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07

선비가 설거지를 마치고 건넌방으로 건너갈 때 옥점 어머니가 마루에 섰다.
"이전 그 방 임자가 왔으니 넌 이전 할멈과 있든지 나와 있든지 하자."
옥점이가 방에서 툭 튀어나왔다.
"어서 그 방 좀 내다구. 그 방의 그게 모두 뭐냐? 웬 보따리가 그리 많아. 아이, 되놈의 보따리 같데, 호호……."
옥점이는 양복쟁이를 돌아보며 이렇게 웃었다. 선비는 귀밑까지 빨개지며 건넌방으로 왔다. 그리고 봇짐을 모두 한데 싸며 옥점의 하던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어디로 이 봇짐을 옮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안방으로 옮기자니 옥점 어머니와는 같이 있기가 싫고 할멈 방으로 옮기자니 그 방은 몹시 좁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에 그는 어머니와 그가 살던 아랫마을 집이 문득 생각히었다. 비록 초가이나 어머니와 그가 살던 그 집! 그는 불시에 그 집이 보고 싶었다.
'그 집에 누가 이사해 왔는지 몰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봇짐을 보았다. 그리고 부시시 일어나며 좌우 손에 봇짐을 들었다.
"후덥다. 이거 소리나 한마디 하게나."
키 작기로 유명한 난장보살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키 큰 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호미로 땅을 푹 파올리며 가라지를 얼핏 뽑아 던졌다.
그들은 이렇게 별명을 불러 가며 잡담을 늘어놓곤 하였던 것이다.
"응 소리……."
"싱앗대야, 어서 해라! 이놈아, 이거 살겠니."
난장보살이 키 큰 자의 등을 후려쳤다. 그 곁에서 씩씩하며 김을 매는 첫째는,
"소리 한마디 해유."
하고 돌아보았다. 난장보살은 흘금 쳐다보며,
"이애, 이 곰도 소리를 들을 줄 아니."
술취하기 전에는 첫째는 누구와 말 한마디 건네기를 싫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술만 취하면 남이 알아도 듣지 못할 말을 밤새껏 저 혼자 중얼중얼하곤 하였다.
첫째는 난장보살을 보며 픽 웃었다. 그는 대답 대신에 늘 이렇게 웃는 것이 버릇이다.
앞산에서 뻐꾹! 뻐꾹! 하는 소리가 난다. 싱앗대는 앞산을 흘금 바라보더니,
"뻐꾹새만 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목에 핏줄을 불끈 일으키며 노래를 부른다.
흙이야 돌이야
알알이 골라서
임 주고 나 먹으려
가을 묻었지
길게 목청을 내뽑았다. 땃버리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눈을 스르르 감더니,
눈에나 가시 같은
장재 첨지네
함석 창고 채우려고
가을 묻었나
굽이쳐 올라가는 멜로디는 스러지려는 듯 꺼지려는 듯하였다.
"좋다!"
난장보살은 호미로 땅을 치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무어라고 형용 못 할 슬픔이 그들의 가슴을 찌르르 울려 주었다.
"이거 왜 이리 늦으니, 어서 또 받지."
유서방이 싱앗대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싱앗대는,
"너구리 영감! 나 소리하면 술 사줄 테유."
"암 사주고말구……."
첫째는 술 말을 들으니 목이 더 타는 듯하였다. 그리고 뽀얀 탁배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여 침을 넘겼다.
"그만두겠수다. 탁배기 한 잔에 값비싼 소리를……."
"어서 하자."
여럿이 일시에 소리친다. 유서방은 농립을 벗어 부채질한다.
"이거 더워서 견디겠나, 어서 소리라도 이어 하게. 탁배기가 맛없으면 약주라두 사주리."
"이애 이놈아, 소리마디나 하니까 장한 듯하니? 이리 세를 부리고……."
난장보살은 싱앗대의 농립을 툭 쳐서 벗겨 놓았다.
"이놈아, 좀 그만 까불어라…… 너 내일 누구네 김매러 가니?"
"왜…… 삼치몰래, 삼치몰래 김매러 간다."
"그 밭이 돌짝밭이 돼서 아주 김매기 힘들지."
"그래두 그 밭에 도지가 닷 섬이다!"
"결전이야 저편에서 물겠지, 도지가 그렇게 많으니까."
"결전이 뭐가…… 자담한다."
"뭐 자담이야? 너무하구나! 그 밭은 굶고 부쳐야 하겠군."
싱앗대는 이렇게 말하며 유서방을 곁눈질해 보았다. 유서방은 덕호네 집을 살므로, 언제나 그들은 유서방을 꺼리었던 것이다. 난장보살은 침을 탁 배앝으며,
"요새 하는 짓이란 놀랄 만하니."
가만히 말하며, 호미 끝에 조가 상할까 하여 얼핏 손으로 조를 싸고 돌며 미츨하니 북돋아 놓았다. 그때 바람이 가늘게 불어와서 좃대를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멀리서 송아지가 운다. 싱앗대는 목을 늘여,
내가 바친 조알은
밤알 대추알
임의 입에 둥글둥글
구르는 조알
땃버리는 기침을 칵 하며 호미를 힘있게 쥐었다.
장재 첨지 조알은
죽쩡이 조알
내 가슴에 마디마디
맺히는 조알
그들은 뜻하지 않은 한숨이 후 나왔다.
"이놈들아, 소리를 하는 바에는 좀 속이 시원한 소리를 하지 그게 무슨 소리냐!"
난장보살은 얼굴이 벌개지며 호미를 집어 팽개친다. 그의 머리에는 장리쌀 가져오던 기억이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그날―--- 덕호네 그 넓은 뜰에는 장리쌀을 가지러 온 소작인들로 빽빽하였다. 한참 후에 덕호가 장죽을 물고 나왔다.
"이게 웬 사람들이 이리 많아?"
언제나 장리쌀을 내줄 때에 하는 덕호의 말이다.
덕호는 휘 둘러보았다. 돌아선 농민들은 덕호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며 불행히 자기만이 쌀을 못 얻어 가게나 되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머리를 푹 숙였다.
덕호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들 중에는 작년 것도 채 갚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허 거정, 그래 농사 지은 쌀들은 다 어떻게 했담. 아, 저 사람네도 쌀이 없는가."
덕호는 싱앗대를 바라보았다. 싱앗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네 그저……."
"그거 웬일이야…… 절용해서 먹지 안 하는 모양일세. 이렇게 가져만 가니 가을에 가서 자네들이 해놓으랴면 힘들지. 그렇지 않은가?"
농민들은 그저 머리를 숙여 들을 뿐이었다.
덕호는 사랑에서 장책과 붓을 들고 나와서, 농민들의 성명을 일일이 적어 놓고 그리고 몇 섬 몇 말 가져갈 것까지 꼭꼭 적어 놓았다.
찌꺽 하는 소리에 그들은 바라보니 유서방이 곡간문을 열었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은 달려가서 조섬을 끌어내어 마개를 뽑고 이미 펴놓았던 멍석자리에 조를 솨르르 쏟아 놓았다. 낯익은 그 솨르르 하는 소리! 그리고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 속에 풀풀 날리는 좃겨!
무의식간에 그들은 우르르 밀려가서 좁쌀을 한 줌씩 푹푹 뜨며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작년 가을에 자기들이 바친 조알은 모두가 한알 같아서 마치 잘 여문 밤알이나 대추알을 굴려 무는 듯한 옹골찬 맛이 있었는데 이 조알은 어디서 난 것인지 쭉정이 절반으로 굴려 무는 맛이 거분거분하여 마치 좃겨를 씹는 듯하였다.
이때까지 비록 장리쌀이나마 가져가게 된다는 기쁨에 잠겼던 그들은 어디 가서 호소할 곳 없는 그런 애석하고도 억울함이 그들의 머리를 찡하니 울려 주었다.
유서방은 멀뚱멀뚱하고 서로 바라다만 보는 농민들을 돌아보았다.
"어서 그릇을 가지고 한 사람씩 이리로 나오시우."
그제야 그들은 정신이 들어 한 명씩 앞으로 나갔다.
말에 옮겨 그들의 쌀자루로 솨르르 하고 들어오는 좁쌀 흐르는 소리! 그들의 가슴에다 돌을 처넣은들 이에서 더 아플 수가 있으랴!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한숨을 후 쉬며 이마에서 흐른 땀을 쥐어 뿌렸다. 그리고 어린애같이 거두고 귀여워하는 좃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에 그는 호밋자루를 던진 채 발길 나가는 그대로 어디든지 가고 싶었다.
"어서 소리나 또 하자."
유서방이 그들의 침묵을 깨쳤다. 난장보살은 유서방을 흘금 바라볼 때, 그날 쭉정이 좁쌀을 퍼주던 유서방인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여부슈!"
난장보살은 얼결에 이렇게 유서방을 보고 소리쳤으나, 그 다음 말은 생각나지 않아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그들은 맡은 이랑을 다 매고 딴 이랑을 돌려 잡았다. 이 고랑에는 조뱅이가 더 많이 우거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냉이꽃이 하얗게 덮였다. 싱앗대는 벌컥 일어나서 해를 짐작해 보며,
"해지기 전에 이 밭을 다 맬까?"
하고 혼자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놈아, 이걸 해지기 전에 못 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