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10

하고 웃음으로 쓸어치고 말았다.
"이게 달 것이라지? 어머니."
옥점이는 참외를 들어 보인다.
"그래, 깎아 보렴."
그는 칼을 들어 반을 갈랐다. 속이 새파란 것인데, 꿀내 같은 내가 물큰 올라온다.
"이것 보우, 참말 달겠수."
옥점이는 참외를 들어 보이며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신철이를 주었다. 그는 받으며,
"어머니에게 올리시구려!"
"어서 받아요."
눈을 헬끗해 보면서 칼을 내친다. 그리고 곁에 놓았던 딸기 송이를 들며 생긋 웃었다. 이것은 신철이가 자기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인 것 같았던 것이다. 그는 딸기 송이를 들고 이리저리 보다가 모자에 꽂았다.
"이거 봐요, 곱지?"
옥점 어머니는 깜박 졸음이 오다가 옥점의 말에 놀라 바라보았다.
"그게 웬 딸기가?"
"아이, 입때 어머니는 못 보셨수? 호호."
어머니를 바라보는 옥점이는,
"어머니? 졸음이 오나 봐……."
낮이 기울어지면 옥점 어머니는 자는 버릇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눈을 썩썩 비비쳤다.
"들어가자."
"아이 벌써? 어머니는 먼저 가구려."
그의 어머니는 괴로운 모양인지 그만 부시시 일어난다.
"놀다가 오시우, 난 먼저 가우."
"왜, 같이 들어가시지요."
신철이는 옥점 어머니의 뒤를 따라 막 아래까지 내려가서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옥점이는 막 위에서 이 모양을 바라보며,
"안타와 바카쇼지키와네(당신은 고지식도 하셔)."
호호 웃었다. 옥점 어머니는 신철이를 다시금 돌아보며 사위가 정말 되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였다.
막으로 올라오니, 옥점이는 모자를 쓰며 딸기 송이를 보았다.
"어때요?"
"좋구먼요…… 그만 먹지, 먹고 싶구먼."
옥점이는 모자를 벗어 들고 딸기 송이를 따서 신철이 손에 놓아 주며 그도 한 알 물었다. 빨간 물이 옥점의 입술을 물들일 때, 신철이는 아까 옥점이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쉬운 생각과 함께 빨래질하던 선비의 자태가 휙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뿌리고 온 버들잎 하나가 선비의 손끝을 스치었으련만, 그는 무심히도 버들잎을 치워 버렸으리라! 하였다.
"뭘 생각하시우?"
옥점이가 바싹 다가앉는다. 신철이는 얼른 수숫대 위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을 가리켰다.
"저것 보우, 참 좋아."
옥점이도 그편을 바라보았다.
"제법 시인이 되랴나 부."
"시인?"
무심히 내친 이 말이 그의 가슴폭을 선뜻 찔러 주는 듯하였다. 그는 참말 요새같이 감정이 예민해 가다가는 큰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가 학교에서 휴가를 맡고 이렇게 오게 된 것도 신경이 약하기 때문인데, 수양하러 온다고 와놓고는 돌연히 사귄 이 여자로 말미암아 자기의 수양은 어디로 달아나고 말았다. 더구나 나날이 일어나는 이 번민! 이것은 자기 스스로는 도저히 억제치 못할 것 같았다.
처음에 기찻간에서 이 여자를 만날 때에는 다소의 흥미도 가졌지마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못해서 다만 일시일시로 데리고나 놀 여자지, 오래 사귀어 놀 여자가 되지 못할 것을 곧 알았다.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이 집을 떠나기 싫고, 이 동네가 떠나기 싫었다. 그래서 몽금포에 가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곧 올라왔던 것이다.
옥점이는 피어오르는 구름을 한참이나 보다가 흘금 신철이를 보았다. 구름을 바라보는 그의 눈! 그 새를 타고 내려온 쇠로 만든 듯한 그의 코는 확실히 그의 이지를 대표한 듯하였다.
지금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까지도 신철이를 장래 사윗감으로 인정하는 모양인데, 보다도 현재 자기들의 이면에는 내약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상 자기들 사이는 이때까지 아무러한 내약도 없었으며 그러한 눈치도 서로 보이지 않았다. 옥점이는 초조하였다. 그러나 저편에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먼저 대들기도 무엇하여 눈치만 살살 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무슨 이야기든지 하세요."
신철이는 돌아보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그만 웃어 버린다.
"아이 하세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래서요. 이제…… 꼭 대줘요."
어린애처럼 보챈다. 신철이는 조금 물러앉았다.
"옥점 씨, 이 담에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요? 말하자면 서울 같은 도회지에서 혹은 이러한 농촌에서?"
뜻하지 않은 이 물음에 옥점이는 머리를 갸웃하고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그것 왜 물으세요."
"심심하니까 이야기삼아 묻는 게지요."
"신철 씨는 어떤 곳에서?"
"나요? 글쎄 어떤 곳이 좋을까…… 내가 먼저 물었으니 먼저 대답하세요."
"나는…… 신철 씨가 좋아하는 곳에서."
말끝이 입 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귀밑까지 빨개지며 그는 머리를 돌렸다. 이것을 바라보는 신철이는, 이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셈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리고 "고레 안타노 하트?" 하고 그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는 신철이는,
"그래요, 참 고마운 말씀이구려. 그럼 우리 한동네서 삽시다. 이렇게 한적한 농촌에서 저런 참외며 조며 콩 팥을 심어 가면서 삽시다, 우리. 오작이나 재미나겠수."
그는 눈치를 채지 못한 체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옥점이는 생긋 웃으며,
"그럼 이런 시굴이 좋으세요?"
"네, 저는 이런 곳이 좋아요…… 김도 매고 온갖 가축을 기르면서 사는 것이 좋지요."
"애이!"
옥점이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 듯하여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신철이는 웃지도 않고 그를 마주보았다.
"뭐, 김을 매시겠어요?"
"그러먼요, 김매는 것 좋지요."
"참…… 우스워 죽겠네."
"왜 그러셔요?"
신철이는 눈을 크게 떴다.
"김을 매구 어떻게 살아요! 그렇게 할 바에는……."
중도에 말을 끊었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 옥점 씨는 시굴서 사실 생각이 아니십니다그려."
"애이! 참."
옥점이는 원망스럽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손톱 끝을 물어뜯으며, 그의 안타까운 그 맘을 어째서 신철이가 몰라주는가 하니, 그는 달려들어 신철이를 쥐어뜯고라도 싶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신철이는 여전히 저 앞을 바라보았다. 씨앗에서 몰려나오는 듯한 솜 같은 구름은 이젠 큰 산맥을 이루어서 그 높은 불타산 위를 눈이 부시게 둘러치고 있다.
옥점이는 신철이를 바라보며 무어라고 말을 하렸으나, 곁에 자기라는 존재를 전연히 잊은 듯이 하늘만 쳐다보는 신철의 그 표정은, 끝까지 원망스러운 반면에 또한 극도의 위압에 눌리어 말끝이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들어가요, 그만."
신철이는 돌아보았다.
"그럼 갑시다."
성큼 일어난다. 옥점이는 말을 하자노라니 이런 말이 쑥 나갔으나 실은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좀더 신철의 맘을 엿보는 동시에 여기서 어떤 해결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었다. 그러나 신철이는 아무 미련 없이 양복 바지를 툭툭 털며 그 거대한 몸을 사다리 위에 싣는다. 그리고 벌벌 기어 내려간다. 옥점이는 맘대로 하면, 내려가는 그의 엉덩이를 발길로 차서 떨어치고 싶었다. 막 아래로 내려간 신철이는 양복을 툭툭 털며 몸매를 휘돌아본 후에,
"어서 나려오시우."
옥점이는 웬일인지 울음이 쓸어 나오는 것을 입술을 꼭 깨물고 참았다.
"어서 혼자 들어가세요!"
"언제는 가자고 하더니 또 이러시우?"
신철이는 눈가로 약간 웃음을 띠며 이런 말을 하였다. 신철이가 웃는 것을 보니 좀더 성은 나면서도 그는 따라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그래서 픽 웃고 내려왔다.
막 주인은 어디 가 숨었다가 이제야 어실어실 참외밭으로 나온다. 그들은 참외값을 치르고 나서 길로 나왔다.
"이거 봐요, 동네 들어갈 때는 떨어져 들어갑시다."
한참이나 걷던 신철이는 옥점이를 돌아보았다.
"왜요?"
옥점의 눈가는 빨개진다.
"창피하니까."
"무엇이 창피해요?"
"애들이 따르고 개들이 짖고, 허허."
뜻밖의 말에 옥점이는 호호 웃었다. 그러나 가슴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이 바작바작 죄어들어서 목이라도 놓고 울고 싶었다.
수수밭 옆을 지나며 신철이는,
"어떻게 할 테우?"
"뭘요?"
옥점이는 눈이 둥그래진다.
"옥점 씨가 먼저 가시겠수, 날 먼저 가라우?"
옥점이는 한숨을 푹 쉬며,
"뭘 어때요. 그까짓 것들 무서워서 그러셔요, 아이 참."
옥점이는 무심히 수숫잎을 뜯어 입에 문다. 그리고 그의 양장한 몸에 수숫대 그림자가 길게 걸어나간 것을 신철이는 보았다.
"무섭지요. 세상에 농민들에게서 더 무서운 인간들이 있겠습니까…… 어서 먼저 들어가세요."
옥점이는 말없이 뾰로통하고 섰더니, 들었던 수숫잎을 휙 뿌리며 휭 돌아섰다.
"그럼 곧 들어오세요."
돌아도 보지 않고 이런 말을 한 후에 옥점이는 수수밭을 지나 논둑을 타고 가물가물 멀어진다. 신철이는 그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풀밭에 주저앉았다. 따라서 원소의 숲이 떠오르며 이젠 선비가 들어갔을 터이지 하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석양이 되니 몽금포에서 보던 낙조가 그리워진다. 그 망망한 서해에 한 줄기의 커다란 불기둥을 지르고 넘어가던 그 태양 앞에 가슴을 헤치고 섰던 자기가 어떤 명화를 대하는 듯이 떠오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솨솨 하고 바위에 부딪치는 그 물결소리…… 그 소리를 타고 늠실늠실 넘어오는 고깃배 사공들의 '어이야, 어이야' 하는 노젓는 소리가 금시로 들리는 듯하였다.
그는 빙긋이 웃었다. 멀리 낙조를 바라보며 옥점의 안달나 덤비던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른 체하고 그 고비를 넘겨 버렸다. 그는 옥점이가 그러한 태도를 그에게 보이면 보일수록 그의 가슴은 이상하게도 얼음같이 차지는 반면에 흥미가 진진하였다. 그리고 다시 오늘 막에서 지내던 일을 생각하며 어느덧 원소의 숲에서 청청 하고 울려 나오던 빨랫소리를 들었다. 그는 지금 눈앞에 선비의 청초(淸楚)한 자태를 보았다. 인간은 일하는 곳에서만 진실(眞實)과 우미(優美)를 발견할 수 있는 모양이다!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무엇이 그의 볼을 툭 치매 그는 놀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