 말! 잘은 났다!"
가슴을 졸이고 섰던 그들은 똑같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땃버리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개똥이 어깨를 탁 쳤다.
"이 사람아 한턱 내야 되리. 올 농사는 자네네만큼 된 사람이 없으리!"
"암, 허허."
개똥이는 이렇게 대답하며 흘금 덕호를 쳐다보았다. 덕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가 가만히 섰는 것을 보아 만족해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곡식이 잘 나지 못한 때면 덕호는 잔걱정을 하며 가만히 서 있지를 못하고 왔다갔다하면서 밭을 잘 거두지를 못하였느니 미리 베어다가 먹었느니 하고 야단을 치곤 하였던 것이다.
유서방은 구루마를 갖다 대고 볏섬을 쾅쾅 실었다. 그들도 볏섬을 받들어 올려놓으며,
"무겁다! 참 벼 한 섬이 이다지도 무거운가!"
덕호가 들으라고 일부러 이렇게 말하였다. 덕호는 어둠 속으로 궐련만 뻑뻑 빨면서 섰더니,
"개똥이! 자네 여기서 다 회계 끝내고 말지! 후일에 다시 쓰더라도…… 응? 자네 빚내 온 돈이 얼마인지?"
개똥이 말을 들어 보려고 덕호는 이렇게 물었다. 개똥이는 덕호가 말하기 전부터 빚 말을 내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가 마침 이 말을 듣고 보니 전신의 맥이 탁 풀렸다. 아무 대답이 없는 개똥이를 안타까운 듯이 바라보던 덕호는 저놈이 빚을 물지 않으려는 속이구나! 하고 어떻게 하든지 이 자리에서 볏섬으로 차지하지 않으면 못 받을 것 같았다.
"자네 십오 원 내온 것이 간 정월달이 아닌가. 그러니 이달까지 꼭 열 달일세. 그래 이자까지 하면 이십 원이 넘네그리. 우선 벼 넉 섬은 날 줘야 하네. 그래도 내가 삼사 원은 못 받는 속일세. 그러구 비료값과 장리쌀은 으레 여기서 회계할 것이지……."
유서방을 돌아보았다.
"어서 저기서 일곱 섬만 가져오게. 그래도 나는 십여 원을 받지 못하는 셈일세. 그러나 할 수 있는가, 자네들도 농사를 해먹고 살아가야겠으니 우리에게로 오는 반 섬과 자네게로 가는 반 섬 합해서 한 섬은 내가 주는 것이니 그리 알게. 그것은 이번 농사를 잘 지었다는 것 때문이어, 허허."
유서방은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볏섬을 낑 하고 져다가 구루마에 실어 놓는다. 그들은 이제까지 깜박 잊었던 하루 종일의 피로가 조수와 같이 밀려드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볏짚단 위에 펄썩펄썩 주저앉았다. 그때 첫째의 머리에는 풍헌 영감의 모양이 휙 떠오른다.
입도차압(立稻差押)을 당하고 정신없이 아래윗동네를 미친 듯이 달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여보게 이런 법이 있는가, 벼를 베기도 전에……."
그 다음 말은 막히어 하지 못하였다. 첫째는 무슨 말인가 하여 풍헌의 뒤를 따라 논까지 가보았다. 논귀에 세운 조그만 나무판자에는 무슨 글인지 써 있었다.
풍헌은 그 나무쪽을 가리키며,
"글쎄 집달리라던가? 하는 양복쟁이가 이것을 꽂아 놓으면서, 벼를 베지 못한다구 허두먼……."
풍헌은 이렇게 말하며 누릇누릇한 벼이삭을 바라본다. 첫째는 다가서며,
"누구의 빚을 얼마나 졌습니까?"
"아 덕호의 빚이지, 그것 좀 참아 달라구 하는데, 이렇게까지 할 게야 뭐 있겠나! 전날 편지 배달부가 이런 것을 갖다가 주고 가두먼. 그래 나는 그게 무엇인가? 하고 두었더니, 글쎄 글쎄 이런 일이 날 줄이야 누가 꿈밖에나 생각하였겠나."
풍헌은 거지 안에서 다 해진 편지봉투를 꺼내어 보인다. 첫째 역시 그것을 한 자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편지봉투만 이리저리 만지다가 풍헌을 주었다.
"거게 뭐라고 했나?"
풍헌은 허리를 굽혀 들여다본다. 첫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내니 알겠쉬까."
"저 노릇을 어찌해야 좋겠나."
"덕호한테 가봤습니까?"
"가보기를 이를까. 어젯밤에도 밤새껏 가서 졸랐네. 그래두 소용없네, 이를 어쩌면 좋겠나. 자네 좀 가서 말해 볼 수 없겠나?"
쳐다보는 풍헌의 그 눈! 첫째는 그만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달음으로 덕호한테 와서, 하다못해 주먹 담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을 짐작하는 첫째는 애꿎은 한숨만 푹 쉬고 저 앞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