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11

메뚜기 한 마리가 그 푸른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르릉 하고 저편 풀숲에 사라진다.
그는 무의식간에 볼을 슬슬 어루만지며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내일 몽금포나 또 가서 며칠 있다가 상경할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가 동구까지 왔을 때, 유서방이 어실어실 나온다.
"어서 들어오시랍니다."
신철이는 머리를 굽혀 보이고 집으로 들어왔다. 옥점이는 마루에 섰다가 신철이를 보고 생긋 웃었다.
"꽤두 오래 오십니다."
그새 보지 못하였다가 보니 또 새로운 정이 그의 거대한 몸을 휩싸고 도는 것을 앞이 캄캄하도록 느꼈던 것이다.
"세수하시려우?"
신철이는 부엌 편을 흘금 바라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옥점이는 안방으로 들어가며,
"이리 들어오세요."
분홍빛 수건을 내어 방으로 들어앉는 신철의 무릎에 던진다. 향수내가 물큰 스친다. 신철이는 수건을 머리맡으로 물려 놓으며 뒤뜰을 바라보았다. 울바자 끝에는 흰 빨래가 눈이 와서 덮인 것처럼 새하얗다. 그 중에 그의 와이샤쓰가 얼핏 눈에 띄었다.
"집에서는 누가 빨래하시우?"
옥점이는 냉큼,
"선…… 저 할멈이 해요, 왜?"
말끄러미 쳐다본다.
"옥점 씨는 빨래 안 해보셨습니까?"
옥점이는 잠깐 주저하다가,
"난 안 해봤어요."
뒤뜰에서 그의 어머니가,
"아이 그게 빨래가 다 뭐유, 집안의 일을 손끝으로나 대보는 줄 아시우? 호호."
어쨌든 귀여운 모양이다. 더구나 자기 딸이 일해 보지 못한 것을 자랑거리로 아는 모양이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을 뿐이다. 옥점이는 그 웃음이 웬일인지 불쾌하였다.
뒤뜰 장독 뒤로 백도라지꽃이 머리를 다소곳하였다. 그 뒤로 수세미외 덩굴이 울바자를 타고 보기 좋게 뻗쳐 올라가며 노란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저기 무슨 꽃이야요?"
신철이는 백도라지꽃을 가리켰다. 옥점이는 손을 통하여 바라보더니,
"응 저 꽃? 백도라지여요. 저 백도라지가 약이 된다나요. 그래서 일부러 유서방이 캐다 심은 게라오."
"네, 저 쑤세미오이도?"
"그것은 선비년이 다 심은 게라오."
그의 어머니가 대답한다. 옥점이는 선비라는 이름만 신철의 앞에서 불러도 불쾌하였다. 신철이는 옥점이가 아니면 뛰어나가서 그 꽃을 꺾어 볼 위에 대고 싶으리만큼 귀여움을 느꼈다.
마침 바자 밖으로부터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앉을방 줄방
파리 잡아 줄방
그들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 노래는 차츰 바자 곁으로 오더니 뚝 그친다. 그리고 울바자에 세운 기둥 끝을 향하여 잠자리채가 올라온다. 뒤미처 잠자리 한 마리가 채에 얽혀들어 푸득거린다. 바자 밖에는 갑자기 애들의 환호소리가 "으아" 하고 쏟아져 나왔다.
앉을방 줄방
파리 잡아 줄방
또다시 이런 노래가 멀리 사라진다. 신철이는 그 노래가 끊어진 후에 비로소 자기가 장성하였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간에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우리도 어렸을 때 저런 일을 했어요."
옥점이는 눈에 웃음을 가득히 띠고 신철이를 쳐다보았다.
그날 밤, 신철이는 밤 오래 놀다가 자리에 누웠으나 잠 한 잠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 누웠으려니 온몸이 쑤시는 것 같고 더구나 전신에서 땀이 부진부진 나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래서 그는 부시시 일어앉았다. 그리고 문을 가만히 열고 내다보았다.
처마 그림자가 뜰 위에 뚜렷이 아로새겼다. 그는 무의식간에 달도 밝기도 하다 하고, 머리를 기웃하여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달은 지붕을 넘어간 까닭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안방을 살펴보니 잠든 모양인지 잠잠하였다. 그리고 오직 마루 아래로 놓인 옥점 어머니의 흰 고무신이 달빛에 윤택하게 보일 뿐이다. 그는 변소간을 향하고 걸었다.
그가 변소까지 왔을 때 우뚝 섰다. 할멈 방문이 불빛에 빨개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안 자나? 밤이 오랬는데 하고, 그는 어떤 희망을 가늘게 느끼며 뒤를 휘휘 돌아보고 방문 앞까지 왔다. 그래서 그는 문틈이 어디가 났는가 하고 두루두루 찾아보았으나 바늘구멍만한 구멍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누가 아직 자지 않나? 혹은 할멈과 선비가 다 깨어 있나? 그렇지 않으면 선비만 자지 않는가, 혹은 할멈만 자지 않는가? 누가 자지 않는 것만 알아도 좋겠는데,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는 누가 볼까? 조바심하여 그만 변소 앞으로 왔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 소리가 나는가 하여 한참이나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무슨 옷갈피를 뒤지는 소리가 부시시 들릴 뿐이다. 그는 변소간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할멈 방에 누가 자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까 하고 이리저리 궁리하였다. 그리고 웬일인지 선비가 아직까지도 자지 않고 일을 하는 것만 같았다.
선비―--- 그 이름만이라도 왜 그렇게 곱고 부드럽게 불러지는지 몰랐다. 그리고 항상 내리뜨는 겸손한 그 눈가로 안개가 서려 있는 듯한 그 눈매, 그는 맘대로 하면 당장에 저 얄미운 문짝을 집어젖히고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밖에를 나왔던고? 차라리 방 안에서 더운 대로 참았더면 하는 후회까지 겸쳐 일어난다.
그는 소리 없이 변소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방문은 여전히 빨갛다. 그때에 방 안의 사람이 일어나는 듯이 문 위에 그림자가 얼씬 비치더니 방문이 바스스 열린다. 찰나에 그는 아찔하였다. 다음 순간 변소 앞으로 일보 일보 다가오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냐!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잠깐 뛰는 가슴을 진정한 후에 변소 밖으로 나왔다. 무심히 이편으로 오던 그는 신발 소리에 멈칫하며 흘금 바라보았다. 신철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양으로 돌아서 들어가려는 선비를 보고,
"이거 보세요, 네, 이거 보세요."
선비는 거의 방문 곁까지 가서 머뭇머뭇하고 있다. 신철이는,
"저 냉수 한 그릇 주실 수 없을까요?"
얼결에 나온 말이건만, 하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선비는 무엇을 좀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만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신철이는 그만 지하에 떨어지는 듯한 모욕을 전신에 느꼈다. 그리고 어째서 그가 변소에서 가만히 있다가 들어오는 선비를 꽉 붙들지 못하고 이렇게 나왔는가 하였다.
"할머니, 할머니."
깨우는 선비의 가는 음성이 들린다. 신철이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할멈은 응, 응 할 뿐이지 용이히 깨지 않는 모양이다.
"할머니 서울……."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할멈은 이제야 깨었는지 굵다란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가 가서 떠다 주려무나. 내가 어두워서 알겠니."
또다시 선비의 음성이 소곤소곤 들렸다.
"뭐 어떠냐, 어서 그리 해라."
신철이는 할멈이 깨었으므로 그만 낙망을 하였다. 그러나 선비가 또다시 자기 앞에 물그릇을 들고 나타날 듯하여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방문이 또다시 얼씬하더니 문이 열리며 선비가 나온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부엌 편으로 돌아간다. 그는 변소 앞에 섰기도 좀 우스운 듯하여 선비의 뒤를 따라섰다.
컴컴한 안방이 그의 앞에 나타나자 그는 누가 깨지나 않았나 하고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 윤택하게 보이던 고무신조차도 금시로 사람으로 변하는 듯, 그리고 안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옥점이가 나오는 듯하여 한층더 가슴이 뒤설레었다.
부엌문을 소리 없이 열고 들어간 선비는 물그릇을 들고 나온다. 달빛에 새하얗게 묻혀 버린 그 자태! 낮의 선비보다 몇 배 더 고와 보였다. 신철이는 선비가 부엌으로 들어갈 때만 하여도 온갖 계획을 다 세워 보았지만 막상 그의 앞으로 오는 선비를 볼 때는 모든 계획이 홀랑 달아나 버리고 그저 조급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얼른 물그릇을 받아 입에 대었다. 목은 안타깝게 마르건만 웬일인지 목이 칵 막히며 물이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는 사래가 들려 기침이 나오려는 것을 억제하면서 물그릇을 도로 돌리려 하고 보니 벌써 선비는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는 휙근 돌아보았다. 선비의 치맛자락이 변소 가는 모퉁이로 흘금 보이고 없어진다.
그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비가 자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따라서 어리석고 비겁한 자신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그는 맘대로 하면, 들었던 물그릇을 당장에 내던져 산산이 짓모고 싶었다. 그래서 성이 난 눈으로 물그릇을 들여다보았을 때, 아까 방 안에서 보이지 않던 달이 물 속에 떨어져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그는 이 순간 노엽던 그 맘이 약간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물 속에의 어떤 부분을 대표한 듯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간이고, 이렇게 해석하고 섰는 어리석은 자신을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온 가슴이 텅 빈 듯한 쓸쓸함이 그의 전신을 휩싸고 도는 것을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물그릇을 든 채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그때 마루 위를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바스스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선다. 그는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어째 지무시지 않아요?"
크림내를 섞은 젊은 여자의 강한 살내가 후끈 끼친다. 그는 이태껏 옥점에게서 느껴 보지 못한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왜 옥점 씨는 자지 않고 나오시우."
이렇게 천연스레 말하는 신철이는 저 여자가 모든 것을 보지 않았나? 하는 불안이 여러 가지 감정과 교착이 되어 가지고 일어난다. 옥점이는 전 같으면 신철의 곁으로 다가앉으며 무엇이라고 소곤거릴 터이나 오늘은 우뚝 선 채 머뭇머뭇하고 서 있었다.
"앉든지 들어가 지무시든지."
신철이는 이런 말을 하며 이 여자가 모든 것을 보았구나 하고 직각되었다. 그리고 물그릇도 받아 주지 않고 간 선비가 이 여자를 보고 그리 하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도리어 자신의 우둔함을 그는 나무랐다.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고 섰던 옥점이는 신철의 곁으로 다가앉는다.
"선비 곱지?"
어두운데 주먹 내미는 것 같은 돌연한 이 물음에 신철이는 잠깐 주저하다가,
"곱지."
하고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더니 다시 번쩍 든다.
"소개해 줄까?"
"것도 좋지."
옥점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럼 내 이제 데려올게."
신철이도 여기에는 당황하였다. 그래서 얼핏 그의 잠옷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진중한 위엄을 그에게 보이려고 음성을 둥글게 내었다.
"이거 무슨 철없는…… 소개를 하려면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왜? 하필 이 밤에만 맛인가?"
옥점이는 그의 잠옷가를 잡은 신철의 손을 칵 잡으며 흑흑 느껴 운다. 이때껏 참았던 정열이 울음으로 화한 모양이다. 신철이는 무의식간에 옥점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 순간 신철이는 물 속에 잠겨 흔들리던 달이 휙 지나친다. 그리고 달빛에 새하얗게 보이던 선비가 천천히 보인다. 그는 슬그머니 손을 놓고 조금 물러앉으렸으나 속에서 울컥 내밀치는 어떤 불길은 옥점의 잠옷 한 겹을 격하여 있는 포동포동한 살덩이를 불사르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옥점이, 들어가서 자라우."
신철의 음성은 탁 갈리어 잘 나오지 않았다. 옥점이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바싹 다가앉는다. 그의 몸은 불같이 달았다. 신철이는 그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에 그의 이지가 무참히도 깨어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지나치는 듯이 들렸다. 그러나 그는 이 여자의 몸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을 그는 발견하였다.
그때 안방에서 콩콩 하는 기침소리가 건넌방 문을 동동 울려 주었다. 신철이는 벌떡 일어났다.
"이거 봐요, 어서 들어가. 어머니가 깨시었어, 응."
옥점이도 그제야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신철이를 올려다보더니,
"아이 불 켜지 말아요! 나 들어갈 테야."
벌써 불은 환하게 켜졌다. 신철이는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때에 신철이는 범치 못할 계선을 벗어난 듯한 가벼운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선비의 그 고운 얼굴이 미소를 띠고 지나치는 것을 그는 확실히 보았다.
신철이는 옥점의 곁으로 오며 그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손질해 주었다. 너무나 상쾌한 맘은 그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귀밑까지 빨개져서 차마 신철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어서 들어가요, 네, 자 어서."
옥점이는 머리를 매만져 주는 신철의 손을 끌어다가 꽉 깨물었다. 그리고 진저리를 치며 그의 혀끝으로 손을 빨았다. 신철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을 빼었다.
"자 어서 들어가요."
"난 안 들어갈 테야!"
또다시 기침소리가 콩콩 울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