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집까지 왔을 때는 어슬어슬한 황혼이었다. 첫째 어머니는 문 밖에 섰다가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
| "저놈의 새끼 범두 안 물어 가." |
| 나오는 줄 모르고 이런 말을 하고도 가슴이 선뜩하였다. 이때까지 기다리던 끝에 악이 받쳐 이런 말을 하고도, 곧 후회가 되었던 것이다. |
| 첫째는 나뭇짐을 벗어 놓고 일어난다. |
| 첫째는 방으로 들어오며, |
| "나 떡." |
| 뒤따르는 이서방을 돌아보았다. 첫째 어머니는 냉큼 시렁 위에서 떡 담은 바가지를 내려놓았다. |
| "잡놈의 새끼, 배는 용히 고픈 게다…… 떡떡 하더니 실컨 먹어라." |
| 첫째는 떡바가지를 와락 붙잡더니, 떡을 쥐어 뚝뚝 무질러 먹는다. 그들은 물끄러미 이 모양을 바라보며 저것이 얼마나 배가 고파서 저 모양일까 하고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첫째는 순식간에 그 떡을 다 먹고 나서, |
| "또 없나?" |
| 첫째 어머니는 등에 불을 켜놓으며, |
| "없다, 그만치 먹었으면 쓰겠다." |
| "밥이라도 더 먹지." |
| 이서방은 불빛에 빨개 보이는 첫째 어머니의 볼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등 곁에서 물러앉으며, |
| "애는 저 이서방이 버려 놓는다니, 자꾸 응석을 받아 줘서…… 저 새끼가 배부른 게 어디 있는 줄 아오. 욕심 사납게 있으면 있는 대로 다 먹으려 드는데." |
| 아까 떡 한 개 더 먹고 싶은 것을, 첫째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두었던 것이나, 막상 첫째가 배고파 덤비는 양을 보고는, 차마 떡그릇에 손을 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을 보니 섭섭하였다. |
| "이서방, 나가자우." |
| 첫째는 벌써 눈이 감겨 오는 모양이다. 이서방은 첫째 어머니와 이렇게 마주앉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좋으나, 첫째의 말에 못 견디어서 안 떨어지는 궁둥이를 겨우 떼었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짚고 일어나며, |
| "나가자." |
| 첫째도 일어나서 이서방의 손에 끌리어 건넌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 아랫목에 쓰러져서, 몇 번 다리팔을 방바닥에 들놓더니 쿨쿨 잔다. 이서방은 어둠 속으로 첫째를 바라보며, 아까 첫째가 빙긋빙긋 웃으며 아무 거침 없이 하던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나오는 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
| 안방에는 벌써 누가 왔는지,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그의 귀로만 들어오는 듯하였다. |
| "어느 놈이 또 왔누?" |
| 한숨 끝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느 놈의 음성인지를 분간하려고 귀를 가만히 기울였다. |
| 암만 분간하려나 원체 가늘게 수군거리니 분명치를 않았다. 그저 첫째 어머니의 호호 웃는 소리가 간혹 들릴 뿐이다. |
| 그는 잠을 이루려고 눈을 감고 있으나, 그것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잠이 홀랑 달아나고, 화만 버럭버럭 치받친다. 이놈의 집을 벗어나야지, 이걸 산담……? 그는 거의 매일 밤 이렇게 성을 내면서도 번번이 이 꼴을 또 보는 것이다. |
| 그는 벌떡 일어나서 담배를 피워 물고 창문 곁으로 다가앉았다. 뚫어진 문 새로는 달빛이 무지개같이 쏘아 들어온다. 그는 담배를 빨아 연기를 후 뿜었다. 달빛에 어림해 보이는 구불구불 올라가는 저 연기! 그것은 흡사히 자기 가슴에 뿜어 오르는 어떤 원한 같았다. |
| 그는 무심히 곁에 놓아 둔 나무다리를 슬슬 어루만졌다. 그는 언제나 속이 답답할 때마다 이 나무다리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아무 반응이 없는 이 나무다리! 사정없이 뻣뻣한 이 나무다리! 그나마 이 나무다리가 그의 둘도 없는 동무인 것이다. |
| "고놈의 계집애 정말……." |
| 이서방은 놀라 돌아보니, 첫째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잠꼬대하는 소리다. 이서방은 첫째가 잠꼬대한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저 애가 벌써 어떤 계집애를 생각함에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자기의 생각 같았다. 따라서 첫째를 장성하게 못 할 수만 있다면 어디까지든지 그를 어린애 그대로 두고 싶었다. 첫째의 장래도 자기가 걸어온 그 길과 조금도 다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
|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첫째 곁으로 바싹 가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씩씩 잔다. 지금 이 순간이 첫째에게 있어서는 다시없는 행복스러운 순간 같았다. 그리고 낮에 "나도 김매고 싶어"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며 그의 볼 위에다 볼을 갖다 대었다. |
| 첫째의 볼로부터 옮아 오는 따뜻한 이 감촉! 그리고 기운 있게 내뿜는 그의 숨결, 자기의 살과 피가 섞여 있은들 이에서 더 따구울 수가 있으랴! |
| 그는 무의식간에 첫째의 목을 꼭 쓸어안으며, '내 비록 병신이나마 나머지 여생은 너를 위하여 살리라' 하고 몇 번이나 맹세하였다. |
| 마침 짜근거리는 소리에 이서방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
| "이 개갈보 같은 년아!" |
| 목청껏 지르는 소리에 지정이 저렁저렁 울린다. 이서방은 문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
| "아이 이 양반이 미쳤다? 왜 이래." |
| "요년 아가리 붙여라, 이 더러운 쌍년, 네년이 저놈뿐이 아니라 나무다리 비렁뱅이도 붙인다지, 저런 쌍년, 에이 쌍년!" |
| 침을 탁 뱉는 소리가 난다. 이서방은 '병신거지도 붙인다지' 하던 말이 언제까지나 귓가를 싸고돌았다. 그리고 전신이 짜르르 울리며, 손발 하나 놀릴 수가 없었다. |
| "아이쿠, 이 년놈들 잘한다." |
| 짝짝 쿵 하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영수와 새로 다니는 대장장이와 맞붙은 모양이다. |
| "흥, 하룻개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게 두고 이른 말이구나. 이 경칠 자식, 그래, 온전한 부녀인 줄 알았냐?" |
| 어떻게나 하는지 죽는 소리를 한다. |
| "이 년놈들 내 칼에 죽어 봐라." |
| "아이 저 칼! 저 칼!" |
| 첫째 어머니의 이 같은 소리에 이서방은 벌컥 일어나며 나무다리를 짚고 뛰어나갔다. |
| 안방 문짝이 떨어져 봉당 가운데 넘어졌으며, 등불조차 꺼져서 캄캄하였다. |
| 첫째 어머니는 봉당으로 달아나왔다. |
| "이거 이거." |
| 숨이 차서 헐떡이며 칼을 쑥 내민다. 이서방은 칼을 받아 들고 부엌으로 나가며 얻다가 이 칼을 둬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나뭇단 속에 감추어 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
| "이거 왜들 이러슈. 점잖으신 터에 참으시죠들." |
| 서로 어우러진 것을 뜯어 놓으려니, |
| "이 자식은 왜 또 이래…… 너 깡뚱발이로구나. 너도 한몫 들어 매 좀 맞으려니?" |
| 누구인지 발길로 탁 찬다. 이서방은 팩 하고 나가자빠졌다. 그 바람에 나무다리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암만 찾아봐도 없다. 이서방은 온 봉당을 뻘뻘 기어다니며 나무다리를 찾았다. 그리고 몇 해 싸두었던 원한이 일시에 폭발됨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꾹 참으며 나무다리를 얻어 짚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
| 전 같으면 밖에 구경꾼들이 얼마든지 모였을 터이나 오늘은 밤이 오랜 까닭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뭇가리 곁으로 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
| 컴컴한 저 불타산 위에 뚜렷이 솟은 저 달! 저 달조차도 이서방의 이 나무다리를 비웃느라 조롱하느라 이 밤을 새우는 것 같았다. |
| "이서방!" |
| 찾는 소리에 이서방은 휙근 돌아보았다. 첫째가 내달아오며 일변 오줌을 솰솰 내뻗친다. 이서방은 첫째의 버릇을 아는지라 가슴이 뜨끔해지며 저놈이 또…… 하고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곧 첫째 곁으로 와서 그의 꽁무니를 꾹 붙들었다. |
| 오줌을 다 누고 난 그는 울컥 내닫는다. |
| "이놈들! 이놈들!" |
| 목통이 터져라 하고 고함을 치며 내닫다가 이서방이 붙든 것을 알자 주먹으로 몇 번 냅다 쳤다. |
| "놔, 이거!" |
| "이애 첫째야! 첫째야! 너 그럭하면 못쓴다, 응. 이애 매맞는다, 응, 이애." |
| "매맞아도 좋아, 이놈들." |
| 이번에는 사정없이 머리로 이서방의 가슴을 들이받으며 발길로 차던졌다. 이서방은 또다시 자빠졌다. 첫째는 나는 듯이 지게 곁으로 가서 낫을 뽑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
| "이애! 이애!" |
| 이서방은 너무 급해서 벌벌 기어 달려 들어가며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이 눈치를 챈 첫째 어머니는 내달아 왔다. 그리고 대문 빗장을 뽑아 들었다. |
| "이놈의 새끼, 왜 자지 않고 지랄이냐." |
| "흥, 저놈의 새끼들은 왜 지랄이누." |
|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숙친다. |
| 안방에서는 더한층 지끈자끈하는 소리가 벼락치듯 난다. 이서방은 소름이 쭉 끼쳤다. 안방의 놈들이 이리 기울어지면 어린 첫째는 어디든지 부러지고야 말 것 같았다. 따라서 옛날에 자기가 주인과 맞붙어 싸우다가 이 다리가 부러지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그때 그 비운이 오늘에 또 이 어린것에게 사정없이 닥치는 듯싶었다. |
| 이서방은 첫째의 발길에 채어 이리저리 굴면서도 그의 발목은 놓지 않았다. 그때 코에서는 선혈이 선뜻선뜻 흘러나온다. |
| "첫째야, 너 자꼬 그러면 다시는 떡 얻어다 안 준다." |
| 이서방은 생각지 않은 이런 말이 불쑥 나왔다. |
| "정말? 이서방!" |
| 첫째는 숨이 가빠서 훌떡훌떡하면서 돌아선다. 이서방은 벌떡 일어나며 그의 목을 꼭 쓸어안았다. 그러자 이서방의 눈에서는 눈물이 좌르르 쏟아졌다. |
| 선비 어머니가 뒤뜰에서 이엉을 엮어 나가며, 약간씩 붙은 나락을 죽 훑어서 옆에 놓인 바가지에 후르르 담을 때 밖으로부터 선비가 뛰어 들어온다. |
| "어마이." |
| 숨이 차서 들어오는 선비를 이상스레 바라보며 그의 어머니는, |
| "왜 무엇을 잘못하다가 꾸지람을 들었니?" |
| 선비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머니 귀에다 입을 대었다. |
| "어머니, 저어…… 큰댁 아지머님과 신천댁과 싸움이 나서 큰집 영감이 생야단을 하셨다누." |
| 선비 어머니는 귓가가 간지러워서 조금 머리를 돌리며, |
| "밤낮 싸움이구나. 그래 누가 맞았니?" |
| "그전에는 큰댁 아지머님을 따리지 않았어? 그런데 오늘은 신천댁을 사정없이 따리데, 아이 불쌍해!" |
| 선비는 무심히 나락 바가지에 손을 넣어 휘저어 보면서 얼굴에 슬픈 빛을 띤다. |
| "남의 첩질하는 년들이 매를 맞아야 하지, 그래 큰어미만 밤낮 맞아야 옳겠니?" |
| 딸의 새침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올봄부터는 선비의 두 뺨에 홍조가 약간 피어오른다. |
| "그래두 어마이, 신천댁의 말을 들으니 그가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라 저의 아부지가 돈을 많이 받고 팔아서 할 수 없이 왔다고 그러던데 뭐." |
| "하긴 그랬다고 하더라…… 그러기에 돈밖에 무서운 것이 없어." |
| 선비 어머니는 지금 매를 맞고 울고 앉아 있을 신천댁의 얼굴을 생각하며 꽃봉오리같이 피어오르는 선비의 장래가 새삼스럽게 걱정이 되었다. |
| "어서 가서 무얼 하려무나, 왜 그러고 앉어 있니. 오늘 빨래에 풀하지 않니?" |
| "해야지." |
| 그는 어머니 말에 어려워 부시시 일어나면서 다시 한번 나락 바가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빙긋이 웃었다. |
| "어마이, 이것도 찧으면 쌀이 한 되나 될 것 같우, 참……." |
| "이애 얼른 가봐라." |
| "응." |
| 선비는 나락 바가지를 놓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어머니는 물끄러미 딸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세월이란 참말 빠르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선비도 오래 데리고 있지 못할 것을 깨달으며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
| 그는 무의식간에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내밀어 이엉초를 꾹 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끝은 짚에 닳아져 빨긋빨긋하게 피가 배었다. 그때에 얼핏 떠오른 것은 자기의 남편이다. |
| 남편의 생전에는 비록 빈한하게는 살았을망정, 이렇게 이엉을 엮는 것이라든지 울바자를 세우는 것 같은 그런 밖의 일은 손도 대어 보지 않았다. 보다도 봄이 되면 으레 이 모든 것이 새로 다 되는 것이니…… 하고 무심히 지내 보내었던 것이다. |
| 그러나 남편이 없어지매 모두가 그의 손끝 가지 않는 것이 없고 힘은 배곱 쓰건마는 무슨 일이나 마음에 들도록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