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호는 문갑 위에서 산판을 꺼내 들며, |
| "그래 이번에는 좀 주던가, 방축골 그놈이?" |
| 덕호는 그가 너무 미워서 이름도 부르지 않는 것이다. 민수는 얼굴이 빨개지며 머뭇머뭇하다가, |
| "아니유." |
| "아 그래 그놈을 가만히 두고 왔단 말인가? 사지라도 부러치고 오지." |
| "뭐, 물 턱이……." |
| 민수는 말끝을 마치지 못하고 푹 숙일 때 상가에 흐르는 죽을 젖 빨듯이 빨아 먹던 어린애가 얼핏 떠오른다. 그리고 그 어두운 방 안이 휙 지나친다. 민수의 늘어진 말에 덕호는 화가 버쩍 났다. |
| "물 턱 없는 놈이 남의 돈을 왜 쓴단 말인가!" |
| 소리를 버럭 지른다. 민수는 꿈칠 놀라 조금 물러앉았다. 덕호의 손길이 그를 후려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
| "그래 딴놈들은?" |
| "바 받았습니다." |
| 덕호는 찡그렸던 양미간을 조금씩 펴며, |
| "그래 얼마씩이나 받았는가?" |
| "아마 삼 원……." |
| 민수는 자기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원 받았습니다" 하고 말하려던 것인데, 누가 이렇게 시켜 주는지 몰랐다. 다음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바로 말하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두 귀는 무섭게 운다. |
| "모두 이자만 받았네그려…… 그 방축골놈 때문에 일났어! 아 그놈이 잘라먹으려고 든단 말이어. 받아 온 것이나 내놓게." |
| 민수는 지갑 속에서 돈을 내어 덕호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의 손끝은 확실히 떨렸다. 덕호는 지전을 당기어 헤어 보더니, |
| "이 원뿐일세……?" |
| 의아한 듯이 바라본다. 민수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에는 어린애 같은 천진한 애원이 넘쳐흐른다. |
| "저 남성네 어린것들이 굶어…… 굶어 있기에 주, 주었습니다." |
| 마침내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뜩 괴었다. |
| "뭐?" |
| 덕호는 순간으로 눈이 뒤집히며 들었던 산판을 휙 집어 뿌렸다. 산판은 민수의 양미간을 맞히고 절거륵 저르르 하고 떨어진다. |
| "이 미친놈아, 그렇게 자선심 많은 놈이 남의 집은 왜 살아. 나가! 네 집구석에서 자선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아라." |
| 돌아앉은 사람들은, |
| "그만두슈, 다." |
| "글쎄 글쎄, 제가 배가 고파서 무엇을 사먹었다든지, 혹은 쓸 일이 있어 썼다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수. 아 이 미친놈은 터들터들 가서 보행료도 못 받아 처여면서 그런 혼 나간 짓을 하니 분하지 않우? 이애 이놈 나가라!" |
| 덕호는 벌컥 일어나며 발길로 냅다 찬다. 사람들이 아니면 실컷 두드리고 싶으나 체면을 생각해서 꾹 참고 다시 앉았다. |
| "그 돈 일 원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어, 그놈이 내 돈을 통째 삼키려는 판에 피천 한푼이나 왜 준단 말이냐, 이놈아." |
| 덕호는 이를 북북 갈며 사뭇 죽일 듯이 달려들다가 그만 휙 나가버린다. 돌아앉았던 사람들도 뿔뿔이 가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에 민수는 정신을 차려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그리고 눈이 텁텁한 듯하여 만져 보니 양미간이 좀 달라진 듯하였다. |
| 민수는 이렇게 주인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었지만 웬일인지 분하지도 노엽지도 않고 오히려 속이 푹 가라앉으며 무슨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하였다. |
| 그는 얼핏 일어나 그의 집으로 왔다. |
| 그가 싸리문을 열 때 선비 모녀는 뛰어나왔다. 칵 매어달리는 선비를 안은 민수는 뜻하지 않은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그리고 사남매의 모양이 또다시 떠오른다. 오늘은 그들이 무엇을 좀 먹어 보았을까?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물끄러미 부녀의 모양을 바라보던 선비 어머니는, |
| "미간 새가 왜 그래요?" |
| "왜 무엇이 어떤가." |
| 그는 손으로 양미간을 비벼치며 드러눕는다. 선비 어머니는 이불을 내려 덮으며 어디서 몹쓸 놈을 만나 곤경을 당하였나? 혹은 노독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며, |
| "진지 지을까요?" |
| "글쎄! 미음이나 좀 먹어 볼까…… 쑤게나." |
| 미음 쑤라는 말에 선비 어머니는 남편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려니 민수는 눈을 꾹 감고 돌아눕는다. |
| 그날부터 민수는 자리에서 일지 못하고 몹시 앓았다. 선비 어머니는 온갖 애를 다 썼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
| 어떤 날 선비 어머니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며 눈등이 빨개졌다. |
| "큰집 영감님한테 산판으로 맞었단 말이 참말입니까?" |
| "누가 그러던고?" |
| "아 뭐, 다들 본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
| "듣그러워! 그런 말 청신해 가지고 다닐 것이 없느니…… 좀 또 맞었다면, 영감님이 나를 미워서 때렸겠나, 부모 자식 새 같으니……." |
| "아니, 글쎄 맞기는 분명합니다그려." |
| "듣그럽다는데…… 이 사람." |
| 그는 앓는 소리를 하며 돌아눕다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눈을 번쩍 뜨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
| "내가 만일 죽게 된다드라도, 그런 쓸데없는 말을 곧이들어서는 못써……." |
| 민수는 자기 병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덕호에게서 맞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는다는 말이 남편의 입에서 떨어지자, 선비 어머니는 그만 아뜩하여 다시는 두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
| 그 후 며칠 만에 민수는 드디어 가고 말았다. 선비가 안타깝게 매어달려 우는 것도 모르고……. |
| 이러한 과거를 되풀이한 선비 어머니는 어느새에 눈물이 볼을 적시었다. 그는 눈물을 씻고 나서, 다시 한번 그의 지붕을 쳐다보았다. 주인을 잃어버린 컴컴한 저 지붕! 저 지붕에 남편의 굵다란 손길이 몇천 번이나 돌아갔을까! |
| 싸리문 열리는 소리에, 선비 어머니는 선비가 오는가 하고, 얼른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물 흔적을 없이한 후에 이엉을 엮었다. 그러자 방문 소리가 났다. 선비 어머니는 선비가 아니라 딴 마을꾼이 오는가 하여 귀를 기울였다. |
| "어데들 다 갔수?" |
| 말소리를 듣고야 선비 어머니는 누구임을 알았다. |
| "아이 어떻게 우리집에를 다 오셔요?" |
| 선비 어머니는 곧 일어나며 뒷문을 열었다. 방문을 시름없이 열고 섰는 신천댁은 푸석푸석 부은 눈에 약간 웃음을 띠며, |
| "일하시댔소?" |
| 말끝을 이어 한숨을 푹 쉬었다. |
| "어서 들어와요." |
| 신천댁은 방 안으로 들어와 앉으며 뒤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
| "우리 어머니두 지금……." |
| 말을 맺지 못한다. 선비 어머니는 무엇을 의미한 말임을 얼핏 깨달으며 측은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
| "왜 어데가 편치 않으세요?" |
| "선비 어머니, 난 내일 그만 우리집으로 갈까 봐……." |
| 눈물이 샘처럼 솟는다. 선비 어머니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멍하니 앉았다가, |
| "그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
| "난 정말 그 집에선 못살겠어. 글쎄 안 나오는 아이를 어떻게 하라고 자꼬 들볶으니 글쎄 살겠수?" |
| 이제 겨우 이십이 될락말락하는 그의 입에서 자식 말이 나올 때마다 선비 어머니는 잔망하게 보았다. 동시에 측은한 맘도 금치 못하였다. |
| "왜 또 무어라고 허십데까?" |
| "글쎄 요전에 월경을 한 달 건는 것은 선비 어머님도 잘 알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게 나왔구려!" |
| "나왔어요? 월경도 건너 나오는 수도 있지요." |
| "글쎄 그 빌어먹을 것이 왜 남의 애를 태우겠소." |
| 신천댁이 월경을 건너니 덕호는 먹을 것을 구해 들이느라 보약을 쓰느라 온 동네 사람들까지 들볶아 대었던 것이다. |
| 덕호가 하늘같이 떠받칠 때는 웬일인지 밉더니만 오늘 저렇게 시름없이 와서 앉은 것을 보니 측은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
| "아니 이제 날 테지, 벌써…… 글쎄." |
| "그러기 말이에요. 내 나이 삼십이 됐소, 사십이 됐소. 글쎄, 그 야단을 할 턱이 뭐겠수." |
| 신천댁은 한숨을 쪽 쉬더니, |
| "난 내일 가겠수, 자꾸 가라니깐 어떡해요." |
| "그게야 영감님이 일시 허신 말씀이겠지요." |
|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말소리를 낮추어, |
| "요새 영감님이 간난네 집에를 단긴다우." |
| 선비 어머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
|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
| 며칠 동안 어머니가 가슴앓이병으로 앓아누워서, 선비는 큰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머니 곁에 꼭 마주앉아 있었다. |
| 아직도 이 집에는 남포등을 쓰지 못하고 저렇게 접시에 들깨 기름을 부어 쓰는 것이다. 불꽃은 길게 끄름을 토하며 씩씩히 올라가다는 문바람에 꺼풋꺼풋하였다. |
| 선비는 어머니가 좀 잠이 든 듯하여 등불 곁으로 왔다. 불빛에 보이는 그의 타오르는 듯한 볼은 한층더 빛이 났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느라 물끄러미 등불을 바라보다가 부시시 일어나서 윗방으로 올라간다. |



