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버지의 애원을 듣던 그때, 그리고 아버지의 파리해진 얼굴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자신의 그 비창한 결심이란 얼마나 약한 것이었던가? 신철이는 한숨을 후 쉬었다. 그때 이 형무소에 같이 들어온 밤송이 동무며 그 밖에 여러 동지의 얼굴들이 번갈아 떠오른다. 특히 인천에 있는 첫째의 얼굴이 무섭게 확대되어 가지고 그의 앞에 어른거려 보인다. 신철이는 그 얼굴을 피하려고 눈을 번쩍 떴다. 어젯밤만 해도 첫째의 얼굴을 머리에 그려 보며 그리워하였는데, 이 순간에는 어쩐지 첫째의 그 얼굴이 무섭게 보였던 것이다. |
| 창문으로 쏘아 들어오는 붉은 실타래 같은 햇발이 벽 위에 아로새겨졌다. 유리, 철창, 굵은 철망, 가는 철망의 네 겹을 뚫고 들어오는 저 햇빛! 그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동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간수가 미하리(망) 구멍으로 들여다볼 때마다 시간을 물어 가지고 그 햇빛을 따라 벽 위에 가는 금을 그어 놓았다. 그래서 시간을 짐작하곤 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저 햇발을 바라보면서 지금 열한시 반이나 되었을 것을 짐작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지금 집에 돌아가셔서 몹시 번민하시겠지…… 하였다. 아버지의 모양을 보아 말하지는 않아도 그나마 학교에서도 나온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몇 식구가 오직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던 터에 아버지마저 학교에서 나왔다면 그 생활의 궁함이야말로 보지 않았어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
| 어떻게 한담? 그의 집안을 돌아보아서 여기서 꼭 나가야 하겠고, 보다도 자신의 약한 육체를 보아서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그는 경찰서에서 고문받던 생각을 하고 소름이 쭉 끼쳤다. 두 번은 못 당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모르고나 당할 노릇이지 지금과 같이 그 맛을 뻔히 알고서는 넙죽 죽으면 죽었지 그 노릇은 다시 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
| 확실히는 모르나 미결에서 기결로 옮아가게 될 것도 일이 년은 걸릴 듯하였다. 그리고 다시 기결에 들어서는 십 년이 될지, 십오 년이 될지? 그것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십 년 밖이지 십 년 내로는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일생을 이 감옥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앞이 아뜩해졌다. 그때 그는 병식이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의 하던 말을 곰곰이 되풀이하였다. 어제 병식의 앞에서는 그의 말에 구역증이 나고 듣기도 싫더니 불과 하루를 지난 오늘에는 그 말이 그럴듯하게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병식의 앞에서 머리를 굽혀 보이기는 그의 자존심이 아직도 강하였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무심히 발끝을 굽어보았다. 그때 발가락에 개미 한 마리가 오르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신철이는 반가운 생각이 들어 개미를 붙잡아 손바닥에 놓았다. 개미는 어쩔 줄을 몰라 발발 기어 달아난다. 달아나면 또 붙잡아다 놓고서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
| 그가 개미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자신이 이 개미와 같이 헛수고를 하는 듯싶었다. 개미야말로 모르고서나 이 감방에를 찾아 들어온 것이지, 아무 먹을 것이 없는 이 쓸쓸한 감방에 들어올 까닭이 없었다. 오늘 이 개미는 먹을 것도 얻지 못하고 자기에게 붙잡혀서 고달플 것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 몸은 아무 소득도 없는 고생을 이때까지 해오다가, 또다시 여기까지 들어온 것 같을 뿐 아니라, 앞으로 몇십 년을 지나고 다행히 목숨이 붙어서 밖에 나간댔자, 벌써 자신은 그만큼 뒤떨어져서 여기도 저기도 섞이지 못하고, 결국은 일포나 기호 같은 그런 고리타분한 전락된 인텔리밖에 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
| 그렇다고 이 자리를 벗어날 것인가? 신철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강하게 흔들리지를 않고 아주 약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
| 마침 버들피리 소리가 끊어질 듯 질 듯하게 들리므로 그는 벌떡 일어났다. |
| 신철이는 얼른 미하리 구멍부터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디서 간수의 신발 소리가 나는가 하여 귀를 쫑긋 세우며 창 앞에 다가섰다. 창의 높이는 신철의 턱을 지나쳐 입술과 거의 맞닿았다. 신철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 인왕산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햇볕을 안고 반공중에 뚜렷이 솟은 저 인왕산…… 그때 가까이서 새소리가 나므로 시선을 옮겼다. |
| 창 밖에는 조그만 못이 있고, 그 옆에는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은 수양버드나무가 마치 여인의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가지 가지가 척척 휘어 늘어졌다. 그리고 버들잎이 파릇파릇하였다. 신철이가 처음 여기 와서 저 버드나무를 볼 때는 앙상한 가지만이 봄바람에 휘날리더니 어느덧 벌써 잎이 저렇게 좋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라보는 저 버드나무! 바라볼 때마다 그는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대하곤 하였다. 그리고 용연의 원소가 떠오르고 선비가 눈결에 지나쳤다. 그러나 그 선비는 옛날의 그 선비와는 어딘지 모르게 거리가 먼 것을 그는 느끼곤 하였다. 지금 그의 머리에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반대로 옥점이었다. 옥점이! 그는 다시 한번 옥점이를 불러 보았다. 아직까지도 그가 시집가지 않고 나를 기다릴까? 그렇지야 못하겠지? 벌써 어떤 사람의 아내가 되었겠지! 그러나 나를 아주 잊지는 못하리라…… 하고 멍하니 못을 바라보았다. 못 속에는 버들가지 그림자가 파랗게 떨어져 깔리었다. 그의 가슴속에 옥점의 얼굴이 파묻힌 것처럼……. |
| 그때 잠깐 끊어졌던 버들피리 소리가 아우아우 하고 들려 왔다. 그가 어려서 과부의 넋두리라고 하며 버들피리 끝에 손을 대고 마디마디를 꺾어 불던 그 곡조였다. 신철이는 머리를 번쩍 들어 피리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봄을 만난 인왕산…… 어린애들이며 청춘 남녀가 가지런히 갈서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푸른 하늘가에서 재재거리는 종달새 소리같이 그렇게 명랑하게 들리었다. 그가 동무들과 저 산에 올라가던 그때가 엊그제 같건만……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니 발버둥을 치고 싶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차라리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였더면 하는 후회까지 절실히 일어난다. 그는 이러한 생각이 아주 비열하고 더러운 생각이라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꽃다운 청춘기를 그가 이 철창 속에서 이러한 망상과 공상에서 썩힐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니 나 혼자만 무의미한 희생이지…… 그는 인왕산에 오른 남자를 바라보면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맘은 보채었다. 안타깝게 보채었다. 이렇게 번민과 쓰림을 당하는 것이 자기만이 아니고 이 안에 들어 있는 수없는 인간들인 것을 그는 깨달았다. |
| 피리 소리는 차츰 가늘어진다. 그의 안타까운 이 가슴의 굽이굽이를 바늘끝으로 꼭꼭 찌른다고 할지? 예리한 칼끝으로 심장의 일부를 살짝살짝 저민다고나 할지? ……저 푸른 하늘 아래 가는 연기와 같이 떠도는 저 피리 소리! 신철이는 어느덧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시커멓게 가로질러 나간 철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물 먹고 싶듯이 저 세상이 그립다. 저 세상의 푸른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고 싶다. |
| 그때 절그럭 하는 소리에 신철이는 깜짝 놀라 펄썩 주저앉았다. |
| "이놈아!" |
| 간수의 호통소리에 그의 가슴은 푸르르 떨렸다. |
| "이리 와 앉아!" |
| 신철이는 하는 수 없이 이편으로 와서 주저앉았다. |
| "내다보면 못써. 이 담엔 벌이 있을 테야!" |
| 신철이는 울분이 목구멍까지 치받치는 것을 꾹 참았다. 그는 기가 막혀서 묵묵히 앉았을 뿐이다. 간수는 한참이나 서서 신철이를 노려보다가 절그럭 하고 미하리 구멍을 닫는다. 그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을 펴보니 개미는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개미 동무를 잃어버린 그는 곁에 놓인 {법화경(法華經)}을 끌어당기어 펴들었다. |
| 입맛이 당기지를 않아서 저녁도 먹지 않은 선비는 여러 동무와 같이 공장으로 들어왔다. 이날 선비는 야근할 차례였던 것이다. 여공들은 누구나 다 밤일은 싫어하였다. 그래서 제각기 야근 차례만 돌아오면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남직공과 친해진 여공들은 야근하기를 좋아했다. 물론 밤에도 감독이 감독을 하지마는, 감독들은 하룻밤에도 몇 번씩이나 교대를 하였다. 그러므로 교대하는 그 틈마다 고치통을 들고 들어오는 남직공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밤이니 감독들은 낮과 같이 그렇게 심하게 보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밤에 남직공을 틈틈이 만나 보려고 애를 쓰곤 하였던 것이다. |
| 요새는 남직공과 여직공들이 배가 맞아서 나간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감독들이 눈을 밝히고 감독은 한다면서도 어쩐지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났다. |
| 선비는 육백삼호인 가마 곁으로 와서 동무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
| "이전 나가세요. 제 시간이어요." |
| 동무는 가마 소제를 하다가 휙근 돌아본다. |
| "내 소지하지요." |
| "아슴찮아라…… 참, 아픈 것 낫소?" |
| 동무는 손빠르게 와꾸를 뽑아서 통에 넣어 가지고 돌아서 간다. |
| 선비는 솔을 들고 가마를 얼핏 가신 후에 낡은 물을 내뿜고 새 물이 들어오게 하였다. 이렇게 기계를 소제하는 동안에도 기계의 운전은 쉬지 않았다. 그래서 선비는…… 아니 이 공장 안의 여공들은, 이 기계란 쉴 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기계에 머리카락이나 혹은 옷이 끼일까 봐 무서워서 머리에 수건을 막 쓰고 검은 통옷을 만들어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시커멓게 내려 입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나 간봄에 여공 하나가 머리카락이 와꾸에 끼어서 마침내는 기계에 말려들어 무참하게도 죽었던 것이다. 공장에서는 이것을 극비밀에 붙이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도 못 하게 하나, 곁에서 이 참경을 본 몇몇의 여공들이 있으므로,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말이 전 공장 안에 좍 퍼졌던 것이다. 그 후로 이 공장에서는 여공들에게 이런 작업복과 수건을 쓰라고 엄명하였다. 물론 공장에서 내준 것이 아니고 여공들 스스로 해입게 하였던 것이다. |
| 선비는 남직공이 갖다 주는 삶은 고치를 가마에 들어부었다. 끓는 물 소리가 와스스 하고 나며 고치는 가마 물 속에서 핑핑 돌아간다. 그때 어깨 위가 오싹해지며 오슬오슬 추워 왔다. 그리고 기침이 연달아 칵칵 일어난다. 그는 기침을 안 하려고 입을 꼭 다문 후에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기침은 안타깝게 목구멍에서 간지럼을 태우며 올라오려고 애를 썼다. 선비는 이렇게 기침을 참아 가면서, 조그만 비를 들고 끓어오르는 고치를 꾹꾹 눌러 가며 비 끝에 묻어나는 실끝을 왼손에 감아 쥐었다. 가마에서 끓어오르는 물김에 그의 얼굴이 화끈화끈 달며 벌써 손끝이 짜르르해 왔다. 그러나 반대로 등허리는 오싹오싹 오한이 난다. 선비는 간봄부터 확실하게 이러한 것을 느끼면서도 그저 일시 일어나는 몸살이거니…… 하였다. 그러나 여름철이 닥친 지금까지도 이 추운 증세는 떨어지지 않고 기침까지 곁들였다. 그래서 그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으나, 그러나 의사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
| 선비는 비를 놓고 왼손에 쥔 실끝을 한 오라기씩 돌아가며 사기바늘에 번개치듯 붙인다. 그러나 바늘 하나에 여러 번 붙이면 실오라기가 너무 굵어지니, 사기바늘 하나에 다섯 번 이상은 못 붙이는 것이다. 사기바늘을 통하여 뽑히는 실끝은, 마치 재봉침 실끝이 용쇠를 통하여 올라가는 것처럼, 비틀비틀 꼬여져서, 와꾸를 향하여 쭉쭉 올라가서 감긴다. 와꾸 옆에는 유리 갈고리가 공중에 매어달려서 와꾸에 실이 고루 감기도록 실끝을 물고 왔다갔다한다. |
| 전등불이 낮같이 밝은데 그 위에 유리창문과 유리천장에 반사가 되어 눈이 부시게 휘황하였다. 그리고 발전기 소음 때문에 귀가 막막하게 메어지는 것 같았다. 선비는 기침을 칵칵 해가면서 자리를 붙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다. 그것은 이십 개나 되는 와꾸를 혼자서 조종하려니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오슬오슬 춥던 것은 이젠 반대로 뜨거운 열이 되어 옷이 감기도록 땀이 흘렀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사뭇 빗방울같이 흘러서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숨이 차와서 흑흑 느끼었다. 손끝은 뜨거움이 진해서 차츰 무신경 상태에 들어간다. 그래서 남의 손인지 내 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
| 마침 실이 여기저기서 끊겼다. 선비는 발판을 꾹 눌렀다 놓아 기계를 정지시킨 후에 손빠르게 실끝을 쥐었다. 그때 옆에서 감독이 소리쳤다. |
| "얼른 이어! 요새 선비가 웬일이어?" |
| 감독은 들었던 채찍으로 와꾸를 툭 치어 기계를 돌리었다. 그러니 실끝은 채 이어지지 못한 채 와꾸는 핑글핑글 돌았다. 선비는 울고 싶었다. 오늘 밤새도록 일한 것이 헛수고였던 것이다. 감독이 이렇게 와꾸를 돌리게 되면 으레 이십 전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다. 선비는 어쩔 줄을 몰라서 돌아가는 와꾸를 바라보며 실끝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앞이 아뜩아뜩해지며 기침이 자꾸 기어나오려고 하였다. |
| "무슨 딴생각을 하는 게야! 이렇게 일에 성의가 없이 할 때에는, 응 그러하지?" |
| 선비는 가슴이 뜨끔해지며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리고 이 자들이 눈치를 채지나 않았는가? 하였다. 따라서 요새는 거의 날마다 선비를 나무라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하였다. 그래서 선비는 한층더 가슴이 떨리고 다리가 허둥거렸다. |
| 한참 후에 선비는 겨우 실끝을 이었다. 벌써 감독은 수첩에 무엇인가 쓰고 있다. 그리고 선비를 흘금흘금 곁눈질해 보며 수첩을 포켓에 집어넣고 그의 앞을 떠났다. 선비는 비로소 한숨을 후 쉬었다. 기침이 야무지게 칵 나왔다. 그는 감독이 그의 기침소리를 들었을까 하여 얼른 감독의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감독은 요새 갓 들어온 여공 앞에 서서 무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의 실팍한 궁둥이를 툭 쳤다. |
| "일 잘해! 그래야 상금을 타지." |
| 여공은 몸을 꼬며 애교를 피웠다. 그리고 감독의 눈을 슬쩍 맞추고 눈을 스르르 감으며 웃었다. 이 여공의 특색은 웃으면 저렇게 눈이 되곤 하는 것이다. 선비는 요새 감독이 그의 앞을 떠나 신입 여공에게 저렇게 구는 것이 잘되었다고 생각은 되면서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의 맡은 사업이 속히 드러날 위험을 느끼었다. 그리고 전에는 이따금 상금을 주었을망정 이렇게 와꾸를 돌리며 나무라지는 않았는데, 신입 여공이 감독의 비위를 맞추어 주면서부터는 감독의 태도가 아주 냉랭해졌다. 그리고 오늘까지 하면 벌금 문 것이 세 번째나 되었다. 선비는 여전히 바쁘게 손을 놀리면서도 한숨을 폭 쉬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몸이 더 괴롭고 기침만 나오려고 가슴이 죄어들었다. 그나마 아까는 다만 몇십 전의 벌이라도 되거니…… 했다가 그 희망조차 아주 끊어지고 나니 복받치는 것은 아픔과 설움뿐이었다. 그때 그는 간난이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고 어느 정도까지 감독의 비위를 맞추어 둘 것을…… 하는 후회도 다소 일었다. |
| 선비는 안타깝게 올라오려는 기침을 막기 위해서 얼른 비 끝으로 번데기를 건지려 하였다. 전등불에 비치어 금빛같이 빛나는 가마 물속에서 끊임없이 뽑히어 올라가는 저 실끝! 하루에도 저 실을 수만 와꾸나 감아 놓는 것이다. |
| 선비는 번데기를 건져 입에 물며 머리를 들어 와꾸를 바라보았다. 번개치듯 돌아가는 와꾸에 흰 무지개같이 서기를 뻗치며 감기는 저 실! 처음에 그가 저 와꾸를 바라볼 때는 뭐라고 형용 못 할 애착을 느끼었으며, 그리고 저것들을 뽑아서 하꼬(상자)에 담아 가지고 감정실로 들어갈 때의 만족이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저것을 바라볼 때는 그것들이 그의 생명을 좀먹어 들어가는 어떤 커다란 벌레같이 생각되었다. |
| 감독이 이리로 오는 눈치를 채고 선비는 얼른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실끝을 골라 바짝 쥐고 사기바늘에 붙였다. 이번에는 감독이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간다. 선비는 감독이 지나친 것만 다행으로, 하던 생각을 다시 계속하였다. |
| 감독의 소리가 크게 나므로 흘금 바라보니, 곁의 동무의 와꾸를 툭 쳐서 돌린다. 동무는 얼굴이 빨개서 실끝을 이으려고 허둥거린다…… 그 팔! 그 손끝! 차마 눈 가지고는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선비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그의 손가락을 다시 보았다. 빨갛게 익은 손등! 물에 부풀어서 허옇게 된 다섯 손가락! 산 손등에 죽은 손가락이 달린 것 같았다. 그는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치며, 이 공장 안에 죽은 손가락이 얼마든지 쌓인 것을 그는 깨달았다. |
| 와꾸 와꾸 잘 돌아라 |
| 핑핑 잘 돌아라 |
| 발전기 소음을 타고 이런 노래가 꺼졌다…… 살았다…… 하였다. |
| 선비도 어느덧 그 노래에 맞추어, |
| 와꾸 와꾸 잘 돌아라 |
| 핑핑 잘 돌아라 |
| 네가 잘 돌면 상금 |
| 네가 못 돌면 벌금 |
| 겨우 이렇게 입 속으로 부른 선비는 눈등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괴롬을 잊기 위한 이 노래! 일에 재미를 붙이기 위한 이 노래도 선비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활활 다는 가마 속에 그의 몸뚱이를 넣고 달달 볶는 것 같았다. 목이 타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코 안이 달고 눈알이 뜨거웠다. 그는 맘대로 하면 이 자리에 칵 엎어져서 몇 분 동안이나마 쉬었으면 이 아픈 것이 좀 나을 것 같았다. 선비는 지나는 감독의 구두 소리를 들으며 몸이 아파서 오늘은 일을 못 하겠어요 하고 몇 번이나 말을 하렸으나 입이 꽉 붙고 떨어지지 않았다. 어딘지 전날에도 선비는 감독들만 대하면 이렇게 입이 굳어졌는데 더구나 몸이 아프니 말할 것도 없었다. |
| 선비는 이제야 자기의 병이 심상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기침할 때마다 침에 섞여 나오는 붉은 실 같은 피도 더욱 더욱 관심되었다. 내일은 병원에를 가야지! 꼭 가야지! 하였다. 그리고 예금통장에 적혀 있는 돈 액수를 회계하여 보았다. 선비가 이 공장에 들어온 지가 벌써 거의 일년이 되어 온다. 그 동안 식비 제하고 그리고 구두 값으로, 일용품값으로 제하고 겨우 삼 원 오십 전 가량 남아 있다. 이제 그것으로 병원에까지 가면 도리어 빚을 지게 될 것이다. 무슨 병이기에 삼 원씩이나 들까? 그저 극상해야 한 일 원 어치 약 먹었으면 낫겠지? 하였다. |
| 그는 저편 벽에 걸린 커단 괘종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로 두시 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선비는 그의 다는 가슴에나마 한줄기의 희망과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
| 실이 끊어져 너풀거리므로 선비는 얼른 실끝을 이으며 감독의 눈에 띄지 않았는가 하여 머리를 들 때 앞이 아뜩해지며 쓰러지려 하였다. 그 바람에 그의 바른손이 가마 물 속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
| 그는, |
| "아!" |
| 비명을 내며 얼핏 손을 챘다. 그때 손은 이미 뜨거운 물에 담기었었으니 아픈지 어떤지 분명하지 않았으나 이윽고 손과 팔이 저리고 쓰리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
| "어데 몹시 다았수?" |
| 선비는 머리를 들고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자기에게 말을 던진 것이 고치통을 들고 온 남직공이라는 것을 알자 첫째의 그 얼굴이 휙 떠오른다. 선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머리를 돌렸다. 남직공은 멍하니 섰다가 돌아간다. 전 같으면 부끄럼이 앞을 가리었을 터이나 오늘은 온몸이 아프고 팔목까지 데었으니 그런지 부끄럼도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남직공에게 무엇인가 호소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었다. 그리고 그가 첫째라면 선비는 서슴지 않고 그의 몸에 피로해진 자신의 몸뚱이를 맡기고 싶었다. 선비는 못 견디게 쓰린 팔목을 혀끝으로 핥으며, 돌아가는 남직공을 흘금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리어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선비는 아무래도 이 밤을 새워 일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감독이 이리로 오면 말하겠다 하고 생각하였다. |
| 멀리 서 있는 감독이 그림자같이 눈앞에 희미하게 어른거리므로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때 감독이 그의 앞을 지나치는 듯하여 그는 입을 떼려 하였다. 그 순간 기침이 칵 나오며 가슴에서 가래가 끓어 올라오므로 그는 얼핏 입에 손을 대었다. 기침이 뒤를 이어 자꾸 나오려 하는 것을 참으려고 애를 쓸 때 마침내 그의 입에 댄 다섯 손가락 새로 붉은 피가 주르르 흐르며 선비는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
| 어떤 토굴 속 같은 방 안에 첫째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매일같이 노동하던 그가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이 이상 더 안타까운 괴롬은 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숨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므로 동무들이 전전 푼푼 갖다 주는 것을 가지고 요새 이렇게 들어앉고만 있었던 것이다. |
| 잡생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그도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없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일어나곤 하였다. 그는 요새 신철이를 몹시 생각하였다. 철수를 통하여 신철의 소식을 가끔 들으나 언제나 시원치 않은 소식이었다. 어서 빨리 나가서 다시 손에 손을 마주잡고 전날과 같이 일을 했으면 좋을 터인데……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는 월미도를 향하여 가던 긴 행렬을 다시금 눈앞에 그려 보았다. 그리고 선비의 놀라던 모양이 문득 생각난다. 참말 선비였던가? 그가 참말 선비라면 어느 때든지 만나 볼 것 같았다. 그때 그는 어젯밤 철수에게로 나왔을 대동방적공장의 보고를 듣고 싶은 생각이 부쩍 났다. 그리고 속이 달아 못 견디겠으므로 밖으로 나왔다. |
| 그가 철수의 집까지 오니, 마침 철수는 집에 있었다. 철수는 소리를 낮추어, |
| "서울서 어떤 동무 편에 신철의 소식을 알았소……." |
| 첫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눈을 둥그렇게 떴다. |
| "불기소가 되어서 나왔대우…… 이유는 사상 전환이라우." |
| "전환……?" |
| 첫째도 무의식간에 그의 말을 받고 나서 이 말을 믿어야 할까? 믿지 않아야 옳을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힘이 그의 가슴을 짝 채우고 말았다. 철수는 첫째의 낙심하는 모양을 살피고, |
| "동무! 신철이가 전향했다는 것이 그리 놀랄 것이 아닙니다. 소위 지식계급이란 그렇지요. 신철이는 나오자 M국에 취직하고 더욱 돈 많은 계집을 얻고 했다우." |
| 취직하고…… 돈 많은 계집을 얻구……? 이 새로운 말에 첫째는 무엇인가 번개같이 그의 머리를 찔러 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꼭 집어대어 철수와 같이 술술 지껄일 수는 없었다. |
| 그때 밖에서 신발 소리가 벼락치듯 나더니 문이 홱 열리었다. 그들은 벌떡 일어났다. |
| 그들은 뒷문 편으로 다가서며 바라보았다. |
| 간난이였다. 철수는 나무라듯이 간난이를 보았다. 간난이는 숨이 차서 한참이나 머뭇머뭇하다가, |
| "지금…… 곧 와주셔야 하겠수, 네? 빨리……." |
| 간난이는 겨우 이렇게 말하고 홱 돌아서 나가 버렸다. 그들의 놀란 가슴은 아직도 벌렁거린다. 첫째는 간난이를 바라볼 때, 몹시 낯이 익어 보이는데도 얼핏 누구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철수는 첫째를 돌아보았다. |
| "같이 갑시다…… 아마 죽어 가는 모양이오!" |
| 첫째는 철수의 눈치를 살피며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철수는 급하게 걸으며 앞뒤를 흘금흘금 돌아본 후에 가만히 말을 꺼냈다. |
| "어젯밤 대동방적공장에서 여성 동무 하나가 병으로 인하야 해고되었는데……." |
| 그때 자전거가 휙 지나치자, 물고기 비린내가 훅 끼친다. 첫째는 물고기 장수를 눈결에 보고 철수의 말을 다시 한번 속으로 되풀이하여 보았다. 그때 그는 가슴이 묵직함을 느꼈다. |
| "병인즉은 폐병인데…… 후!" |
| 철수는 그 조그만 눈을 쭉 찢어지게 뜨며 입술을 꾹 다물어 보인다. 그때 첫째는 멀리 수림 위로 보이는 대동방적공장의 연돌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시커먼 연기를 풀풀 토한다. 첫째는 선비도 그러한 병에나 걸리지 않았는지? 하였다. |
| 그들이 간난이 집까지 왔을 때 간난이는 맞받아 나왔다. 그리고 입을 실룩거리며 무슨 말을 하기는 하나 음성이 탁 갈리어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벌써 눈치를 채고 나는 듯이 방으로 뛰어들었다. 철수는 병자의 곁으로 와서 들여다보며 흔들었다. |
| "동무! 정신 좀 차리우, 동무!" |
| 병자의 몸은 벌써 싸늘하게 식었으며 얼굴이 파랗게 되었다. 철수는 후 하고 한숨을 쉬고 첫째를 돌아보았다. 가슴을 졸이고 섰던 첫째가 한 걸음 다가서며 들여다보는 순간, |
| "선비!" |
| 그도 모르게 그는 소리를 지르고 나서 우뚝 섰다. 그의 앞은 아득해지며 어떤 암흑한 낭 아래로 채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려서부터 그리워하던 이 선비! 한번 만나 보려니…… 하던 이 선비, 이 선비가 이젠 저렇게 죽지 않았는가! 찰나에 그의 머리에는 아까 철수에게서 들었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
| "돈 많은 계집을 얻구, 취직을 하구……." |
| 그렇다! 신철이는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그로 하여금 전향을 하게 한 게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가? 과거와 같이,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현재와 같이 아무러한 여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철이는 길이 많다. 신철이와 나와 다른 것이란 여기 있었구나! |
| 이렇게 생각한 첫째는 눈을 부릅뜨고 선비를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사모하던 저 선비! 아내로 맞아 아들딸 낳고 살아 보려던 선비! 한번 만나 이야기도 못 해본 그가 결국은 시체가 되어 바로 눈앞에 놓이지 않았는가! |
| 이제야 죽은 선비를 옜다 받아라! 하고 던져 주지 않는가. |
|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의 눈에서는 불덩이가 펄펄 나는 듯하였다. |
| 그리고 불불 떨었다. 이렇게 무섭게 첫째 앞에 나타나 보이는 선비의 시체는 차츰 시커먼 뭉치가 되어 그의 앞에 칵 가로질리는 것을 그는 눈이 뚫어져라 하고 바라보았다. |
| 이 시커먼 뭉치! 이 뭉치는 점점 크게 확대되어 가지고 그의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아니, 인간이 걸어가는 앞길에 가로질리는 이 뭉치…… 시커먼 뭉치, 이 뭉치야말로 인간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
|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하여 몇천만 년을 두고 싸워 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 나갈 인간이 누굴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