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05

한참 후에 그는 바느질 그릇을 들고 내려와서 등불을 마주앉으며 일감을 들었다.
"아이구!"
하는 신음소리에 선비는 바느질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어머니, 또 아파?"
선비 어머니는 폭 꺼진 눈을 겨우 뜨며,
"물 좀 다우."
"어머니, 물을 자꾸 잡수면 안 된대."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가며 들여다보았다. 오래 앓은 까닭인지 무슨 냄새가 좀 나는 듯하였다.
"이애 좀 줘!"
조금 더 크게 소리친다. 선비는 거의 울듯이 애원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듣지 않고 소리소리치다가 일어나려고 머리를 든다. 선비는 할 수 없음을 알고 부엌으로 나와서 물을 끓여 가지고 들어왔다. 김이 펄펄 올라가는 것을 본 그의 어머니는,
"누가 그 물 먹겠다니, 잡년의 계집애, 어서 찬물 다오……."
"아이 어머니……."
그는 어머니를 붙들고 물을 입에 대어 주었다. 선비 어머니는 좌우로 머리를 흔들다가 마침내 뜨거운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도로 누웠다.
"이애."
한참 후에 어머니는 선비를 보며 이렇게 불렀다. 선비는 또다시 일감을 놓고 곁으로 갔다.
"어제 꿈에 너의 아버지를 만났구나. 그런데 어떻게 반갑지도 않고, 그리 싫지도 않고, 그저 전에 살림하고 살던 때라구 하는데…… 너의 아부지가 너를 업구서 어데로 자꾸 가두나. 그래서 내가 따라가면서 어델 가느냐 물어도 말두 안 하고 가겠지…… 그게 무슨 꿈일까."
선비는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얼굴이 휙 떠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얼굴은 분명치를 않고 안개 속에 묻힌 것같이 어림해 보일 뿐이다. 그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 찰나에 어머니는 확실히 아버지 환영을 보는 모양이다. 선비는 소름이 쭉 끼치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선비는 어머니를 흔들며 다가앉아 어머니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어머니는 눈을 치뜨고 천장을 바라본다. 그 무서운 눈을 굴려 딸을 보았다.
"왜?"
선비 어머니는 딸을 보자 흑흑 느껴 운다. 그리고 입술을 풀풀 떨며,
"너를 어서 임자를 맡겨야…… 헐, 헐 터인……."
어머니 입에서 또렷하게 말이 흘러나올 때, 그는 안심을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지면 아무리 부모라도 무서워진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에 싸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므로, 선비는 얼른 문 편으로 바라보았다. 방문이 열리며 덕호가 들어온다. 선비는 놀라 일어났다.
"아직도 아픈가, 그거 안되었군."
덕호는 문 안에 선 채 선비 어머니를 바라보며 걱정을 한다. 선비 어머니는 덕호임을 알자, 일어나려고 애를 쓴다. 선비는 곁으로 가서 부축을 하였다.
"어서 눕지, 어서 눠…… 무엇 좀 먹었니?"
선비를 바라보았다. 선비는 머리를 조금 드는 체하다가 도로 숙였다.
"아무것도 못 잡수시어요."
"허, 거 정 안되었구나. 우리집에 꿀이 있니라. 그것을 좀 갖다가 물에 타서 먹게 하여라. 아무것이나 좀 먹어야지, 되겠니."
덕호는 담배를 피워 물며 앉으려는 눈치를 보이더니,
"원 저게 뭐란 말인구, 저 등을 쓰구야 답답해서 어찌 산단 말이냐."
덕호는 지갑을 내어 오 원짜리 지화를 한 장 꺼내어서 선비 앞으로 던져 주었다. 선비는 꿈칠 놀랐다. 그때 별안간 방문이 바스스 열렸다.
그들은 놀라 바라보았다. 신천댁을 내쫓고 그 후를 이어 들어온 덕호의 작은마누라인 간난이였다. 간난이는 문을 열기는 하고도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머뭇하고 섰다. 덕호는 간난이를 노려보았다.
"왜 와? 응…… 그 문 여는 법이 어서 배운 법이야. 왼상것 같으니. 사람의 집에 사람 다니는 법이 어디 그렇담."
이 모양을 바라보는 선비네 모녀는 뭐라고 말해야 그들의 불평을 완화시킬지 몰랐다. 그래서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선비 어머니는,
"어서 들어와요."
"뭘 하러 들어와, 어서 가! 계집년의 문 여닫는 법이 그런 법이 어디 있담! 어서 당장 못 가겠니!"
주먹을 부르쥔 덕호는 눈을 부릅뜬다. 선비는 얼결에 일어났다.
"앗으셔요, 참으셔요."
간난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밖으로 뛰어나간다. 덕호는 문을 쿡 닫고 들어왔다. 그리고 지화를 보며,
"아, 고런 망상시러운 것이 어디 있담…… 어서 넣어 둬라. 그리고 내일은 저 등도 갈고, 의원도 좀 오래서 뵈지, 응 이애 내 말 들었니?"
선비 어머니는 선비를 꾹 찔렀다. 그제야 선비는,
"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선비는 그 돈 집을 것이 난처하였다. 그렇다고 그 돈을 도로 물리는 수는 없는 터이고…… 하여 망설망설할 때, 선비 어머니는 그 돈을 집어 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선비는 마지못해서 그 돈을 받아 이불 아래에 쑥 쓸어 넣었다.
덕호는 더 섰기가 무엇하여 돌아서며,
"내일 꿀도 잊지 말고 가져와."
"네."
그의 어머니가 대신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선비를 꾹 찌르며 문 밖까지 따라 나가라는 뜻을 보였다. 선비는 부시시 일어나서 덕호의 뒤를 따라 싸리문턱까지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오, 내일은 집에 들어왔다가 가거라."
"네."
덕호가 문 밖을 나서자 선비는 곧 싸리문을 지치고 들어왔다. 웬일인지 간난이가 다그쳐 들어오는 것 같아서 공연히 숨이 가빴다.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앉으며,
"어머니, 간난이가 어째 왔을까?"
그의 어머니도 지금 그것을 생각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글쎄…… 아이구 가슴이 또 치미누나."
선비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고 아구구 소리를 연발한다. 선비는 어머니의 허리를 쓸면서 아까 간난이가 돌연히 나타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평생 가야 오지 않던 그들이 별안간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집에를 왔을까? 어머니의 병 때문일까, 혹은 무슨 다른 일이 있음인가? 암만 생각해도 그들이 하나도 아니요 둘씩 왔다가 가는 것은 이상스러웠다.
간난이는 선비의 둘도 없이 친하던 동무였다. 그러나 덕호의 작은집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웬일인지 그들의 사이는 벌어졌다. 그래서 피치 못하여 마주치게나 되면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말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동무였던 그를 하루 아침 사이에 상전으로 섬겨야 할 터이니 그것이 싫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어려웠던 것이다.
한참이나 신음하던 어머니는 가슴이 좀 내려간 모양인지 가만히 있다. 선비는 이불을 덮어 놓고 나서 등불 앞으로 왔다. 그래서 바느질감을 드니 어쩐지 속이 수선거리고 아까와 같이 일이 되지를 않았다. 그는 그만 일감을 착착 개어 놓으며 멍하니 등불을 바라보았다.
"남포등을 사다가 불을 켜라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까 오 원짜리 지화를 던져 주던 덕호의 얼굴을 다시금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때까지 볼 수 없던 그의 후한 마음! 그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때껏 느껴 보지 못한 어떤 불안을 가슴이 답답하도록 느꼈다.
그는 어머니를 돌아보며,
"어머니."
하고 부르니 아무 대답이 없다. 그리고 약간 코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가슴이 내려간 틈에 어머니는 저렇게 잠을 자는 것이다. 그는 얼결에 어머니를 불러 놓고도 어째서 그가 어머니를 불렀는지 꼭 집어낼 수는 없엇다. 그는 물끄러미 어머니의 핏기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이불 속에 아까 넣어 둔 오 원짜리 지화를 생각하였다. 따라서 뜻하지 않은 한숨이 폭 나왔다.
선비는 어실어실해서 그만 일어나고 말았다. 어젯밤 잠을 못 잔 탓인지 골머리가 띵하니 아팠다. 어머니의 아픔도 아픔이려니와, 어젯밤 돌연히 나타난 덕호와 간난의 행동이 수상스러워서 한 잠 못 잤던 것이다.
"어머니, 물 데워서 손발 좀 씻어 올릴까요?"
"그래."
간신히 대답한 어머니는 "아이구!" 하며 돌아눕는다.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아직도 아파? 자꾸."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음음" 하고 신음할 뿐이다. 그는 이불을 꼭 덮어 준 후에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날은 채 밝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어젯밤 일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가만히 부엌문을 열었다. 김치 시어진 내가 훅 끼친다. 그는,
"김치는 다 시어지눈."
이렇게 중얼거리며 앞뒷문을 활짝 열어 놨다.
그가 솥에 물을 붓고 불을 살라 넣을 때 누가 싸리문을 흔든다. 순간에 선비는 간난의 얼굴이 휙 지나친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누가 이 새벽에 올까?
마침내 싸리문이 찌걱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난다.
"거 누구요?"
선비는 부엌 문턱에 서서 내다보았다. 그때 선비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질겁을 하여 방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도 놀랐는지 돌아보며,
"왜 그러냐, 응?"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문 편을 바라보며,
"어떤 사나이가 싸리문을 열고 들어와."
어머니는 이 말에 도적이 드는가 하여 벌컥 일어나려다가 도로 쓰러지며,
"그거 누구냐? 응, 누구야?"
목청껏 소리친다. 문 밖에서 머뭇거리던 사나이는,
"아저머니, 내유."
"응, 내가 누구란 말이야, 이 새벽에."
그의 음성을 분간하여 짐작하려나 도무지 들어 보지 못하던 음성이다. 그는 마침내 방문을 부시시 열었다. 그들은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바라보았다. 아직도 컴컴하므로 분명치는 않으나 그 윤곽과 키를 짐작하여 첫째인 것을 알았다.
그들은 뜻하지 않은 첫째임에 더한층 놀랐다. 그리고 속으로는 저 부랑자놈이 누구를 또 어쩌려고 이 새벽에 왔는가 하니 가슴이 후닥닥 뛰었다.
"응, 자네가 어째서 이 새벽에 왔는가?"
"아저머니가 아프시다기 저 소태나무 뿌리가 약이라기에 가져왔수."
그의 음성은 차츰 입 속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이 말에 그들 모녀는 적이 안심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의문이 뒤범벅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
"아심찮으이, 원……."
방 안으로 들여놓는 소태나무 보자기를 보며 선비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보자기를 들여놓고는 곧 돌아서 나간다. 선비 어머니는,
"잘 다녀가게."
그의 신발 소리가 멀리 사라진 후,
"아 그놈, 또 하는 짓이……."
선비 어머니는 선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혼자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막연하나마 선비로 인하여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불쑥 들어, 어서 선비를 처치하여야겠다는 생각이 한층더 강하여진다.
방 안은 활짝 밝았다. 무섭게 해어진 보자기 사이로 금방 캐온 듯한 싱싱한 소태나무 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선비는 무서워서 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렸을 때 싱아 빼앗기던 생각까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애, 저것 어디 감추어 둬라. 누가 보나다나 해두…… 그 부랑한 놈이 그게 웬일이야?"
선비 어머니는 생각할수록 이상하였다. 그리고 일종의 공포까지 느꼈다. 그만큼 첫째네 모자는 이 동네서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첫째는 술 잘 먹고 사람 잘 치기로 유명하였던 것이다. 선비는 어머니의 말에 어딘가 모르게 섭섭함을 느꼈다. 동시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소태나무보를 싸고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의 이러한 맘이 무엇 때문인지 풀 수가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야, 소태나무 보자기를 들고 윗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문 앞에 다가서며, 이건 밤에 캐온 겐가? 잠두 못 자고…… 이렇게 생각하며, 아까 문 밖에 섰던 첫째의 얼굴을 다시금 그려 보았다.
그가 무엇 때문에, 왜 이것을 가져왔을까? 그때 그의 볼이 화끈 달며 무서움이 온몸에 흠씬 끼친다. 그는 무의식간에 소태나무보를 홱 던졌다. 그리고 무엇이 다그쳐 오는 것처럼 달아 내려왔다.
며칠 후 선비 어머니는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덕호의 주선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무사히 치르어 낸 선비는 아주 덕호의 집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그래서 안방 맞은편 방 옥점이(덕호의 딸) 있던 방을 제 방으로 정하고 있었다.
덕호의 부부는 선비 어머니가 살았을 때보다 선비를 한층더 귀여워하고 측은히 생각하였다. 더구나 선비가 가사에 막히는 것이 없이 능한 까닭에 옥점 어머니는 선비를 수족같이 알아서 집안 살림을 전수이 밀어 맡기었다.
옥점 어머니는 장죽을 물고 안방에서 나오며 마루 걸레질하는 선비를 보았다. 그리고 담뱃대를 입에서 뽑으며,
"그것은 할멈을 시키고 너는 옥점의 옷을 하여라."
부엌 편을 향하여,
"할멈, 마루 걸레질하우."
선비는 걸레를 대야에 넣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손을 씻고 나온다. 옥점 어머니는 안방에서 옷 마른 것을 가지고 나오며,
"이애, 요새 서울서는 모두 옷을 작게 입는다더라. 이것을랑 아주 작게 하여라."
선비는 일감을 받아 가지고 재봉침에 마주앉았다. 그리고 약간 기계를 수선한 후에 일을 시작하였다. 한참씩 재봉침 바퀴를 굴려 나가다가 뚝 끊으며 눈결에 보면 할멈은 씩씩 하며 마루 걸레를 치다가 어려워서 멍하니 앉아 있다. 그때마다 선비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마루 걸레 치기가 저렇게 힘들까!"
옥점 어머니의 호통에 할멈은 꿈칠 놀라 다시 걸레질을 한다. 옥점 어머니는 할멈의 걸레 치는 것을 쏘아보며 늙은 것들은 저렇게 굴고 젊은 것들은 말 잘 듣지 않고, 어린것을 두어야 좋담, 이렇게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