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09

이서방도 첫째가 어떤 계집을 생각해서 이렇게 잠도 못 자고 다니는 것을 짐작은 했으나, 어떤 계집인지를 꼭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계집을 첫째에게서 알아 가지고, 될 수 있는 대로 힘써 보자는 것이다. 만일 저대로 방임해 두면 첫째는 불일간에 무슨 병에 걸려들지 않으면 무슨 변이라도 낼 듯싶었던 것이다.
첫째는 언제까지나 잠잠하고 있다. 이서방은 바싹 다가누웠다.
"너 어떤 계집을 생각하지, 아마?"
첫째는 계집이란 말에 그의 얼굴이 화끈 달며 선비의 그 고운 자태가 스르르 떠오른다. 그는 그만 돌아누웠다.
"자자우, 이서방."
말하지 않을 것을 안 이서방은 훗날에 천천히 물어 보리라 하고,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첫째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그 밤을 새우고, 어실어실하여 일어나 앉았다. 그때 안방문이 가만히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첫째는 어떤 놈이 또 와 잤군…… 하고 생각하며 장성한 아들을 둔 그의 어머니의 행동이 끝없이 원망스러웠다.
"안녕히 가세요."
"음."
"언제 또 오시겠수?"
"글쎄 봐야 알지."
소곤거리는 유서방의 음성이다. 그는 도리어 반가운 생각이 들어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을 때,
"너 왜 벌써 일어나니?"
이서방이 일어나며 그의 꽁무니를 꾹 붙들었다. 이서방은 첫째가 달려나가서 무슨 행패를 할까 하는 불안에서 이렇게 붙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벌써 첫째 어머니는 문을 지치고 들어온다. 첫째는 그의 어머니를 노려보다가,
"어머니!"
자거니 하였던 첫째의 음성에 그의 어머니는 놀라 멈칫 섰다. 그리고 첫째가 성이 나서 뛰어나오는 것 같아서 뒤로 비슬비슬 물러섰다.
이서방은 이 경우에 모자의 불평을 어떻게 완화시킬지 몰라 한참이나 생각하였다. 문을 열고 아무 말 없이 그의 어머니를 노려보던 첫째는 방문을 쾅 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이서방도 물러앉는다.
신철이를 따라 몽금포에 내려가서 해수욕을 하고 올라온 옥점이는 오늘 아침차로 상경하겠다는 신철이를 만가지 권유로 겨우 붙들었다. 신철이는 옥점이보다도 덕호의 애써 말리는 데 못 이기는 체하고 떠나지 않았으나 실은 웬일인지 그렇게 쉽게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의 집에 와서 하루 이틀도 아니요 거의 달지경이 되어 오니까 미안함에서 상경하겠다고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신철의 남성다운 체격을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았다.
"우리 참외막에 가볼까요?"
"글쎄요…… 우리 둘이만이 가는 것이 좀……."
옥점이는 냉큼,
"그럼 누구 또 말씀해 보세요?"
그의 속을 뚫고 보려는 듯한 옥점이의 강한 시선을 그는 약간 피하였다.
"아버지든지 혹은 어머니도 좋구요."
"정말?"
"그러면요, 우리 둘만은 이런 시골에서는 좀 재미없지 않아요?"
"하긴 그래요, 그럼 어머니를 가자구 할까?"
"그것은 옥점 씨 생각에 맡깁니다."
옥점이는 호호 웃으며 냉큼 일어나 안방으로 건너갔다. 신철이는 책상 앞에 조금 다가앉아서, 면경 속에 그의 얼굴을 비추어보며 무심히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선비가 빨래함지를 이고 부엌으로부터 나온다. 신철이는 얼른 몸을 똑바로 가지고, 지나치는 그의 왼편 볼을 뚫어지도록 보았다. 그가 중대문을 넘어가는 신발 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하러 가는 모양인데…… 하고 생각할 때, 이상한 광채가 그의 눈가를 스쳐간다.
그가 이 집에 온 지 거의 두 달이 되어 와도 저렇게 먼빛으로 선비를 대할 뿐이고, 한 번도 한자리에 앉아 말을 건네어 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그는 선비에게 어떤 호기심을 두었다. 그리고 특히 그의 와이샤쓰나 혹은 내의 같은 것을 빨아 다려 오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리 정밀하고 얌전스럽게 해오는지 몰랐다. 그때마다 그는 이런 아내를 얻었으면…… 하는 생각이 옷 갈피갈피를 뒤질 때마다 부쩍 들곤 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운 자태! 눈등의 검은 점…… 그의 머리에 강한 인상을 던져 주었다. 그와 말이나 해보았으면……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오늘 냇가에만 가면 그를 만날 수가 있을 터인데 어떻게 뭐라고 핑계를 대고 옥점이를 떨어치나가 문제 되었다.
옥점이가 건너오며,
"어머니가 가시겠다오."
"예 좋습니다."
이렇게 선뜻 대답은 하고도 신철이는 엉덩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서 일어나요, 더웁기 전에 가요."
신철이는 무슨 생각을 잠깐 하다가,
"아버지도 모시고 가는 것이 어때요."
"아이! 아버지는 뭐라구."
헬끔 쳐다보며 웃는다. 그도 빙긋이 웃으며,
"노인네 부부도 산보해야지요, 하하."
옥점이도 호호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자기들이 가지런히 서서 가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었다.
"그럼 모시고 갈까…… 아이 아랫집에서 안 올라오셨을 게요."
옥점이는 통통걸음을 쳐서 사랑으로 나간다. 신철이는 그의 나가는 뒷모양을 바라보면서 선비가 혼자서 빨래를 갔는가? 하였다. 옥점이는 곧 돌아 들어왔다.
"아버지가 안 오셔서……."
그제야 신철이는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벽에서 모자를 벗겨 쓰며,
"내 아버지는 모시고 갈 것이니 어서 먼저들 가시오. 저번 갔던 그 막이지?"
옥점이는 약간 싫은 빛을 띠었으나 얼른 웃어 버렸다.
"그만둬요, 아버질랑."
"글쎄 어서 가요. 내 가서 모시고 올라가리다."
신철이는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볕이 그의 전신을 후끈하게 하였다. 그가 큰대문을 나서며 어떻게 할까? 하고 우뚝 섰다.
신철이는 어떻게 하든지 옥점이만을 떨어칠 양으로 이렇게 서두르고 나오기는 했으나 막상 나오고 보니 어떻게 해서 선비를 교묘히 만나 볼까가 큰 걱정이다.
우선 그는 멀리 보이는 원소의 숲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덕호가 첩살림하고 있는 아랫마을을 돌아보았다. 따라서 옥점이와 같이 갈 참외막 있는 앞벌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옥점이와 그의 어머니가 나온다.
"왜 안 가셨수?"
옥점이는 물빛 양장에 밀짚모를 꼭 눌러 썼다. 그의 어머니는 딸과 신철이를 바라보며 언제 웃을지 몰라 입을 벌리고 있다. 비록 정식으로 말은 건네이지 않았으나 이 둘이는 장래 부부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아버지한테도 같이 가려구요?"
"뭘, 나허구?…… 난 안 간다는 게야, 그년의 계집애 보기 싫어서."
옥점이는 휭 돌아간다. 신철이는 옥점의 이러한 대답을 듣기 위하여 부러 물었던 것이다.
"왜 그래요? 그이도 어머니가 되겠지우."
"아라마 이야다와(어머 싫어요)."
이렇게 소리치며 어머니의 손을 끌고 간다. 몇 발걸음 걸어나가던 옥점이는 돌아보았다.
"얼핏 모시고 와요, 그리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이 순간에 그는 급한 숨결을 겨우 억제하였다. 모든 일이 자기가 상상하였던 것보다 예상 이외에 순조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신철이는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옥점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 섰다.
옥점이가 동구를 벗어나며 이편을 돌아본다. 그리고 무어라고 손질을 두어 번 치고 모밀밭 뒤로 사라진다. 신철이는 한숨을 후유 하고 쉬었다. 만사는 이제부터다 하고 그는 아무 거침 없이 원소를 바라보고 급히 걸었다.
원소의 숲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숨결은 몹시도 뛰었다. 그리고 불행히 옥점이가 그의 뒤를 따르지 않는가 하여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물소리가 졸졸졸졸 한다. 그는 우뚝 섰다. 그리고 버드나무숲을 헤치고 가만히 들어섰다. 길길이 늘어진 버들가지가 그의 어깨를 서늘하게 스치었다. 그는 나무 밑에 꼭 숨어 서서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훑어보았다.
뚝 그쳤던 방망이 소리가 청청 울려 온다. 그 소리는 이 고요한 숲을 한층더 고요하게 하였다. 그는 방망이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버드나무숲에 가리어 잘 보이지는 않으나, 방망이 소리를 타고 오는 음향은 선비의 존재를 확신케 하였다. 그는 차츰차츰 그편으로 갔다. 선비의 바른편 볼이 둥그렇게 나타나 보인다. 신철이는 멈칫 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서 선비를 만나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할 말이 있는 듯하고도 또다시 생각하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누? 다시 한번 망설였다. 이제는 발길까지 무거워지고 그리고 숨결이 무섭게 뛰놀았다.
그가 동무를 따라 카페 같은 데도 더러 다녔으나 이렇게 여자를 어렵게 대하여 보기는 처음이었다.
방망이 소리가 뚝 끊어지며 빨래를 헹구는 모양인지 절벅하는 물소리가 들린다. 그는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어 에라 돌아가자! 내가 이게 무슨 짓이냐, 그와 말은 해봐서 뭘 하는 게야 하고, 그는 발길을 돌리렸으나, 꽉 붙고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지금 막에서 기다릴 옥점이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옥점이의 환영은 차츰 희미하게 사라지고, 선비의 얼굴이 뚜렷이 보인다.
"내가 이게 웬일이야, 며칠지간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휙 일어났다. 그리고 흐르는 물 속으로 빛나는 차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지금 아버지는 내가 몽금포에서 수양하고 있는 줄 알 터이지 하는 생각이 버쩍 들자 그는 머리를 돌려 버렸다. 그때에 무심히 앞에 늘어진 버들가지 하나를 잡아 뚝 꺾었다. 그리고 손이 아프도록 잎을 죽 훑어서 후르르 물 위에 뿌리며 천천히 내려왔다.
그가 참외막까지 왔을 때 갑자기 우뚝 섰다. 덕호를 데리고 온다고 옥점이를 떨어치던 자기를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막에서 달려 내려온다.
"왜 혼자 오우?"
그는 잠깐 주저하다가,
"그만 중로에 가기 싫기에 오구 말었수. 그 뭐……."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옥점이는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어서 저리로 올라갑시다. 내가 참외 맛있는 것으로 골라 두었수."
신철이는 옥점이를 따라 몇 발걸음 옮겨 놓다가 무심히 바라보니 참외 덩굴 아래로 어린애 머리만큼이나 한 참외들이 수북하였다. 그는 얼른 그리로 가서 참외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하며,
"이거 보우, 이거 참 시굴이 좋기는 하다니!"
옥점이는 휙근 돌아보며 머뭇머뭇하다가 온다.
"아이 더워요. 어서 저리로 가요."
옥점의 코밑에 땀방울이 방울방울 맺혔다. 신철이는 가뿐 숨이나 쉬어 가지고 막으로 올라가려고 밭머리에 펄썩 주저앉았다. 옥점의 어머니는 기웃하여 내다본다. 옥점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 거게 가 앉아?"
신철이는 모자로 해를 가리며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옥점이는 그의 쩍 벌어진 양 어깨를 바라보며, 자기 같으면 저렇게 외면하고 앉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동안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갑갑해서…… 옥점이는 쓸쓸하였다.
신철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저편으로 충충 걸어간다. 그리고 풀숲에서 무엇을 찾는 모양이더니 딸기 한 송이를 나뭇가지째 꺾어 들고 벙글벙글 웃으며 온다. 옥점이는 달려가며,
"그게 어디 가 있수? 아이, 빛이 곱지."
신철의 손에서 빼앗으며, 옥점이는 갸웃하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고레 안타노 하트(이게 당신의 마음)?"
얼굴을 약간 붉히며 쳐다본다. 신철이는 옥점의 얼굴을 거쳐 딸기를 보았다. 그때 그는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
"올라가요, 어서 저리로."
옥점이는 앞섰다. 신철이도 그의 뒤를 따라 막으로 올라갔다. 옥점 어머니는 귀여운 듯이 그들을 번갈아 보며,
"왜? 안 오시겠다고 헙데까?"
옥점이는 참외를 고르며,
"그 계집애 꼴 보려고 거길 가!"
신철이를 흘금 쳐다보며 어머니를 돌아본다. 그의 어머니는 약간 섭섭함을 느끼며,
"그럼 더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