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산등에 올라서면 용연 동네는 저렇게 뻔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저기 우뚝 솟은 저 양기와집이 바로 이 앞벌 농장 주인인 정덕호 집이며, 그 다음 이편으로 썩 나와서 양철집이 면역소며, 그 다음으로 같은 양철집이 주재소며, 그 주위를 싸고 컴컴히 돌아앉은 것이 모두 농가들이다. |
| 그리고 그 아래 저 푸른 못이 원소(怨沼)라는 못인데, 이 못은 이 동네의 생명선이다. 이 못이 있길래 저 동네가 생겼으며, 저 앞벌이 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 개 짐승까지라도 이 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
| 이 못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무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동네 농민들은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전설을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으며, 따라서 그들이 믿는 신조로 한다. |
| 그들에게서 들으면 이러하였다―--- |
| 옛날 이 원소가 생기기 전에, 이 터에는 장자 첨지가 수없는 종들과 전지와 살진 가축들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첨지는 하도 인색하여서, 연년이 추수하는 곡식을 미처 먹지 못하고 곡간에서 푹푹 썩어 내도 근처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생각은 고사하고, 어쩌다 걸인이 밥 한술을 구걸하여도 그것이 아까워서는 대문을 닫아 걸고 끼니도 끓여 먹었다는 것이다. |
| 그런데 마침 몇 해를 거푸 흉년이 들어서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장자 첨지에게 애걸을 하였다. 그러나 첨지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나무라고 문간에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
| 그러므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몰래 작당을 하여 가지고 밤중에 장자 첨지네 집을 습격하여 쌀과 살진 짐승들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
| 이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만에 장자 첨지는 관가에 고소장을 들여 이 근처 농민들을 모두 잡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무수한 악형을 하고 혹은 죽이고 그나마는 멀리 쫓아 버렸다는 것이다. |
| 아버지 어머니 혹은 아들 딸을 잃어버린 이 동네 노인이며 어린것들은 목이 터지도록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혹은 아들과 딸을 찾으며 장자 첨지네 마당가를 떠나지 않고 울었다는 것이다. |
| 그래서 울고 울고 또 울어서 그 눈물이 고이고 고이어서 마침내는 장자 첨지네 고래잔등 같은 기와집이 하룻밤 새에 큰 못으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그 못이 즉 내려다보이는 저 푸른 못이다. |
| 표면에 나타나는 이 못의 넓이는 누구나 얼핏 보아도 짐작하겠지마는, 이 못의 깊이는 이때까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못의 깊이를 알고자 하여 명주실꾸리를 몇 꾸리든지 넣어도 끝이 안 났다는 그런 말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
| 이 동네 농민들은 어디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반드시 쫓아가서 원소의 전설부터 이야기하고 그리고 자손이 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이 전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애들로부터 어른까지 이 전설을 머리에 꼭꼭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원소에 대하여서 막연하나마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
| 그러므로 이 농민들은 무슨 원통한 일이 있어도 이 원소를 보고 위안을 얻으며 무슨 괴로운 일이 있어도 이 원소를 바라보면 사라진다고 하였다. |
| 사명일 때면 그들은 떡이나 흰밥을 지어 이 원소 부근에 파묻으며 옷이며 신발까지도 내다 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정성을 표하곤 하였다. 더구나 그들이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도 이 원소에 와서 빌면 그 병은 곧 물러간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
| 이러한 원소를 가진 그들이건만 웬일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나날이 궁핍과 고민만이 닥쳐왔다. 그래서 근년에는 그들의 먹는 것이란 밀죽과 도토리뿐이므로 흰밥이며 떡을 해다 파묻는 일도 드물었다. |
| 그들의 이러한 아픔과 쓰림은 저 원소라야만 해결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원소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 |
| 예나 지금이나 저 원소의 물은 푸르고 푸르다. 흰 옷감을 보면 물들이고 싶게 그렇게 푸르다. |
| 억새풀이 길길이 자란 그 밑으로 봄을 만난 저 원소 물이 도랑으로 새어 흐르고 또 흐른다. 그 주위로 죽 돌아선 늙은 버드나무는 겉보기에는 다 죽은 듯하건만, 그 속에서 새 움이 파랗게 돋아난다. |
|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물매미 한 마리가 탐방 뛰어들어, 시원스럽게 원형을 그리며 돌아간다. 그러자 어디서인지 신발 소리가 가볍게 들려 온다. |
| 신발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더니 산등으로 계집애 하나가 뛰어 올라온다. 그는 무엇에 쫓기는 모양인지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며 숨이 차서 달아 내려온다. |
| 계집애는 이 동네서 흔히 볼 수 있는 메꽃 물을 들인 저고리를 입었으며 얼굴빛은 좀 푸른 기를 띠었으나 티없이 맑았다. 그리고 손에 든 나물바구니가 몹시 귀찮은 모양인지 좌우 손에 번갈아 쥐다가는 머리에 였다가 그도 시원치 않아서 이번에는 가슴에다 안으며 낯을 찡그린다. 그리고 흘금흘금 산등을 돌아본다. |
| 뒤미처 나무꾼애가 작대기를 휘두르며 쫓아온다. |
| "이놈의 계집애, 깜작 말고 서라!" |
|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다그쳐 오는 속력은 몹시도 빨랐다. 계집애는 가슴에 안았던 바구니를 머리에 이며 죽을 힘을 다하여 내려오다가, 그만 푹 거꾸러져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렸다. 바구니는 그냥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
| 나무꾼애는 이것이 재미스러워 킥킥 웃으면서 계집애 곁으로 오더니 막아 섰다. |
| "이 계집애 진작 줄 것이지, 도망질은 왜 하니. 아무러면 나한테 견딜 것 같니. 좋다! 넘어지니 맛이 어때?" |
| 흑흑 느껴 우는 계집애는 벌떡 일어나며 바구니가 어디로 갔는가 하여 둘러보다가 저편 보리밭 머리에 있는 것을 보고야 나무꾼애를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 슬며시 돌아선다. 나무꾼애는 얼핏 뛰어가서 바구니를 들고 왔다. |
| "이놈의 계집애! 싱아 다 꺼내 먹는다, 봐라." |
| 계집애가 서 있는 앞에 바구니를 갖다 놓고 그는 손을 넣어 싱아를 꺼냈다. 그리고 일변 어석어석 씹어 먹는다. 계집애는 또다시 힐끔 쳐다보더니, |
| "이리 다오, 이 새끼!" |
| 앞으로 다가서며 바구니를 뺏는다. 나무꾼애는 계집애의 뾰로통한 모양이 우스워서 킥 웃었다. 그리고 계집애 눈등의 먹사마귀가 그의 눈을 끌었다. |
| "너 요게 뭐야?" |
| 나무꾼애는 계집애의 눈등을 꾹 찔렀다. 계집애는 흠칫하며 나무꾼애의 손을 홱 뿌리치고, |
| "아프구나! 새끼두." |
| "계집애두 꽤 사납게는 군다…… 나 하나만 더……." |
| 나무꾼애는 코를 훌떡 들이마시며 손을 내밀었다. 계집애는 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무서움이 다소 덜려서 바구니에서 싱아를 꺼내 내쳐주었다. |
| 나무꾼애는 떨어진 싱아를 주워 껍질도 벗기지 않고 시시 하고 침을 삼키며 먹다가 웬일인지 앞이 허전한 듯해서 바라보니, 있거니 한 계집애가 없다. 그래서 두루 찾아보니 계집애는 벌써 원소를 돌아가고 있다. |
| "고놈의 계집애! 혼자 가네." |
| 나오는 줄 모르게 이런 말이 굴러 나왔다. 그는 멀리 계집애의 까뭇거리는 모양을 바라보며 그도 동네로 들어가고 싶은 맘이 부쩍 들었다. |
| "이애 선비야! 나하고 같이 가자." |
|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내려갔다. 그가 원소까지 왔을 때는 계집애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데나 펄썩 주저앉았다. |
| "고놈의 계집애…… 혼자 가네. 고런 어디서……." |
| 이렇게 투덜거렸다. |
| 한참 후에 무심히 내려다보니, 원소 물 위에 그의 초라한 모양이 뚜렷이 보인다. 그는 생각지 않은 웃음이 픽 하고 나왔다. 그리고 물을 들여다보며 다리팔을 놀려 보고 머리를 기웃거릴 때, 아까 뾰로통해 섰던 계집애의 눈등에 있는 먹사마귀가 얼핏 떠오른다. |
| "고게 뭐야?" |
| 하며 그는 휙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
| "고놈의 계집애, 정말……." |
| 그는 계집애가 사라진 버드나무숲 저편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따라서 물 먹고 싶은 생각이 버쩍 들었다.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서며 땀 밴 적삼을 벗어 풀밭에 휙 집어던지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
| 그는 넙적 엎디며 목을 길게 늘이어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목을 통하여 넘어가는 물은 곧 달큼하였다. 한참이나 물을 마신 그는 얼핏 일어나며 가쁜 숨을 후유 하고 내쉬었다. |
| 원소를 거쳐 불어오는 실바람은 짙은 풀내를 아득히 싣고 와서 땀에 젖은 그의 겨드랑이를 서늘하게 말리어 준다. 그는 휭 맴돌이를 쳤다. |
| "내 지게……?" |
| 무의식간에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자, 그가 계집애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고 단숨에 달음질쳐서 산등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게 있는 곳으로 와서 낫을 가지고 산 옆으로 돌아가며 나무를 깎기 시작하였다. |
| 나무를 깎아 가지고 지게 곁으로 온 그는 그 지게를 의지하여 벌렁 누워 버렸다. 풀내가 강하게 끼치며 속이 후련해진다. 잠이라도 한잠 푹 자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았다. |
| 갑자기, |
| "첫째야!" |
| 하고 누가 부른다. |
| 잠이 사르르 오던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휘휘 돌아보니 이서방이 나무다리를 짚고 씩씩하며 이편으로 온다. |
| "이서방!" |
| 그는 이서방을 보니 반가움과 함께 배고픔을 깨달았다. |
| "너 여기 있는 것을 자꾸 찾아다녔구나." |
| 이서방은 나무다리를 꾹 짚고 서서 귀여운 듯이 첫째를 바라본다. 그들의 그림자가 산 아래까지 길게 달려 내려갔다. 첫째는 나뭇짐을 낑 하고 지며, |
| "날 찾아다녔수?" |
| "그래 해가 져가는데두! 어머니께 대답질을 하면 쓰나. 후담에는 그러지 말아라." |
| 첫째는 이서방과 가지런히 걸으며 히이…… 웃었다. |
| 그리고 강한 햇빛을 눈이 부시도록 치느끼며 그는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명치를 않았다. |
| "어머니가 밥 지어 놓고 여간 너를 기다리지 않는다." |
| 어머니에 대한 노염을 풀어 주려고 이서방은 말끝마다 어머니를 불렀다. |
| "밥 했수?" |
| 첫째는 멈칫 서서 이서방을 보다가 무심히 저편 들을 바라보았다. 석양빛에 앞벌은 비단결 같다. |
| "이서방, 나두 올부터는 김 좀 맸으면……." |
| 이서방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리고 저것이 벌써 김을 매고 싶어하니 어쩐단 말이누 하는 걱정과 함께 지난날에 일하고 싶어 날뛰던 자기의 과거가 휙 떠오른다. 그는 후― 한숨을 쉬며 불타산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
| "이서방, 난 김매구, 이서방은 점심 가지고 나헌테 오구, 그리구, 또……." |
| 그는 말만 해도 좋은지 방긋방긋 웃는다. 이서방은 '너 김맬 밭이 있냐?' 하고 금방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꿀꺽 삼켜 버렸다. 따라서 가슴속에서 무엇이 울컥 맞받아 나온다. |
| "그러구 이서방도 동냥하러 다니지 않고 내가 농사한 곡식을 먹구……." |
| 이서방은 그만 우뚝 섰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힘있게 짚었다. 그가 일생을 통하여 이러한 감격에 취하여 보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반면에 차디찬 이 세상을 이같이 원망하기도 역시 처음이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남의 집을 살며 별별 모욕을 받다 못해서 이 다리까지 부러졌지만, 아! 여기다 비기랴! |
| 첫째는 흥이 나서 말을 하다가 돌아보니, 이서방이 따르지 않는다. 그는 멈칫 섰다. |
| "이서방! 왜 울어?" |
| 첫째는 눈이 둥그래서 이편으로 다가온다. 이서방은 눈물을 쥐어 뿌린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다시 놀린다. |
| "어머니가 또 뭐라고 했구만. 그까짓 어머니 발길로 차 든져." |
| 눈을 실쭉하니 뜬다. 이서방은 놀라 첫째를 바라보며, 아까 싸운 노염이 아직도 남아 있음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가 무엇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이리도 큰가? |
| "이애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못쓴단다." |
| 이렇게 말하는 이서방은 이애가 벌써 자기 어머니의 비행을 눈치챔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며, 유서방과 영수, 그리고 요새 같이 다니는 대장장이가 번갈아 떠오른다. 그는 말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
| 그들은 밀밭머리 좁은 길로 들어섰다. |
| "이서방! 오늘 돈 얼마나 벌었수?" |
| 이 말에 이서방은 용기를 얻어, |
| "이애 돈이 뭐가, 오늘은 저 앞벌 술막집 잔채하는 데 종일 가 있다가, 이제야 왔다." |
| "잔챗집에…… 그럼 떡 얻어 왔지, 떡 얻어 왔지?" |
| 작대기를 구르며 이서방을 바라본다. |
| "그래, 얻어 왔다." |
| "얼마나?" |
| 그는 입맛을 다시며 대든다. |
| "조금 얻어 왔다." |
| "또 어머니 주었수?" |
| "아니 그냥 있다." |
| 이애가 실망할 것을 생각하고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눈허리에 벌레가 지나는 것 같았다. |
| "이서방, 나는 떡만 먹고 산다면 좋겠더라." |
| 그는 침을 꿀꺽 넘기었다. |
| "내 이 담엔 많이 얻어다 줄 것이니, 이 배가 터지도록 먹으렴." |
| 첫째는 히이 웃으면서 작대기로 돌부리를 툭툭 갈긴다. 이런 때에 그의 내리뜬 눈은 볼수록 귀여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