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12

이튿날 아침 옥점이가 눈을 번쩍 뜨니 아버지가 곁에 와서 그의 구실러진 머리카락을 내려 쓸고 있었다.
"아부지네!"
어젯밤 신철의 손을 얼핏 생각하였다.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망이 이 방 안에 빽빽히 들어찬 것을 그는 느꼈다.
"왜 이리 늦게 자냐."
"어젯밤 오래 있다가 잤에요."
어젯밤 신철이가 그를 꽉 껴안아 주던 생각을 하며 눈등이 불그레해졌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않으면 어젯밤 일을 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아부지…… 저 나 뭐 안 사줄래?"
덕호는 빙긋이 웃으며,
"뭘?"
"저, 피아노 말이어?"
"피아노? 아, 피아노란 게 뭐냐?"
듣느니 처음이었던 것이다. 옥점이는 호호 웃었다.
"참말 아부지는…… 저 왜 학교에 가보면 애들 창가 가르치는 풍금이라는 게 있지요?"
"응, 그래."
"그렇게 모양이 되었에요."
"응, 양금이라는 것을 사달라는 말이구나. 그것은 소용이 뭐냐?"
"뭐야 타지, 아부지두."
"그만둬라야, 공부나 했으면 됐지, 그까짓 것은 사서 뭘 하니."
"애이! 아부지두, 그게 있어야 되는 게야요. 어서 사줘요."
"그래 값이 얼마가?"
"꼭 사줄 테요?"
"글쎄, 말해 봐."
"꼭 사주면 말하구."
옥점이가 조르기 시작하면 못 견딜 줄을 번연히 아는지라 덕호는,
"그래 사주지."
"한 천 원 너머 가야 꽤 쓸 만하대요."
"천 원?"
덕호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옥점이는 아버지의 손을 끌어다 꼭 쥐며,
"아부지, 그게 그렇게 놀라워요? 뭐 아부지 재산은 다 나 가질 것이지요, 누구 딴 사람 주지 않지?"
눈에는 웃음을 가득히 띠었다.
"글쎄, 그게야 그렇지. 해두, 너 가질 것이라구 그따위 소용도 없는 것을 사서 버리면 되느냐?"
"아니야, 버리는 게 아니야. 서울에 가보면 웬만침 집 거느리고 사는 집은 다 있어요. 아부지는 보지 못하셨으니까 그런다니."
"아 글쎄 그것은 뭐 하느냐 말이다. 그게서 은금보화가 나온다면 혹시 사다 둘는지, 글쎄 글쎄 왜 공연히 사다가 놓아 둔단 말이냐. 넌 일년에 천 원의 이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니? 응."
"아부지 정말 안 해주면 난 자꾸 앓을 테야, 그것 가지고 싶어서."
"허허 그년 참, 그래 그게 가지고 싶어 앓는단 말이냐…… 좌우간 좀 두고 보자."
그렇게 딱 잡아떼지 않는 것을 보니 사줄 모양이다. 덕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이애 신철인가! 저 건넌방 학생이 무슨 학교를 다닌다?"
"경성제국대학 명년 졸업이라요."
"응, 그리고 집에 가산도 좀 있는 모양인가."
"그저 선생님의 월급 받는 것 가지고 살아가는 모양이야. 모르지 뭐, 또 어데 시굴 토지 같은 것이 있는지 누가 알아요."
옥점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아부지 저리로 가라우, 나 일어나게."
"야, 그런데 사람인즉은 아주 점잖은 집 자손인가 부더라. 아주 그 인사범절이 각별하두나."
"그럼 뭐……."
그는 신철의 얼굴을 머리에 그리며 어떻게 그를 보나 하는 부끄러움이 그의 가슴을 몹시 뛰게 하였다. 덕호도 만족한 듯이 빙긋이 웃으며 밖으로 나간다. 옥점이는 일어나며 자리옷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자리옷을 다시 들어 꼭 껴안았다. 어젯밤, 이 자리옷이 신철의 품에 안기었던 생각을 하니 그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자리를 개어 얹으며 방문을 배움히 열고 보니 건넌방 문이 활짝 열렸으며 신철이는 보이지 않았다. 또 산보를 나간 모양이다. 그는 언제나 컴컴해서 일어나 나가곤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가만히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방 안은 깨끗이 쓸렸으며 책상 위에 책들이 정돈되었다. 그리고 신철이가 신다 벗어 논 양말이 둥그렇게 뭉치어 책상 아래에 놓였다. 옥점이는 우두커니 서서 어젯밤 일을 되풀이하며 신철이가 나를 참사랑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앉은 그의 머리에는 또다시 선비와 신철이가 물그릇을 새 두고 마주섰던 장면이 휙 떠오른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질투의 감정이 욱 쓸어 일어난다. 신철이가 선비를 사랑할까? 어떤 것을 보고 사랑할까. 아니야, 그것은 내 착각이다. 신철이쯤 하여 일개 남의 집 하녀를 사랑할까? 더욱 공부도 못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를…… 얼굴만 고우면 무엇 해? 이렇게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였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하고 불쾌함이 따랐다. 그는 얼른 선비를 보고 어젯밤 일을 물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분주히 부엌으로 나왔다.
선비는 설거지를 하느라 왔다갔다한다.
"이애 선비야, 이리 좀 와."
선비는 옥점의 뒤를 따라서 뒤뜰로 나갔다. 새로 핀 수세미외꽃이 노랗게 울바자를 덮었다. 선비는 귀여운 듯이 바라보며 옥점의 곁으로 왔다.
"너 어젯밤 뭘 하러 나왔어?"
선비는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내 언제?"
"날 왜 속여. 너 밤에 나와서 서울 손님에게 물 떠주지 않았어."
그제야 그는 어젯밤 일이 생각히었다.
"응! 나 어제 변소에 나오니 서울 손님도 아마 변소에 나오셨던 모양이야. 그런데 날 보고 냉수를 한 그릇 떠달라고 하기에 떠다 올렸지. 왜?"
"음."
옥점이는 선비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끄덕해 보이며,
"어서 들어가 일해라."
하고 옥점이는 돌아서 들어간다. 선비는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한 생각을 하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울 손님이 무슨 말을 한 셈인가? 혹은 물그릇에 가 파리 같은 것이 들어갔던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솔잎 같은 것이 들어가서 서울 손님이 흉본 모양인가? 이러한 생각으로 조반까지 달게 먹지 못하였다.
조반상을 치우고 난 선비는 아침 일찍이 할멈이 잿물 내온 빨래를 바자에 널며 무심히 안방을 보았다. 옥점이가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수를 놓으며 선비를 오라고 손짓하였다. 선비는 또 무슨 말을 물어 보려는가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그리고 서울 손님이 안방에 있는가 하고 두루두루 살펴보니, 으레 있을 그가 어째서 보이지를 않았다. 오늘 아침에 갔는가 하고 선비는 생각하며 빨래를 다 널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선비야, 너 이 수 좀 배우라우."
선비는 옥점이가 이 수를 놓을 때마다, 한번 나도 해보았으면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하였던 것이다.
"할 줄 알어야지."
"뭘 이렇게 하면 되는데."
소나무 아래로 백학 한 쌍이 조는 듯한 그림이다. 선비는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이것도 학교에서 배우나?"
"그럼 배우고말구. 이것뿐만이 아니다, 별 그림이 다 있다."
선비는 오색으로 빛나는 수실을 보며, 나도 저런 실로 한 번만 놔보았으면 하고 차츰 얽혀지는 학의 날개를 보았다.
"이 그림 좋지? 이것은 우리 선생님이 고안해 그리신 게야. 참 예술적이 아니냐."
선비는 무슨 말인지 그의 말하는 것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다만 이 그림이 훌륭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셈인 모양이다. 그렇게 어림해 들었다.
"수라는 것은 별것이 아니어. 사람사람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산수나 무슨 짐승 같은 것을 종이에 옮겨 그려 놓고, 실로 이렇게 얽으면 수가 된단 말이어."
옥점이는 묻지도 않는 말을 이렇게 늘어놓고 있다. 그것은 선비가 수놓는 것을 몹시 부러워하는 줄 아는 때문이고, 더구나 건넌방에 앉아 그의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신철에게 자기가 이렇게 수놓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이다. 막연하나마 신철이가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선비는 옥점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그러면 수라는 것은 자기의 좋아하는 바 어떤 것이나 그려서 실로 얽어 놓으면 되나 하고 그의 하던 말을 다시 생각하였다. 옥점이는,
"넌 어떤 것을 그려 이렇게 놓고 싶니? 말하면 내 그려 주마, 그리고 실도 주고."
선비는 이런 후한 말에 어떻게 가슴이 뛰는지 몰랐다. 그리고 저 고운 실을 가지려니! 하니 앞이 캄캄하도록 좋았다. 선비는 머리를 숙여 생각해 보았다. 불타산? 원소? 무엇무엇을 생각하다가 선뜻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들고 말을 하려니 입술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옥점이는 그의 뺨을 바라보며 어젯밤 일이 휙 지나친다.
"얼른 말해 봐."
"난 몰라."
"애이, 말하면 이 실도 준다니까."
"난 달걀 낳는 것을……."
"애이! 숭해라! 그게 또 뭐야!"
옥점이는 크게 소리쳤다.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어느덧 그 더운 팔월도 하루를 남기고 다 지나 버렸다. 옥점이와 신철이는 내일 아침차로 상경하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하였다.
옥점 어머니는 고리에 옷을 골라 넣으며 곁에서 시중드는 선비를 보고,
"이애 널랑 저 빠스赉라던가? 저것 말이다. 그게다 계란을 담아 놔라."
선비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 동안 옥점이가 아니면 계란 모은 것이 근 백 개는 되었을 터인데 옥점이가 내려온 후로부터 매일같이 낳는 계란을 하루도 건너지 않고 먹어 버렸다. 그것도 제 손으로 갖다가 먹었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선비를 보고 갖다 달라고 하여서는 먹곤 하였던 것이다. 그때마다 선비는 웬일인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쉬움에 가슴이 울울하여지곤 하였다.
선비는 가만히 일어나서 광으로 나왔다. 그리고 독 위에서 계란 바구니를 내어 들었다. 전 같으면 이 계란 바구니가 얼마나 귀하고 중하게 보였으리요마는, 오늘은 반대로 바구니를 보기도 싫었다. 그리고 바구니 속에 하나하나 모은 그 귀여운 계란을 맘대로 하면 내어던져 모두 깨치고 싶은 감정이 울컥 내밀치는 것을 코허리가 시큰하도록 느꼈다. 글쎄 매일같이 먹어 그만큼 먹었으면 쓰지, 이걸 또 가져가겠대, 참! 광 문턱을 넘어서며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선비가 마루로 올라서다가 넘어질 뻔하며, 계란 두 알이 굴러나 깨졌다. 옥점이는,
"이애! 계란."
소리를 지르고 내달아온다. 그리고 계란 바구니를 앗아 빼었다.
"왜 그 모양이냐, 이런 것 들 때에는 조심해 다니는 게 아니라, 뭐냐, 네가 아무리 가사에 능하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잘 못 하는구나, 응 글쎄……."
신철이가 듣도록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신철의 앞에서 선비의 결점을 잡은 것이 얼마나 통쾌하였는지 몰랐다. 뒤미처 옥점 어머니가 옷을 든 채 나왔다. 그리고 딸과 선비를 마주보다가,
"이애 이년아, 하마트면 큰일날 뻔했구나, 그게 웬일이냐. 계집년이 천천히 다니는 게 아니라 되는 대로 뛰다가…… 글쎄."
모녀의 공박을 여지없이 받은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여태 참았던 설움이 일시에 폭발되는 것을 깨달았다. 선비는 쓸어 나오는 울음을 억제하며 섰노라니 옥점 어머니가,
"어디 무슨 일이나 맘놓고 시킬 수가 있어야지. 내가 안 돌아보면 일이 안 되니까. 나이 이십 살이나 가차와 오는 게 왜 그 모양이냐? 어서 넌 부엌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지 하구 할멈을 들여보내라!"
마루가 울리도록 소리를 지른다. 선비는 부엌으로 나왔다. 할멈은 눈이 둥그래서 마주 나왔다.
"왜, 왜 그려?"
선비는 찬장 곁의 시렁을 붙들고 흑흑 느껴 울었다. 모녀한테 욕먹은 것도 분하지마는 봄내 모아 온 계란을 한 개도 남김 없이 빼앗긴 것이 더욱 분하였다. 눈물이 술술 쏟아지면서도 그 눈에는 옹골차고 예쁘장스러운 타원형의 계란들이 수없이 나타나 보인다.
"할멈, 어서 들어와!"
옥점 어머니의 호통소리에 할멈은 뛰어 들어가며 눈물 흔적을 없이 하였다. 웬일인지 선비가 울면 할멈은 번번이 따라 울곤 하였던 것이다.
할멈이 들어오니 옥점 어머니는,
"아, 글쎄 선비년이 계란을 깨쳤구려."
"뭐유?"
할멈도 놀랐다. 그리고 전일 계란을 들고 귀여워하던 선비의 모양이 휙 떠오른다.
"얼마나 깨쳤나유?"
"얼마나? 뭐……."
조금 깨쳤다고는 말하기 싫어서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나서,
"옥점이가 아니면 다 깨칠 게지. 그런 것을 옥점이년이 얼른 받았다니. 아 그년, 그년이 이전 제법 살림의 일을 다 안다니."
입에 침기가 없이 옥점이를 칭찬한다. 할멈은 수굿하고 옷을 고르며 다 제 자식이면 아무 흉도 없고 곱게만 보이는 게다 하였다. 옥점이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