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 04

덕호는 문갑 위에서 산판을 꺼내 들며,
"그래 이번에는 좀 주던가, 방축골 그놈이?"
덕호는 그가 너무 미워서 이름도 부르지 않는 것이다. 민수는 얼굴이 빨개지며 머뭇머뭇하다가,
"아니유."
"아 그래 그놈을 가만히 두고 왔단 말인가? 사지라도 부러치고 오지."
"뭐, 물 턱이……."
민수는 말끝을 마치지 못하고 푹 숙일 때 상가에 흐르는 죽을 젖 빨듯이 빨아 먹던 어린애가 얼핏 떠오른다. 그리고 그 어두운 방 안이 휙 지나친다. 민수의 늘어진 말에 덕호는 화가 버쩍 났다.
"물 턱 없는 놈이 남의 돈을 왜 쓴단 말인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민수는 꿈칠 놀라 조금 물러앉았다. 덕호의 손길이 그를 후려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래 딴놈들은?"
"바 받았습니다."
덕호는 찡그렸던 양미간을 조금씩 펴며,
"그래 얼마씩이나 받았는가?"
"아마 삼 원……."
민수는 자기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원 받았습니다" 하고 말하려던 것인데, 누가 이렇게 시켜 주는지 몰랐다. 다음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바로 말하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두 귀는 무섭게 운다.
"모두 이자만 받았네그려…… 그 방축골놈 때문에 일났어! 아 그놈이 잘라먹으려고 든단 말이어. 받아 온 것이나 내놓게."
민수는 지갑 속에서 돈을 내어 덕호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의 손끝은 확실히 떨렸다. 덕호는 지전을 당기어 헤어 보더니,
"이 원뿐일세……?"
의아한 듯이 바라본다. 민수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에는 어린애 같은 천진한 애원이 넘쳐흐른다.
"저 남성네 어린것들이 굶어…… 굶어 있기에 주, 주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뜩 괴었다.
"뭐?"
덕호는 순간으로 눈이 뒤집히며 들었던 산판을 휙 집어 뿌렸다. 산판은 민수의 양미간을 맞히고 절거륵 저르르 하고 떨어진다.
"이 미친놈아, 그렇게 자선심 많은 놈이 남의 집은 왜 살아. 나가! 네 집구석에서 자선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아라."
돌아앉은 사람들은,
"그만두슈, 다."
"글쎄 글쎄, 제가 배가 고파서 무엇을 사먹었다든지, 혹은 쓸 일이 있어 썼다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수. 아 이 미친놈은 터들터들 가서 보행료도 못 받아 처여면서 그런 혼 나간 짓을 하니 분하지 않우? 이애 이놈 나가라!"
덕호는 벌컥 일어나며 발길로 냅다 찬다. 사람들이 아니면 실컷 두드리고 싶으나 체면을 생각해서 꾹 참고 다시 앉았다.
"그 돈 일 원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어, 그놈이 내 돈을 통째 삼키려는 판에 피천 한푼이나 왜 준단 말이냐, 이놈아."
덕호는 이를 북북 갈며 사뭇 죽일 듯이 달려들다가 그만 휙 나가버린다. 돌아앉았던 사람들도 뿔뿔이 가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에 민수는 정신을 차려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그리고 눈이 텁텁한 듯하여 만져 보니 양미간이 좀 달라진 듯하였다.
민수는 이렇게 주인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었지만 웬일인지 분하지도 노엽지도 않고 오히려 속이 푹 가라앉으며 무슨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하였다.
그는 얼핏 일어나 그의 집으로 왔다.
그가 싸리문을 열 때 선비 모녀는 뛰어나왔다. 칵 매어달리는 선비를 안은 민수는 뜻하지 않은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그리고 사남매의 모양이 또다시 떠오른다. 오늘은 그들이 무엇을 좀 먹어 보았을까?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물끄러미 부녀의 모양을 바라보던 선비 어머니는,
"미간 새가 왜 그래요?"
"왜 무엇이 어떤가."
그는 손으로 양미간을 비벼치며 드러눕는다. 선비 어머니는 이불을 내려 덮으며 어디서 몹쓸 놈을 만나 곤경을 당하였나? 혹은 노독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며,
"진지 지을까요?"
"글쎄! 미음이나 좀 먹어 볼까…… 쑤게나."
미음 쑤라는 말에 선비 어머니는 남편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려니 민수는 눈을 꾹 감고 돌아눕는다.
그날부터 민수는 자리에서 일지 못하고 몹시 앓았다. 선비 어머니는 온갖 애를 다 썼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어떤 날 선비 어머니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며 눈등이 빨개졌다.
"큰집 영감님한테 산판으로 맞었단 말이 참말입니까?"
"누가 그러던고?"
"아 뭐, 다들 본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듣그러워! 그런 말 청신해 가지고 다닐 것이 없느니…… 좀 또 맞었다면, 영감님이 나를 미워서 때렸겠나, 부모 자식 새 같으니……."
"아니, 글쎄 맞기는 분명합니다그려."
"듣그럽다는데…… 이 사람."
그는 앓는 소리를 하며 돌아눕다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눈을 번쩍 뜨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만일 죽게 된다드라도, 그런 쓸데없는 말을 곧이들어서는 못써……."
민수는 자기 병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덕호에게서 맞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는다는 말이 남편의 입에서 떨어지자, 선비 어머니는 그만 아뜩하여 다시는 두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그 후 며칠 만에 민수는 드디어 가고 말았다. 선비가 안타깝게 매어달려 우는 것도 모르고…….
이러한 과거를 되풀이한 선비 어머니는 어느새에 눈물이 볼을 적시었다. 그는 눈물을 씻고 나서, 다시 한번 그의 지붕을 쳐다보았다. 주인을 잃어버린 컴컴한 저 지붕! 저 지붕에 남편의 굵다란 손길이 몇천 번이나 돌아갔을까!
싸리문 열리는 소리에, 선비 어머니는 선비가 오는가 하고, 얼른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물 흔적을 없이한 후에 이엉을 엮었다. 그러자 방문 소리가 났다. 선비 어머니는 선비가 아니라 딴 마을꾼이 오는가 하여 귀를 기울였다.
"어데들 다 갔수?"
말소리를 듣고야 선비 어머니는 누구임을 알았다.
"아이 어떻게 우리집에를 다 오셔요?"
선비 어머니는 곧 일어나며 뒷문을 열었다. 방문을 시름없이 열고 섰는 신천댁은 푸석푸석 부은 눈에 약간 웃음을 띠며,
"일하시댔소?"
말끝을 이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서 들어와요."
신천댁은 방 안으로 들어와 앉으며 뒤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우리 어머니두 지금……."
말을 맺지 못한다. 선비 어머니는 무엇을 의미한 말임을 얼핏 깨달으며 측은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왜 어데가 편치 않으세요?"
"선비 어머니, 난 내일 그만 우리집으로 갈까 봐……."
눈물이 샘처럼 솟는다. 선비 어머니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멍하니 앉았다가,
"그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난 정말 그 집에선 못살겠어. 글쎄 안 나오는 아이를 어떻게 하라고 자꼬 들볶으니 글쎄 살겠수?"
이제 겨우 이십이 될락말락하는 그의 입에서 자식 말이 나올 때마다 선비 어머니는 잔망하게 보았다. 동시에 측은한 맘도 금치 못하였다.
"왜 또 무어라고 허십데까?"
"글쎄 요전에 월경을 한 달 건는 것은 선비 어머님도 잘 알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게 나왔구려!"
"나왔어요? 월경도 건너 나오는 수도 있지요."
"글쎄 그 빌어먹을 것이 왜 남의 애를 태우겠소."
신천댁이 월경을 건너니 덕호는 먹을 것을 구해 들이느라 보약을 쓰느라 온 동네 사람들까지 들볶아 대었던 것이다.
덕호가 하늘같이 떠받칠 때는 웬일인지 밉더니만 오늘 저렇게 시름없이 와서 앉은 것을 보니 측은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아니 이제 날 테지, 벌써…… 글쎄."
"그러기 말이에요. 내 나이 삼십이 됐소, 사십이 됐소. 글쎄, 그 야단을 할 턱이 뭐겠수."
신천댁은 한숨을 쪽 쉬더니,
"난 내일 가겠수, 자꾸 가라니깐 어떡해요."
"그게야 영감님이 일시 허신 말씀이겠지요."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말소리를 낮추어,
"요새 영감님이 간난네 집에를 단긴다우."
선비 어머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며칠 동안 어머니가 가슴앓이병으로 앓아누워서, 선비는 큰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머니 곁에 꼭 마주앉아 있었다.
아직도 이 집에는 남포등을 쓰지 못하고 저렇게 접시에 들깨 기름을 부어 쓰는 것이다. 불꽃은 길게 끄름을 토하며 씩씩히 올라가다는 문바람에 꺼풋꺼풋하였다.
선비는 어머니가 좀 잠이 든 듯하여 등불 곁으로 왔다. 불빛에 보이는 그의 타오르는 듯한 볼은 한층더 빛이 났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느라 물끄러미 등불을 바라보다가 부시시 일어나서 윗방으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