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01

이 산등에 올라서면 용연 동네는 저렇게 뻔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저기 우뚝 솟은 저 양기와집이 바로 이 앞벌 농장 주인인 정덕호 집이며, 그 다음 이편으로 썩 나와서 양철집이 면역소며, 그 다음으로 같은 양철집이 주재소며, 그 주위를 싸고 컴컴히 돌아앉은 것이 모두 농가들이다.
그리고 그 아래 저 푸른 못이 원소(怨沼)라는 못인데, 이 못은 이 동네의 생명선이다. 이 못이 있길래 저 동네가 생겼으며, 저 앞벌이 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 개 짐승까지라도 이 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못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무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동네 농민들은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전설을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으며, 따라서 그들이 믿는 신조로 한다.
그들에게서 들으면 이러하였다―---
옛날 이 원소가 생기기 전에, 이 터에는 장자 첨지가 수없는 종들과 전지와 살진 가축들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첨지는 하도 인색하여서, 연년이 추수하는 곡식을 미처 먹지 못하고 곡간에서 푹푹 썩어 내도 근처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생각은 고사하고, 어쩌다 걸인이 밥 한술을 구걸하여도 그것이 아까워서는 대문을 닫아 걸고 끼니도 끓여 먹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몇 해를 거푸 흉년이 들어서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장자 첨지에게 애걸을 하였다. 그러나 첨지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나무라고 문간에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몰래 작당을 하여 가지고 밤중에 장자 첨지네 집을 습격하여 쌀과 살진 짐승들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만에 장자 첨지는 관가에 고소장을 들여 이 근처 농민들을 모두 잡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무수한 악형을 하고 혹은 죽이고 그나마는 멀리 쫓아 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혹은 아들 딸을 잃어버린 이 동네 노인이며 어린것들은 목이 터지도록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혹은 아들과 딸을 찾으며 장자 첨지네 마당가를 떠나지 않고 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고 울고 또 울어서 그 눈물이 고이고 고이어서 마침내는 장자 첨지네 고래잔등 같은 기와집이 하룻밤 새에 큰 못으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그 못이 즉 내려다보이는 저 푸른 못이다.
표면에 나타나는 이 못의 넓이는 누구나 얼핏 보아도 짐작하겠지마는, 이 못의 깊이는 이때까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못의 깊이를 알고자 하여 명주실꾸리를 몇 꾸리든지 넣어도 끝이 안 났다는 그런 말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이 동네 농민들은 어디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반드시 쫓아가서 원소의 전설부터 이야기하고 그리고 자손이 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이 전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애들로부터 어른까지 이 전설을 머리에 꼭꼭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원소에 대하여서 막연하나마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농민들은 무슨 원통한 일이 있어도 이 원소를 보고 위안을 얻으며 무슨 괴로운 일이 있어도 이 원소를 바라보면 사라진다고 하였다.
사명일 때면 그들은 떡이나 흰밥을 지어 이 원소 부근에 파묻으며 옷이며 신발까지도 내다 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정성을 표하곤 하였다. 더구나 그들이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도 이 원소에 와서 빌면 그 병은 곧 물러간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이러한 원소를 가진 그들이건만 웬일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나날이 궁핍과 고민만이 닥쳐왔다. 그래서 근년에는 그들의 먹는 것이란 밀죽과 도토리뿐이므로 흰밥이며 떡을 해다 파묻는 일도 드물었다.
그들의 이러한 아픔과 쓰림은 저 원소라야만 해결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원소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
예나 지금이나 저 원소의 물은 푸르고 푸르다. 흰 옷감을 보면 물들이고 싶게 그렇게 푸르다.
억새풀이 길길이 자란 그 밑으로 봄을 만난 저 원소 물이 도랑으로 새어 흐르고 또 흐른다. 그 주위로 죽 돌아선 늙은 버드나무는 겉보기에는 다 죽은 듯하건만, 그 속에서 새 움이 파랗게 돋아난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물매미 한 마리가 탐방 뛰어들어, 시원스럽게 원형을 그리며 돌아간다. 그러자 어디서인지 신발 소리가 가볍게 들려 온다.
신발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더니 산등으로 계집애 하나가 뛰어 올라온다. 그는 무엇에 쫓기는 모양인지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며 숨이 차서 달아 내려온다.
계집애는 이 동네서 흔히 볼 수 있는 메꽃 물을 들인 저고리를 입었으며 얼굴빛은 좀 푸른 기를 띠었으나 티없이 맑았다. 그리고 손에 든 나물바구니가 몹시 귀찮은 모양인지 좌우 손에 번갈아 쥐다가는 머리에 였다가 그도 시원치 않아서 이번에는 가슴에다 안으며 낯을 찡그린다. 그리고 흘금흘금 산등을 돌아본다.
뒤미처 나무꾼애가 작대기를 휘두르며 쫓아온다.
"이놈의 계집애, 깜작 말고 서라!"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다그쳐 오는 속력은 몹시도 빨랐다. 계집애는 가슴에 안았던 바구니를 머리에 이며 죽을 힘을 다하여 내려오다가, 그만 푹 거꾸러져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렸다. 바구니는 그냥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나무꾼애는 이것이 재미스러워 킥킥 웃으면서 계집애 곁으로 오더니 막아 섰다.
"이 계집애 진작 줄 것이지, 도망질은 왜 하니. 아무러면 나한테 견딜 것 같니. 좋다! 넘어지니 맛이 어때?"
흑흑 느껴 우는 계집애는 벌떡 일어나며 바구니가 어디로 갔는가 하여 둘러보다가 저편 보리밭 머리에 있는 것을 보고야 나무꾼애를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 슬며시 돌아선다. 나무꾼애는 얼핏 뛰어가서 바구니를 들고 왔다.
"이놈의 계집애! 싱아 다 꺼내 먹는다, 봐라."
계집애가 서 있는 앞에 바구니를 갖다 놓고 그는 손을 넣어 싱아를 꺼냈다. 그리고 일변 어석어석 씹어 먹는다. 계집애는 또다시 힐끔 쳐다보더니,
"이리 다오, 이 새끼!"
앞으로 다가서며 바구니를 뺏는다. 나무꾼애는 계집애의 뾰로통한 모양이 우스워서 킥 웃었다. 그리고 계집애 눈등의 먹사마귀가 그의 눈을 끌었다.
"너 요게 뭐야?"
나무꾼애는 계집애의 눈등을 꾹 찔렀다. 계집애는 흠칫하며 나무꾼애의 손을 홱 뿌리치고,
"아프구나! 새끼두."
"계집애두 꽤 사납게는 군다…… 나 하나만 더……."
나무꾼애는 코를 훌떡 들이마시며 손을 내밀었다. 계집애는 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무서움이 다소 덜려서 바구니에서 싱아를 꺼내 내쳐주었다.
나무꾼애는 떨어진 싱아를 주워 껍질도 벗기지 않고 시시 하고 침을 삼키며 먹다가 웬일인지 앞이 허전한 듯해서 바라보니, 있거니 한 계집애가 없다. 그래서 두루 찾아보니 계집애는 벌써 원소를 돌아가고 있다.
"고놈의 계집애! 혼자 가네."
나오는 줄 모르게 이런 말이 굴러 나왔다. 그는 멀리 계집애의 까뭇거리는 모양을 바라보며 그도 동네로 들어가고 싶은 맘이 부쩍 들었다.
"이애 선비야! 나하고 같이 가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내려갔다. 그가 원소까지 왔을 때는 계집애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데나 펄썩 주저앉았다.
"고놈의 계집애…… 혼자 가네. 고런 어디서……."
이렇게 투덜거렸다.
한참 후에 무심히 내려다보니, 원소 물 위에 그의 초라한 모양이 뚜렷이 보인다. 그는 생각지 않은 웃음이 픽 하고 나왔다. 그리고 물을 들여다보며 다리팔을 놀려 보고 머리를 기웃거릴 때, 아까 뾰로통해 섰던 계집애의 눈등에 있는 먹사마귀가 얼핏 떠오른다.
"고게 뭐야?"
하며 그는 휙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고놈의 계집애, 정말……."
그는 계집애가 사라진 버드나무숲 저편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따라서 물 먹고 싶은 생각이 버쩍 들었다.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서며 땀 밴 적삼을 벗어 풀밭에 휙 집어던지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넙적 엎디며 목을 길게 늘이어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목을 통하여 넘어가는 물은 곧 달큼하였다. 한참이나 물을 마신 그는 얼핏 일어나며 가쁜 숨을 후유 하고 내쉬었다.
원소를 거쳐 불어오는 실바람은 짙은 풀내를 아득히 싣고 와서 땀에 젖은 그의 겨드랑이를 서늘하게 말리어 준다. 그는 휭 맴돌이를 쳤다.
"내 지게……?"
무의식간에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자, 그가 계집애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고 단숨에 달음질쳐서 산등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게 있는 곳으로 와서 낫을 가지고 산 옆으로 돌아가며 나무를 깎기 시작하였다.
나무를 깎아 가지고 지게 곁으로 온 그는 그 지게를 의지하여 벌렁 누워 버렸다. 풀내가 강하게 끼치며 속이 후련해진다. 잠이라도 한잠 푹 자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았다.
갑자기,
"첫째야!"
하고 누가 부른다.
잠이 사르르 오던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휘휘 돌아보니 이서방이 나무다리를 짚고 씩씩하며 이편으로 온다.
"이서방!"
그는 이서방을 보니 반가움과 함께 배고픔을 깨달았다.
"너 여기 있는 것을 자꾸 찾아다녔구나."
이서방은 나무다리를 꾹 짚고 서서 귀여운 듯이 첫째를 바라본다. 그들의 그림자가 산 아래까지 길게 달려 내려갔다. 첫째는 나뭇짐을 낑 하고 지며,
"날 찾아다녔수?"
"그래 해가 져가는데두! 어머니께 대답질을 하면 쓰나. 후담에는 그러지 말아라."
첫째는 이서방과 가지런히 걸으며 히이…… 웃었다.
그리고 강한 햇빛을 눈이 부시도록 치느끼며 그는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명치를 않았다.
"어머니가 밥 지어 놓고 여간 너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노염을 풀어 주려고 이서방은 말끝마다 어머니를 불렀다.
"밥 했수?"
첫째는 멈칫 서서 이서방을 보다가 무심히 저편 들을 바라보았다. 석양빛에 앞벌은 비단결 같다.
"이서방, 나두 올부터는 김 좀 맸으면……."
이서방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리고 저것이 벌써 김을 매고 싶어하니 어쩐단 말이누 하는 걱정과 함께 지난날에 일하고 싶어 날뛰던 자기의 과거가 휙 떠오른다. 그는 후― 한숨을 쉬며 불타산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이서방, 난 김매구, 이서방은 점심 가지고 나헌테 오구, 그리구, 또……."
그는 말만 해도 좋은지 방긋방긋 웃는다. 이서방은 '너 김맬 밭이 있냐?' 하고 금방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꿀꺽 삼켜 버렸다. 따라서 가슴속에서 무엇이 울컥 맞받아 나온다.
"그러구 이서방도 동냥하러 다니지 않고 내가 농사한 곡식을 먹구……."
이서방은 그만 우뚝 섰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힘있게 짚었다. 그가 일생을 통하여 이러한 감격에 취하여 보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반면에 차디찬 이 세상을 이같이 원망하기도 역시 처음이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남의 집을 살며 별별 모욕을 받다 못해서 이 다리까지 부러졌지만, 아! 여기다 비기랴!
첫째는 흥이 나서 말을 하다가 돌아보니, 이서방이 따르지 않는다. 그는 멈칫 섰다.
"이서방! 왜 울어?"
첫째는 눈이 둥그래서 이편으로 다가온다. 이서방은 눈물을 쥐어 뿌린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다시 놀린다.
"어머니가 또 뭐라고 했구만. 그까짓 어머니 발길로 차 든져."
눈을 실쭉하니 뜬다. 이서방은 놀라 첫째를 바라보며, 아까 싸운 노염이 아직도 남아 있음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가 무엇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이리도 큰가?
"이애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못쓴단다."
이렇게 말하는 이서방은 이애가 벌써 자기 어머니의 비행을 눈치챔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며, 유서방과 영수, 그리고 요새 같이 다니는 대장장이가 번갈아 떠오른다. 그는 말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밀밭머리 좁은 길로 들어섰다.
"이서방! 오늘 돈 얼마나 벌었수?"
이 말에 이서방은 용기를 얻어,
"이애 돈이 뭐가, 오늘은 저 앞벌 술막집 잔채하는 데 종일 가 있다가, 이제야 왔다."
"잔챗집에…… 그럼 떡 얻어 왔지, 떡 얻어 왔지?"
작대기를 구르며 이서방을 바라본다.
"그래, 얻어 왔다."
"얼마나?"
그는 입맛을 다시며 대든다.
"조금 얻어 왔다."
"또 어머니 주었수?"
"아니 그냥 있다."
이애가 실망할 것을 생각하고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눈허리에 벌레가 지나는 것 같았다.
"이서방, 나는 떡만 먹고 산다면 좋겠더라."
그는 침을 꿀꺽 넘기었다.
"내 이 담엔 많이 얻어다 줄 것이니, 이 배가 터지도록 먹으렴."
첫째는 히이 웃으면서 작대기로 돌부리를 툭툭 갈긴다. 이런 때에 그의 내리뜬 눈은 볼수록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