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02

그들이 집까지 왔을 때는 어슬어슬한 황혼이었다. 첫째 어머니는 문 밖에 섰다가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저놈의 새끼 범두 안 물어 가."
나오는 줄 모르고 이런 말을 하고도 가슴이 선뜩하였다. 이때까지 기다리던 끝에 악이 받쳐 이런 말을 하고도, 곧 후회가 되었던 것이다.
첫째는 나뭇짐을 벗어 놓고 일어난다.
첫째는 방으로 들어오며,
"나 떡."
뒤따르는 이서방을 돌아보았다. 첫째 어머니는 냉큼 시렁 위에서 떡 담은 바가지를 내려놓았다.
"잡놈의 새끼, 배는 용히 고픈 게다…… 떡떡 하더니 실컨 먹어라."
첫째는 떡바가지를 와락 붙잡더니, 떡을 쥐어 뚝뚝 무질러 먹는다. 그들은 물끄러미 이 모양을 바라보며 저것이 얼마나 배가 고파서 저 모양일까 하고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첫째는 순식간에 그 떡을 다 먹고 나서,
"또 없나?"
첫째 어머니는 등에 불을 켜놓으며,
"없다, 그만치 먹었으면 쓰겠다."
"밥이라도 더 먹지."
이서방은 불빛에 빨개 보이는 첫째 어머니의 볼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등 곁에서 물러앉으며,
"애는 저 이서방이 버려 놓는다니, 자꾸 응석을 받아 줘서…… 저 새끼가 배부른 게 어디 있는 줄 아오. 욕심 사납게 있으면 있는 대로 다 먹으려 드는데."
아까 떡 한 개 더 먹고 싶은 것을, 첫째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두었던 것이나, 막상 첫째가 배고파 덤비는 양을 보고는, 차마 떡그릇에 손을 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을 보니 섭섭하였다.
"이서방, 나가자우."
첫째는 벌써 눈이 감겨 오는 모양이다. 이서방은 첫째 어머니와 이렇게 마주앉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좋으나, 첫째의 말에 못 견디어서 안 떨어지는 궁둥이를 겨우 떼었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짚고 일어나며,
"나가자."
첫째도 일어나서 이서방의 손에 끌리어 건넌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 아랫목에 쓰러져서, 몇 번 다리팔을 방바닥에 들놓더니 쿨쿨 잔다. 이서방은 어둠 속으로 첫째를 바라보며, 아까 첫째가 빙긋빙긋 웃으며 아무 거침 없이 하던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나오는 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안방에는 벌써 누가 왔는지,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그의 귀로만 들어오는 듯하였다.
"어느 놈이 또 왔누?"
한숨 끝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느 놈의 음성인지를 분간하려고 귀를 가만히 기울였다.
암만 분간하려나 원체 가늘게 수군거리니 분명치를 않았다. 그저 첫째 어머니의 호호 웃는 소리가 간혹 들릴 뿐이다.
그는 잠을 이루려고 눈을 감고 있으나, 그것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잠이 홀랑 달아나고, 화만 버럭버럭 치받친다. 이놈의 집을 벗어나야지, 이걸 산담……? 그는 거의 매일 밤 이렇게 성을 내면서도 번번이 이 꼴을 또 보는 것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담배를 피워 물고 창문 곁으로 다가앉았다. 뚫어진 문 새로는 달빛이 무지개같이 쏘아 들어온다. 그는 담배를 빨아 연기를 후 뿜었다. 달빛에 어림해 보이는 구불구불 올라가는 저 연기! 그것은 흡사히 자기 가슴에 뿜어 오르는 어떤 원한 같았다.
그는 무심히 곁에 놓아 둔 나무다리를 슬슬 어루만졌다. 그는 언제나 속이 답답할 때마다 이 나무다리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아무 반응이 없는 이 나무다리! 사정없이 뻣뻣한 이 나무다리! 그나마 이 나무다리가 그의 둘도 없는 동무인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 정말……."
이서방은 놀라 돌아보니, 첫째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잠꼬대하는 소리다. 이서방은 첫째가 잠꼬대한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저 애가 벌써 어떤 계집애를 생각함에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자기의 생각 같았다. 따라서 첫째를 장성하게 못 할 수만 있다면 어디까지든지 그를 어린애 그대로 두고 싶었다. 첫째의 장래도 자기가 걸어온 그 길과 조금도 다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첫째 곁으로 바싹 가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씩씩 잔다. 지금 이 순간이 첫째에게 있어서는 다시없는 행복스러운 순간 같았다. 그리고 낮에 "나도 김매고 싶어"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며 그의 볼 위에다 볼을 갖다 대었다.
첫째의 볼로부터 옮아 오는 따뜻한 이 감촉! 그리고 기운 있게 내뿜는 그의 숨결, 자기의 살과 피가 섞여 있은들 이에서 더 따구울 수가 있으랴!
그는 무의식간에 첫째의 목을 꼭 쓸어안으며, '내 비록 병신이나마 나머지 여생은 너를 위하여 살리라' 하고 몇 번이나 맹세하였다.
마침 짜근거리는 소리에 이서방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이 개갈보 같은 년아!"
목청껏 지르는 소리에 지정이 저렁저렁 울린다. 이서방은 문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아이 이 양반이 미쳤다? 왜 이래."
"요년 아가리 붙여라, 이 더러운 쌍년, 네년이 저놈뿐이 아니라 나무다리 비렁뱅이도 붙인다지, 저런 쌍년, 에이 쌍년!"
침을 탁 뱉는 소리가 난다. 이서방은 '병신거지도 붙인다지' 하던 말이 언제까지나 귓가를 싸고돌았다. 그리고 전신이 짜르르 울리며, 손발 하나 놀릴 수가 없었다.
"아이쿠, 이 년놈들 잘한다."
짝짝 쿵 하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영수와 새로 다니는 대장장이와 맞붙은 모양이다.
"흥, 하룻개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게 두고 이른 말이구나. 이 경칠 자식, 그래, 온전한 부녀인 줄 알았냐?"
어떻게나 하는지 죽는 소리를 한다.
"이 년놈들 내 칼에 죽어 봐라."
"아이 저 칼! 저 칼!"
첫째 어머니의 이 같은 소리에 이서방은 벌컥 일어나며 나무다리를 짚고 뛰어나갔다.
안방 문짝이 떨어져 봉당 가운데 넘어졌으며, 등불조차 꺼져서 캄캄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봉당으로 달아나왔다.
"이거 이거."
숨이 차서 헐떡이며 칼을 쑥 내민다. 이서방은 칼을 받아 들고 부엌으로 나가며 얻다가 이 칼을 둬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나뭇단 속에 감추어 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거 왜들 이러슈. 점잖으신 터에 참으시죠들."
서로 어우러진 것을 뜯어 놓으려니,
"이 자식은 왜 또 이래…… 너 깡뚱발이로구나. 너도 한몫 들어 매 좀 맞으려니?"
누구인지 발길로 탁 찬다. 이서방은 팩 하고 나가자빠졌다. 그 바람에 나무다리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암만 찾아봐도 없다. 이서방은 온 봉당을 뻘뻘 기어다니며 나무다리를 찾았다. 그리고 몇 해 싸두었던 원한이 일시에 폭발됨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꾹 참으며 나무다리를 얻어 짚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전 같으면 밖에 구경꾼들이 얼마든지 모였을 터이나 오늘은 밤이 오랜 까닭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뭇가리 곁으로 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컴컴한 저 불타산 위에 뚜렷이 솟은 저 달! 저 달조차도 이서방의 이 나무다리를 비웃느라 조롱하느라 이 밤을 새우는 것 같았다.
"이서방!"
찾는 소리에 이서방은 휙근 돌아보았다. 첫째가 내달아오며 일변 오줌을 솰솰 내뻗친다. 이서방은 첫째의 버릇을 아는지라 가슴이 뜨끔해지며 저놈이 또…… 하고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곧 첫째 곁으로 와서 그의 꽁무니를 꾹 붙들었다.
오줌을 다 누고 난 그는 울컥 내닫는다.
"이놈들! 이놈들!"
목통이 터져라 하고 고함을 치며 내닫다가 이서방이 붙든 것을 알자 주먹으로 몇 번 냅다 쳤다.
"놔, 이거!"
"이애 첫째야! 첫째야! 너 그럭하면 못쓴다, 응. 이애 매맞는다, 응, 이애."
"매맞아도 좋아, 이놈들."
이번에는 사정없이 머리로 이서방의 가슴을 들이받으며 발길로 차던졌다. 이서방은 또다시 자빠졌다. 첫째는 나는 듯이 지게 곁으로 가서 낫을 뽑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애! 이애!"
이서방은 너무 급해서 벌벌 기어 달려 들어가며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이 눈치를 챈 첫째 어머니는 내달아 왔다. 그리고 대문 빗장을 뽑아 들었다.
"이놈의 새끼, 왜 자지 않고 지랄이냐."
"흥, 저놈의 새끼들은 왜 지랄이누."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숙친다.
안방에서는 더한층 지끈자끈하는 소리가 벼락치듯 난다. 이서방은 소름이 쭉 끼쳤다. 안방의 놈들이 이리 기울어지면 어린 첫째는 어디든지 부러지고야 말 것 같았다. 따라서 옛날에 자기가 주인과 맞붙어 싸우다가 이 다리가 부러지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그때 그 비운이 오늘에 또 이 어린것에게 사정없이 닥치는 듯싶었다.
이서방은 첫째의 발길에 채어 이리저리 굴면서도 그의 발목은 놓지 않았다. 그때 코에서는 선혈이 선뜻선뜻 흘러나온다.
"첫째야, 너 자꼬 그러면 다시는 떡 얻어다 안 준다."
이서방은 생각지 않은 이런 말이 불쑥 나왔다.
"정말? 이서방!"
첫째는 숨이 가빠서 훌떡훌떡하면서 돌아선다. 이서방은 벌떡 일어나며 그의 목을 꼭 쓸어안았다. 그러자 이서방의 눈에서는 눈물이 좌르르 쏟아졌다.
선비 어머니가 뒤뜰에서 이엉을 엮어 나가며, 약간씩 붙은 나락을 죽 훑어서 옆에 놓인 바가지에 후르르 담을 때 밖으로부터 선비가 뛰어 들어온다.
"어마이."
숨이 차서 들어오는 선비를 이상스레 바라보며 그의 어머니는,
"왜 무엇을 잘못하다가 꾸지람을 들었니?"
선비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머니 귀에다 입을 대었다.
"어머니, 저어…… 큰댁 아지머님과 신천댁과 싸움이 나서 큰집 영감이 생야단을 하셨다누."
선비 어머니는 귓가가 간지러워서 조금 머리를 돌리며,
"밤낮 싸움이구나. 그래 누가 맞았니?"
"그전에는 큰댁 아지머님을 따리지 않았어? 그런데 오늘은 신천댁을 사정없이 따리데, 아이 불쌍해!"
선비는 무심히 나락 바가지에 손을 넣어 휘저어 보면서 얼굴에 슬픈 빛을 띤다.
"남의 첩질하는 년들이 매를 맞아야 하지, 그래 큰어미만 밤낮 맞아야 옳겠니?"
딸의 새침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올봄부터는 선비의 두 뺨에 홍조가 약간 피어오른다.
"그래두 어마이, 신천댁의 말을 들으니 그가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라 저의 아부지가 돈을 많이 받고 팔아서 할 수 없이 왔다고 그러던데 뭐."
"하긴 그랬다고 하더라…… 그러기에 돈밖에 무서운 것이 없어."
선비 어머니는 지금 매를 맞고 울고 앉아 있을 신천댁의 얼굴을 생각하며 꽃봉오리같이 피어오르는 선비의 장래가 새삼스럽게 걱정이 되었다.
"어서 가서 무얼 하려무나, 왜 그러고 앉어 있니. 오늘 빨래에 풀하지 않니?"
"해야지."
그는 어머니 말에 어려워 부시시 일어나면서 다시 한번 나락 바가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빙긋이 웃었다.
"어마이, 이것도 찧으면 쌀이 한 되나 될 것 같우, 참……."
"이애 얼른 가봐라."
"응."
선비는 나락 바가지를 놓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어머니는 물끄러미 딸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세월이란 참말 빠르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선비도 오래 데리고 있지 못할 것을 깨달으며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는 무의식간에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내밀어 이엉초를 꾹 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끝은 짚에 닳아져 빨긋빨긋하게 피가 배었다. 그때에 얼핏 떠오른 것은 자기의 남편이다.
남편의 생전에는 비록 빈한하게는 살았을망정, 이렇게 이엉을 엮는 것이라든지 울바자를 세우는 것 같은 그런 밖의 일은 손도 대어 보지 않았다. 보다도 봄이 되면 으레 이 모든 것이 새로 다 되는 것이니…… 하고 무심히 지내 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없어지매 모두가 그의 손끝 가지 않는 것이 없고 힘은 배곱 쓰건마는 무슨 일이나 마음에 들도록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