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가 설거지를 마치고 건넌방으로 건너갈 때 옥점 어머니가 마루에 섰다. |
| "이전 그 방 임자가 왔으니 넌 이전 할멈과 있든지 나와 있든지 하자." |
| 옥점이가 방에서 툭 튀어나왔다. |
| "어서 그 방 좀 내다구. 그 방의 그게 모두 뭐냐? 웬 보따리가 그리 많아. 아이, 되놈의 보따리 같데, 호호……." |
| 옥점이는 양복쟁이를 돌아보며 이렇게 웃었다. 선비는 귀밑까지 빨개지며 건넌방으로 왔다. 그리고 봇짐을 모두 한데 싸며 옥점의 하던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어디로 이 봇짐을 옮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
| 안방으로 옮기자니 옥점 어머니와는 같이 있기가 싫고 할멈 방으로 옮기자니 그 방은 몹시 좁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에 그는 어머니와 그가 살던 아랫마을 집이 문득 생각히었다. 비록 초가이나 어머니와 그가 살던 그 집! 그는 불시에 그 집이 보고 싶었다. |
| '그 집에 누가 이사해 왔는지 몰라?' |
|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봇짐을 보았다. 그리고 부시시 일어나며 좌우 손에 봇짐을 들었다. |
| "후덥다. 이거 소리나 한마디 하게나." |
| 키 작기로 유명한 난장보살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키 큰 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호미로 땅을 푹 파올리며 가라지를 얼핏 뽑아 던졌다. |
| 그들은 이렇게 별명을 불러 가며 잡담을 늘어놓곤 하였던 것이다. |
| "응 소리……." |
| "싱앗대야, 어서 해라! 이놈아, 이거 살겠니." |
| 난장보살이 키 큰 자의 등을 후려쳤다. 그 곁에서 씩씩하며 김을 매는 첫째는, |
| "소리 한마디 해유." |
| 하고 돌아보았다. 난장보살은 흘금 쳐다보며, |
| "이애, 이 곰도 소리를 들을 줄 아니." |
| 술취하기 전에는 첫째는 누구와 말 한마디 건네기를 싫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술만 취하면 남이 알아도 듣지 못할 말을 밤새껏 저 혼자 중얼중얼하곤 하였다. |
| 첫째는 난장보살을 보며 픽 웃었다. 그는 대답 대신에 늘 이렇게 웃는 것이 버릇이다. |
| 앞산에서 뻐꾹! 뻐꾹! 하는 소리가 난다. 싱앗대는 앞산을 흘금 바라보더니, |
| "뻐꾹새만 운다!" |
| 이렇게 말하고 나서 목에 핏줄을 불끈 일으키며 노래를 부른다. |
| 흙이야 돌이야 |
| 알알이 골라서 |
| 임 주고 나 먹으려 |
| 가을 묻었지 |
| 길게 목청을 내뽑았다. 땃버리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눈을 스르르 감더니, |
| 눈에나 가시 같은 |
| 장재 첨지네 |
| 함석 창고 채우려고 |
| 가을 묻었나 |
| 굽이쳐 올라가는 멜로디는 스러지려는 듯 꺼지려는 듯하였다. |
| "좋다!" |
| 난장보살은 호미로 땅을 치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무어라고 형용 못 할 슬픔이 그들의 가슴을 찌르르 울려 주었다. |
| "이거 왜 이리 늦으니, 어서 또 받지." |
| 유서방이 싱앗대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싱앗대는, |
| "너구리 영감! 나 소리하면 술 사줄 테유." |
| "암 사주고말구……." |
| 첫째는 술 말을 들으니 목이 더 타는 듯하였다. 그리고 뽀얀 탁배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여 침을 넘겼다. |
| "그만두겠수다. 탁배기 한 잔에 값비싼 소리를……." |
| "어서 하자." |
| 여럿이 일시에 소리친다. 유서방은 농립을 벗어 부채질한다. |
| "이거 더워서 견디겠나, 어서 소리라도 이어 하게. 탁배기가 맛없으면 약주라두 사주리." |
| "이애 이놈아, 소리마디나 하니까 장한 듯하니? 이리 세를 부리고……." |
| 난장보살은 싱앗대의 농립을 툭 쳐서 벗겨 놓았다. |
| "이놈아, 좀 그만 까불어라…… 너 내일 누구네 김매러 가니?" |
| "왜…… 삼치몰래, 삼치몰래 김매러 간다." |
| "그 밭이 돌짝밭이 돼서 아주 김매기 힘들지." |
| "그래두 그 밭에 도지가 닷 섬이다!" |
| "결전이야 저편에서 물겠지, 도지가 그렇게 많으니까." |
| "결전이 뭐가…… 자담한다." |
| "뭐 자담이야? 너무하구나! 그 밭은 굶고 부쳐야 하겠군." |
| 싱앗대는 이렇게 말하며 유서방을 곁눈질해 보았다. 유서방은 덕호네 집을 살므로, 언제나 그들은 유서방을 꺼리었던 것이다. 난장보살은 침을 탁 배앝으며, |
| "요새 하는 짓이란 놀랄 만하니." |
| 가만히 말하며, 호미 끝에 조가 상할까 하여 얼핏 손으로 조를 싸고 돌며 미츨하니 북돋아 놓았다. 그때 바람이 가늘게 불어와서 좃대를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
| 멀리서 송아지가 운다. 싱앗대는 목을 늘여, |
| 내가 바친 조알은 |
| 밤알 대추알 |
| 임의 입에 둥글둥글 |
| 구르는 조알 |
| 땃버리는 기침을 칵 하며 호미를 힘있게 쥐었다. |
| 장재 첨지 조알은 |
| 죽쩡이 조알 |
| 내 가슴에 마디마디 |
| 맺히는 조알 |
| 그들은 뜻하지 않은 한숨이 후 나왔다. |
| "이놈들아, 소리를 하는 바에는 좀 속이 시원한 소리를 하지 그게 무슨 소리냐!" |
| 난장보살은 얼굴이 벌개지며 호미를 집어 팽개친다. 그의 머리에는 장리쌀 가져오던 기억이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
| 그날―--- 덕호네 그 넓은 뜰에는 장리쌀을 가지러 온 소작인들로 빽빽하였다. 한참 후에 덕호가 장죽을 물고 나왔다. |
| "이게 웬 사람들이 이리 많아?" |
| 언제나 장리쌀을 내줄 때에 하는 덕호의 말이다. |
| 덕호는 휘 둘러보았다. 돌아선 농민들은 덕호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며 불행히 자기만이 쌀을 못 얻어 가게나 되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머리를 푹 숙였다. |
| 덕호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들 중에는 작년 것도 채 갚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
| "허 거정, 그래 농사 지은 쌀들은 다 어떻게 했담. 아, 저 사람네도 쌀이 없는가." |
| 덕호는 싱앗대를 바라보았다. 싱앗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
| "네 그저……." |
| "그거 웬일이야…… 절용해서 먹지 안 하는 모양일세. 이렇게 가져만 가니 가을에 가서 자네들이 해놓으랴면 힘들지. 그렇지 않은가?" |
| 농민들은 그저 머리를 숙여 들을 뿐이었다. |
| 덕호는 사랑에서 장책과 붓을 들고 나와서, 농민들의 성명을 일일이 적어 놓고 그리고 몇 섬 몇 말 가져갈 것까지 꼭꼭 적어 놓았다. |
| 찌꺽 하는 소리에 그들은 바라보니 유서방이 곡간문을 열었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은 달려가서 조섬을 끌어내어 마개를 뽑고 이미 펴놓았던 멍석자리에 조를 솨르르 쏟아 놓았다. 낯익은 그 솨르르 하는 소리! 그리고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 속에 풀풀 날리는 좃겨! |
| 무의식간에 그들은 우르르 밀려가서 좁쌀을 한 줌씩 푹푹 뜨며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
| 작년 가을에 자기들이 바친 조알은 모두가 한알 같아서 마치 잘 여문 밤알이나 대추알을 굴려 무는 듯한 옹골찬 맛이 있었는데 이 조알은 어디서 난 것인지 쭉정이 절반으로 굴려 무는 맛이 거분거분하여 마치 좃겨를 씹는 듯하였다. |
| 이때까지 비록 장리쌀이나마 가져가게 된다는 기쁨에 잠겼던 그들은 어디 가서 호소할 곳 없는 그런 애석하고도 억울함이 그들의 머리를 찡하니 울려 주었다. |
| 유서방은 멀뚱멀뚱하고 서로 바라다만 보는 농민들을 돌아보았다. |
| "어서 그릇을 가지고 한 사람씩 이리로 나오시우." |
| 그제야 그들은 정신이 들어 한 명씩 앞으로 나갔다. |
| 말에 옮겨 그들의 쌀자루로 솨르르 하고 들어오는 좁쌀 흐르는 소리! 그들의 가슴에다 돌을 처넣은들 이에서 더 아플 수가 있으랴! |
|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한숨을 후 쉬며 이마에서 흐른 땀을 쥐어 뿌렸다. 그리고 어린애같이 거두고 귀여워하는 좃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에 그는 호밋자루를 던진 채 발길 나가는 그대로 어디든지 가고 싶었다. |
| "어서 소리나 또 하자." |
| 유서방이 그들의 침묵을 깨쳤다. 난장보살은 유서방을 흘금 바라볼 때, 그날 쭉정이 좁쌀을 퍼주던 유서방인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
| "여부슈!" |
| 난장보살은 얼결에 이렇게 유서방을 보고 소리쳤으나, 그 다음 말은 생각나지 않아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
| 그들은 맡은 이랑을 다 매고 딴 이랑을 돌려 잡았다. 이 고랑에는 조뱅이가 더 많이 우거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냉이꽃이 하얗게 덮였다. 싱앗대는 벌컥 일어나서 해를 짐작해 보며, |
| "해지기 전에 이 밭을 다 맬까?" |
| 하고 혼자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
| "이놈아, 이걸 해지기 전에 못 매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