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06

마침 덕호가 들어온다. 옥점 어머니는 헬금 쳐다보았다. 덕호가 첩네 집에만 묻히어 있는 까닭이다.
"아니 당신도 우리집에 올 줄 아우?"
덕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옥점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저년 때문에 우리집에 무슨 일이 나구야 말 테야. 에이 보기 싫어서!"
재봉침을 굴리는 선비의 뒷모양을 흘금 바라보며 덕호는 마루로 올라왔다.
"옥점이가 아프다고 편지했어…… 집에서 저년이 생긴 흉조를 다 부리고 있으니 그런 일이 안 날 탁이 되나?"
편지를 거지에서 꺼내어 휙 팽개친다. 옥점 어머니는 비상히 당황하여 편지를 주워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어디 좀 똑똑히 보우, 흘려 써서 난 잘 모르겠수. 어데가 아프다고 했수?"
덕호는 아내의 주는 편지를 받아 읽어 들렸다. 옥점 어머니는 금시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이고 저를 어쩌면 좋우. 내 글쎄 요새 며칠 꿈자리가 사납더니 저 모양이구려. 내가 갈까요?"
"자네가 가서 뭘 알겠나, 내가 가야지. 어서 펄펄 옷 준비를 해."
어느 사이에 부부의 노염은 풀어지고 말았다. 옥점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며,
"이애 그것은 그만두고 이걸 해라. 그리고 할멈은 어서 숯불 좀 피우."
선비는 하던 일감을 착착 개어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걸 펄쩍 동정을 달아…… 언제 이제 떠날 차가 있수?"
기웃하여 들여다보는 덕호를 쳐다보았다.
"차가, 웬 차가, 자전거로 읍까지 가면 그게서야 떠날 차가 있겠지."
선비는 동정을 시침하며 옥점의 그 둥글둥글한 눈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나 이렇게 집에서 걱정해 줄 아버지 어머니를 가진 옥점이가 끝없이 부러웠다.
그리고 어디가 몹시 아파도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줄 사람조차 없는 자기의 외로운 신세가 새삼스럽게 더 슬펐다.
"나 서울 떠나면 선비는 아랫집 가서 자게 하여라."
"어딜 누가 가는 게요, 선비를 왜……?"
옥점 어머니는 말을 중도에 끊으며 당장에 뾰로통해진다.
"아, 저년이 길 떠나랴는데, 웬 방정을 저다지 떨어. 이애 이년아……."
턱을 철썩 받친다. 선비는 근심스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덕호는 흘금 선비를 보며 물러앉았다.
"글쎄 저런 맥힌 년이 어디 있겠니."
옥점 어머니는 뭐라고 대답을 하려다가 그만 참았다.
검정이가 쫓기어 들어오며 컹컹 짖었다.
중대문이 열리며 옥점이가 들어온다.
"어머니!"
옥점 어머니는 딸의 음성에 질겁을 하여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목을 얼싸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옥점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낯모를 양복쟁이는 모녀를 바라보며 머뭇머뭇하고 섰다.
덕호는 마루 위에 서서,
"아니 이게 웬일이냐, 언제 떠났느냐. 전보를 치고 올 것이지, 아프다더니……?"
옥점이는 달려와서 덕호의 손을 쥐며,
"아버지, 저이가 우리 학교 선생님의 자제인데, 저 몽금포에 해수욕 오던 길에 나를 만나서 그래서 우리집에 잠깐 들러 가시라고 해서 오셨다우."
덕호는 처음엔 웬 양복쟁인가 하고 적지 않게 불안을 가졌으나 자기 딸이 배우는 선생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퍽으나 안심되었다.
옥점이는 양복쟁이를 바라보며,
"우리 아버지여요."
생긋 웃었다. 양복쟁이는 머리를 번쩍 들며 모자를 벗어 들고 덕호의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인사를 하였다.
"이렇게 다 오셔야 만나 보지유. 어서 들어오시우."
덕호는 앞을 서서 들어간다. 그들은 뒤를 따랐다. 옥점 어머니는 옥점의 앞에 서서 들어가는 양복쟁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도 저런 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되었다.
"아가, 어디 아프댔니? 아버지가 방금 너한테 가시랴댔다."
옥점 어머니는 마루에 올라서며 이렇게 물었다. 옥점이는 얼굴을 좀 붉히는 듯하면서,
"어머니두 밤낮 아기, 아가…… 그게 무슨 말씀이야요."
그들은 일제히 웃었다. 옥점이는 아버지와 양복쟁이를 번갈아 보았다.
"아버지, 나두 몽금포 갈 테야요."
덕호는 옥점의 얼굴빛을 자세히 살피며,
"어디 아프다는 것은 좀 나으냐. 네 몸만 든든하거던 아무 데라도 가렴."
옥점이는 생긋 웃으며 양복쟁이를 쳐다보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머니, 선비가 내 방에 와서 있다구?"
"그래……."
"애이…… 난 몰라, 난 어데 있으라누."
금시 새침을 뗀다. 덕호는 옥점이를 보며, 이런 때에 옥점이는 제 어미와 어쩌면 그다지도 꼭 닮았는지…… 하였다.
"이애야, 그럼 선비는 이 방에 있게 하자꾸나."
덕호는 웃으며 양복쟁이를 보았다.
"저것이 아직도 어린애같이 굽니다그리, 하하."
양복쟁이도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옥점이를 어떻게 귀여워하는 것을 잠시간이라도 알 수가 있다.
"선비야, 점심 해라."
어머니 말에 옥점이는 벌떡 일어나며,
"정말 선비가 우리집에 와 있수, 어디?"
뛰어나가는 옥점이는 건넌방 문 앞에서 선비와 꼭 만났다.
"선비야 잘 있었니?"
선비는 옥점의 손을 쥐려다 물큰 스치는 향내에 멈칫하였다.
그러자 두 볼이 화끈 다는 것을 느꼈다.
"애이, 선비 너 고왔구나, 어찌면 저렇게……."
옥점이는 무의식간에 흘금 뒤를 돌아보았다. 안방의 세 사람의 눈이 이리로 쏠린 것을 보았을 때 이때껏 느껴 보지 못한 질투 비슷한 감정이 그의 눈가를 사르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따라서 그의 얼굴까지 화끈 달았다.
옥점이는 냉큼 돌아섰다. 선비는 머리를 푹 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할멈은 김칫감을 다듬다가 선비를 쳐다보며,
"아니 그 사내 사람은 누군고?"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남의 사내와 같이 다니는 것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모루지요."
아까 옥점이가 그의 아버지에게 양복쟁이를 소개하던 것을 얼핏 생각하였다.
"점심 하래요."
"뭐 점심을……? 밥이 가뜩한데 웬 밥을 또 하래 응. 그 사내를 해 먹이려는군."
선비는 솥을 횅횅 가시며 옥점의 분 바른 얼굴과 양장한 몸 맵시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화로에서 피어나는 숯불을 보았다.
옥점 어머니가 내다보며,
"이애, 닭 두 마리 잡고 해라."
"네."
옥점 어머니는 이렇게 이르고 나서 들어갔다. 훌훌 하는 가벼운 소리에 선비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제비 한 마리가 부엌 천장을 돌아, 살대같이 그 푸른 하늘을 향하여 까맣게 높이 뜬다. 선비는 한숨을 가볍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저 하늘을 보는 듯하였다.
"이애, 닭을 두 마리나 잡으라지?"
할멈은 아궁에 불을 살라 넣으며 선비를 쳐다본다. 그리고 눈가로 가는 주름을 잡히며 웃는다. 그는 언제나 닭을 잡게 되면 살을 다 바른 닭의 뼈를 먹기 좋아하였다.
꼬꾸댁! 꼬꾸댁! 닭 우는 소리에 선비는 놀라서 물 묻은 손으로 행주치마에 씻으며 뒷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가 허청간까지 달려오니, 닭은 꼬꾸댁 소리를 지르며 둥우리 안에서 돌아가다가, 선비를 보고 푸르릉 날아 내려온다. 뒤이어 닭의 똥 냄새가 그의 얼굴에 칵 덮씌운다. 그리고 닭의 털이 가볍게 일어난다.
선비는 기침을 하며 섰다가, 닭이 없어진 후에 둥우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금시 닭이 낳아 논 달걀이 선비를 보고 해쭉 웃는 듯하였다. 그는 상긋 웃으며 달걀을 둥우리 안에서 집어내었다. 아직도 달걀은 따뜻하다.
"이전 마흔 알이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나왔다.
유서방은 풋병아리 두 놈을 잡아 목에 피를 내어 가지고 들어오다가 선비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달걀 또 낳았니?"
"네."
선비는 이 따뜻한 달걀을 누구에게든지 보이고 싶어 쑥 내밀었다.
"쟨 달걀을 여간 좋아하지를 않어."
할멈은 유서방이 들고 들어온 닭을 뜨거운 물에 쓸어 넣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할머니, 이것까지 하면 지금 마흔 알이야요."
"그래 좋겠다! 그까짓 것 그리 알뜰하게 모아서 소용이 무언가."
할멈은 가만히 말하였다. 선비도 이 말에는 어쩐지 가슴이 찌르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고 또다시 달걀을 들여다보니 볼수록 귀여웠다.
선비는 소리 없이 광문을 열고 들어갔다. 곰팡이 냄새가 훅 끼친다. 그는 독 위에서 달걀 바구니를 내려 들여다보았다. 똑같은 달걀이 바구니에 전과 같이 그뜩하였다. 그는 들고 들어간 달걀을 조심히 올려놓으며 "마흔 알이지" 하고 다시 한번 더 뇔 때, 문틈으로 비쳐 들어오는 광선은 그의 손가락을 발갛게 하였다. 그는 바구니를 쓸어 보고 부엌으로 나왔다. 그리고 닭의 털을 뽑는 할멈 곁에 앉았다.
그들이 점심을 다 해서 퍼들이고 부뚜막에서 밥을 먹을 때 덕호가 들어왔다.
"선비야, 안방으로 들어가 먹어라, 응."
선비는 일어나며,
"좃습니다."
"아, 왜 말을 안 들어. 어서 가지고 들어가 옥점이와 같이 먹지."
너무 서두는 바람에 선비는 술을 놓고 말았다. 덕호는 암만 말해야 쓸데없을 것을 알고,
"아 그전에도 부엌에서만 먹었니?"
이렇게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무어라고나 하는지, 옥점 어머니의 쨍쨍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애는 밤낮 그 모양이야 말요, 해야 들어야지요. 원체 질기기가 쇠가죽 이상인데."
선비는 얼굴이 화끈 달았다. 그리고 닭의 뼈나마 빨아 먹은 물이 도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