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장보살이 싱앗대를 올려다보았다. |
| "어서 소리나 해유." |
| 첫째가 그들을 바라본다. 싱앗대는 도로 주저앉으며 감내기〔農夫歌〕를 불렀다. |
| 임 따라가세 임 따라가세 |
| 정든 임 따라가세 |
| 부러진 다리를 찰찰 끌면서 |
| 정든 임 따라가세 |
| "좋다!" |
| 땃버리가 소리치며 흘금 돌아보았다. |
| "이애 저기 뭐가?" |
| 난장보살은 벌컥 일어났다. |
| 그들은 일시에 바라보았다. 어떤 양복쟁이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계집이 이편으로 온다. 그들은 호기심에 켕기어 벌떡벌떡 일어났다. 유서방은, |
| "여보게들, 그게 우리 주인의 딸 옥점일세." |
| "뭐야 옥점이! 서울 가서 학당 공부 한다더니 왜 나려왔나?" |
| "아프다고 왔다네." |
| "아, 그런데 양복쟁이는 누구여?" |
| 유서방도 이 물음에는 궁하여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
| "글쎄 나두 잘 몰라!" |
| "이애 서울 가더니 서방을 얻어 가지고 왔구나." |
| 난장보살이 이렇게 말하며 길 옆 밭머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
| "제길 어떤 놈은 팔자 좋아 예쁜 색시 얻구 돈 얻구, 요놈은 평생 홀아비 되라는 팔자인가." |
| 첫째는 슬며시 돌아본다. 난장보살은 거지 안에서 익모초를 말린 담배를 꺼내서 신문지 조각에다 놓고 두르르 말아서 침으로 붙인 후에 붙여 물며 차츰 가까워 오는 양복쟁이와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
| 그들은 곁눈으로 흘금 농부들을 보고 나서 지나친다. 그리고 옥점이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무슨 이야긴지 재미나게 하는 모양이다. |
| "이애 사람 죽이누나!" |
| 그들이 멀리 간 후에, 난장보살은 담배 꼬치를 집어던지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호미를 쥐고 김을 매기 시작하였다. |
| 한참 후에 땃버리는 난장보살을 툭 치며, |
| "이 사람아, 자네 요새 장가가고 싶은 모양이네그리." |
| "어 그래, 이놈 나 장가 보내 주겠니?" |
| 땃버리는 생각난다는 듯이, |
| "아니 유서방, 선비가 지금 덕호네 집에 있지유?" |
| "응 있어 왜?" |
| "그 어디 출가시키지 않으려나유?" |
| "글쎄! 시키겠지." |
| 싱앗대가 눈을 꿈벅하며, |
| "뭘, 모르지, 알 수 있나, 그러구저러구 다……." |
| 말을 끊으며 유서방을 쳐다본다. 유서방은 못 들은 체하고 말았다. 첫째는 그 큰 눈을 번쩍 뜨고 그들의 말을 듣다가 한숨을 푹 쉰다. 난장보살은 비위가 동하여 땃버리를 바라본다. |
| "그 좀, 자네 중매할 수 없겠나?" |
| "날 보고 말해 되겠나, 그게야말로 덕호에게 청대야 할 노릇이지." |
| "아따 이 사람, 그러기에 자네가 중매를 들라는 말이어." |
| "난 자격이 없네." |
| "선비는 얼굴도 예쁘지만 맘도 고우니…… 참 그것 신통해……." |
| 유서방은 선비의 자태를 머리에 그리며, 아까 싱앗대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첫째는 여러 사람들이 아니면, 유서방을 붙들고 얼마든지 선비에 대한 말을 묻고 싶었다. |
| 이렇게 잡담을 하며 김을 매던 그들은 해가 꼭 져서야 동네로 들어왔다. |
| 집으로 온 첫째는 저녁을 먹은 후 곧 밖으로 나왔다. 웬일인지 집안에 들어앉았기가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는 어정어정 걸었다. 그리고 아까 난장보살에게서 빼앗아 둔 익모초 담배를 꺼내 붙여 물었다. 한 모금 쑥 빨고 나니, 담배와 같이 향기로운 맛이 없고 맥맥하였다. 그는 휙 집어 뿌렸다. |
| "이걸 담배라고 다 먹나!" |
| 이렇게 중얼거리며 보니 덕호의 집 울 뒤였다. 그는 요새 밤마다 이 집 주위를 한 번씩 둘러 가곤 하였다. 행여나 선비를 볼까 하여 이렇게 오나 한 번도 이 집 주위서 그를 만나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저녁을 먹고 나면, 오늘이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또다시 오곤 하였다. |
| 캄캄한 하늘에는 별들이 동동 떴다. 그리고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모기 쑥내가 약간 코끝을 흔들어 준다. 그는 어디라 없이 멍하니 바라보며 손으로 허리를 꽉 짚었다. |
| 덕호네 집에서 간혹 무슨 말이 흘러나오나 누구의 음성인지 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저 호호 하하 웃는 웃음소리만은 저 별을 쳐다보는 듯이 또렷하였다. |
| 그는 이렇게 우두커니 서 있으니 아까 집어던지던 익모초 담배나마 생각히었다. 그래서 거지 안을 뒤져 보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밑이 선뜻하여 다는 속이 한결 시원한 듯하였다. 그때 이리로 오는 듯한 신발 소리가 나므로 그는 두 눈을 고양이 눈처럼 떴다. |
| 가까워지는 신발 소리는 뚝 끊어지며, 울바자 밑에 붙어 서는 소리가 바삭바삭 난다. 그리고 급한 숨결소리가 여자라는 확신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
| 그는 일어나는 호기심과 아울러 선비가 아닌가 하는 의문에 역시 가슴이 뛰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저편 사람에게 자기가 있는 것을 눈치채이지 못하게 하려고 조금씩 뒷걸음질을 하였다. |
| 또다시 신발 소리는 이편을 향하여 오더니 멈칫 선다. 그리고 숨을 호 하고 쉬었다. 따라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다. 첫째는 어둠 속으로 어림해 보이는 그의 키와 그리고 몸집을 자세히 훑어보는 순간 선비가 아니냐? 하는 생각이 차츰 농후해졌다. 그는 불과 몇 발걸음 사이를 두고 그립던 선비와 이렇게 마주섰거니 하는 생각이 울컥 내밀칠 때, 무의식간에 그는 몇 발걸음 내디디었다. 신발 소리를 들은 저편은 질겁을 하여 달아난다. 첫째는 이미 내친 걸음이라 그의 뒤를 따랐다. |
| 뛰기로 못 당할 것을 안 계집은 어떤 집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는 할 수 없이 그 집 나뭇가리 옆에 붙어 서서 계집이 나오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계집은 한참이나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의심이 버쩍 들었다. 혹시 선비가 아닌가? 그럼 누구여? 이 밤중에 그 집에 와서 엿볼 사람이 누굴까? 그는 눈을 감고 한참이나 생각하여 보아도 얼핏 짚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그를 선비라고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밤은 기어코 선비를 만나 몇 해 쌓아 두었던 말을 다만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다. |
| 이제 선비를 만나면 뭐라고 할까? 이렇게 자신을 향하여 물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 할 말이 없다. 온 가슴은 선비를 대하여 할 말로 터질 듯한데 막상 하려고 하니 캄캄하였다. 뭐라고 하나…… 너 나하구 살겠니? 하고 물을까? 그것도 말이 안 되었어. 그러면 너 나 알지? '아니, 아니어.'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여러 가지 말을 생각하며 그 집 문 편만을 주의하였다. |
| 그때 저편에서 지나가는 듯한 신발 소리가 나므로 누가 이 집 앞으로 지나는가 보다 하여 숨을 죽이고 무릎을 쭈그렸다. 마침 신발 소리가 뚝 그치며 술술 하는 소리를 따라 난데없는 물줄기가 그의 얼굴을 향하여 쏟아진다. 그는 주춤 물러서는 순간, 그것이 오줌줄기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벌컥 일어나며 이편으로 다가섰다. |
| "이 자식아, 얻다가 오줌을 누느냐?" |
| 뜻하지 않은 사람의 음성에 저편은 꿈찔 놀라서 오줌을 줄이치고 물러선다. |
| "거 누구여?" |
| 첫째는 그의 음성에 벌써 누구임을 알았다. |
| "이 자식아, 얻다가 오줌을 누냐?" |
| 그제야 개똥이는 첫째인 것을 알고, |
| "아 왜 거게 가 섰느냐? 이 자식아." |
| 첫째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우물쭈물하였다. 개똥이는 앞으로 다가서며, |
| "난 너희 집에 갔댔다." |
| "왜?" |
| "내일 우리 김 좀 매달라구." |
| "나 벌써 명구네 김 매주겠다고 말했다야." |
| "응 명구네…… 거 안되었네, 품 한 명이 꼭 모자란데……." |
| 그때 문소리가 나며 초롱불이 나온다. 그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
| "어두운데 잘 건너가우." |
| 개똥 어머니의 말이다. |
| "네." |
| 첫째는 선비의 음성인가 하였다. 그리고 개똥이가 아니면 쫓아가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해서 머뭇머뭇하고 서 있었다. 초롱불은 첫째를 비웃는 듯이 조롱하는 듯이 까뭇까뭇 숨바꼭질을 한다. 첫째는 가슴이 죄어서 한 발 내디디었을 때, |
| "어마이, 거 누구여?" |
| 개똥이가 묻는다. |
| "응…… 너 왜 거게 가 섰니?" |
| 개똥 어머니는 이편으로 오는 모양이다. |
| "간난이구나, 그애가 이 밤에 왜 왔을까?" |
| "간난이?" |
| 첫째는 놀란 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똥 어머니는 멈칫 선다. |
| "거 누구니?" |
| "나유." |
| "……응 첫째인가." |
| "간난이가 뭐 하러 우리집에를 왔어?" |
| "글쎄 말이다, 혹 덕호가 보냈는지?" |
| 첫째는 멍하니 마지막 사라지는 초롱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맛 가의 오줌을 씻어 내며 터벅터벅 걸었다. |
| 첫째는 무정처하고 걷다가 다시 덕호의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 그의 집으로 왔다. |
| 그러나 방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마당가에서 어정어정 돌아다니다가 나뭇가리 옆에 펄썩 주저앉았다. 훅 하고 끼치는 나무 썩어진 내를 맡으며, 아까 개똥이의 오줌을 받은 기억이 떠올라 무의식간에 그의 손은 이맛가를 만졌다. 따라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울분이 울컥 치미는 것을 깨달았다. |
| 그는 나뭇가리에 몸을 기대며 고놈의 계집애는 도무지 볼 수가 없으니 웬일이어, 어디 앓지나 않는지? 하고 생각할 때 그의 눈 위에서 빛나던 그중 큰 별 하나가 꼬리를 길게 달고 까뭇 사라진다. 그는 그 별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선비의 눈등의 검은 사마귀를 생각하였다. 티없이 밝은 얼굴에 빛나는 그 검은 사마귀! 그것은 흡사히 이제 사라진 그 별과 같았다. 그는 한숨을 길게 쉬며 눈을 꾹 감았다. 감으면 감을수록 더 또렷이 나타나는 그 검은 사마귀! 이놈의 계집애를…… 하며 첫째는 벌떡 일어났다. 그때 저편으로부터 신발 소리가 났다. 그는 공연히 화가 치받친다. |
| "거 누구유?" |
| 버럭 소리를 질렀다. |
| "첫째냐? 난 널 자꾸 찾아다녔구나, 여기 있는 것을 모르고…… 왜 거기 가 있냐?" |
| 이서방은 헐떡헐떡하면서 첫째의 곁으로 와서 그의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첫째는 일어나는 화를 참으며 씩씩하였다. 이서방은, |
| "첫째야!" |
| 부르고 나서 그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첫째는 귀찮다는 듯이 조금 물러앉으며 벌렁 누워 버렸다. 이서방은 그의 이마를 짚으며, |
| "너 요새 뭐 생각하는 것 있지?" |
| 첫째는 얼른 선비를 머리에 그리며, 이서방의 손이 거북하였다. 그래서 손을 물리치며 돌아누웠다. 한참 후에 이서방은, |
| "너 자냐?" |
| "아니." |
| "너 요새 왜 잠두 안 자고 다니니?" |
| "잠이 안 오니께." |
| "왜, 잠이 안 와?" |
| "……" |
| 뭐라고 말을 하렸으나 입이 꽉 붙고 만다. 이서방은, |
| "첫째야, 네가 내게 숨길 것이 뭐냐, 말하면 내 힘 미치는 데까지는 힘써 보자꾸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