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이, 난 그런 것은 싫어요. 그게 뭐야, 누가 껄껄해서 그것을 입어." |
| 어머니가 고리에 넣은 광목 바지를 보며 옥점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
| "그럼 뭘 입겠니?" |
| "사 입지, 내의를. 이런 것…… 저 할멈이나 줘요." |
| 옥점이는 광목 바지를 할멈에게 던졌다. 할멈은 꿈칠 놀랐다. |
| 옥점 어머니는 광목 바지를 냉큼 주워서 농 속에 넣으며, |
| "너 안 입으면 나 입겠다." |
| 할멈은 광목 바지를 하나 얻어 입는 횡수가 돌아오는 줄 알고 주름잡힌 그의 얼굴이 몇 번이나 경련을 일으키어 벌렁벌렁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옥점 어머니의 그 얄미운 행동에 할멈은 생각지 않은 섭섭함이 그의 가슴을 찌르르 울려 주었다. 그리고 나프탈린의 독한 내가 한층더 그의 숨을 꾹 막아 주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돌리며 재채기를 두어 번 하고 나니 눈물까지 흘렀다. |
| "정, 어머이, 계란은 신철 씨가 저 바스켓에다 넣겠다구 하우. 그러면서 짚이든지 무어든지 밑에 받칠 것을 가져오라구 해요." |
| "응 아이구! 안심찮아라. 내 바쁜 것을 생각해서 그러누나. 사람인즉은 참말 진짜다. 할멈 그렇지? 어쩌면 계집애도 그리 찬찬치 못하겠는데 항 장부로 태어나서 그렇단 말이우. 에그 네 그 본떠야 헌다!" |
| 옥점이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
| "저 할멈, 벽장 속에서 솜 꺼내 주." |
| 할멈은 갑자기 솜은 무얼 하려누 하고 벽장을 열고 솜보를 꺼내었다. 그리고 솜을 뒤져 보이며, |
| "어떤 것을……." |
| "아이그 그것 못써! 서울까지 갈 것을 그런 낡은 솜을 넣으면 되나, 그 밑의 햇솜을 주." |
| 할멈은 그제야 계란 밑에 놀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솜보 밑에서 말큰말큰한 햇솜을 꺼내어 옥점이를 주었다. 옥점이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휙 빼앗는 듯이 받아 가지고 쿵쿵 뛰어나간다. 할멈은 물끄러미 그의 뒤꼴을 바라보며 작년 가을에 따들이던 목화 송이를 생각하였다. |
| 말은 엿 마지기라 하나 엿 마지기 좀 넘는 듯한 앞벌 목화밭에서 선비, 할멈, 유서방이 해를 꼭 지우며 목화를 따곤 하였다. 그러나 탐스러운 목화 송이에 취하여 지리한 것을 모르고 그 목화를 따곤 하였던 것이다. 한 송이 또 한 송이를 알알이 골라 가며 치마 앞이 벌어지도록 따서 모은 그 목화 송이! 목화나무에 손이 찔리고 발끝이 상하면서 모은 저 목화 송이! 머리가 떨어지는 듯한 것을 참고 이어 나른 저 목화 송이! 자기들에게는 저고리 솜조차도 주기 아까워 맥빠진 낡은 솜을 주면서, 계란 밑에 놓을 것은 서울 갈 것이니 햇솜을 준다. 여기까지 생각한 할멈은 눈가가 빨갛게 튀어오르며 다시 한번 재채기를 하였다. |
| "오뉴월 고뿔은 개도 안 앓는다는데 할멈은 웬일이유." |
| 우리는 개만두 못하지유! 하고 입술이 벌어지는 것을 도로 삼켜 버렸다. 그리고 옷을 뒤지는 그의 손에는 아직도 햇솜을 만지던 말큰말큰한 감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 가을에 그 많은 목화를 또 따서 이어 날라야 하겠군! 하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었다. |
| "글쎄 할멈, 저 건넌방 손님이 대학당을 다니는데 우리 조선서는 끝가는 학교라우, 그러구 오는 봄에 졸업하게 되면 아주 월급 많이 받고…… 아이고 무엇이 된다나?" |
| 머리를 돌려 생각하더니, |
| "잊어서 모르겠군! 그러니 우리 옥점의 신랑감 되기 부끄럽지 않지? 난 이전 내일 죽어도 맘을 놓아……." |
| 저 혼자 흥이 나서 주고받고 한다. 할멈의 귀에는 이런 말이 한 마디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집에 오래 있을수록 일만 해주었지, 옷 한 가지 변변하게 얻어 입지 못할 터이니, 그만 이 가을철 들면 어디로 나갈까? 하는 생각이 금시로 든다. 그러나 마침 나가더라도, 무손한 자기로서 별 신통수는 없을 터이고 어떻게 한담? 어서 죽기나 해도 좋으련만……. |
| "할멈, 우리 옥점이 혼례식을 언제 하는 게 좋겠수?" |
| 할멈은 무슨 말인지 잘 개어 듣지 못했다. 그래서 멍하니 옥점 어머니의 얼굴만 바라본다. |
| "우리 옥점이 혼례식 말이어." |
| "네." |
| 또 그 말을 꺼내누나 하고 머리를 숙였다. |
|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 |
| "글쎄요……." |
| "남들은 가을에 잘 하는데, 우리도 이 가을에 했으면 좋으련만 어찌들이나 할라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호호, 요새들은 저희들끼리 어쩌구 어쩌니까, 우리 늙은 것들은 굿이나 보다가 떡이나 먹을 수밖에 없단 말이어." |
| 요새 옥점 어머니는 생각하느니 이것뿐이었던 것이다. 할멈은 잔치를 하게 되면 올해도 햇솜 구경을 못 하겠구나 하였다. |
| 이튿날 아침, 컴컴해서 일어난 신철이는 타월과 비눗감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유서방은 물을 다 긷고 닭 모이를 주고 있다. 그리고 부엌에서는 나무 꺾는 소리가 딱딱 하고 들린다. 신철이는 중문을 나가며 얼른 부엌을 돌아보았으나 아직도 컴컴해서 누구가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뿌연 속으로 아궁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만이 보일 뿐이다. 그는 곧 울고 싶은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선비를 한번 마주앉아 말 한마디 건네어 보지 못하고 떠날 생각을 하니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는 큰대문을 나서면서 한참이나 망설망설하였다.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렇게 망설이는지 자신도 모르고 한참이나 빙빙 돌다 마침 울 뒤로 갔다. |
| 여기 와서 울바자 새로나 한번 더 선비의 얼굴을 볼까 하는 실끝 같은 희망을 가지고 왔으나 그것은 뻔히 안 될 것이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차츰 새어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이제 떠나면 용이해서는 여기 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며 그 동안 선비는 어떤 곳으로 시집을 가겠지! 그래서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농사를 지어 가면서 그 고운 얼굴에도 주름살이 한둘 잡힐 터이지! 하는 센티멘털한 생각이 그의 가슴을 힘껏 울리어 주었다. 따라서 이 순간 자기가 안타깝게 선비를 그리워하던 그 뜻조차도 영원히 스러질 한낱의 비밀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을 저 하늘가를 바라보면서 차츰 농후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원소를 향하여 걸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원소에 가서 세수를 하고 체조를 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행여나 선비를 만나 볼까 하였다. 그러나 그날 버들잎을 뿌리며 먼빛으로 바라본 그 후로는 한 번도 원소에 오는 선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
| 몇 번 할멈은 보았으나, 선비는 웬일인지 만날 수 없었다. 선비라는 그 처녀도 역시 맞당해서 보면 별 인간은 아니련만……. |
|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원소까지 왔다. 원소의 푸른 물은 말없이 그를 반겨 맞는 듯, 그리고 석별의 인사를 그 가는 물소리로 전해 주는 듯하였다. |
| 그는 이슬이 방울방울 매어달린 풀숲을 들여다보며, 자연의 조화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때 거위 한 쌍이 긴 목을 빼고 푸른 물 위에 흰 그림자를 비추며 헴쳐 돌아간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이 거위 한 쌍! 얼마나 다정하고도 순결한 감을 일으켜 주는지…… 그는 벌떡 일어났다. |
| 아침 연기에 어린 이 용연 동네! 이 역시 오늘 아침으로 마지막이다. 선비를 꼭 한 번만 만나 보고 그의 포부를 들었으면…… 그의 움직이던 시선이 옥점의 집에 멈추었을 때,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제 낮에 옥점의 모녀한테 개물리듯 하던, 선비의 측은하고도 아리따운 자태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그리고 이리의 굴 같은 저 옥점의 집에서 온갖 모욕을 받으며 그날그날을 지내는 선비! 그 선비를 그 자리에서 구원할 의무도 역시 자기가 져야 할 것 같았다. 그가 국문이나 아는지? 어떻게 하든지 그를 서울로만 끌어올렸으면 좋겠는데…… 하였다. |
| 그는 두루두루 또 생각해 보았다. 선비를 서울로 올리려면, 자기가 옥점이를 잘 꾀었으면 쉽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옥점이와 결혼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 오활한 성격! 더구나 미국 영화배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교가 넘쳐흐르는 그 눈매! 길 가던 남자라도 단박에 홀릴 만한 그의 독특한 표정, 그것이 신철이로 하여금 더욱 싫증나게 하였다. |
| 도회지에서 어려서부터 자란 그였건만, 보고 듣는 것이 그런 사치한 것뿐이었건만 그는 웬일인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동무들에서, 변태적 성격을 가졌다고까지 조롱을 받은 때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여름 이 동네 와서 뜻하지 않은 선비를 만난 후로는 차디찬 그의 성격도 어디로 달아났는지 그 스스로도 놀랄 만큼 되었다. |
| 그는 어떻게 해서 선비를 서울로 올려 갈까를 곰곰 생각하며 그가 국문이라도 알면 자기의 이러한 뜻을 몇 자 지어서라도 전달하고 싶은데 역시 국문이나마 배웠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포켓에서 시계를 내어 보면서 점점 가슴이 죄어들었다. |
| 그는 시간이 급하므로 세수를 하려고 언덕 아래로 내려와서 물에 손을 담그며 바라보았다. 푸른 물 위에 핑핑 돌아가는 저 거위! 그는 급한 것도 잊고 거위를 향하여 물을 후르르 뿌리고 또 뿌렸다. 한참이나 이렇게 하던 그는 정신이 번쩍 들어 세수를 하고 내려왔다. 그가 덕호의 집 울바자를 돌아오다 우뚝 섰다. 울바자를 타고 넘어오는 저 손을 보았기 때문이다. |
| 신철이는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호박잎에 반만쯤 가린 호박 한 개가 얼핏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손은 이슬에 젖은 호박을 뚝 따가지고 천천히 바자를 넘어가고 있었다. 신철이는 무의식간에 한 걸음 다가서며, 저게 누구의 손일까? 하고 생각할 때, 그 손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 손! 마디가 굵고 손톱이 갈리어서 얼핏 누구의 손임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
| 신철이는 얼른 바자 곁으로 가서 바싹 붙어 서며, 그 손의 임자를 찾았다. 그는 벌써 나뭇가리 옆을 돌아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치맛귀가 얼핏 보이고 사라진다. 누굴까? 할멈의 손이다! 선비의 손이야 설마한들 그럴 수가 있을까? 아무리 일을 한다고 해도 나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아! 않아!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부엌에서 쓸어 나오는 그릇 가시는 소리, 도마 소리, 옥점의 호호 웃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쓸어 나온다. |
| 그때, 그의 머리에는 끝이 뾰죽뾰죽한 가는 손가락이 떠오른다. 문득 그는 선비의 손! 하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손으로 인하여 불쾌하였던 생각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선비의 손이야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도 고운 선비에게…… 하며 언젠가 무의식간에 본 선비의 그 손이 오늘 아침 미운 그 손으로 인하여 어림없는 착각이 생겼던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나니 그는 한층더 선비가 그리워지고 그가 떠날 시간을 좀더 연장시키고 싶었다. |
| "유서방, 저 산에 가서 어서 서울 손님 나려오시라게." |
| 옥점 어머니의 이러한 말을 들으며 신철이는 집으로 들어왔다. |
| "아이 어서 들어와서 진지 자시고 떠나요." |
| 옥점이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아침 화장을 산뜻하게 하고 마루에 섰다가 신철이를 맞는다. 신철이는 분내를 강하게 느끼며 마루로 올라앉았다. 안방에 앉았던 덕호는 나오며, |
| "오늘 가면 언제들이나 또 오려누." |
| 신철이가 덕호에게 대하여 말을 낮추어 하라고 한 후부터 덕호는 이렇게 하게를 하였다. |
| "글쎄요…… 이번 와서 댁에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
| "아, 원…… 별소리를 다 하눈." |
| 길게 지어진 신철의 눈을 바라보면서, 옥점이와의 결혼을 이 자리에서 대강 말로라도 물어 보고 결정할까? 하고 얼른 생각힌다. 그러나 저희들끼리는 벌써 내약이 있어 가지고 있는 모양이니 언제나 저희들이 먼저 말하기까지 가만히 있으리라 하여, 잠잠하고 말았다. 더구나 요새 공부한 것들은 혼인까지라도 저희들끼리 뜻이 맞아 가지고 되는 것을 알므로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다. |
| 밥상이 들어온다. 덕호는 넘성해서 들여다보았다. |
| "이거 찬이 없어 되었는가, 어쩌나 많이 먹게…… 그러구 이애, 널랑은 저 닭국을 먹지 마라, 그 약 먹으면서는 고기는 일절 먹지 않아야 한다더라." |
| 옥점이는 헬금 쳐다보았다. |
| "아버지 난 그 약 안 먹을 테야, 써서 먹을 수가 있어야지." |
| "엣, 그년! 애비가 네 몸에 좋겠기에 먹으라는데…… 그 앙탈이냐…… 자네가 좀 착실히 모르는 것은 일러주게. 키만 컸지, 귀히만 자라서 뭘 알아야지……." |
| 귀여운 듯이 옥점이와 신철이를 번갈아 본다. 신철이는 속으로 놀랐다. 그 말이 심상한 말이 아님을 깨달으며, 웬일인지 얼굴이 좀 다는 것을 느꼈다. 옥점이는 술을 들며 눈을 내리떴다. 그의 눈썹은 너무 짙게 그린 듯하였다. |
| "어서 많이 먹우." |
| 부엌에서 옥점 어머니가 들어오며 이렇게 말한다. 신철이는 저를 들다가 흘금 바라보았다. |
| "네, 많이 먹겠습니다." |
| "이애, 그 국 한 그릇 더 떠오너라." |
| 뒤미처 선비가 국그릇을 들고 마루로 통한 부엌문에 비껴선다. 펄펄 오르는 국김에 불그레하니 타오르는 그의 얼굴! |
| 그리고 언제 보아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눈등의 검은 사마귀는 그의 침착한 성격을 대표한 듯하였다. 그때 신철이는 옥점의 강한 시선을 전신에 느끼며 옥점 어머니가 주는 국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 국은 선비가 나에게 마지막 주는 국이거니 생각이 들자, 그의 손은 약간 떨렸다. 동시에 몇 달 동안 누르고 눌렀던 정열이 뜨거운 국그릇을 향하여 쏟아지는 것을 그는 느꼈다. |
| 가을철 들면서부터 덕호는 읍의 출입이 잦아졌다. 그리고 안 입던 양복까지도 말쑥하게 입는 것을 가끔 볼 수가 있었다. 읍에 출입이 잦으면서부터 덕호는 간난이를 내어보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읍에 기생첩을 했다거니 처녀첩을 했다거니…… 하고 수군수군하는 말이 많아졌다. 그 바람에 옥점 어머니는 화가 치받쳐서 집안에 붙어 있지 않고 남편의 뒤를 따라 역시 읍 출입이 잦았다. |
| 요새도 부부가 들어간 지가 벌써 닷새나 되어서도 읍에서 아무 소식이 없었다. 선비와 할멈은 그 크나큰 집에서 쓸쓸하게 지내었다. 밤이면 일하러 갔던 유서방이 와서 사랑에서 자나 그 역시 하루 종일 시달린 몸이라, 잠만 들면 그뿐이었다. 그러므로 할멈과 선비는 밤에도 맘놓고 자지를 못하고 방에 불을 끄지 못하였다. |
| 오늘 밤도 할멈과 선비는 낮에 따온 목화송이를 고르며, 모녀같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윗목에 놓은 화로에서 보글보글 끓던 두부찌개가 차츰 소리가 가늘어지다 이젠 끊어지고 말았다. 선비는 화로를 돌아보았다. |
| "오늘도 어머니가 안 오시려는 게요." |
| "글쎄 이제야 오기 글렀지, 아마 퍽 오랬을 게다." |
|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쳐다본다. 선비도 흘금 쳐다보았다. 시계는 열한시 반을 가리켰다. |
| "벌써 열한시 반이어요." |
| 할멈은 멍하니 바라보며, |
| "난 저것을 암만 봐도 모르겠으니…… 저 큰바늘은 무엇 하고 작은 바늘은 무얼 하는 게냐?" |
| 선비도 이렇게 꼭 집어 물으니,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빙긋이 웃으며, |
| "다 시간 보는 게지, 뭐유." |
| 할멈은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리고 목화 송이 속에 묻힌 고추 꼬투리를 골라 바구니에 넣었다. |
| "이애, 올해두 고추섬이나 좋이 딸 것 같다. 그 밭에 목화를 갈지 말고 다 고추를 심어 봤으면 좋겠더라." |
| "목화는 어데 갈구요?" |
| "목화는 저 감골 밭에 갈구. 그 밭이 목화가 잘될 밭이니라. 목화는 너무 땅이 걸어도 좋지 않구, 가는 모래가 좀 섞인 땅이 좋으니라." |
| 선비는 목화 송이를 들어 할멈에게 보였다. |
| "이거 보세요. 참 이런 것은 꽤 큰 송이지요. 이런 것은 몇 송이만 가져도 저고리 솜은 넉넉하겠어! 아이 참 크기도 해." |
| 휘황한 남포등 아래 빛나는 이 목화 송이는 얼마나 선비의 조그만 가슴을 흔들어 주었는지 몰랐다. 그는 문득 이런 것도 잘 그려 가지고 수놓으면 좋을지 몰라? 하였다. 그때에 비단을 찢는 듯한 옥점의 조소가 들리는 듯하여 그는 얼핏 머리를 숙였다. 따라서 그가 싫은 생각이 머리털 끝까지 훌썩 치미는 것을 느꼈다. |
| 할멈은 가만히 말을 내었다. |
| "올 가을에는 이 솜으로 우리 둘의 저고리 솜이나마 주었으면 좋지 않겠니? 네." |
| 할멈은 내리덮인 눈가죽을 번쩍 들고 목화 송이에서 티끌을 골라 낸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쉰다. 선비는 할멈의 저고리에 두던, 바람 가리지 못할 시커먼 솜을 생각하였다. 그 솜은 몇 해나 묵었는지 맥이 없고 가는 심사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잡아당기어 늘리려면 뚝뚝 끊어졌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할멈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의 눈가는 벌써 뻘겋게 튀어오른다. |
| "할머니, 올해야 좀 주겠지! 뭘, 작년에는 목화를 전부 팔기 때문에 그랬지만 올해야 안 팔겠지우." |
| "이애 그만둬라, 여름에 옥점이가 가져가는 계란 받침까지두 이 솜으로 했단다, 너 아니?" |
| 선비는 계란이란 말에, 계란 바구니를 들고 나오다가 넘어질 뻔하던 생각을 하며 무의식간에 한숨을 호 하고 쉬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서울 손님이 휙 떠오른다. 그들은 참말 복이 많은 사람들이어! 하였다. 옥점이와 서울 손님이 결혼하여 재미나게 살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앞길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수록 캄캄하였다. 그때 첫째의 얼굴이 휙 떠오른다. |
| 전에는 그런 것을 몰랐는데 이 가을철 들면서부터 분주해서 일할 때는 모르겠으나 밤이 되어 자리 속에 누우면 웬일인지 잠이 오지를 않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끝에 번번이 첫째가 떠오르곤 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